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3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34화(302/343)
형들은 진짜 왜 저럴까, 가끔 보면 참…. 이현재는 이 뒤에 어떤 단어를 넣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도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말이 좋아서 앙숙이지, 저렇게 노는 게 재밌는 거잖아. 어딜 내놓아도 부끄러운 우리 형들을 어쩌면 좋아, 정말.
이현재는 석준과 함께 과자를 먹으며 긴장감(이 흐르는데 대체 왜 흐르는지 알 수 없는)이 넘치는 현장을 지켜봤다.
저 형은 자기가 거짓말 할 때 규칙도 정해 두고, 나중에 엿 먹일 때 사용하는구나. 심지어 저런 카드도 만들어서 들고 다니고.
이현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저 둘을 저렇게 만든 건 대체 무엇일까.
“준이 형.”
“응?”
“저 형들, 왜 저럴까요.”
“형님들끼리 노는 거잖아─.”
와그작, 아무렇지 않은 얼굴.
“동화 형님은 상대한테 잘 맞춰 주니까─.”
예전에 동화 형이 준이 형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무런 편견이 없어서 준이 형은 가끔 사태의 본질을 손쉽게 이해한다고.
그러면서 눈물점을 끔뻑이며 과자나 먹는 걸 보면, 그저 행복해 보일 뿐이었다. 아마도 저 형은 무인도에 던져줘도 위즈니를 못 보는 게 한일 뿐, 잘 적응하고 살지 않을까. 행복의 역치가 지나치게 낮아서.
어쨌든 그럼 저게 이든이 형이 원하는 둘의 관계 양상이라는 건데.
“…가위, 확실해?”
“확실한 건 없지, 형.”
저렇게 서로 눈치를 보면서 기 싸움하는 게…? 고작 가위바위보 하나 하면서, 저렇게까지 진심으로……?
그때 침울한 목소리가 이현재의 상념에 툭 끼어들었다.
“나만, 나만 따돌리고…….”
“형?”
“나도, 동화랑 이든이 형이랑 놀고 싶다, 현재야…. 너도 그렇지…….”
“저게, 부러워요?”
“응…….”
채하민은 좁은 의자 위에 다리를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솔직히 덩치가 작은 편은 아니라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우리 그룹에서 그나마 덩치가 작다고 할 만한 인간은 아무리 봐줘도 동화 형이나 자신까지다).
“뭘 하든 같이 하면 좋잖아…….”
아, 맞다. 이 형도 위험한 종류였지.
‘뭐야, 진짜 나만 정상이잖아.’
이현재는 찬찬히 점검했다.
채하민은 멤버들과의 추억이나 함께하는 시간에 가장 집착하는 사람. 그리고 동화 형 피셜, 친구가 지옥에 떨어지면 웃으면서 같이 떨어질 사람.
집안에 차고 넘치는 돈 때문인지 경제 관념은 0에 가까우나 물욕이 없어서 다행히 파산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강에 다리가 무너져 사람들이 고립된다면 자기 돈으로 강을 메워 사람들을 구할 인간이다.
음, 비정상적이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
석준은 긍정적인 의미로 상식이 없는 사람.
부정적인 감정을 품는 법은 잘 모르고, 타인의 악의는 문자 그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하민이 형은 사기인 걸 알면서도 당해줄 것 같은데, 준이 형은 당하고도 모를 것 같다.
무슨 말을 할 때든 그리 깊게 고민하지 않는데도 가끔 있는 스포일러 사태를 제외하고는 아주 논란도 없는 걸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평소에 머릿속이 얼마나 긍정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어쨌든, 역시 비정상적이다.
그리고 남은 둘은.
“하하, 하하, 우리 동화 형은 나를 정말 잘 아네.”
“너는 왜 모를까, 날. 서운하게.”
고작 가위바위보 하면서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만 봐도 애초에 저 둘은 아이돌로 활동하고 있는 게 국가적 손해인 인간들인데, 아이돌이 되어서 한다는 일이 진심으로 가위바위보 하기라니.
언제였을까. 이단아라는 괴상한 별명을 보고 ‘우리는 평범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 생각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정말, 그때는 다들 이상한 구석이 있어도 자신을 제외한 전부가 미쳐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준이 형은 제외다, 그 형은 원래 그랬다).
이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회사는 아니다. 장 팀장님은 더 독해져서 사내 권력을 장악하고 우리를 전적으로 지원해 줬을 뿐이다.
