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3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30화(298/343)
뱃지대로 자리를 옮기니, 속이 좋지가 않다.
옆에서는 류이든이 내게 열심히 치대고, 채하민과 이현재는 ‘저 형들 좀 이상해, 오늘.’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까.
어쩌지, 벽돌이 필요해.
“네, 이렇게 두 팀이 나뉘었어요. 금색 뱃지 팀과 은색 뱃지 팀. 참고로 뱃지는 여러분이 육상 대회에 나가셨을 때 땄던 메달 디자인이에요. 예쁘죠?”
“와, 그렇네요! 엄청 오랜만이다. 저희 숙소에 장식용으로 걸어 두기도 했는데.”
채하민이 즐겁게 폴짝이며 자기 뱃지를 여기저기 만지작댔다. 얼추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별생각 없이 뱃지를 달았다.
“심지어 순금, 순은이에요. 여러분들 고생하셨으니까 드리는 선물.”
저 PD님은 정말 천사라고밖에는 볼 수가 없다.
PD놈에게 시달리며 몸도 마음도 지쳤던 우리를 위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효과가 좋은 금융 치료를 시전하다니.
“순은이구나.”
그러나 금융 치료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게 패시브인 채하민은 그런 거 알 바냐는 듯이 그저 흥겹게 추억을 회상하고 있었다.
도리어 이현재가 손으로 꼭 쥐는 걸 보니, 이현재는 돈을 상당히 사랑하나 보다.
나는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복도에 서서 고뇌하던 류이든을 보고 있자니, 연민이 들었던 게 문제다. 첫 게임이 이런 것일 줄 알았으면 가차 없이 짓밟았을 텐데.
“팀명 회의 해 주시겠어요?”
“저희는 이미 정했죠.”
“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시고요.”
라고 말한 직후, 잠시 고개를 갸웃하는 PD님.
아마 정황상 눈치를 챘을 게 틀림없다. 정경우 PD님은 눈치가 없지 않으니까.
아마 그 머릿속에선 지금쯤, 저것들 지금 같은 팀 들어가는 거 짰구나, 라고. 승부에 집착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혹시 저렇게까지 해서 동생을 이기고 싶은 걸까, 라고. 거친 생각들이 스쳐 가고 있을 것이다.
사실 다 맞는 말이다.
짠 거 맞고, 류이든이 나를 한 번쯤 더 이겨 먹고 싶어서 이러는 거니까.
망할.
“저희 정했습니다!”
오순도순 모여서 의논하던 세 명 중 채하민이 대표인지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저흰 ‘늙음은 젊음의 상실’ 팀입니다!”
류이든이 마시던 차를 뿜을 뻔했는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무조건 이현재가 지은 이름.
우리가 늙은 것들이라며 놀리는 팀명이니까. 이런 돌려 말하기식 비난은 이현재 말고 할 수 있는 인간이 없다.
헤실 웃으며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이현재.
어쩜 저렇게 얄미우면서 귀여운지. 패배를 맛보여 주고 싶어.
류이든은 입가를 정리하고 번쩍 내 손을 잡아 함께 들어 올렸다.
들어 올리지 마, 마치 같이 짠 것 같은 시늉하지 말라고.
“저희는 ‘어화동동지’!”
돌려 말하지도 않았고, 언어유희라기엔 웃기지도 않은 이름.
류이든이 마구잡이로 지어 둔 이름답게, 이현재는 한껏 실망했다.
“이거, 혹시, 너무 구리다는 말 하면 편집될까요?”
나는 천천히 심호흡했다.
이 넓은 식당에 아군은 나 하나고 적은 넷이네, 세상에. 보통은 멤버들과 팀이고 적은 PD놈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래서야 추억을 회상하다가 속에 얹히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띠링―!
[업보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기른 이현재, 당신 일이면 눈치가 빠른 채하민, 그리고 당신을 놀리는 게 삶의 보람 중 하나인 류이든. 전부 당신이 만들었잖습니까. 하물며 그 염병할 정도로 말랑한 감정도 당신의 것이니.]닥쳐, 기지생.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 훼손이 가능한 게 우리나라야.
[선생한테 말버릇이 참. 자, 따라 하세요. 죄송합니다, 선생님.]엿 드십시오.
[그건 참 오랜만에 듣네요.]내가 만든 과실, 석준을 따라 하며 그렇게 아양을 떨어 가며 얻어 낸, 훈훈했어야 할 자체 컨텐츠가, 어째서.
