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3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36화(304/343)
모든 이야기에 끝이 있다면, 그건 어떤 형태여야 할까.
지난 활동 동안 죽죽 이어졌던 우리의 세계관 이야기는, 이번 투어를 토대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모든 전생을 기억하며 자신만의 낙원에 갇힌 이현재와 그런 그를 과보호하며 정신적으로 병들어 가는 채하민, 채하민과 대립하면서 온갖 책임감에 파묻혀 가는 류이든,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어 도망치며 웃는 석준.
그리고 이현재의 정신 이상을 지켜보며 직접 의사가 된 나.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될 예정인, 투어 종료 시에 업로드될 영상은 이미 촬영했으나 무슨 내용인지는 알지 못했는데, 그 흔적을 본 것은 이번 투어 PV 추가 분량이 처음이었다.
사실 결론은 이미 곡으로 썼더라. 자기 형의 모든 것을 빼앗는 이야기를 담은 ‘All mine’에서.
최종적으로 이야기 속 이현재의 최종 목적은 나의 인정을 얻거나(즉, 여태껏 내가 쌓아 온 모든 상식과 지식을 부정하는 것) 모두와 절연하는 것(즉, 여태껏 내가 쌓아 온 유일한 인간관계를 파국에 치닫게 하는 것)이다.
어쩐지, 스토리 작가님이 이현재의 소설을 보고 너무 좋다고 호응했더라니.
그러므로 결말은 단순하다.
둘 중 어떤 경로로 갈지는 모르겠으나, 전자는 불안한 화목이라면, 후자는 편안한 고독이다.
둘 다 내 입장에선 행복한 결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기왕이면 이야기 속의 내가 부디 전자를 골라 줬으면 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어쨌든, 투어 PV와 영상에서 이현재와 나는 7초간의 시간을 침묵하며 서로 주시했다.
내 쪽에는 딱딱한 질감의 조명이, 이현재 쪽에는 느슨한 질감의 조명이 비쳤다.
내 뒤로는 책장에 온갖 책이 철옹성처럼 정렬되어 있고, 이현재의 뒤로는 무너진 젠가와 시든 국화(이현재의 탄생화)를 담은 꽃병이 놓여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깨달았지만, 정말 행복이라고는 없는 이야기구나.
이현재는 다시 생생하게 만개할 수 없을 테고, 나는 모든 책을 집어 던지거나 이현재의 목을 조르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으니.
그리고 이에 따라 다른 멤버들도 각자 좌절할 것이다.
…굳이 해피엔딩이라고 할 법한 걸 찾자면, 내가 이현재의 머리를 내리쳐서 모든 기억을 상실케 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굳이요?”
“그럼.”
“말했지만, 제가 제 머릴 내리칠 수두 있죠.”
“이야기 속에선 불가능하잖아.”
개연성의 한계다. 자신이 틀릴 리가 없으며 세상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소년이 어떻게 자기 머리를 내리칠 수 있을까.
“내 머리라면 모를까.”
이현재는 느긋하게 스트레칭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새하얀 옷을 입은 이현재, 차별적 의미를 배제하고 정신병원에서 쓸 법한 구속복과 비슷한 디자인이다.
“그게 더 말두 안 돼요. 형을요?”
“난 가짜니까.”
“저러구 있어두 알지 않을까요. 형의 행동 원리가 애정에 기반한다는 것쯤은.”
누구의 머리를 내리쳐야 하는지에 관한 짧은 토론.
이현재는 자신을, 나는 나를 내리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
카메라를 쥐고 있던 석준. 반사판을 든 채하민, 이 모든 걸 자기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있던 류이든은 이 광경이 익숙한지 그저 웃으며 지켜봤다.
“얘들아, 준비됐어?”
나는 목 끝까지 답답하게 채운 셔츠 단추를 한 번 만지작댔다. 원형 금테 안경이 번거롭다.
몇 번이고 생각해도 낡지 않는 생각, 내 의상은 어째서 늘 목을 옥죌까. 혹시 내 목이 조금 조르고 싶게 생겼나.
“응.”