아이돌 활동 역시 아니다. 아이돌 아니었어도 저렇게 미쳤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지내지 않았다면 이렇게 됐을지를 생각해 보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역시 동화 형?”
이현재는 눈앞에서 2승을 연속으로 챙겼는데도 아무 감흥도 없어 보이는 지동화를 보았다.
이든이 형이 제일 놀리고 싶어 하는 것도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자기 손으로 울려 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타이틀의 저 형이다.
여담이지만, 이현재는 그날이 죽는 날일 테니, ‘죽기 전’이라는 표현이 참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민이 형이 멤버들과의 추억을 모두 달력에 적기 시작한 것도 ‘유일한 동갑 친구’라는 타이틀의 동화 형이 시작이었다.
이현재는 채하민의 작은 수첩에 ‘우리 막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음이탈 낸 기념일’이라고 적혀 있는 걸 우연히 보고 죽(이)고 싶어졌다.
그런데, 자기가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도…….
“역시, 동화 형.”
이현재는 문득 자신이 없어졌다.
자신은 과연 정상일까. 솔직히, 우리 그룹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데, 자신도 설마…….
이현재는 지독한 번뇌에 빠져들었다. 채하민이 그 기색을 눈치 채고 어깨를 잡아 톡톡 두드렸다.
“왜 그래. 몸 안좋아?”
“안좋을지두 모른다는 생각에…….”
“어?”
무슨 소리냐는 눈빛은 가볍게 패스. 이현재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그럴 리가 없다. 자신도 마찬가지라니, 설마. 군계일학이라는 말을 이런 데 쓸 수는 없지만, 닭 사이에 학 한 마리가 있을 수도 있잖아.
“어떻게 두 번 연속으로 지냐.”
운이 없으니 지겠지, 뭐. 이든이 형은 평소에도 가위바위보를 하면 자주 지니까.
“형, 응원할게요.”
그래도 같이 한배를 탔는데, 응원 정도는 할 수 있다.
“막냉이! 기다려. 내가 적장의 목을 들고 돌아갈게!”
“야만적이네.”
지동화가 냉소했다.
“내 머리에서 나가, 동화야. 뭐 낼지 어떻게 다 알아!”
“내가 먼저 내려놓는데, 무슨.”
“거기까지 예상한 거잖아.”
“그럴 리가.”
가위바위보를 여러 번 할 때는 그 사람의 성향이 반영된다. 무엇을 내서 이겼으며 무엇을 내서 졌는지, 상대가 무언가를 낸다고 할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이 모든 건 자잘하게 성격과 관련이 있다.
아마도 동화 형이 두 번 연속으로 이긴 것도 그런 차원이 아닐까.
“오늘 처음 하는 건데, 패턴 같은 것도 없잖아?”
저건 또 무슨 소리람.
* * *
매치 포인트. 한 점만 더 따면 된다. 가위바위보까지만 가면 이길 수 있다는 그 자신감은 지금 류이든에겐 찾아볼 수 없다.
“이번에는 보.”
류이든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동화야, 동화야.”
“응.”
류이든은 슬며시 카드를 내밀며 한숨을 쉬었다.
“져 주면 안 돼?”
어딜, 감히, 내 앞에서, 귀여운 척을. 그렇게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이다니.
“질 수도 있겠지.”
이번엔 네가 가위를 낼 거라고 예상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 틀릴 수 있는 일이다. 예측한다고 해서 확실한 승리 따위 있을 수는 없는 게임이잖아.
하나, 둘, 셋.
뒤집어진 카드, 형은 보, 나도 보. 당연히 이런 결과도 나올 수 있다. 아쉽게 져주진 못했다. 자기 앞으로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차는 것도 참 재주다.
“…진짜, 정말, 너무해. 이러다 나 삐져, 진심으로!”
“왜.”
“농락당하고 있잖아!”
“무슨 소릴.”
내가 기지생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네. 그건 예언(보통명사)의 영역이잖아.
“일부러 무승부로 농락하고! 난 이제 평생 형을 못 믿을 거야!”
우리가 이런 게임을 할 때 언제 서로를 믿었다고. 데뷔 초의 번지점프 사태 이후로, 우리는 단 한 번도 서로를 확신한 적 없는데.
가장 서로를 믿는 멤버기도 하면서, 가장 서로를 불신하는 멤버인 셈이다.
“아쉽네.”
나를 노려보던 류이든이 처음으로 먼저 카드를 내밀었다.
“보.”
