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3화(33/343)
33.
“개인적으로 저는 류이든이나 채하민 추천합니다.”
내가 말하는 순간 채하민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대체 왜?) 류이든은 바로 반박한다.
“동화 형이 하는 게 낫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나보단 형이 낫지.”
“동화 형은 언제나 침착하니까 리더 하기엔 좋은 성품이지.”
“…형은 늘 활동적이고 대화를 주도하니까 우리끼리 의견을 교환할 때 능숙하게 처리 가능하지.”
“동화 형은 가끔 나보다 어른스러우니까…….”
“형은 책임감이 강하며 연습생 생활도 나의 몇 갑절인 데다가…….”
그렇게 2분 가까이 서로의 칭찬을 하는 중이었다.
탁자를 가운데에 두고, 나와 류이든이 각각 끝쪽에 앉아있던 덕분에 한마디씩 할 때마다 사이에 있는 세 명의 고개가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니까 동화 형이 하는 게 낫다니까!”
“…그러므로 류이든, 당신이 하는 게 낫다는 결론이야.”
그렇게 류이든의 얼굴과 내 귀가 한껏 붉어진 끝에 칭찬 대결이 끝났다.
이현재가 한숨을 쉬고, 채하민이 어색하게 웃고, 석준은 나른하게 졸린 표정을 짓고 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류이든이랑 말하다 보면 지능이 떨어지는 기분이군.
“…휴전. 리더에 관한 건 내일 제작 회의하고 다시 얘기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 동화야! 지금 네 귀 너무 붉어서 더 하면 안 될 것 같아!”
“…근데 이든 형 얼굴도 완전 장난 아니에요.”
“두 분― 다― 잘 익은― 게 같습니―다.”
…아직 칭찬은 낯설군.
* * *
층간소음에 고통받은 끝에 하루가 지나고, 우리는 제작 회의를 위해 회의실에 모였다.
기획팀 팀원들과 A&R팀 팀원들, 그리고 우리 멤버들이 모였다.
“그럼 우선, 회의에서 다룰 안건 먼저 소개드릴게요.”
카메라로 둘러싸인 회의실 속 장해진이 앞에 나가 대형 모니터에 프레젠테이션을 넘기며 말한다.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첫째, 그룹명 논의. 둘째, 데뷔 앨범 제작 과정. 이 두 가지가 핵심입니다.”
그리고 장해진은 PPT를 한 장 넘긴다.
“여기 저희 기획팀에서 나왔던 팀명 의견을 종합한 결과입니다.”
나는 빠르게 이름을 훑었다. …세상에.
“우선 ‘캐터필러’는 전차의 무한궤도를 의미하며 가요계로 거침없이 나아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뜻으론 애벌레가 있지.
이현재 정도만 이를 알고 있는지 경악했고, 나머지는 오오, 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석준, 너도 고등학생 아니냐.
“다음으로 ‘초인’. 니체의 대표적인 철학 사상을 담고 있으므로 더 넥스트 니체라는 이미지와도 알맞아서 나온 의견입니다.”
…아니, 그럴 거면 원어 그대로 살려서 위버멘시로 하든가.
한자어로 초인이라고 하면 너무…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부끄럽잖아.
아무리 내 뇌가 철학에 절어 있다지만 이건 아니다.
그렇게 죽 이어지는 이름을 들으며, 하나하나 직접 소개하는 상상을 했는데… 때려치우고 싶어졌다.
“…자, 여기까지. 여러분들은 뭐가 마음에 드시나요?”
장해진은 기대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자랑스러운 건가.
나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팀장님, 저희에게도 작명의 기회를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팬분들에게 불릴 이름을 직접 한번 정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동의하는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러자 장해진은 으음, 하며 생각하더니 그도 그럴듯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내일 회의로 이 안건은 미루죠! 내일까지 모두 팀 이름 생각 더 해보고요.”
장해진은 다음 PPT로 넘기며 말한다.
“다음은 앨범에 관한 이야긴데, 혹시 의견 있으신 분?”
그러자 이번엔 A&R팀 팀장님이 손을 든다.
“저희 데뷔일이 여름이니 시원한 분위기가 낫겠죠?”
“하긴… 신인이면 청량한 이미지를 어필하는 게 정석적이긴 해요.”
“A&R팀 쪽으로 슬슬 여름 곡이 꽤 들어오고 있는데 퀄리티가 나쁘지 않아요. 저희 팀 소속 작곡가분들도 여름 노려서 곡 쓰고 계시고.”
음, 여름 노래라.
대화를 듣고 있던 기획팀 직원분이 손을 들곤 말한다.
