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3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33화(301/343)
생각을 해야 한다.
나는 고민에 잠긴 채 습관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이현재가 류이든의 편이 되고, 마지막 게임을 하기 전에 서로 무언가를 미칠 듯이 속삭이고 있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마지막 게임은 보물찾기와 술래잡기, 기억력 테스트를 마구잡이로 섞은 게임.
이현재는 영악하고 류이든은 뛰어나다. 솔직히 공정한 게임에서 육체 능력 평가만 아니면 개인 대 개인으로 붙어서 이길 자신이 있지만, 상황이 묘하게 굴러갔다.
술래잡기가 섞여 있는 이상, 류이든이 이현재에게 어떻게든 내 위치를 공유할 테니까.
류이든으로부터 도망친다는 생각은 접었다. 그놈은 좀비랑 뛰어노는 것만 봐도, 답이 없다.
음, 자신 없는데. 이쯤 되면 이게 아이돌 자체 컨텐츠인지, 로마 콜로세움 체험기인지 모를 지경이군.
나는 천천히 PD님에게 다가섰다.
“PD님.”
“네.”
“긴히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현재 씨가 개입한 건 저도 예상 밖이라 어떻게 못 해 드려요.”
역시 정 PD님은 우리 회사에 묶여 있기는 아까운 인재가 아닐까.
원래라면 류이든이 나를 방해하고 잡히게끔 유도하면 내가 간파하고 회피하는 싸움을 촬영하는 게, 본래 의도겠지만, 이현재의 배신이 역시나 치명적이다.
“마지막 벌칙 선정 관련해서요.”
무해한 미소를 띠자.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 심화편에 따르면, 과거 불화가 있었던 사람에게 다가설 때는 자신이 무해함을 보이는 편이 좋다고 한다.
* * *
더럽게 독해. 그냥 지는 게 낫지 않나.
류이든이 숨이 차오를 정도로 전력 질주했다.
이현재와 미리 맞춰 둔 동선에 따라 보물을 수색하고, 채하민과 이현재 앞에 떨어뜨려 두기를 반복했다.
멤버들이 보물상자를 열어 점수를 얻을 수 있도록 은근히 힌트를 뿌리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하민과의 술래잡기에서 도주한다.
그러나 이것들도 고된 작업이긴 하지만, 큰일은 아니었다.
도리어 류이든이 숨이 차오를 정도로 뛰는 가장 큰 원인은 단 한 남자 때문이었다.
몹시 두려운 속도로 보물을 찾아내며 이내 어디서 발견한 비밀통로인지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는 지동화를 견제하는 게 가장 힘겨웠으니까.
‘…쟤, 보물 위치 미리 알고 있는 건가.’
당연히 아니겠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말이 되나 싶을 지경이다. 한 번쯤은 잡아서 점수를 털어먹어야 하는데.
류이든은 잠시 숨을 고를 겸 속도를 약간 늦췄다.
생각이 빈 틈에 머릿속으론,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의문이 자리 잡는다.
시작은 자기가 했지만, 불을 지핀 건, 어느 쪽이더라. 솔직히 잘 모르겠고, 그저 즐겁다.
투어를 하면서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알게 모르게 꽤 받았는데, 박하사탕을 들고 오지 않아서 걱정스러웠다. 조금이라도 멤버들이나 스탭님들께 까칠하게 굴면 안 되는데.
그러나 이제 그럴 필요는 없겠네. 우리 동화 형이 평소처럼 자신의 멱살을 부여잡고 때릴 준비를 할 테니까. 어느새 삶의 원동력이 되어 버린 셈이다.
부스럭.
보물상자를 열어 미션을 수행하던 지동화가 풀숲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이든.”
“와아, 찾느라 힘들었어. 우리 형.”
류이든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지동화가 몇 번을 부정하든 그보다 한 번 더 확언할 수 있다.
자기는 지동화 아니었으면 연예계 생활하면서 스트레스받지 않을 자신이 없다고. 아마 지금쯤 상당히 지치지 않았을까.
물론 지동화가 아니었으면 자신은 아이돌이 되지도 못했겠지만.
서로 엿을 먹여서 체내에 부족한 당분을 보충해 주는 사이라니.
“박하사탕이 따로 없다, 진짜!”
확실히 도리어 데뷔하고 나서 박하사탕을 몰래 먹는 빈도가 줄어든 것 보면.
“…무슨.”
지동화는 맥락을 다 이해했는지 불쾌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왜? 여태까지 계속 나 피해 다니다가 직접 와 주니 고맙긴 한데.”
