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3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32화(300/343)
저런 취향일 줄은 전혀 몰랐군.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류이든이 설탕과 소금의 지독한 혐오자라는 건 모두가 아는 상식이었는데.
“…설탕 때문에 먹는 게 아니고, 먹으면 옛날 생각나서 포근하고 좋거든.”
류이든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침울하게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서 먹고 난 다음 날엔 삼십 분 일찍 일어나서 운동 더 해! 자주 먹지도 않고, 맛으로 먹는 게 아니니까! 진짜 정말 힘들 때만 가끔…….”
“누가 뭐라구 했나요?”
“그냥, 좀, 부끄러워.”
류이든은 실제로 죽을 것만 같은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대단한 피부색을 자랑했다.
저 정도로 수치스러워하는 건 정말 처음이다. 류이든 술버릇 영상을 내가 앞에서 틀었을 때도 저것보다는 상태가 나았던 것 같다.
“어쨌든, 모두 틀렸으므로 어화동동지 2점 감점입니다.”
정 PD님의 해맑은 표정이 모든 걸 설명하듯, 류이든은 지금 엄청난 걸 내려놓은 셈이다.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패잔병 같은 걸음으로 터덜터덜 걸어와 옆에 앉는 류이든.
“사탕 말고 나한테 말을 걸지 그래.”
나는 정답판을 톡톡 두드렸다. 류이든이 스트레스받을 만한 일이야 더럽게 많은 연예계지만, 사탕보다야 나한테 상담하는 게 건전하지 않나.
이런 말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설탕으로 자신을 괴롭힘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건 아닐까.
“걱정?”
“…그런 셈.”
본래 자신에게 엄격한 인간이 가끔 정신줄을 놓으면 위태로운 법이다.
“근데 네 상담은 내 최후의 보루 같은 거라.”
류이든은 자신의 뺨을 두어 번 후려치며 정신을 차리려 했다. 그러고는 기지개를 한 번 켜며 돗자리 위에 털썩 쓰러져 누웠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는데, 너도 나랑 같이 힘을 합치자, 동화야.’
입 모양.
“노력하는 게 보기 좋아, 형.”
나는 별말 없이 출제자 석에 앉은 채하민을 기다렸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타로카드는 무엇일까요! 덱 종류 말고 카드 이름!”
뒷모습만이지만 기대감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채하민은 지금 나와 공유하고 있는 비밀을 입에 올렸다.
라이더 웨이트 타로의 메이저 0번, 바보 카드.
팬분들이나 멤버들이나 타로 좋아하는 줄이나 알지, 무슨 카드를 제일 좋아하는지는 모른다.
하하, 그래. 나는 빠르게 답안을 적었다.
어느 카드를 좋아하는지 얘기해 줄 때 무슨 말이 오갔는지 생각해 보면, 채하민은 이 푸근한 분위기가 마음에 드나 보다.
어느 날 문득,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카드라며 내게 건넸던 카드.
자기가 바보 같은 짓을 할 때 옆에서 말려 줄 사람으로 나를 꼽으며 웃었던 채하민의 미소,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훈훈한 기획이 확실하다. 어디에도 담지 못한 뒷이야기를 남기기 위한 시간이다. 정 PD님이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안 봐도 알 수 있다.
“자, 다 적으셨으면 답안 공개!”
“와, 다들 ‘?’라고 적었는데 동화 씨만 카드를 적으셨어요!”
정 PD님의 말에 채하민이 들뜬 듯 엉덩이를 들썩였다.
“와! 역시! 둘만의 비밀!”
“아, 훈훈하네요. 하민 씨 정답은 뭔가요!”
“0번! 더 풀입니다!”
채하민의 정답 선언과 함께 다들 내 정답판에 시선이 쏠린다.
그리고 순식간에 싸해지는 분위기.
미안, 하민. 내 정답판에 ‘메이저 13번’이라고 적혀 있거든.
나는 곧 상황을 파악한 채하민이 날뛰기 전에 할 말을 할 속셈으로 류이든에게 고개를 돌렸다.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아.’
지금부터 아무 의미도 없는, 승부는 장식용으로 걸치고 있는 이 훈훈한 기획에서 승리를 갈망하는 미친놈처럼 보여도 어쩔 수 없다.
류이든이 저렇게 노력하는데, 내가 포기할 수는 없잖아.
* * *
이현재는 깨달았다. 저 둘이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지.
한 명은 지기 위해 모든 걸 내놓고, 다른 한 명은 이기기 위해 모든 걸 내놓는다.
