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2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21화(289/343)
차가 한국대학교 정문을 향해 갈 때, 이현재는 지동화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차마 묻지 못했다. 대체 어쩌다 집사를 한 명 고용했는지는.
지동화로서 바라보는 세계는 어떤지도.
“학교도 오랜만이네.”
지동화는 심드렁하게 교정을 보고 있었다.
오랜만이라 반갑다기보다는,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 아무래도 동화 형한텐 벌써 두 번째 학교생활일 테니까.
“그렇죠. 약간 설레네요.”
그러나 이현재에게는 아니었다.
사실 평범한 대학 생활 따위 자신들에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18학점에서 21학점 정도 듣는다고 하던데, 자신들은 12학점, 더 적을 때도 왕왕. 학년 수료는 참 딴 세상 얘기 같았다.
그래도 좋다. 자기가 노력한 결실이자 자신이 선택한 학과. 다른 사람이 강요하지도 않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학교에 다니는 게 즐거웠다.
이현재는 창문을 조금 열어 가로수를 봤다.
학교 정문부터 주변 도로에는 은행나무가 빽빽이 자라고 있다.
초가을이라 단풍은 지지 않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노랗게 길을 물들일 것이다.
이현재는 그 풍경을 좋아했기에, 조금 아쉬웠다. 물론 풍경만.
“아, 형이랑 수업 또 언제 들을 수 있을까요.”
“그러게.”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인문대 옆에 있는 학생회관 근처 주차장에 멈춰 선 차.
“오랜만에 느티나무에서 커피나 사 갈까.”
“이미 마시구 온 거 아녜요?”
“괜찮아.”
한국대 생활 협동 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
아침엔 거기서 커피를 사 수업에 들어가는 게 둘의 일상이었으니까. 동화 형은 그 일상을 되새기려 하나 보다.
둘은 커피를 사 우선 자하연 근처 벤치에 앉았다.
오리 두 마리가 연못을 거니는 풍경은 언제 봐도 고즈넉하다.
오후 시간. 계절학기도 끝난 상태라 대학원의 좀비들과 동아리 활동을 하는 몇몇만이 있는 을씨년스러운 교정.
벤치에 나란히 앉아 침묵을 지킨다.
대화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 따위 없는, 편안한 고요함. 동화 형과 둘이 있을 때만 누릴 수 있는 평화다.
휴학계를 제출하기 위해선 교수님의 도장이 필요한데, 한국대 인문대학 같은 경우 학과 사무실에 각 지도교수님의 도장을 모아 두고 있기에 가서 제출만 하면 처리해 주신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교수님께 면담 신청하기 버튼을 누르려던 이현재를 지동화가 뜯어말리지 않았다면 교수님과 어색한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
“어, 자네.”
멀끔한 신사 한 분이 말을 걸었다.
휙 돌아보자마자 이현재는 공손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휴학계를 제출하러 와서 만난 지도교수. 이현재는 은근히 몸이 굳었다.
지도교수님 수업이라고 전공 선택 수업으로 신청했다가, 정원이 일곱 명뿐이라 서로 너무 잘 아는 얼굴이었다.
“어쩐 일이에요. 한창 바쁘던데.”
온화한 미소. 교수님들에 대한 악담은 널리 퍼져 있지만, 다행히 자신의 지도교수님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면전에 대고 휴학하러 왔다고 말하기가 좀.
이현재는 망설이다가 결심했다.
동화 형 말씀하시길, 대학교는 방목 농장이기에 대학생이 뭘 하든 9할의 교수님은 관심이 없다.
“아, 휴학계를 제출하러…….”
그러나 1할도 가능성이라면 가능성이다.
준이 형이 하는 게임에선 1%의 확률로 등장하는 캐릭터도 있다는데.
교수님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급속도로 표정이 어두워지셨다. 커피를 든 손도 약간 흐를 듯 내려놓는 것만 같았다.
“혹시, 그 소속사라는 곳에서 공부를 못 하게 하던가요?”
“아, 아뇨, 한 달 정도 해외 일정이 있어서.”
“…하.”
깊은 한숨, 안타까운 눈초리.