망할, 지동화.
* * *
‘어화동동지’ 대 ‘늙음은 젊음의 상실’의 첫 번째 대결.
그건 ‘추억의 빈자리’다.
“자, 그럼 첫 문제입니다. 다음 장면을 보실게요.”
PD님이 신호하자 모니터에 내가 모노클을 끼고 있는 장면이 등장했다.
세상에,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저건.
한 손에 정중하게 칼을 들고 있는 내 모습. 그 밑에는 자막이 있어야 할 위치에 빈칸이 놓여 있었다.
견훤 선배님을 죽이기 직전에 나온 장면, 그때 내 입으로 지껄였던 것.
“여기 들어갈 대사는?”
이게 추억의 빈자리. 우리가 했던 헛짓거리에 빈칸을 뚫어 두면 맞혀야 하는 퀴즈.
답은 알지만, 나는 조용히 침묵을 지킨 채 옆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우리 쪽의 류이든도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아?’ 같은 멍청한 소리만 냈다. 연기톤이군, 망할.
“…어? 나 아는데.”
“알면 말해요, 형.”
“아니, 아는데 기억이 안 나.”
“그건 모르는 거잖아요.”
“아니, 진짜 아는데!”
“모르는 거라니까요.”
펄쩍 뛰는 채하민과 덤덤하게 답하면서도 답을 고심하는 이현재. 어떻게든 맞히긴 해야 다음 게임을 하든 말든 하겠지.
“…의문형 문장이야.”
나는 류이든에게 힌트를 주는 척 입을 열었다. 그러자 류이든은 반사적으로 웃음을 흘리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 짧은 웃음 참기 시간이 지나고.
“죄송하지만, 죽어 주시겠습니까?”
류이든이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망할 놈.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어차피 오디오에 전부 들어가는데 이런 짓을 하다니.
“답해 봐.”
“아냐, 답 잘못하면 기회 넘어가잖아. 내가 좀 비관적이라 이런 건 확실히 해 둬야 해서…….”
아주 능글맞군. 벽돌만 있다면 완전범죄(목격자 또는 목격자의 기억이 남지 않음)도 가능할 텐데. 원 없이 놀릴 기회를 얻었다 이거지, 지금.
어차피 답할 생각 없다, 이놈은.
“수사 의문문이고, 두 개의 절을 합쳐 둔 형태.”
어차피 가망이 없으니 이현재의 기억이나 자극하자.
“정답, 늙젊상!”
이현재가 곧바로 손을 들었다.
“죄송하지만, 죽어 주시렵니까?”
“땡! 기회입니다!”
“어화동동지! 죄송하지만…….”
말을 질질 끌며 나와 눈을 맞추는 류이든. 잘 모르겠다는 불안한 얼굴이지만, 멤버들이라면 누구나 그 속내가 들여다보일 것이다.
저건 정답이 아니라 정말 죄송하다는 소리고, 거기에 진심은 단 한 톨도 담기지 않았다는 것을.
“제 승리입니다! 이거 확실해요! 방금 팍하고 떠올랐거든요?”
“땡!”
“아쉽네.”
“그래도 시도는 좋았잖아. 내가 다 맞힐게, 동화야. 나만 믿어!”
그러고는 손깍지를 끼고 할 수 있다는 듯이 머리를 감싸며 답을 고심하는 연기, 정말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믿음직스러워 죽이고 싶다.
“응, 믿어, 형.”
카메라, 앞만 아니었어도, 류이든은.
“정답, 늙젊생. 죄송하지만, 죽어 주시겠습니까!”
이현재가 정답을 외치자 류이든은 과장된 몸짓으로 펄쩍 뛰어오르며 자기 머리를 마구 쳤다.
“아, 맞다, 저건데, 아. 동화 형, 진짜 미안.”
“…괜찮아.”
“근데 저거 지금 보니까 엄청 오글거린다.”
“…형.”
닥쳐. 방송에 욕 나오게 하고 싶지 않으면.
그러나 류이든은 지금 기분이 어느 때보다 좋은지 화면에 나온 내 자세와 표정을 따라 했다.
“죄송하지만…….”
결국 나는 참지 못했다.
“앉아.”
“…네.”
짧은 한 단어, 그러나 거기에 담긴 깊은 분노, 류이든은 그에 몸이 굳었는지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다음 문제는 꼭 맞힐게, 형!”
