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2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29화(297/343)
류이든은 조금 억울하고 서운했다.
지동화한테 자기가 얼마나 잘 대해 줬는데 웬 바보 같은 왕관이나 씌우고, 온 SNS에서 수치를 느끼게 만드는 걸까(사실 별로 수치스럽지 않다, 그래서 더더욱 타겟으로 삼는 데 거리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억울함이나 서운함 같은 감정보다도 더욱 큰 문제.
왜, 자신은, 요즘, 당하기만 할까.
그것도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지만, 예전처럼 다시 지동화를 놀리고 싶은 작은 욕심이 있다.
“아, 아아, 나도 동화 좀 속이고 골탕도 좀 먹이고…….”
그로 인한 상심은 상당히 커서, 류이든은 저녁 운동을 나가지 않았다.
* * *
이국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풍경. 우리는 한 동남아 음식점에 모여 밥을 먹었다.
오늘은 밥을 먹고 이 식당에서 자컨을 촬영할 예정이다. 투어 기간 중 리얼리티 촬영을 위해 잠시 틈을 냈다.
듣기로는 이상한 괴소문(정말 그룹이 이상하다라는 소문)과 함께 우리 리얼리티를 봐주시는 분이 늘어났다고는 하던데.
류이든 제외, 우리 그룹은 전원 이상하지 않으므로 거짓이거나 오해다. 둘 중 무엇이든 진실은 아니니 상관없지 않을까.
“오늘은 평화롭게 진행될 예정이에요. 여러분들이 수치스러울 일도 없이.”
나와 눈을 맞추며 말하는 PD님. 마치 칭찬을 바란다는 눈초리였다.
나는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타도 PD놈.
“근데 이든 씨 머리에 그건…….”
“네, 촬영 중에는 벗을 거예요, PD님.”
“그래요……, 그보다 오늘은 훈훈하게 진행하더라도 방송의 재미를 위해서 하는 수 없이 벌칙이 있긴 합니다.”
저런.
“팀별로 자기가 할 벌칙을 정해서 하는 거니까, 너무 겁먹으실 필요 없어요. 물론 목록 중에 조금 무섭거나 부끄러운 게 있긴 한데, 여러분들 판단에 맡길 거예요. 저건 할 만하다 싶은 벌칙을 하시면 되거든요.”
세상에, 이런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방송이 훈훈하게 진행될 예정이라더니, 승부에 집착하지 말라고 이렇게 배려해 주다니. 정경우 PD님은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반면에 그 인간은 얼마나…….
“벌칙 결정권은 누구한테 있나요?”
그때, 류이든이 대뜸 손을 들고 소리쳤다.
“팀 안에서 상호 조율하시면 되고, 안 되면 가위바위보입니다.”
“오…….”
그러고는 대답을 듣고 나를 보며 웃었다. 의미심장한 웃음.
나는 곧바로 손을 들었다.
“팀원 선정은 어떻게 하나요?”
“제비뽑기 비슷한 거랍니다. 복불복으로 삼 대 이! 인원수가 중요한 게임은 아니에요.”
미심쩍군. 나는 향신료의 향이 가득한 국물을 한 입 먹으면서 고심했다. 류이든의 속내야 뻔하지.
나는 진득한 고수의 향을 맡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음, 못 먹을 맛은 아니지만, 먹고 싶냐고 묻는다면, 글쎄.
“이든 형.”
“엉?”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러게, 나도 참.”
그러면서 류이든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떠났다. 또 무슨 개짓거리(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하려고.
그러니까 저런 계략이 딱 고수 같은 것이다.
당하면 곤란하냐 묻는다면 아니지만, 당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글쎄.
“동화야.”
“응.”
“너는 뭘 그렇게 생각해. 오늘 둘이 분위기 아주 묘해.”
채하민은 이런 쪽엔 기민하다고 할 정도로 눈치가 빠르다.
류이든과 나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기류를 눈치채고 이유를 캐묻다니, 하물며 이현재도 석준의 칭얼거림을 받아주고 있을 뿐, 눈치채지는 못했는데.
주변을 한번 슥 둘러보더니 채하민이 내게만 들리게 귀에 속삭였다.
“둘이 싸워?”
“노는 중.”
홉, 소리가 나게 입을 틀어막는 채하민.
“…왜, 나만 빼고.”
“미안.”
일단, 류이든이 뭘 하는지 잠시 확인해 봐야만 하겠다.
* * *
류이든은 화장실로 가는 척 눈을 열심히 굴렸다.
