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3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31화(299/343)
지금, 이 순간, 이곳에는 규칙이 형성된다.
일부러 지는 건 방송에 독이 되면 독이 되지 득이 되긴 어렵다. 그게 깜짝 카메라 같은 특별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일반적으로는 열정적으로 부딪히는 게 좋다.
그러므로 생기는 단순한 규칙, ‘지더라도 티 나게 져선 안 된다’.
이든 씨가 압도적 격차로 지지 않으려고 완급 조절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마지막 정답을 맞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런 거겠지.
썩어도 준치다. 뇌 한 부분이 망가진 것 같은 놈이긴 해도 똑똑한 자신의 후배와 같은 대학 출신이다.
정경우는 찬찬히 대본을 훑었다.
“작가님.”
“네.”
“우리 기획 좀 수정할까요?”
“…네?”
일부러 질 거면, 그럴 거라면, 더 최선을 다해 줬으면 좋겠다. 자신이 준비한 추억 회상이 장난치기 좋은 놀이터 정도로 보이는 건 사양이다.
역경을 뚫고 승리하는 인간의 모습은 아름다워서 방송으로 담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면 글쎄.
정경우는 다큐멘터리를 사랑한다.
다큐멘터리의 본질은 화면의 순서를 교차 편집해 하나의 스토리 라인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구성력에 있으니까.
“게임 룰도 약간만 손볼까 봐요.”
“…저, 이유가.”
“훈훈한 건 역시 이 그룹이랑 상극이라는 걸, 방금 게임에서 깨달았거든요.”
자신이나 동화 씨나 평화로운 분위기를 사랑하지만, 어떤 분께선 전쟁을 원하시니.
작가님의 ‘네? 다분히 훈훈한 추억 회상 토크가 많았는데요?’라는 표정을 보며 정경우는 밝게 웃었다.
“내용이나 게임, 장소 전부 다 그대로일 거예요. 다만…….”
방송의 틀을 추가 촬영으로 완전히 바꾸고 싶을 뿐이다. 그룹의 추억을 거니는 여행이 아니라 한 인간의 고군분투를 그린 페이크 다큐로.
“이든 씨랑 잠시 개인 면담을 좀 하고 올게요. 나머지 분들은 휴식 시간이라고 공지만 부탁드려요.”
* * *
“이든 씨.”
“네.”
“들켰어요, 저한테.”
류이든의 머릿속에서 지동화를 괴롭히고 싶다는 악의에 잠시 감금되어 있던 사회적 자아가 되살아났다.
“죄송합니다.”
류이든은 곧바로 구십 도로 고개를 숙였다.
들켰구나. 그 눈치 빠른 이현재도 그저 오늘따라 이든이 형이 더 멍청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는데, 이게 자체 컨텐츠라 조금 막 나간 감은 있어도.
아니, 사실 자컨이 아니었으면 이런 짓은 꿈에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에요. 저는 이든 씨 편이거든요. 죄송해하실 필요 없어요. 원래 이번 기획은 치열한 투쟁이 목적이 아니기도 했고. 근데, 조금 재밌는 생각이 들어서요.”
“…네?”
“우선 뱃지 빼 주시고, 다음엔 셔츠 소매 한 단만 접어 주실래요?”
곧바로 명령을 수행했다. 그러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 납득은 잘 가지 않았다.
PD님은 이내 그 의문을 알아채곤 답했다.
“아까 보니까, 아주 연하지만 음식 먹을 때 소스가 튀었더라고요. 지금 촬영할 장면은 식사 전이라서.”
“…그럼.”
“입장부터 시작할까요. 미리 카메라는 설치해 뒀답니다. 원래 이런 용도로 설치한 건 아니었지만.”
류이든은 순식간에 모든 걸 이해해 버렸다.
곧바로 입구 쪽으로 가 문을 열고 다시 들어왔다.
“PD님. 좋은 아침입니다.”
“네, 이든 씨. 아침부터 불러서 죄송해요. 다름이 아니라, 오늘은 원래 훈훈한 방송 한다고만 말씀드렸죠?”
“네, 다들 기대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거짓이고, 이든 씨에게 특별한 미션이 있어요. 요즘 동화 씨가 벌칙을 좀처럼 받지 않아서 저희는 깊은 고민을 했거든요. 한번 동화 씨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맞습니다. 동화가 요즘 너무 이기기만 하고!”