나도 가만히 카드를 내밀었다. 조용히 흐르는 적막. 깊은 심호흡을 하는 류이든. 마침내 마음을 먹었는지 내민 카드를 떨리는 손으로 부여잡았다.
하나, 둘, 셋.
형은 보, 나는 가위. 뻔했네, 류이든.
* * *
벌칙 결정자가 지동화로 확정되는 순간, 계속 지켜보던 PD님이 소리쳤다.
“축하드립니다! 이든 씨는 미션 실패하셔서 아쉽겠어요.”
“하하…, 그러게요…….”
류이든이 카드를 내려놓으며 좌절하듯 두 손에 얼굴을 박았다.
“…난, 대체 무엇을 위해.”
그 뒤에 무슨 말이 생략되어 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비밀을 스스로 내어 놓고, 이현재와 함께 신호를 주고받는 연습을 하고, 미칠 듯이 뛰고, 제작진 눈치 보고, 확실히 수많은 고생을 했다.
“자, 촬영의 빠른 종료를 위해 어서 벌칙을 정합시다!”
정 PD는 벌칙판을 꺼내 들었다.
“이중에 하나를 정해서 수행해 주시면 돼요.”
지동화는 찬찬히 벌칙판을 스캔했다. 일단 음식 먹기 같은 류이든의 건강 관리에 해가 갈 것 같은 것도 제외하고, 나머지 것들을 하나씩 살펴 봤다.
그러고는 이내 벌칙을 하나 정했다.
“시장 한복판에서 하이패션으로 당당하게 모델 워킹, 하겠습니다.”
“…네?”
“…어?”
PD님과 류이든의 강렬한 시선, 경악의 눈초리.
그 옆으로 이현재도 납득할 수 없는지 ‘어?’라는 눈빛으로 지동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 공포의 집 탐방처럼 동화 씨한테 엄청 유리한 것도 있는데요?”
“네.”
지동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동화의 시력이 높다는 건 류이든도 잘 알고 있었다.
“그거, 죄송하지만, 지금 휴가 중인 그 미친 후배가 만든 거예요!”
“네.”
류이든은 격하게 동의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딱 그 PD님이 좋아하는 형식의 벌칙. 폭력적이지는 않지만, 기괴하고 괴상한.
“그, 하이패션이 예상보다 진짜 하이한데도요?”
“네.”
그건 벌칙을 그 PD님이 만든 이상 준비된 의상도 그 꼴이 충분히 예상되니 당연한 것이다.
“…왜요?”
PD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류이든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왜?
“제가 산책을 좋아해서.”
설마.
“…형, 형!”
류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동화를 와락 끌어안고는 이리저리 휘둘렀다. 지동화는 ‘네가 이러니 내가 상대적으로 유약해 보이잖아.’라며 떨림조차 없는 명확한 목소리로 항의했다.
“같이 지옥 가 주는구나!”
“…어.”
안쓰러웠구나. 최악의 벌칙은 아니지만, 차악이라고는 할 수 있을 정도의 벌칙을 골라주다니. 자신이 고생한 걸 어떻게든 보상해 주려고, 이렇게.
이게 훈훈한 결말인지 솔직히 잘은 모르겠지만, 류이든에게만큼은 최고로 훈훈한 결말이다.
류이든은 이번에 팔뚝에 힘을 줬다. 핏줄이 솟아올라 마치 덤벨을 들 때의 팔뚝이 되었다.
휙, 쌀포대 던지듯 위로 지동화를 던져 올렸다.
“형! 고마워! 내가 사랑해!”
옆에 있던 이현재가 ‘가위바위보 다 이기구 상하 관계 확실히 한 뒤 선심 쓰듯 해 주는 건데, 고마운 게… 맞나?’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만, 지금의 류이든에겐 들리지 않았다.
“같이 목격 사진 남겨서 우리 둘 다 또라이인 거 자랑하자!”
“닥…….”
쳐. 지동화는 카메라 때문에 차마 험한 말을 뱉지 못했지만, 현장의 누구든 다 알 수 있었다. 그 광경을 침울한 눈으로 바라보던 한 남자가 있었다.
“…나도, 나도 하면 안 돼요, PD님?”
채하민이 열렬히 자리에 일어서며 소리쳤다. 오늘 하루 내내 지동화와 류이든이 전쟁을 벌이느라 소외됐던 한 남자는, 이런 형태로라도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정말, 평범한 하루. 비록 그룹의 형 라인이 입을 예정인 옷은 평범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것조차 평범해지는 이상한 그룹의 평범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