류이든은 그저 지동화의 미소를 조금 부수고 싶었다. 증오라기엔 뭣하고, 차라리 애정에 더 가까운데, 참 애매하다.
지동화랑 같은 팀에 들어가서 벌칙 선택권을 얻고 함께 죽는다는, 단순한 계획에 걸림돌이 되는 건 ‘같은 팀’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점이다.
소품이 모여 있는 곳에서 분주히 무언가를 준비하는 스탭님들.
류이든이 오는 게 보이자마자 재빨리 숨겼지만, 벌써 모두 훑어봤다.
종이 상자와 두 종류의 뱃지.
형태와 재질이 달라 보였다. 형태는 근소한 차이였고, 재질은 금과 은 정도 차이. 도금이라 가정할 시에는 별 차이 없겠지만, 주재료가 그것이라 가정하면.
“…무게나 손끝 감각.”
이 둘 중 하나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
음, 이것만 어떻게 하면 가위바위보는 무조건 이길 수 있을 텐데.
류이든은 복도에 머리를 기대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동화가 먼저 뽑는다는 가정하에 류이든은 따라 뽑을 자신이 있다.
무게든 감각이든,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분야니까. 조금 시간이 걸려도 그 안에서 만지작대다 보면 무엇이 지동화가 뽑은 건지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할지 궁리하던 때.
“순서는 운에 맡기게?”
오소소 돋는 소름.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지동화의 목소리. 따라올 줄 알고 있었는데도 그 냉한 목소리에 당황하고 말았다.
심지어 속내를 꿰뚫고 있는 것도 좀 봐, 얘는 진짜 제정신이 아니다.
그룹 내의 유일한 형인 자신한테만 그 광기를 온전히 드러내서 그렇지, 얘가 막내였으면 모든 멤버가 하나같이 지동화가 미치광이라고 뽑았을 텐데.
“그러니까. 그게 걱정이야.”
그러나 형 된 노릇으로, 어떻게 동생 앞에서 당황할 수 있을까. 류이든은 당당하게 말하며 돌아섰다.
지동화는 웃고 있었다.
“음, 내가 뒤에 뽑아 줄까.”
“와, 너 또 뭐 이상한 계획 머릿속에 굴리는 거지! 나 또 놀리려고! 나도 좀 놀리자! 왜 너만 재미 봐! 형인데 좀 져 줘라!”
류이든은 아득바득 토해 냈다.
자기를 엿 먹이겠다는 사람이 코앞에 있는데도 태연하게 상담까지 해 준다.
이런 인간이 광기 1등이 아니라니! 류이든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만약에 같은 팀이 아니라면 지금은 휴가 중인 PD님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지동화를 모욕할 수 있도록 도울 거야.
“믿어야지, 날.”
“세상에 나보다 널 믿는 사람도 없을 거다.”
절로 툴툴대고 말았다. 류이든도 사람이라 가끔은 서운한 마음이 들고 만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너한테 옮았잖아, 비관적으로 전부 고려하는 거.”
거짓말이다. 류이든은 지동화의 비관과는 거리가 멀다. 지동화는 류이든이 단 한 번도 사태를 모든 부정적 경우의 수를 고려하며 비관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내 낙관도 너한테 옮았나 보네, 형.”
거짓말이다. 지동화는 류이든의 낙관과는 거리가 멀다. 류이든은 지동화가 자신처럼 ‘뭐,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뜻 모를 자신감에 기대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난, 금색을 뽑을 거야.”
단 두 개 있던 금색 뱃지. 어떻게 뽑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동화는 그렇게 말하며 멤버들이 식사하던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식사가 끝나고, 잠시간의 휴식 시간이 흐른 뒤, 깨끗해진 테이블 앞에서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류이든은 식당에서 제공해 준 전통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자, 여러분, 컷 들어갈게요!”
“네!”
오프닝 컷은 식당에 들어서며 이미 땄으니 식사를 마친 후의 대화부터 시작됐다.
“여러분, 식사는 잘 하셨나요.”
“네!”
“그럼 배도 채웠으니 본격적으로 기억 보관소의 문을 열어 보겠습니다.”
“기억 보관소.”
“네. 여러분들이 오래 같이 활동하시면서 쌓아온 추억들이 있잖아요? 그 장면 속의 특정 말이나, 다음에 이어질 장면, 아니면 서로의 취향 같은 걸 맞히면 되는 게임이에요.”
‘어때요, 훈훈하죠?’라는 얼굴.