류이든은 PD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런데 지난번에 이든 씨가 빌었던 소원이 문득 떠올랐어요. 동화 씨랑 같이 지옥에 떨어지고 싶다면서요.”
“같이 벌칙 받아도 좋으니까 동화가 벌칙 좀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했죠.”
“미션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같은 팀이 될 것. 팀이 질 것. 그리고 가위바위보로 벌칙 결정에서 승리할 것.”
“너무 어렵지 않나요?”
“걱정 마세요, 저희는 이든 씨 편이니까. 일부러 뱃지 생긴 걸 다르게 해 뒀으니까, 지금 손으로 충분히 만져서 외워 두시면 돼요.”
그렇게 시작된 조작.
정경우는 차근차근, 방송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을 이 추가 촬영으로 채워 나갔다.
팀을 뽑을 때 기묘하게 시간을 끌던 류이든, 지동화가 뽑자 왠지 신이 나서 후다닥 나왔던 류이든, 그리고 마지막 문제를 맞히면서 기뻐하지 않았던 류이든.
이 모든 것의 근거를 만든 정경우는 슬레이트를 박수로 대신하며 촬영 종료를 알렸다.
“이든 씨.”
“네!”
한껏 신난 리트리버 같은 표정의 류이든. 앞에 있는 정경우마저 흐뭇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근데 그건 알아 두셔야 해요.”
“네?”
“쉽게 지게 해 드리진 않을 거예요.”
부디 아름다운 패배가 되기 위해 치열한 시간을 보내길.
그 고군분투 사이에 그리고 동화 씨가 도중에 눈치챘다는 인터뷰도 넣고, 행복하네, PD 생활.
* * *
다음 장소로 이동하며, 팀별로 걷던 중, 나는 소소한 즐거움을 느꼈다. 류이든의 개인 면담 내용은 뻔하다. 난이도 업이겠지, 정 PD님의 성향을 고려하면.
“어화동동지 팀장.”
“왜.”
“표정이 어둡네.”
“너, 힌트 드렸지.”
“응.”
정 PD님은 남의 표정을 읽는 재주가 뛰어난 분이거든, 너처럼.
“왜 난이도를 올려.”
모든 대화는 복화술, 아주 작은 소리, 거기에 귓속말.
다른 사람은 우리 둘이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그래야 공평하지.”
다음 게임은 ‘비밀 공유’라는 이름이 달려 있다. 근처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진행된다.
게임의 룰은 단순하지만, 채점 방식이 단순하지 않다.
첫째, 각 팀은 번갈아 가며 출제자를 고르고 출제자는 멤버들 중 일부만 알 것 같은 자신의 비밀을 문제로 만든다.
둘째, 출제자는 틀린 사람의 수만큼 점수를 얻고, 맞힌 사람은 각각 1점을 얻는다.
셋째, 모두 틀릴 경우 출제자만 2점 감점된다.
넷째, 모두 맞을 경우 누구도 점수를 얻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출제자의 정답이 거짓이라 생각되면 증거를 제출할 수 있고 제작진이 검토 후 인정할 경우 그 판은 무효가 된다.
이 채점 방식은 원래 훨씬 더 단순했으나, 정 PD님이 장소를 이동하던 도중에 바꿨다고 한다.
“참고로 팀원끼리 어떤 답을 적을지 상의는 불가능해요. 출제 후 정답 적기까지는 침묵의 시간입니다!”
만약에 서로 승리를 지독하게 갈망한다면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점수를 얻는 기준 때문에 출제자는 한두 명만 알고 있는 비밀을 출제하는 게 낫고, 출제자가 상대편이라면 일부러 틀릴지 말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섣불리 2점 감점을 노려 일부러 틀렸다가 정답을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으면 대형 득점을 허용해 주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우리는 승리에 목숨을 거는 상태가 아니다.
그저 투어 도중 잠시 바람을 쐬며, 일부 멤버하고만 공유하고 있던 비밀을 모두와 나누자는 취지의, 몹시 훈훈한 기획인 셈이다.
피크닉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공원을 굳이 고른 것도 그래서겠지.
다들 비밀을 알고 있다면 기꺼이 맞히려고 할 것이다. 특히 석준이나 채하민은 이미 흥겨운지 들판 위에서 원숭이를 보며 꺄르르 웃고 있었다.
“…흠.”
반면 우리의 류이든은 사정이 다르다. 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기왕이면 자신이 출제자일 때 모두 틀리게 하는 편이 좋다.