류이든은 자연스레 스마트워치에 대고 몇 번 탭 했다. 원래는 팀원끼리 무전을 주고받으라고 제공받은 거지만, 지금은 지동화의 위치를 실시간 공유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나 현재나 모스 부호를 알아서 고요히, 스탭님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고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 언젠가 지동화를 놀리는 데 쓸모가 있을까 싶어 외워 뒀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됐다.
“왼쪽이라고만 보내도 알아들어?”
“그러니까. 우리 막냉이 기특하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누르는 시간만 보고 알아듣는 너도 참. 우리가 아이돌이 맞는지 의심되네.
사실 여기 모략과 배신에 익숙해지라고 만들어진 요원 양성소라는 게 더 신빙성 있겠다.
“네가 할 말은 아니지.”
“형이 할 말은 더더욱 아니거든? 우리 중에서 제일 뛰어나면서.”
“머릿수에는 안 되던데.”
지동화는 보물상자를 옆에 내려놓았다. 이미 점수를 얻어 쓸모가 없나 보다.
“남은 보물 다 계산해 봐도 우리 팀이 져.”
“하, 하하하, 흐허.”
류이든은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다.
“내가 이겼다. 어때, 동화 형. 무시하던 동생한테 진 기분이! 아, 벌칙 내가 만드는 거면 박하사탕으로 별명 만들어 주는 건데!”
“한마디 안에 몇 번을 개소리를.”
여전히 불쾌한 표정. 개소리는 마이크에도 제대로 잡히지 않게 작은 입 모양으로만 전달하는 치밀함. 지동화 그 자체다.
“그리고, 이 판을 졌을 뿐이지.”
“우리 팀 벌칙이 확정이니까 내가 이겼어, 동화야. 알잖아.”
가위바위보에서, 류이든이 질 리가 없다는 사실을.
“공정한 척하면서 음험한 구석이 있어, 이든.”
“그래서 일부러 져 주잖아. 너희랑 할 때는.”
류이든은 적어도 상대가 가위를 내려고 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간파해 낼 수 있다. 동체시력과 순발력, 그리고 관찰력과 판단력을 종합적으로 활용해서.
가위냐 아니냐만 알아도 지진 않는다. 류이든에게 가위바위보는 작정한다면 무승부 아니면 승리밖에 없는 게임이다.
아마도 우리 중에서 지동화만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을 비밀.
그래서 이전 게임에서 박하사탕과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은 공개했지만 지동화가 알고 있어 차마 공개할 수 없었던 비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음험하다고 하기는 뭣하다. 실제로 벌칙으로 심부름을 가는 횟수 1등은 압도적으로 류이든이고, 그다음은 다들 비슷비슷하다.
류이든은 자신의 양심을 기준으로, 자신이 가장 많이 심부름을 하기로 했으니.
“존경스럽지?
지동화는 류이든의 자랑스러운 표정을 가만히 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이든.”
“응.”
“야만적이네.”
류이든은 지동화의 수수께끼 같은 말을 들으며 ‘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 답은 듣지 못했다. 풀숲을 헤치며 이현재가 두 손을 비비적거리며 등장했으니까.
“보물 사냥하려구 왔어요.”
“그래, 갈까.”
“…아?”
이현재는 지나치게 침착한 지동화의 반응이 미심쩍은지 류이든의 해명을 기다렸다.
그러나 류이든도 모른다. 대뜸 야만적이라는 비난을 받은 이유조차도.
“갈까.”
그런 둘의 침묵 사이로, 지동화는 자수한 범죄자처럼 처연하면서도 담담하게 웃으며 이현재의 손에 연행됐다.
“음.”
예정된 승리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끊기지 않는 불안함.
“흐음, 미심쩍네.”
류이든은 보물상자를 열어 안에 적힌 미션을 수행하며 중얼거렸다.
야만스럽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겠다.
“또 뭘 하려고.”
어차피 코앞이다. 지동화와 함께 몰락하기 직전이다.
그리고 목전에 다다르니 그제야 하루 종일 풀지 않았던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나저나 대체 이게 무슨 자컨이야.”
헛웃음. 정말 우리는 왜 우리끼리 모이면 항상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마는지. 이 사태의 모든 원인은 대체 누구인지.
류이든은 지동화를 지목하고 싶지만, 오늘 있었던 일을 찬찬히 되새겨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싹텄다.
“멤버들이랑만 있으면 정신줄이 가끔…….”
지동화는 고독(蠱毒)이다. 온갖 미친 멤버들 틈바구니에서 독보적으로 미쳐 버린 고독.