“도, 동화, 동화야…….”
동공에 온 세상의 떨림을 담고 있는 채하민과 ‘이거 아니야?’라는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지동화.
필시 연기다. 팬분들도 곧바로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둘만의 비밀같이 소중한 이야기를 동화 형은 잊을 만한 인간이 못 된다.
“동화야, 동화야!”
채하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동화에게 달려갔다. 어깨를 부여잡고 애달프게 이름을 부른다.
“왜 그래! 오늘 어디 아파?”
“미안, 하민. 아닌가 보네.”
“알고 있잖아! 말해 줘! 왜, 왜!”
저 귀찮은 질척임, 평소의 동화 형이라면 절대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게임에서 이겨야만 하는 강력한 동기가 필요하고, 그 동기는 아마 이든이 형이겠지.
…같이 죽으려는 거구나, 이든이 형은.
끄덕끄덕. 깨달았다. 저 형들도 참, 별 헛짓을 잘도. 어쩔까.
“동화야아……, 나 상처, 상처받아…….”
“이제 기억났어, 하민.”
“거짓말! 처음부터 기억났으면서! 나, 나 지금! 어떻게! 어떻게 그래!”
연기 실력 하나는 뛰어난 인간답게, 채하민은 친구에게 배신당한 소년의 절규를 제대로 표현했다.
물론 저건 연기가 아니라 진짜라서 두려울 따름이다.
“밤에 같이 야식이나 먹을까.”
“진짜?”
하민이 형을 다루는 데 동화 형만큼 능숙한 사람이 또 있을까.
최근에 동화 형은 밤이 되면 작업과 공부만 하며, 문을 걸어 잠근 채 두문불출하는 경우가 잦았다.
사실 잦은 정도가 아니라 계속 그랬다. 방에서 홀로 심심했던 채하민에게는 너무나도 달콤한 제안인 것이다.
“놀러 나가도 좋고.”
“……공부해야 하잖아.”
“하루 정도는.”
기분이 어느 정도는 풀렸는지 조금 느슨해진 볼을 꿈틀거리는 하민이 형.
그러나 아직 배신감이 채 사라지진 않았는지 포커페이스로 고개를 돌렸다.
“난, 그래도 용서 못 해, 동화야!”
저래 놓고 내일 되면 모두 용서할 것이다. 동화 형은 하민이 형을 다루는 데 지나칠 정도로 능숙하고, 하민이 형은 긍정적인 감정에 약하니까.
촬영이 끝나고 사정만 설명해도 ‘아, 그래?’라며 다시 헤실헤실 웃을 것이다.
그나저나 정말 어쩐담. 다음 출제자는 동화 형인데.
이현재는 느긋하게 하늘을 보며 웃고 있는 석준의 옆에 바투 다가앉았다.
“준이 형. 손 좀 줘 봐요?”
그에 반문도 없이 곧바로 손을 내미는 석준. 이현재는 검지로 그 위에 글을 적었다.
‘다음 정답은 무조건 전기쥐라고 적어 볼래요?’
“왜?”
“글쎄요. 그래야 제가 더 행복할 것 같아서요.”
“그래―.”
행복은 중요하지. 석준은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어쩜 저렇게 푸른지, 예뻐.
* * *
이번엔 내가 출제할 차례.
현재 스코어는 ―2 대 ―2.
비밀 공유를 하라고 게임을 만들어 놨더니,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굴고 있는 게 참.
나는 출제에 앞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류이든과 공유하고 있는 건 쓸모없다. 채하민은 묘하게 기분이 풀리지 않은 상태, 단둘이 공유하고 있는 비밀을 출제한다고 답을 바로 적어 줄지 확신이 없다.
그럼 남은 건 이현재나 석준. 그중에서 석준이 최선의 선택이다.
승부에 욕심이 없으며, 답을 안다면 곧바로 적을 정도로 순수하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주머니 괴물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호랑군’.
심바 씨랑 닮았다는 단순한 이유다. 성능은 구리므로 사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석준과 게임을 할 때 자주 말해 준 적이 있는 비밀이다.
그런데 순간, 뒤에서 ‘하하’, 맑은 웃음이 터졌다. 이현재의 웃음, 소리만 맑지 보통 사악하기 그지없다.
…꺼림칙하군.
나는 찬찬히 가능성을 고려했다.
이현재는, 게임의 룰 따위, 어기는 게 합리적이라면 어기고도 남을 인간이지. 나에게서 잘 배운 덕분이다.
아.
“문제 변경 가능한가요.”
“아니요! 불가능합니다!”
