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2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25화(293/343)
“과외해 주세요, 기지생 선생님.”
“…네?”
기지생의 표정은 급격하게 혐오로 물들어 갔다.
“제가 당신을 아끼고, 당신의 삶을 사랑한다고 해서, 당신의 존댓말까지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과외는 문제없나 보네.
“하대를 받는 게 좋으십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한테 문제가 있다는 듯 들리지만 솔직히, 네.”
“어쨌든 과외, 부탁하겠습니다.”
“…하.”
기지생은 가만히 여우를 쓰다듬었다.
“미련입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싫습니다.”
말을 끊자 기지생이 어이가 없는지 여우를 안아 올려 얼굴을 마주했다.
“…현.”
“네.”
여우가 기분이 좋은지 헤실거리며 답했다.
“쟤 좀 물어 봐.”
“넘어갈 수 있었으면 이미 진즉에 죽였어요, 선생님.”
멋있군. 이현재가 딱 저런 매력이 있지.
“음, 현.”
“네?”
기지생은 곤란하게 이쪽을 보았다.
“…음, 어쩌죠. 애가 원하는 건 해 주는 게 우리 유치원 원칙인데.”
“내가 죽으면 선생님이 말소되는 건, 알고 있습니까.”
“아마 비유적 표현일 거예요.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괴롭힌다는 뜻이지, 현?”
“네.”
똑똑하네, 그리고 귀여워. 다른 동물들도 귀엽던데, 대화해 보고 싶군.
“어쨌든, 과외를 해 달라고요.”
“네.”
“우선 말투부터 고치죠, 듣기 역하네요.”
“응.”
“사유는?”
“이미 알잖아.”
고작 나약하게 ‘그래. 기지생은 나보다 아는 게 많으며, 모든 가능성을 고려했을 거야.’라며 우울해할 수는 없다. 그건 철학하는 인간의 태도가 아니다.
철학의 본질은 부정에 있다.
구조주의자들이 후기구조주의자를 낳아 그들이 쌓아 둔 구조가 미끄러진다는 걸 주장하듯이. 헤겔을 비판하며 아도르노가 부정 변증법을 구성하듯이.
누군가가 불가능하다 선언했다면, 그 모든 근거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동의할 수 없다.
힘겹게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그 목에 칼을 찔러 넣는 게 철학의 근본정신인 셈이다.
내 생각을 찬찬히 읽던 기지생은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꽃피우더니 슬며시 물었다.
“혹시 정신병이 생겼나요? 제가 치유해 줄 수 있는데.”
그런 차별적인 발언을. 윤리 의식 따위는 고려치 않는 기지생의 모습, 참 호탕하다(더는 기지생을 모욕할 수 없는 나의 한계다).
“선생님이어도 이랬을걸.”
분명하다.
“…하, 호칭도 정정하죠.”
“너였어도.”
“제 목에 칼 찌르고 싶으니 과외를 해 달라는 겁니까.”
나는 세면대에서 나와 자리로 돌아갔다. 모두들 굳은 채 나 홀로 움직이는 감각은 기묘하기 짝이 없다.
“응.”
“…귀엽네요, 정말. 제가 당신 AI를 귀여워하는 것과 비슷한 감각입니다.”
“모를까 봐 말씀드리면, 건방지기 짝이 없다는 뜻이구요.”
여우가 건방진 놈을 보듯 째려보고 있었다.
기지생도 동의하듯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제가 얼마나 살았는지 아십니까.”
“정확히 말해 준 적은 없지.”
의자에 앉기 전 내 쪽으로 몸을 돌려 펄쩍 뛰고 있는 채하민이 눈에 띄었다. 얘는, 이러고 있었구나.
“지난번처럼 간단하게 동기화할 수 없는 건 알고 말씀하십니까.”
“그렇겠지”
처음에 음악 관련 지식을 주입받을 때도 머리가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으니, 아마 내 뇌가 견디지 못하리란 사실은 자명하다.
그러나 직접 배우면 그만인데 왜 그럴까.
기지생은 다시 내 속내를 찬찬히 읽었다.
몇 번 눈살을 찌푸리며 계속 읽어 내리더니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모든 걸 배울 수도 없거니와, 배운들 저에게 동의하는 게 고작일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멍청한 사람이 아닌데…….”
이해할 수 없는 눈, 꿈틀거리는 입.
하고 싶은 말은 알겠다. 그 시간에 다른 여가 활동을 하거나, 아니면 잠이라도 자서 삶의 질을 높이라는 소리겠지.