교수님, 왜 그러세요. 이현재는 의아해졌다.
* * *
이현재는 모르는 것 같지만 나는 저 눈빛을 안다.
인품이 좋은 교수님은, 학문에 진심인 학생을 쉽게 알아보고는 한다.
과제물 내용만 읽어도 대충은 보이는 법이다(그래서 인품이 좋은 교수님만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과제와 시험지 채점을 한다는 뜻이니까).
저건 분명히 대학원을 권유할 때의 눈빛. 나도 시달린 적 있기에 잘 알고 있다.
“아이고, 아쉬워서 어쩌나. 이번에도 제 수업 들을 줄 알았는데.”
“하하…….”
“인재가 바쁘면 이렇게 되는군요. 하긴, 공부하는 게 조금 늦어질 수도 있지. 늦은 만큼 더 깊게 배우면 되는 거고.”
함의가 깊다. 깊게 배우라는 말이 하나의 결론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은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하고, 나중에 학문을 배우려 할 때 대학원에 와라, 너는 아직 젊지 않으냐.
교수님은 온몸으로 그렇게 소리치고 있으셨다.
이쯤 되면 이현재도 눈치를 챘어야겠지만, 아쉽게도 우리 막내는 ‘대학원 권유 상황’ 자체를 예상조차 하지 못했나 보다. 의문에 휩싸인 채 저리 번민하는 걸 보면.
“지난번 기말 과제물도, 정말 잘 읽었습니다.”
확실히 잘 썼지. 나는 커피를 마시며 속으로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재는 과제를 제출하기 전에 크게 고칠 부분은 없는지 내게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대로 제출하라고 말했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교수님과 내 눈이 마주친다.
처음 뵙는 분. 국문학과 전공 선택은 들은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교수님의 눈에는 ‘당신이 제 학생을 뺏어 갔어요.’라는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어르신, 죄송하지만 제 과외생이기도 합니다.
“나중에라도 꼭 학교로 돌아와요.”
“네.”
“일도 열심히 하고.”
“네.”
어색한 상황이 끝나간다는 기쁨을 겉으로 표출하진 않았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떠나가는 교수님의 등에 인사를 하는 이현재의 등에서도 느껴졌다.
교수님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때 이현재는 탈진하듯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뭐지. 왜 저러실까요.”
내가 말할 수 있는 답은 간단하다.
“네가 잘나서.”
더도 덜도 말고 사실만을 담은 답변이다.
지난 가능성에서 이현재가 어쩌다 32세라는 어린 나이에 한국대 교수 루트를 밟기 시작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저분, 연세가 지긋해 보이니, 정년에 퇴임하시며 이현재를 꽂아 넣고 나가셨나 보다, 저분이.
물론 이현재도 그만한 결과물을 냈으니까 가능했던 일이겠지만.
[정확합니다.]이현재 한정으로 관심이 충만한 기지생이 오랜만에 메시지를 보냈다.
이것 봐, 저 교수님은 몹시 위험한 분이다.
“…현재.”
“네?”
아직 어안이 벙벙한 이현재.
“대학원은 가는 곳이 아니래.”
이 정도의 조언 정도는 해도 괜찮겠지.
“어? 음, 맥락이…….”
이현재가 방금의 대화를 곱씹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요즘 대학원 지망생이 없어서 하나가 아쉬운 거구나.”
그러고는 홀로 납득했는지, 편안하게 등을 기대 다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현재. 하나가 아쉬운 게 아니라 네가 아쉬운 거야.
* * *
대학교는 활기찬 기운이 있긴 하다.
다만, 혼자 걸을 때는 활기찬 대학생보다 전도하시는 분들과 훨씬 자주 마주치는 게 또 대학교이기도 하다.
“신입생이세요?”
전도하겠다는 뜻이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신입생이라기에는 제 얼굴을 보면 많이 삭지 않았습니까.
이현재가 국문과 사무실로 먼저 가고, 나는 철학과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자하연 바로 위가 1동이라 이현재는 곧장 건물로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조금 더 걸어야만 한다.