하지만 거짓말을 했다간 내가 나서서 부정할 것이므로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적당한 비밀을 말하자니, 내가 미친놈이다. 웬만한 사소한 사건은 다 기억해 내는 미친놈.
“진짜 비밀을.”
따라서 류이든은 순식간에 변경된 채점 기준의 의도를 파악했다.
정녕 지고 싶으면, 어떤 멤버와도 공유하지 않았던 자신의 음험한 비밀을 내놓으세요.
정 PD님은 채점표를 통해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아, 치사하시다!”
“훌륭하시네.”
절로 고개가 끄덕인다. 지고 싶은 만큼, 방송 분량을 내놓아라. 얼마나 훌륭한 PD인가.
* * *
이현재는 상황이 흘러가는 걸 가만히 되뇌었다.
‘늙음은 젊음의 상실’ 팀의 정신적 지주인 이현재, 두 형이 원숭이에게 먹을 걸 빼앗기는 와중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이상하다. 저 둘의 분위기가.
원숭이한테도 지는 인간 둘이 아니라, 어화동동지라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저 팀의 분위기.
‘…왜 수 싸움을 하지.’
이현재는 이 게임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하자는 거잖아. 혹시 치졸하게 승리에 목숨을 거는 걸까. 그런 승리 따위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자, 그럼 첫 번째 출제자는 이든 씨로 할까요? 돌아가면서 할 거니까.”
정 PD님의 미소도 수상하기 짝이 없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분위기.
류이든은 정면으로 나가 출제자를 위해 준비된 의자에 앉는다.
순식간에 고요해진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전야제만 같았다.
이내 결심했는지,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지만 결연해 보이는 류이든이 입을 열었다.
“…제 책상, 마지막 서랍에는 제가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먹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건 무엇일까요?”
뭔, 홍삼 즙 같은 건가.
게임의 규칙에 따라 다들 일단 입을 다물고 있지만, 누구도 펜을 움직이지 않았다.
애초에, 이든이 형이 스트레스를 받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이현재는 일단 ‘홍삼 즙’을 답안에 적었다.
“다 적으셨으면, 정답 공개해 주세요!”
류이든을 제외한 모두들 정답판을 들어 올렸다.
“이든 씨, 정답은?”
답을 말하는 데 용기가 필요한지 류이든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박하사탕입니다.”
“…네?”
이현재는 순간적으로 평정을 잃고 정답판을 놓치고 말았다.
그 류이든이, 사탕?
이현재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설명해 줘야만 한다. 이현재는 아직 어리고, 이 세상의 비밀을 깨닫기에는 미숙하다.
그러나 모두들 입을 틀어막고 있을 뿐, 그 누구도 추가적인 해설을 남기지는 않았다.
프로틴(지동화), 홍삼 즙(이현재), 닭가슴살(석준), 형 스트레스 받지 마 하민이가 있잖아요!(채하민)의 오답이 찬란하게 빛나는 와중에, 그저 박하사탕이라는 답변만 남았다.
…하민이 형은 찍지도 않았잖아, 저걸 같은 팀이라고.
“다들 틀리셨네요. 누가 맞혀 줄 거라고 생각하며 출제하셨나요?”
“준이가, 제 룸메이트라서요.”
그 준이 형은 닭가슴살을 서랍에 집어넣어서 보관하는 바보로 알고 있어요.
이현재는 허탈한 웃음을 뱉었다.
“멤버들 몰래, 그리고 정말 못 견딜 것 같을 때 가끔 먹지만, 준이는 알까 싶어서.”
무슨 사탕을 마약처럼 말하고 있어, 이 형은.
“…왜, 왜 몰래 먹어요.”
“너희들이 그런 반응일 줄 알고 있으니까!”
류이든은 얼굴을 감싸고 몸부림쳤다.
“박하라고? 진짜? 맛있는 맛이 얼마나 많은데!”
하민이 형은 다른 포인트도 문제로 인식했다.
사탕 자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인데, 하필 박하인 건 더욱더 납득할 수 없나 보다.
“할머니가 나 돌봐 주실 때 하나씩 주던 게 생각나서, 먹으면 안정된단 말이야!”
공원 한복판에 울려 퍼지는 한 사내의 비밀 고백. 지동화조차 알지 못하는 것.
그는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침대에 누워 박하사탕을 조용히 녹여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