“그럼 바다, 여행, 휴양 느낌의 앨범이 될 텐데, 조금 뻔하지 않나요?”
“그건 그래요, 데뷔 앨범이면 그룹 컨셉을 딱! 잡고 가는 게 좋은데 여름 컨셉은, 장기적으로 보면 불리한 측면이 있죠.”
그렇게 이어지는 회의의 내용은 결과적으론 ‘이 그룹은 어떤 색깔의 그룹이 될 것인가.’였다.
아이돌 데뷔 회의는 처음 보는 나는 신기한 눈초리로 ‘그룹의 색깔’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요즘 힙합 잘나가던데, 센 형 같은 컨셉은?”
“애들 얼굴을 봐요. 동화 정도나 조직의 두뇌파 보스라는 느낌의 얼굴이지, 나머지는 다 조직원 1도 안 될 거 같은데.”
…욕먹은 건가?
“원래 기획팀에서는 애교 있는 연하남 컨셉을 밀기로 했잖아요?”
“근데, 얘네들 마지막 서바이벌 무대를 보니까 애교보단 더 성숙한 이미지가…….”
한창 그렇게 회의를 하던 팀원들은 우리 멤버를 하나하나 뜯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잘생겼네.”
“확실히 현재만 어려 보이고, 나머지는 청년 느낌이긴 하네.”
“귀티 나게 생겼네요, 다들.”
“귀티…?”
“귀티…….”
“왕자……?”
“왕자……!”
그렇게 외마디로 왕자를 소리친 장해진은 고개를 큼직하게 끄덕인다. 꽤나 흥분한 상태인 것 같다.
“내가 원하던 딱! 그 단어야! 왕자! 얘네들을 잘 설명해 줄 단어!”
…잠깐, 잠시 지루해서 안 듣고 있었는데, 왕자라니, 무슨 해괴한.
채하민이나 이현재는 원래 귀하게 자란 태가 나서 도련님이란 분위기가 맞다. 왕자라 할 수 있지.
류이든은 왕에 어울릴 법한 잘생긴 얼굴이고, 석준은 그 옆에서 왕을 지키다 장렬하게 죽을 얼굴상이니까, 왕자에 어울린다면 어울리겠지.
하지만 나는, 천애 고아에 뼛속까지 가난이 스며든 데다가 공부밖에 몰랐어서 장영실 같은 서얼 출신 실학자에 어울릴 인간이다.
“특히 동화! 동화가 갖고 있는 분위기가 차가운 왕자 같아! 그거 알잖아! 말수 적고 나랏일에 철저한 왕잔데 공주 걱정은 엄청 하는!”
흥분한 장해진은 놀랍게도 존댓말을 망각한 상태라 나를 동화라고 가볍게 부르고 있다. 그보다… 대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으며 살아오신 겁니까, 팀장님.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석준이 갑자기 무언가 자극받았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의견 개진을 안 했던 녀석이.
“팀장님! 제가 ‘만약에 지동화가 위즈니 왕자라면 어떨까.’에 관해 평소 생각하고 있던 것과 똑같습니다! 동화 형님은 전형적인 츤데레형 왕자님 타입이죠! 얼음 마법을 쓸 것 같은!”
…닥쳐, 준아.
왜 평소에 인생을 낭비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거야.
“그치, 준아!”
장해진은 뜻밖의 의견 일치가 그렇게 좋은지 해맑게 소리쳤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우리의 그룹 색깔은 ‘귀공자들’이라는 낯간지럽고, 말하기 부끄러우며, 누군가 입에 올린다면 도리어 내가 어딘가 숨고 싶어질 것 같은 것으로 결정됐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할 건 아니에요. 약간 재벌가 도련님들이 모여서 일탈하는 느낌의 컨셉이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거니까.”
…재벌가면 채하민 말고 해당 없을 텐데.
“그럼 바다 바캉스도 나쁘지 않겠는데요? 대기업 회장 아들이 모여서 여름에 놀러 가는 컨셉으로 제작비만 때려 부으면, 그룹 색깔도 잡고 계절감도 살리고!”
* * *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모여 앉아 팀명에 대한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음, 귀공자면, 이름도 약간 그런 분위기로 가는 게 낫겠지?”
“…근데 귀공자다운 팀명이 있을까요?”
“저는― 프린스 같은 것도 좋습―”
“…그건 아냐, 준.”
“동화야, 귀공자는 영어로 뭐야?”
음, 딱 맞는 단어는 없는데.
“…굳이 번역하면 노블?”
“독일어로는?”
“…아들리거(adlige).”
“프랑스어로는?”