전도하는 분들이 싫은 건 아니다. 사이비만 아니라면 종교에 진심으로 빠져드는 건 나쁠 일이 아니니까.
“환절기라 마스크 쓰셨구나!”
대학교에서 전도하시는 분들은 열정으로 가득하기에, 죄송하다는 짧은 인사로도 쉽게 떠나지 않으신다.
그럴 때는 그냥 길을 걷곤 한다. 날씨 얘기부터, 다양한 일상 얘기까지. 어떻게든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의도가 돋보였다.
“아니, 처음에 화들짝 놀랐어요.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이랑 닮아서.”
음. 나는 걸음을 우뚝 멈췄다.
어차피 곧 3동, 수업도 없는 시간. 나는 마스크를 살짝 내렸다.
“혹시 그분이 이런 얼굴인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만일 아니라면 마스크를 그대로 올리고 갈 길 가겠습니다.
“…허, X발.”
신이 있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나는 살풋 웃음을 터뜨렸다.
전도를 하시던 분은 입을 틀어막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나셨다.
전도 중에 자신의 본진 아이돌을 만난 기분은, 나도 알지 못한다.
“아니, 아, 뭔, 이게.”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사인은 해 드릴 수 있는데 아쉽게도 한참을 입을 오물거리시던 분은 뒤돌아 도망치셨다.
“미안, 동화야!”
라는 짧은 비명과 함께.
난 하는 수 없이 다시 3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과 사무실 근처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나오셨다.
“…안녕하십니까.”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우연이 겹쳐서 발생하지. 기지생의 조작이 의심될 지경이다([아니에요! 선생님은 지금 류랑 노는 중이에요!]라는 뜻 모를 메시지가 오긴 했지만, 답해 주진 못했다).
이현재가 자기 지도교수님을 우연히 만나고, 그다음엔.
“오, 오랜만이네!”
지난 가능성부터 이번 가능성까지, 모두 나의 지도교수님이 되신 분.
“어쩐 일이야.”
“휴학계를 제출하러 왔습니다.”
“…아, 그래, 그런 일이 있을 만도 하지. 본업이 있으니.”
이현재의 지도교수님이 이현재를 바라볼 때와 똑같은,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
“아니, 동화 학생은 학자 타입인데 말이야.”
죄송합니다, 아이돌이 천직(天職, 문자 그대로 하늘이 내려준 직업)이라서요.
한참을 이어진 대화, 대충 ‘아니, 너는 그 머리를 왜 썩힐까…….’라고 물으면, 내가 미소 짓는 것의 반복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그래,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혹시 또 몰라. 나중에 공부하고 싶어질지도!”
개인적으로, 대학원에 갔다면 이분 밑에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전공이라니,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긴 하지만 전공으로서는 사양이라.
나는 떠나가는 교수님께 고개를 숙였다.
“와, 형은 진짜 어디서든 잘하나 봐요.”
불쑥, 이현재가 대뜸 튀어나왔다.
이 망할 건물, 여기저기 연결된 구석이 많아서 어디서 누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엄청 아쉬워하시네요.”
통계적으로 고대 그리스 전공자 중엔 독특한 성격의 보유자가 참 많으시다.
가령, 내 지도교수님이 지금 자신의 연구실을 열고 달려 나오는 걸 보면 알 수 있듯.
“동화 학생.”
“네, 교수님.”
“이거, 이번에 우리 자연학 연습 발제 모음인데, 혼자 공부할 때 써요. 이거 함부로 주는 거 아니다?”
확실히 함부로 줄 자료는 아니다. 이건 대학원생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니까.
“…감사합니다.”
“어우, 이걸 감사할 정도로 학문에 진심인데…….”
다시 시작되는 옥신각신.
생각해 보면, 교수님 수업을 열심히 들은 내 탓일지도 모른다. 양아치 같은 태도로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어째서 내 양심은 그걸 허락지 못할까.
이현재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마치 ‘와, 설마 아까 교수님이…….’라는 눈초리였다.
그래, 현재. 깨달았으니 다음에 복학할 때 우리는 떳떳한 양아치가 되어 돌아오도록 하자.
아이돌로 사는 데 거리낌이 없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