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2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20화(288/343)
예언의 디저트 카페는 평이 좋다고 한다.
일단 주인장이 돈이 많아서 사업이 아니라 자선에 가깝게 운영 중이고, 예언이 친구와 만날 때 이곳을 주로 사용하다 보니 아이돌 팬들 사이에선 덕계못을 부정하기 위한 장소라는 별명도 얻었다.
소문으로는 자신의 본진이 예언과 친하지 않은 게 아쉽다는 말도 가끔 있다더라.
그러나 그분들은 알까. 정작 그 당사자는 곤욕스럽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예언은 머리를 헝클이고 넥타이를 풀었다. 컨셉 놀음은 끝인가 보다.
여기 도착해서 장장 20분 동안 그 염병을 떨었으니 이쯤 되면 그만둘 때가 됐다.
“여기는 신전이에요.”
“카페입니다.”
“내가 신전이라고 정했거든요.”
언어가 자의적이라는 게, 자기 멋대로 해도 된다는 소리는 아닌데.
“여기는 주교님.”
툭, 예언이 자랑스럽게 준성의 어깨를 쳤다. 준성은 자포자기한, 체념의 눈으로 나를 봤다.
“동화야, 미안.”
지난번에 본 것같이 사죄했다. 정작 저 형이 잘못한 건 전혀 없고, 예언 선배가 미치광이일 뿐이다.
“우리의 정신적 지주, 지동화를 숭배하는 장소죠.”
사이비잖아, 미친놈아.
“장난이야. 우리끼리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긴 해도, 여기는 네 덕분에 만들어졌잖아?”
준성이 형은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사이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발언을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눈물 나는 노력이다.
“예언이가 초콜릿 만드는 거 배우고, 나랑 돈 모아서 차린 곳이거든.”
“안 줘도 된다니까.”
“여윳돈은 항상 남겨 둬야지. 카페 운영하는 데 한두 푼 들어가?”
그래, 그런 비화가 있었군.
나는 아메리카노를 입에 넣었다. …망할, 왜 맛있어. 커피 품질이 왜.
“내 친구 중에 커피 하는 애가 있어서 컨택했지.”
준성이 형이 흐뭇해했다.
이 가격에 이 품질, 말도 안 되는. 눈앞에서 자본주의의 원칙이 어긋나는 걸 보니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후배님이 너무 단 건 또 안 좋아하고, 너무 쓴 것도 안 좋아한다길래 만든 특제 레시피이.”
이번엔 예언이 가슴을 내리쳤다.
이건 또 왜 맛있지. 사장만 예언이 아니었으면 목화를 데려와서 같이 먹었을 것이다.
나는 들어오면서 봤던 가격표를 떠올렸다. 아무리 봐도 남을 리가 없다.
테이크아웃 불가라는 원칙만 아니었으면 사람으로 미어터졌겠다.
“…밑 빠진 독.”
최소 현상 유지가 최선일 정도.
돈을 벌겠다는 욕심 따위는 없는, 순전히 이 일이 재밌어서 뛰어든 인간이 설정한 가격.
“밑 빠지진 않아요, 후배님.”
“맞아. 가격 더 내리려는 거 내가 막았거든.”
“애초에 우리 팬들이 와서 드시고 가는데, 가격을 어떻게 높인데애. 나는 형한테 좀 실망했어.”
“적자만 계속 나면 나중에 위험하다니까. 타이머분들이랑 오래 뵈는 게 더 낫다고.”
티격태격.
나는 둘이 다투는 걸 가만히 관찰하면서 커피를 마저 마셨다. 예언이 행복해 보이는 게 새삼스럽다.
시선을 느꼈는지 예언이 준성과 다투다 순간 나와 눈이 맞았다.
“맛있나 보네에.”
남세스럽게도 얼굴에 다 티 나게 먹고 있었구나.
“더 맛있었으면 좋겠어, 후배님. 나는 몇 번을 감사해도 모자라거드은.”
“…여기, 목화가 또 다녀왔나요?”
“응. 우리 모임에 나오기로 하셨거든!”
어쩐지, 동생 놈이 물어봐도 말해 주지를 않는다, 했다.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내 연락은 무시했으면서 여기엔 얼굴을 비추다니. 아주 귀엽네, 목화.
고깝다. 이것들이, 내 동생을.
“일단 목화는.”
어느새 말까지 놨군. 준성의 친화력은 괘씸하기 그지없다.
“나와서 좀 놀랐대. 모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기 형한테 도움을 받았다고 하니까.”