“말이 많네, 선생님.”
“호칭.”
어림없다.
“가르쳐 주세요, 선생님.”
“하, 그걸로 협박을 하는 것도 참.”
“시간을 멈추고 가르쳐 주면 되지 않을까.”
나는 느긋하게 등을 기댔다. 모든 걸 알기 전까지 이 비행기에 있어도 나는 좋다.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아십니까. 부작용 처리하느라 가르칠 시간이 없겠는데요.”
“그럼, 내가 잠을 줄이면 되고.”
“그렇게 살다가 단명합니다.”
“그렇게 나약하지는 않지.”
아무렴. 네 수명과 내 수명이 연결된 시점에 나는 장수하기로 결심했다.
류이든, 기다려. 기네스 기록을 두고 너와 경쟁할 예정이니까.
기지생은 미간을 좁히고 여우를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여우가 새초롬하게 나를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선생님, 저 하등한 것한테 교육 좀 해 주세요.”
“…비효율투성이야, 현.”
“저희를 만든 것두 비효율적이었죠.”
똑 부러지는걸. 기지생은 그건 그렇긴 한지 반박하지 않고 여우를 다시 들어 올렸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현?”
“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잖아요.”
기지생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이 나이 먹고 과외나 해야 하냐.’라는 눈초리다.
생각해 보면 기지생은 얼마 만일까, 과외를 하는 게.
“솔직히, 나랑 말하는 거 좋아하잖아, 기지생.”
내가 무덤덤하게 말하자 기지생이 피식 웃었다.
기지생의 회색빛 삶에 나와의 대화는 중요한 유희 중 하나다.
“사실 당신도 저랑 하는 대화 좋아하는 거 다 압니다.”
그래, 너보다 나를 면밀히 관찰한 인간은, 채하민을 포함한 멤버들과 목화 말고는 없을 테니까.
그러자 혐오로 가득한 시선이 화면 안에 번뜩였다.
“자신하는데, 목화 제외 전부 제가 이깁니다.”
어딜 감히, 비교할 걸 비교하십시오, 얼굴만 봐도 그 속내가 읽혔다.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학생.”
결심했나 보다.
그 이유는 모른다. 원래 배우는 입장에선 모르는 것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오늘 밤부터.”
“그래요, 당신이 당신의 입으로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저를 추모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서였군. 내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러나.
“반드시, 네 목에 칼을 찔러 넣을 거야, 기지생.”
원래 철학은, 이전의 논리가 시간이 흘렀음에도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려다 제풀에 넘어지는 법이다. 데리다의 해체가 잘 보여 주듯.
나는 마무리된 대화에 눈을 감았다.
“지금 풀어 드려도 됩니까?”
“응.”
“음, 그래요, 뭐. 하민 씨니까 괜찮겠죠?”
기지생이 뜻 모를 소리를 지껄이자, 귀에서 비행기의 이륙음이 쏟아져 들어왔다.
* * *
채하민은 아까 전에 보았던 장면을 분명히 기억한다.
눈을 감고, 새하얀 낯빛으로 불쾌한 꿈을 꾸듯 인상을 찌푸리던 지동화를.
그러나 지금, 그러니까 그 짧은 새, 지동화는 평소와 같은 낯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치 조금 전에 보았던 것들이 환상이라는 듯이.
“에.”
멍청한 소리를 뱉은 건 그래서였다.
지동화가 천천히 눈을 떴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왜, 하민.”
“아니, 어? 뭐지. 아닌데.”
“뭐가.”
“아니, 그보다! 동화야, 밥 먹어야지!”
“응.”
지동화는 수저를 들어 이미 덮어 둔, 덮어 둔?
“…이거 왜 덮여 있어.”
“글쎄.”
평화롭게 밥을 챙겨 먹는다. 마치 맛은 없지만 영양 보충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지독한 의무감이 눈에 서려 있었다.
“아닌데, 아니. 뭐지.”
채하민은 오싹한 기분에 주변을 둘러봤다.
뭔가 귀신 같은 게 있나. 이게 너구리한테 홀리는, 뭐 그런 걸까!
“하민.”
“어, 으, 왜?”
“오늘 숙소에, 조금 늦게 들어갈지도 모르겠어.”
그러고는 입에 고기를 쏙 집어넣는다.
“…왜?”
오래 꼭꼭 씹던 지동화는 음식물을 삼키고 대답했다.
“주변에 도서관이 있으면 들르려고.”
“책 빌리게? 외국에서 그게 되나?”