“…아리스토카시(aristocratie)나 노블러.”
“아, 어감이 다 별로다, 그지, 동화야.”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토끼 놈.
“오, 우리 동화, 사전급인데.”
류이든의 한마디에 시작된 나의 외국어 대답 행렬 끝에 이현재가 기묘한 단어 조합을 꺼내 들었다.
“…블로센스 어때요, 형들!”
이현재는 얼른 칭찬해 달라는 눈초리로 우리를 바라본다. 이럴 때 보면… 목화가 떠오른다니까. 조금 있다 전화 한 통 해야겠군.
“음, 현재, 그게 무슨 단어야?”
그러자 자기가 뜻풀이도 안 해주곤 칭찬을 바랐다는 걸 깨달았는지 말한다.
“…Blossom에 sense를 합친 거고요.”
오, 꽃이 피는 것 같은 감각이란 뜻인가.
이현재는 뒤이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덧붙인다.
“그니까 제가 형들 만나고, 힘들 때 위로도 받으면서, 꿈도 이뤘잖아요?”
이현재는 우리를 둘러보곤 웃는다.
“이제야 제 인생이 꽃피는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이게 캐터필러보단 훨씬,
아니, 너무나, 정말로 낫군.
역시 우리 팀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답다.
“현재야! 뜻도 좋은데, 엄청 고급스럽다. 그걸로 하자!”
채하민이 우선 과도한 리액션을 날리고…….
“현재― 가끔 보면― 나보다― 형 같아.”
석준이 당연한 소리를 했다.
나는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주었다. 옆에서 류이든이 아저씨 같다고 뭐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무시하자.
“…이든 형, 형은 어때요?”
이현재가 불안한 눈초리로 류이든의 눈치를 본다. 류이든은 그걸 보곤 씩 웃더니…….
“우리 현재, 역시 막내답게 귀엽네!”
라며 이현재를 끌어안아 머리를 헝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저건 진짜 아저씨 같군.
하여튼 이현재가 오랜만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으니, 내일 반드시 이걸로 결정되게끔 설득할 논리를 준비해 가야겠다.
나는 재빠르게 나와 채하민의 방으로 들어가 책을 챙겨 온 상자를 뒤졌다.
…그런데, 왜 수사학 관련 책이 안 보이지. 에이, 설마…….
“…하민, 너 또 내 책 냄비 받침으로 썼어?”
“…동화야, 전에 너가 써도 된다고 했는…….”
나는 경악에 가득 찬 표정으로 채하민을 바라본다.
저, 미친, 지식의 보고를, 고작 식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다니!
“…나는 네가 읽으려는 줄 알았지.”
그렇게 말하자 채하민은 갑자기 해맑게 웃더니 소리친다.
“나를 그렇게 봐주다니, 나 살면서 처음이야!”
나는 채하민의 책상 위에 놓인 책을 집으며 생각한다.
…목화가 정말 말 잘 듣는 동생이었군.
* * *
‘바다 여행 분위기가 나는 곡이라…….’
나는 회사에 있는 작업실을 빌려 고민을 거듭하는 중이다.
내일부터 기초 연습이 다시 시작되니, 곡의 기본적인 틀은 오늘 짜두고 싶었다.
근데 내가 ‘대기업 회장 아들이 모여 떠나는 여행’같이 호화로운 생활을 해봤을 리가 있나.
어렸을 땐 돈이 없어서 여행을 못 갔고, 돈 벌고 나선 유학 말곤 집에서 떠나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바다라… 기억나는 건 딱 한 번인가.’
예전에 목화가 바다를 너무 보고 싶다고 해서 가을에 인천으로 갔던 기억이 있지.
고작 지하철 타고 가는 거였는데, 목화가 어찌나 신나 하던지.
어느새 나는 인생의 말년에 들어 손자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노년기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노을이 상당히 아름다웠지. 약간 쌀쌀한 날씨에, 낡은 옷이 몸을 따스하게 해주고, 집에 가기 전에 식당에서 먹었던 국수는 속부터 몸을 데워줬고.
그때의 느낌을 곡으로 쓸 수 있다면 좋겠지.
즐겁고 풍요로운 바다 여행 따위 아는 바가 없으니, 일단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써 봐야겠다.
‘컨셉은… 노을 진 바다에서, 약간 쌀쌀함을 견디며, 서로 행복을 느끼는 것.’
나는 가만히 눈을 감으며 그때를 회상했다.
그리고 그 분위기 속에서 날아다니는 음들을 하나하나 부여잡아 서로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음들이 이어 붙었을 때쯤, 나는 눈을 뜨고 손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