“그런, 대화를 나눈다고.”
끔찍한걸. 바퀴벌레와 함께 식사하며 한 숟가락씩 서로 밥을 먹여 준대도 이것보단 괜찮은 기분일 텐데.
최소한 논리가 여기저기 엉성한 철학 서적을 열 번 반복해서 읽는 편이 더 유쾌할 것 같고.
“아니, 평소엔 아니지. 근데 이제 이 모임의 목적이 뭐냐고 물어보는데, 어떡해.”
“그래서 다들 말한 거예요. 무슨 도움을 받았는지.”
예언은 거기까지 말하고 피식 웃었다.
“근데, 성호는 자기가 받은 도움은 절반 정도는 모르는 상태고.”
“맞아, 더 큰 거였다며.”
“은구도 원래 떨어질 사람이었는데, 버젓이 데뷔해 있으니까 나도 좀 놀랐거든요? 아무리 봐도 동화 씨가 뭔갈 한 건데, 걔도 그건 모르겠지?”
예언은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의식적으로 간격을 미묘하게 조절해, 신경에 거슬리지만 불편하지 않은 속도로.
“내가 다 억울해. 어떻게 은혜를 베풀고 모른 척하죠? 다 알려 주고 싶은 거 참느라 얼마나 고생인데.”
정말 억울해 보여서 문제다.
“자기 노력이 있으니 그 자리에 있는 겁니다.”
“왜 그렇게 부정하는지도 잘 모르겠어, 진짜.”
예언은 한숨을 푹 내쉬며 앞에 있는 초콜릿을 먹으려다 자기 손을 툭 쳤다.
식단 조절 중인가 보다. 나도 한 조각만 먹는 걸 허락받은 상태니까 별반 다르지 않다.
“그냥 시원하게 인정하자, 후배님. 저것들 다 내 덕에 저 자리에 있다!”
“싫습니다.”
“사실 상관없어요.”
불길한 웃음.
예언은 정말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든 말든, 성호는 자기 주변 아이돌들 중에 험담하는 애 있으면 설득하고 다닐 거고. 곤란에 처한 사람 있으면 도와줄 거거든.”
더욱 환해지는 미소.
“은구도 후배님을 본받아서 주변 사람들 도와주는 데 진심인 데다가.”
마지막으로 만개.
“나는 후배님 건드는 사람들 비밀을 폭로하고 다닐 거거든. 여담이지만 은구는 나도 본받았지!”
“잘 나가다가 꼭!”
준성이 형이 예언의 등짝을 내리쳤다.
“내가 본 미래가 얼마나 많은데! 절반만 그대로여도 어느 정도는!”
그리고 예언은 그 정도로 굴하지 않았다.
“…그저 행복하게 사는 데 집중하실 수는 없나요.”
나는 얌전히 커피를 마셨다.
커피는 아무리 마셔도 식단 관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건강에 어떨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음, 근데 예언이 마음도 어느 정도 알 만하지.”
당연히 예언이 답하리라 여겼는데, 뜻밖에도 준성이 형이 답했다.
“평생 달고 살던 목줄을 끊어 준 거잖아. 그래도 당사자가 부담스러워할 짓은 좀 하지 마. 최소한 몰래 하자니까.”
…‘하자니까’라니. 청유형 문장은 발화자도 행위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준성이 형도 같이 했구나, 망할.
“나는 후배님이나 성호만큼 훌륭한 인격자는 못 되나 봐. 도와주고 있단 걸 숨기지를 못하겠어. 꼭 알아줬으면 좋겠더라고.”
예언은 심통을 부리듯 툭툭 뱉었다.
“내가 받은 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그래야 알려 줄 수 있잖아아?”
하, 세상에. 큰일을 해 준 건 맞지만, 또 그 보답을 하려 노력했다는 것도 고맙긴 하지만.
“자기 인생을 즐겨 주세요, 부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정도로 나는 곤란하지도 않으니까. 의무감에 갚으려 한다면, 그건 채무잖아. 일수꾼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
예언은 내 속내를 재듯 가만히 나를 쳐다보다, 준성이 형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말을 뱉기 전에 미리 폭력을 저지하는 모양새다.
“저한텐, 이게 인생이에요.”
음.
“의무감도 아니고,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할 거지만.”
얌전히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적어도 후배님이 나한테 얼마나 은인인지는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거지. 자기 노력으로 성공한 거라느니, 도울 생각은 아니었다느니, 너는.”