류이든은 미간을 찌푸릴 뻔했다. 뭐야, 지동화가 한 팀이면 어떻게 져, 그걸.
“다만, 동화 씨가 너무 사기라는 걸 저도 알고 있답니다!”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PD님이 자연스레 입을 열었다.
“맞아요, 동화 형은 이런 걸로 경쟁시키면 안 되죠.”
“현재, 너도…….”
“저는 다른 사람이 한 말 토씨 하나도 안 틀리구 기억하진 않아요.”
“그래서 동화 씨는 힌트만 줄 수 있는 걸로, 그것도 두 팀 다 들리게.”
“알겠습니다.”
“물론 첫 게임만 그런 거니까요. 다른 걸로 넘어가면 활약할 수 있을 거랍니다. 어쨌든 첫 게임 전에 팀을 나눌 텐데, 누가 먼저 뽑으시겠어요?”
“제가.”
지동화는 자연스레 앞으로 나섰다.
“오, 좋아요.”
PD님이 내민 종이 상자 위에 있는 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천천히 몇 번 만지작댔다.
“…아.”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는지 슥 안에서 손을 꺼내 주먹 안에 감쌌다.
“나중에 한 번에 공개할 거니까, 품 안에 넣어 두세요!”
“네.”
지동화는 류이든을 향해 손을 한 번 흔들어 보였다. 나 믿어, 라는 듯이.
“다음은…….”
“제가 뽑아 보겠어요.”
류이든은 괴상한 말투로 불쑥 튀어나왔다.
“네, 이든 씨.”
심호흡.
지동화를 믿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전적으로 지동화를 신뢰하고, 할 수 있는 일에서는 자신을 올곧이 신뢰하는 게 류이든의 방침이다.
어쨌든 뱃지는 두 종류, 승부를 철저히 가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PD님이 진즉에 깔고 들어가는 컨텐츠다.
뱃지의 세세한 차이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미친놈들이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 보아요.’라는 뉘앙스의 컨텐츠에서, ‘벌칙도 순한 걸로 골라 할 수 있어요.’라는 조건까지 걸려 있는데, 아득바득 팀을 조작하려고 들겠는가.
그건 지나치게 비상식적이다.
그러니 자신의 감각을 믿고 두 종류로 분류한 뒤, 하나 모자란 데서 가져가면 그만이다.
류이든은 천천히 손을 넣었다.
눈을 감자, PD님이 ‘에?’라는 뜻 모를 감탄사를 뱉었다가 자기 입을 막았다.
‘왜 그렇게 고민하세요?’라는 기세가 느껴졌지만, 알 게 뭔가.
“음.”
손끝으로 뱃지의 질감을 앞뒤로 찬찬히 느꼈다. 아, 뭐야.
“약속 진짜 지키네.”
쟤가 왜 저럴까. 그 의중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류이든에게 너무 심했나 보다, 깨달은 건 아닐까.
혹시 저러다가 자신에게 늘 져 주는 형의 모습에 감복해 마음 깊이 우러러보게 되면 어쩌지. 예능 같은 데서 곤란한데. 참.
류이든은 헤실헤실 새는 웃음을 참으며 하나 남은 뱃지를 꺼냈다.
손 틈으로 보이는 찬란한 황금빛.
“하하, 와.”
PD님은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타임라인을 체크했다.
촬영이 시작한 지 몇 초쯤인지를 체크해 두고, 편집점을 미리 잡은 것이다.
아마도 ‘삭제.’라고 적혀 있겠지. 약속이 뭔지 해명이 안 될 테니까.
자리로 돌아가자 옆자리에 앉았다. 식탁 위에 놓인 지동화의 손안에는 은근히 보여 주려는 듯이 황금빛이 틈새로 비쳤다.
그러고는 지동화가 차를 따라 한 잔 앞으로 내밀었다. 궁금한 게 있을 테니, 이걸 빌미로 물어보라는 식이었다.
“무슨 바람이야, 형. 갑자기 잘해 주고?”
“기운 내라고.”
조금 상심했던 건 알긴 하나 보지, 동생아.
류이든은 또 속으로 툴툴거리며 차를 홀짝였다. 오묘한 곡물의 맛이 났다.
팀명은 정해졌다.
“팀명은 ‘어화동동지’ 어때.”
같잖은 작명 센스.
둘이 팀인데 한 명의 이름만 올려놓은 게, 자기는 이길 마음이 전혀 없다고 광고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
아마 어떻게든 지동화가 막으려 들겠지만, 류이든도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일단 1점 먹고 들어가는 게임이잖아,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