물론 큰 문제는 아니다. 상체, 하체, 목 어디든 하네스 같은 개 목줄로 묶여 본 경력이 있는 아이돌로서 이 정도 갑갑함은.
“저도 됐어요.”
호텔의 하얀 벽지를 배경으로, 나와 이현재는 마주 보고 앉았다.
이러고 4분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 채 그저 서로 보고 있을 예정이다.
* * *
작업은 솔직히 말해 순탄하진 못했다. 투어라는 게, 체력을 갉아먹는 일이니까.
일단 나부터 체중이 4kg 정도 빠진 상태다. 공부와 작곡, 리허설, 그리고 공연을 모두 수행하는 건 의외로 버거운 감이 없잖아 있다.
물론.
[잠을 줄이면 되겠죠, 등신 같으니라고.]그럼.
[계산입니다. 투어 끝난 날에 쓰러질 확률이 87%입니다.]다행이네, 미리 알아서. 30분 더 자면?
[2%입니다.]그래.
나는 다시 정신을 집중해 이현재의 눈을 바라봤다.
사실 반드시 영상으로 이 장면을 찍을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이현재와 둘이서 녹음했던 곡을 배경 음악으로 깔 예정이라.
그래서 사진으로 찍는 게 낫지 않냐는 류이든의 효율주의적 권고가 있었으나, 나와 이현재의 공동 의견으로 기각됐다.
움찔거림, 눈의 깜빡거림, 그 모든 것들이 긴장감을 만들어 내니까.
그리고 오묘한 소음이 뒤섞이면 또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별로면 음소거하고.
나는 이현재를 보면서 악보를 머릿속에 그렸다.
무조 음악같이 음계가 뚝뚝 끊어진다. 어디로 튀어 나갈지 모르는 바이올린 소리와 불규칙적으로 등장하는 피아노 음으로 구성된 전주다.
어차피 팔지 않을 곡. 얼마나 자유로운지, 팔릴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실험장이란.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각자의 길을 달릴 뿐, 서로를 돌봐줄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불안하고 모호한 균형 상태. 마치 이현재와 나의 관계 같다.
그리고 뮤트. 고요한 정적 속으로 나와 이현재가 동시에 입을 열 것이다.
자유롭길 바라, 네가
동일한 가사지만, 서로 뜻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나는 네가 망상으로부터 자유롭길 바라고, 너는 내가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길 바란다.
눈을 뜨/감길 바라, 네가
이번엔 가사 자체가 다르다. 나는 네가 눈을 뜨길, 너는 내가 눈을 감길 바란다.
듣지 않아, 항상, 네/내가 바라는 이상적 결말을
그런데도 변하길 원하는 건 내 욕심일지
눈 감으면 떠오르는 과거, 아름다웠던 추억을
그런데도 모두 잊어버린 건 네 잘못일지
나는 너에게 왜 이번 생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지 못하냐고, 그걸 위해서라도 네 망상을 참을 수는 없냐고 안타까워한다.
반면 너는 나에게 어째서 그 소중했던 전생의 모든 기억을 잊었냐고, 울분에 차 있다.
이 곡에서는 시종일관 이런 식이다. 동일한 가사를 부르지만 서로 전하고자 하는 바가 불일치한다. 마치 배경에서 불안하게 독주하고 있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처럼.
그렇기에 곡의 제목은 나와 이현재가 동시에 비슷한 아이디어를 꺼냈다.
네가 모든 걸 깨부수려던 그날부터 시작된 우리의 독백
‘독백(Dualogue)’, 그야말로 글러 먹은 제목이다.
나는 피곤한 눈을 감았다 뜬다. 눈을 뜨면 당연히 이현재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머릿속의 악보가 한 장 넘어가며 마치 이현재의 눈빛이 곡률을 그리며 내게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돌고 돌아 다시 이 자리로
무의미한 문장을 나열하고 또 여기로
미지근한 눈빛, 불안한 공기, 예정된 끝으로
행복할 수 없다면 억지로라도, 그렇게라도
침묵.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지쳤는지 하나의 음만을 울리며 쉬어간다. 그러다 놀랍게도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유려한 화음을 자아낸다.