그러나 그게 자신에게 책임이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 *
어화동동지 팀의 패배가 확정된 순간, 지동화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두어 번 눌러 닦았다.
류이든은 팔을 걷어붙이며 환호했다. 아직까지 사태를 모르는 채하민과 석준은 멀찍이서 그 환호를 듣고 류이든의 좌절로 착각하곤 했다.
“동화랑 같이 지옥 가겠습니다.”
류이든은 카메라에 이온 음료 CF 모델처럼 청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 사실 성공이에요. 제가 사실 가위바위보 엄청 잘한답니다?”
흥겨운 발걸음으로 지동화의 좌절을 옆에서 직관하러 가는 길, 엔딩 촬영 장소는 기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천이 한 겹 깔린 테이블, 그 위에 놓인 세 장의 카드 두 세트, 그리고 한편에 앉아 무표정하게 류이든을 보고 있는 지동화.
테이블에 한 손만 올려 카드를 만지작대던 지동화는 건너편을 손으로 가리키며 류이든을 환영했다.
“…뭐야.”
“가위바위보, 해야지.”
우아하게 카드를 펼쳐 드는 지동화. 거기엔 몹시 격식 있는 그림체로 가위, 바위, 보가 각각 한 장씩 그려져 있었다.
무슨 가위바위보를 이렇게 격식 차려서 해, 동화야. 왜 너는 항상 네 스스로 자신이 고독(蠱毒)임을 손수 증명하는데.
박하든 독이든 하나만 해, 동화야.
류이든은 맞은편에 앉으며 카드를 손에 쥐었다.
생긴 것뿐만 아니라 재질도 고급이잖아. 이딴 게 왜 준비되어 있는 건데.
“내가 만든 거야.”
“…거짓말하지 마.”
어떤 놈이 이런 걸 DIY로 만들어.
“나중에 너랑 정정당당하게 가위바위보를 할 순간이 오길 기다리며, 한 땀 한 땀.”
대체 왜 그렇게 모든 걸 걱정하면서 사는 건데. 모 프로그램도 아니고 별 사소한 사고의 원인까지 하나하나 고려하다니.
“다 만들어서 벽돌 안에 넣어 뒀거든.”
그거 지퍼 달려 있는 거, 세탁하려고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우리 아이돌이야, 동화 형.”
벽돌이라고 하지 말라고.
그러나 지동화는 무표정하게 카드를 한 장 뒤집어 내밀었다.
“삼선승.”
선언하는 순간 공원이 고요에 휩싸였다.
이유 모를 비장함. 지동화는 류이든에게 최선을 다해 어울려 주고 있었다. 등신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러면서 류이든이 즐겁다면야, 뭐.
그리고 그 생각대로 류이든은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와, 중학생 때 이후로, 질 확률이 있는 가위바위보는 처음이다. 떨리네.
손으로 내는 게 아니라 카드로 내려니 더 낯설다. 가위바위보를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참고로, 이건 가위야.”
거짓말이네. 이 정도도 눈치 못 채면, 지동화 표정 특강을 해 준 채하민에게 너무 죄송할 노릇이다.
입꼬리가 아주 약간 경직되고,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는 짧은 순간이 거짓말의 신호다.
류이든은 보자기를 뒤집어 내려놓으려다가 잠시 멈췄다.
근데, 지동화가 그걸 모를 리가 있나.
자기 표정이 프레임 단위로 채하민에게 분석됐고, 그걸 우리 멤버들 중 지동화를 제외한 전원이 공유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물론 팬분들은 모른다, 차마 말해 줄 용기가 류이든, 지동화, 이현재에겐 없었고, 채하민과 석준은 별생각이 없었다).
이상하다. 대체 왜.
류이든은 천천히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그거 가위구나.”
옆에서 조용히 관전하던 채하민이 고개를 한 번 갸웃거렸다.
답이 없는 지동화 앞에, 류이든은 가만히 바위를 내려놓았다.
“자, 그럼 공개할게요.”
하나, 둘, 셋, 숫자 카운트 이후 공개된 카드. 지동화는 가위를 내밀고 있었다.
채하민이 입을 틀어막고 뒤로 몸을 기울이다 의자에서 떨어져 내렸다.
“…너, 진짜 미친놈이다.”
자기가 거짓말할 때 습관을 분석해서 연기하는 미친놈이, 대체.
“아니.”
거짓의 신호.
“다음으로, 이것도 가위야, 형.”
거짓의 신호.
모든 말을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작은 습관들. 류이든은 심장이 벌렁였다. 정말, 어디서 이런 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