저 입은, 오늘따라 참 신났다.
* * *
계속되는 류이든의 미스.
은근히 정답에 근접하게끔 실수해서 도리어 상대방한테 정답을 헌납하는 작전.
그 덕분에 무난하게 우리가 1점 차이로 뒤처지는 상황.
류이든은 미친놈이지만, 제대로 미치지는 않아서 모두 틀린다는 선택지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게임이 끝나야만 방송의 재미도 어느 정도 살리는 법이니까.
너무 얄미운데, 이 망할 개. 어쩌지, 정말 얘를.
“자, 여러분, 역전 찬스, 2점짜리입니다!”
1점 차이가 3점 차이가 될 뿐이겠군. 어차피 승리가 중요한 기획은 아니니까.
무난하게 우리가 질 테고. 안타까워라.
PD님의 수신호와 함께 화면이 공개됐다. 그리고 오묘한 시선이 PD님으로부터 우리 팀 쪽으로 쏟아졌다.
음, 설마.
‘류이든의 솔로곡, 절벽과 ( )!’
류이든은 조용히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절로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뱉고 말았다. 지금 이렇게 시간이 끌리면 끌릴수록, 누가 손해인지는 명확하다.
감히, 내가 지어 준 곡의 제목도 바로 답하지 못하다니, 그건 인간 실격이다.
류이든은 1점을 안전하게 먹고 들어갈 건지, 혹은 도박수를 걸고 다음 두 게임을 최선을 다해 질 것인지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다른 멤버들보다 먼저 정답을 외치지 않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고.
폭소에 가까운 내 웃음 사이로 류이든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정답, 어화동동지!”
“네!”
나라면 깔끔하게 1점을 먹고 들어갈 것이다.
나와의 정은 이미 돈독하고 끊어질 일도 없다. 애초에 맹세/저주가 우리를 실버타운까지 함께 바라보게 만들고 있으니까.
그러나.
“…소년이에요. 절벽과 소년.”
류이든은 그렇게 얄밉게 나를 놀려 대며 틀려 대던 우리의 추억 중에서, 차마 이것만큼은 틀릴 수 없다는 듯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저, 정답인데, 안 기쁘신가요?”
침울한 류이든에 PD님이 오히려 당황하셨다.
역전의 한 장면을 방송각으로 뽑아낼 수 있어서 기뻤는데, 팀을 조작해서까지 한 팀을 해 이겼으면 얼싸안을 만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는 눈초리였다.
“…그, 게, 막, 동화가 그때 해 줬던 말이, 순간 너무 생각나서.”
류이든은 혼신의 힘을 다해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때, 제가 연습생 때 엄청 힘들었는데, 동화가 자기는 영원히 형 편이라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써 준 곡이거든요.”
“…이든.”
“응.”
“날조하지 마.”
내가 언제 그렇게 지껄였다고.
“그랬어. 거의 똑같았다고!”
그러나 류이든도 물러설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내 곡 써 주려고 소설까지 쓴 게 그거랑 똑같지, 뭐.”
“…세상에.”
살다 보니 내가 별 헛소리를.
나와 류이든이 서로를 어이없다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동안, 다른 멤버 셋은 역시 쟤네 오늘따라 좀 이상하다는 눈초리였다.
이긴 팀은 나왔으나 환호하는 팀은 아무도 없는 기묘한 상황.
그 정적 속에서 정경우 PD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 들켰네, 이든. 드디어, 기다리던 상황이.
* * *
승부 조작이구나, 이거. 대체 왜 일부러 지려고 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경우는 속으로 조용히 깨달았다.
정경우는 알 수 있었다. 이 승부 조작을 진행한 인물이 누구일지.
“…이든 씨가.”
동화 씨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럴 사람이었으면,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갔겠지, 그 일도.
“…그렇게는 안 봤는데, 음.”
혹시 다른 이유가 있나. 정경우는 고민하다가 이내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훈훈은 무슨.”
태초에 조작이 있다면, 그건 자신의 것이었는데, 어딜.
정경우는 찬찬히 고심했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지려고 하는 상황이라면,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편이 더 재밌을 거라고.
다만, 동화 씨 앞에서 그 짓을 해도 되나 걱정이 될 뿐.
“네, 어쨌든, 어화동동지 팀 승리!”
정경우는 그렇게 외치며 속으로 묘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