음, 색다르네. ‘너’라고 부르는 예언 선배는.
“누가 너한테 고마워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더라. 왠지 섭섭해!”
목화나 우리 멤버들 정도가 아니라면 아직 낯설어서 그렇다. 다른 사람의 감사 같은 날것 상태의 감정은 버겁다.
“…그럼 제가 여기 올 땐 공짜로 커피를 주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된 본목적.
부디 연예계에 해괴한 카르텔을 만드는 걸 관두고, 그냥 담소나 나누면 어떨까, 우리.
나를 돕는다고 설치기보다는, 가끔 만나 커피를 사 주는 편이 나한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미팅룸에 침묵이 감돌았다.
이곳엔 내 말에 담긴 속뜻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사람도, 눈치가 없는 사람도 없다.
“와, 내가 알던 사람 중에 제일 이상했던 사람이 어느새.”
예언은 아무렇지 않게 무례한 소리를 지껄였다.
제일 미쳐 있다니, 네 입으로 듣고 싶지는 않아, 예언.
“마음 여는 데 너무 오래 걸려.”
준성은 어이가 없는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후배님, 내가 준성이 형이랑 후배님이 말을 놨다는 소식을 듣고, 초콜릿 만들다가 눈물을 흘렸어요.”
“진짜긴 해.”
“누구는 자기 은인한테 연락해도 형식상 답변만 받고오. 무슨 야생 고양이도 아니면서, 밥 먹다가도 다가가면 왜 도망치나 싶었어.”
사람을 동물에 빗대다니. 몹시 반인륜적이다.
커피를 다 마시고 잔을 내려놨다. 음, 한 잔 더 달라고 하고 싶다.
“조금 친해진 김에 얘기하자면, 후배님은 자기가 정상이라고 주장하잖아?”
“…한 잔만 더 주시겠습니까.”
웃음을 터뜨리는 예언. 홀가분해진 것처럼 보였다.
나는 어느 날 들었던 예언의 미래를 되새겼다.
그때 분명 예언은 남이 차린 카페에서 나와 만나 커피를 마신다고 했지.
그러나 이젠 아니다. 자기가 차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까.
“이든이는 후배님이 제일 이상한 놈이라고 말하고 다녀.”
예언은 커피를 따르며 애써 끊어 놓은 말을 이었다.
나는 커피를 따라 주는 동안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며, 예절에 따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잔이 다 따라졌을 때,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동의하시나요.”
“당연하지.”
피식, 예언이 웃었다.
“몇 번이고 동의할 수 있어.”
이 미팅룸엔, 저 말에 담긴 속뜻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눈치 없는 사람은 없었다.
예언이 발견한 새로운 거리감을 담아낸 것이다.
“저도 예언이 형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마찬가지.
* * *
이현재는 한 손에 휴학계를 들고 차에 올라탔다.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해외 일정이 시작될 예정이라, 동화 형이 선배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함께 제출하기로 했다.
아침 수업을 들을 때면 늘 이렇게 차에 타서 같이 갔다.
이현재는 흘러나오는 콧노래를 그대로 둔 채 예언의 카페로 향하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류이든으로 하루 동안 살면서 깨달은 건, 그 형이 대단한 인간이라는 것.
다른 형들처럼 이현재도 ‘류이든임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게임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버릇 맞히기.
멤버들의 사소한 습관이나 버릇, 징크스같이 무대나 방송에서 주의해야 할 것들을 전부 알아야만 통과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평소에 그렇게 우리를 생각하면서 사는구나, 이현재는 가끔 소름이 돋곤 한다.
자신의 주변엔 왜 이렇게 좋은 사람이 많은 건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래서 생긴 궁금증.
다른 멤버들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느낌일지.
“현재 씨, 다 왔어요. 저기 동화 씨한테 연락 한 통만 해 주실래요?”
“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아한 카페 앞에 차가 멈춰 섰다.
그리고 그 밖에는 부끄러움 따위는 모르는 예언이 다시 집사 차림으로 깍듯하게 지동화의 옆에 서서 문을 열어 주는 풍경이었다.
“그럼, 다녀오세요, 주인님.”
정중하고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는 예언.
“그래, 예 집사.”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답하는 오만한 귀족 같은 지동화.
이현재는 휴학계를 꼭 쥐고 안에 조금 더 들어가 앉았다.
저 풍경 속에 자신이 속해 있었다는 목격담을 차마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대체, 지동화로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이현재는 더욱더 궁금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