“아니. 열람실은 있을 테니까. 근처에 없으면 카페로 가고.”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들었던 대환데.
채하민은 곰곰이 고심했다. 분명히, 비슷한 말을, …현재한테 들었어!
“고, 공부하게?”
“응.”
“네가 공부할 게 남아 있어?”
자신의 말이 웃긴지 지동화가 살포시 웃었다. 밥을 씹어 삼키곤 이쪽을 쳐다보았다.
“응.”
눈웃음까지 하다니, 무엇이 저렇게 지동화를 부드럽게 만들었을까! 한 달에 한 번도 보기 어려운, 순진무구한 웃음.
“와아.”
채하민은 그에 순수한 감탄사를 터뜨렸다.
채하민은 너무나 궁금했다.
대체 뭘 공부하려고 가는 걸까! 무엇을 공부하기에 이런 웃음을 보여주는 걸까. 지동화 이해학 박사로서 참을 수 없었다.
“나도, 갈래.”
“도서관?”
“응! 외국어 공부할 거야!”
반은 거짓이다. 외국어 문장을 외우긴 할 테지만, 지동화가 뭘 하는지 보는 게 더 주된 목적이다.
“정말 공부만 할 건데?”
지동화는 입을 티슈로 닦으며 물었다. 걱정 어린 눈초리였다.
그러나, 이 채하민, 한다면 하는 인간이다. 공부는 못했지만(정확히는 안 했다), 지동화 관찰만큼은 일류다. 표정 읽기 특강을 연 인간이 누구였던가.
“나도 공부만 할 거야.”
“음, 그래.”
지동화는 의아한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렸다. 그럴 리가 없다는 확신이 어느 정도 있어 보였다.
“…괜찮겠어?”
“응!”
“세상엔, 더 재밌는 게 많은데.”
“괜찮아!”
채하민은 해맑게 말했다.
* * *
그러나 함께 도착한 카페(도서관은 관광지에선 너무 멀었다)에서, 채하민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공부 따위 하지 않은 채하민이라고는 해도, 공부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림은 있었다.
그러나 지동화는, 지금 눈앞에서, 눈을 감고 손을 탁자에 얹은 채, 명상하듯 등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이게, 공부가 맞나? 한국대 가는 애들은 다 이렇게 공부하나? 아닌데, 현재한테 사과 깎아 줄 때는 아니었는데!
채하민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수첩을 펼쳐 한글로 적은 외국어 발음과 그 뜻을 한번 훑었다.
그러나 괴상한 광경이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묻지 않을 수 있을까.
“…도, 동화야.”
“응, 하민.”
“…공부야?”
“응.”
그리고 다시 침묵, 채하민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무슨 소리야, 동화야. 아무리 멍청해도, 그걸 명상이라고 부른다는 것쯤은 알아.
채하민은 자꾸만 지동화에게로 향하는 눈을 멈출 수가 없었다.
뭐지, 묻고 싶다. 자꾸만 말을 걸고 싶다.
자꾸만 움찔대는 눈 주변 근육과 입술을 깨물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지 순간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는 것까지.
새로운 표정들이 너무나 많이 등장하니까, 저 눈꺼풀 아래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채하민은 너무나 알고 싶었다.
그러나 약속했다. 오늘 여기선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채하민은 자기 입술을 악물었다.
참아, 하민아. 동화랑 한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거야. 이든이 형이 배신했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며 채하민은 테이블에 고개를 푹 숙이고 끙끙 앓았다.
“…하민.”
벌떡.
“응, 어! 공부 중!”
지동화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몸을 숙여 조용히 속삭였다.
“기지생이랑 대화하는 거야.”
“…와아, 그러면, 네가 너한테 과외를 받는 거네?”
채하민도 고개를 숙이고 속삭였다.
“응.”
“멋있다. 나도 나랑 대화하고 싶어!”
반짝이는 눈빛. 지동화는 피식 웃으며 ‘눈 감고 해 봐.’라며 채하민을 놀렸다.
채하민은 그걸 눈치챘음에도, 눈을 감고 탁자 위에 손을 얌전히 올렸다.
지동화도 몇 번 웃고는 다시 집중하기 위해 채하민과 같은 자세로 눈을 슬며시 감았다.
사람이 많지 않은 변두리의 작은 카페, 두 남자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영혼을 교감하듯 눈을 감고 삼십 분 동안 앉아 있는,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이 침묵의 시간은, 타이완 현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잘생긴 두 남성의 명상 모임.’이라는 썰이 되어 인터넷을 떠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