나와 이현재도 마찬가지, 이번 가사에는 아무런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화의 모서리, 둔탁한 충돌이, 우릴 닳게 한다면
마모된 목소리, 갈라진 아귀가, 우릴 닮게 한다면
부서진 잔해인, 반뿐인 나라도, 함께일 수 있다면
두 사람의 모놀로그, 매일 밤이 새도록 독백하자
후렴구.
솔직히, 가사를 처음 쓸 때 고민했다. 세계관이고 자시고, 관심도 없는 분들도 있을 테니까.
그런 분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대화의 핀트가 자꾸만 엇나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어도 상관없게 썼다.
감정이 식을 대로 식은 권태기의 연인, 서로를 물어뜯는 부모와 자녀, 아니면 한 사람 안의 이야기라도 좋다.
대화하면 할수록 지치고, 뜻을 좁힐 수 없다는 걸 앎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건 미련이래도 좋고, 애정이래도 좋다. 어쨌든, 둘 다 상대를 잃고 싶지 않다는 소리니까.
그래서 우리는 사진 대신 서로 눈을 마주 보는 영상을 찍기로 한 것이다.
자잘한 소음, 움찔거리는 뺨, 상대에게 꽂힌 시선, 그러나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할지 알 수 없는 불안감. 이건 영상이 아니고서는 담아낼 수가 없다.
악보가 다시 한 장 넘어간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다시 오묘한 독주로 노선을 전환한다.
우리가 합치할 수 있는 건, 이 장소, 이 순간에 앉아 대화를 끝없이 시도한다는 사실 하나뿐인 것이다.
눈앞의 이현재는 흰색 구속복을 입고 있다. 어쩌면 나를 이미 죽이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붙잡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다시 여기에 앉아 있다. 그게 이 곡의 요지다.
사실 어느 정도는 스토리 작가님에게 항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디 이 망할 세계관에 해피엔딩을 달라고.
이 정도로 다른 둘이 끝없이 독백할 정도로 서로 아끼는데, 어떻게 그 이야기의 결말이 그 모양일 수 있냐고.
최소한 헤어짐은 없도록 해 달라는, 귀여운 시위(물론 이 시위를 위해 내가 쓰러질 확률이 상당히 높아졌지만.).
긴 눈 맞춤, 옆에서 채하민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고, 류이든이 떨리는 팔을 고정하려 다른 팔을 카메라 아래 덧댔다.
안 봐도 알 수 있다. 웃고 있겠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두 동생을 2분 가까이 관찰하는 건 그럴 만한 일이다.
이렇게 오래 말없이 보고 있으면 상념에 빠져들고, 상대와의 추억을 회상케 한다. 얼굴이, 변했네. 더 어렸던 것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성장했을까. 서바이벌이 끝나던 날, 목화와 재회했을 때의 그 위화감이 느껴졌다.
순진무구한 소년과 삶이 고통스러운 청년 사이 그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현재, 이게 하이틴 같은 거 아닌가.
처음 봤을 때의 그 불안하고 자신 없던 아이는, 자신의 부모에게 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이 맞나)했다.
와중에도 악보는 계속해서 넘어갔다. 시간은 또한 계속해서 흘러갔다.
우리는 눈을 떼지 않고, 나는 이현재의 성숙을 괄목하며 감탄하던 중.
문득, 이현재가 눈물을 흘렸다.
이슬지듯 흘러내리는 눈물 줄기의 근원을 따라가면, 거기엔 무슨 감정인지 정확히 모를, 아니, 온갖 감정이 뒤섞여 무엇이라고 할 수 없는 빛이 반짝였다.
순간 채하민이 이현재의 눈물에 반응하며 몸을 움찔댔지만, 이내 규칙을 떠올렸는지 얌전히 반사판을 고쳐 들었다.
잘 봐 둬야지. 나 다음으로 보기 힘든 이현재의 눈물이다.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게, 이럴 때는 축복이랑 다름이 없지 않을까.
눈물의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저 4분이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고, 내 머릿속 악보는 계속해서 넘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