정 PD님의 단호한 대답에 ‘하하’, 다시 맑은 웃음이 터졌다.
이현재가 류이든 편으로 돌아섰구나. 나는 눈을 감았다. 내 과외생은, 항상 나의 편이었는데, 어째서.
“자, 다들 정답을 들어 주세요!”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동화 씨, 정답은?”
“호랑군입니다.”
“모두 정답을 맞히지 못해 2점 감점입니다!”
망할, 이현재가 참전하는 건 예상했지만 그게 내 편이 아닐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하아.”
깊은 한숨. 뒤를 돌아보니 석준은 ‘전기쥐’라고 적은 정답판을 들고 있었다. 그딴 방사능에 피폭당한 것 같은 쥐를, 내가.
그러나 석준은 나는 안중에 없는지 옆에 앉은 이현재에게 물었다.
“행복해?”
“네, 너무요.”
“그럼 나도 행복해―.”
내가 불행해, 망할 공룡아. 빙하기라도 와야 정신을 차리겠지. 내 이름에 왜 동(冬) 자가 들어가는지 알려 주고 싶은 심정이다.
무슨 정답을 쓸지 미리 상의해선 안 된다. 이 게임의 규칙이다.
이현재가 당당하게 어겼으나 물증은 없다. 아마 처음 한 번 성공했으니 다시 하진 않겠지.
“…현재.”
내 짧은 부름에 이현재가 눈에 별빛을 담은 듯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즐거움, 기쁨 따위의 감정이 요동치고 있었다.
“네.”
“즐거워 보이네.”
“그럼요. 오늘처럼 훈훈한 게임, 저 오랜만이라서.”
“나도.”
류이든도 상황이 흘러가는 걸 눈치챘는지 꺄르르 웃었다.
“현재가 널 참 좋아해서 그래.”
“맞아요.”
[받아들이십시오! 저게 저 아이의 애정 표현 방식이라면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류이든, 이현재, 그리고 기지생한테 각각 한마디씩 들으니 속이 들끓는 느낌이다.
* * *
이거, 편파적인 규칙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정말.
류이든이 ―2점을 계속해서 먹일 수만 있다면, 내가 출제할 때 할 수 있는 건 그 차이를 메우는 정도다.
상대편이 출제할 때는 나만 알면 일부러 틀려서 ―2점을 먹이거나, 다수가 알면 맞혀서 점수를 줄이는 게 전부다.
류이든이 대차게 실수하지만 않고 자신의 치부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이상, 지기 쉽게끔 짜 놓은 규칙인 셈이다.
류이든은 ‘박하사탕, 자신의 어렸을 적 수치스러운 기억,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 등, 온갖 비밀을 쏟아내며 착실하게 ―2점을 쌓았다.
즉, 지는 게 당연한 게임이 되고 만 것이다.
나는 게임의 결과를 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6점 대 ―1점.
어떻게든 좁혀 보려 애썼지만, 이현재가 류이든 쪽으로 참전한 게 심각한 패인이 되고 말았다.
촬영 휴식 시간, 채하민이 허탈하게 웃었다.
“어떻게 점수가 다 마이너스야.”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기에 납득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이현재는 개운한 목소리로.
“형이랑 준이 형이 동화 형이랑만 알구 있는 비밀을 출제해서요.”
라고 답했다.
사실 쟤네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걸, 단둘이 알고 있는 비밀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게 나니까.
“…맞아, 나 진짜 서운해, 동화야.”
“저도 서운합니다―.”
다 조용히 해 줄래.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주물렀다.
“오늘 두 분 다 즐거워 보인다 했더니, 그런 놀이 중일 줄은 몰랐어요.”
채하민과 석준이 칭얼거리는 사이 이현재가 물병을 건넸다.
“즐거워 보였어?”
“네. 둘 다.”
“음.”
그럴지도. 사실 PD놈의 벌칙이 싫은 것도 맞지만, 류이든이랑 다투는 것 자체가 재밌는 걸지도 모른다.
때마침 정 PD님과의 2차 개인 면담을 끝마친 류이든이 내 옆에 털썩 앉았다.
“…진짜로 스트레스 풀리긴 해, 동화 형.”
“닥쳐.”
“너 아니었으면 연예계 생활 못 버텼을지도.”
“그거야, 저희들 공통사항일걸요.”
갑자기 시작된 내 칭찬.
뭐지, 이것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적어도 넌 아니야, 이든.”
나 아니었으면 연예계 생활 못 할 짐승이 아니야, 넌. 짐승은 맞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