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3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37화(305/343)
변했다, 얼굴이. 이현재는 지동화의 얼굴을 보며 한 문장을 적었다.
그 문장의 각주로, 과거에 적었던 문장이 하나 드러났다. 그는 본인 얼굴을 보길 더럽게 싫어한다.
형이 자신의 개인 곡으로 내놓았던 자화상을 들으며, 이현재는 거기 얽힌 진득한 자기혐오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났다.
다른 형들은 동화 형이 본인들을 어떻게 여기는지를 깨닫고 감동을 받은 듯싶지만, 이현재에겐 자신의 일기를 다시 읽게끔 만들었다.
그러니까 서바이벌에 갑자기 외부 회사 연습생이 둘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일기로.
많이 읽을 필요는 없었다.
‘사람 하나는 찔러 죽일 수 있을 법한 사람과 거기에 찔리면서도 웃고 있게 생긴 사람 한 명이 들어왔다. 소문으로, 실력이 좋다고 한다. 부모님이 틀렸음을 증명할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
이현재는 그 일기를 읽자마자 곧바로 웃었다. 속에 있던 것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해서 일기에 배설하는 게 전부였지.
부모님이 새겨 준 애정결핍은 낙인이었다. ‘가장 가까운 인간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함.’이라는 낙인.
그래서 인정을 갈구하지만, 애정결핍의 친밀한 이웃인 자기부정과 부족한 자기 확신이 겹치면 성급해져서 실수한다.
그런 실수 따위 짓밟을 수 있을 정도로 노래를 잘 부르지만, 그렇기에 기대치가 높아서 도리어 인정은 돌아오지 않는다.
근데, 그 개 같은 악순환을 끊은 게, 자기보다 심각한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 하나는 찔러 죽일 수 있을 법한 사람이라고 적었던 그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기본적으로 청년에 가까워진 얼굴이라는 건 그 원인은 아니다. 옅은 다크서클, 세련된 분위기, 엷은 입술 덕에 생긴 여린 이미지, 이것들도 아니다.
이 형은 이제 세상이 아름다운가 보다, 그것 말고는 다른 원인이 없다.
이현재는 찬찬히 눈을 감았다 떴다.
동화 형은 변했다. 그 눈부터. 그럼 저 처연한 동공 속에 있는 사람은 변했을까.
자신의 모든 치부를 아는 아들에게 갑작스레 용서를 구하는 모친의 편지를 대충 읽다가 ‘이런 연락이 비밀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까요.’라는 답장을 필체가 드러나지 않게 한 글자씩 다른 책에서 잘라 작성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보냈던 이현재는.
매일 밤 그날 있었던 실수를 자책하며 ‘대체, 나는 뭐가 문제일까.’라는 한탄으로 가득한 일기나 쓰고 있던, 그 여렸던 이현재와 달라졌나.
이현재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지동화도 별다른 말 없이 다시 침묵을 지키며, 고요해지는 호텔 방 안.
지난번 PV 촬영 때는 짧은 시간이라 그러지 않았는데, 지금처럼 한 사람의 얼굴을 일 분 가까이 말없이 보고 있으면, 그 사람과의 추억을 회상할 수밖에 없나 보다.
…진짜 이 형 안 만났으면 어쩔 뻔했지.
이현재는 상념의 늪에 몸을 누였다. 지동화의 동공이 쓸쓸하면서도 따스한 것 같다고 여기며.
‘공부했겠지.’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했을 거고.’
그것보다 관심이 가는 건 없었으니까.
‘부모랑 절연도 하긴 했을 거야.’
느렸겠지만.
‘그리고 불행했겠지.’
최소한 지금보다는, 확실히.
아무리 외면하려 노력해도,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라는 인식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동화는 당연히 못 만났으니 말할 것도 없고, 이든이 형과의 관계도 차차 멀어졌겠지. 이현재에겐 그게 부모와의 절연보다 더 무거웠다.
‘…이든이 형이 부모랑 비슷하게 인식되는 건, 조금 억울할지도.’
지금의 그룹은 없다. 이렇게 다섯이 모이는 일도 없다. 상상, 갑갑한 부모의 잔재와 뒤틀린 속내를 감춘 채 관성에 의존해 연명하는 삶.
이현재는 문득 두통을 느꼈다. 아찔하다. 상상만으로도 암전된 방에 갇힌 기분인데.
이현재는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당연히 마주치는 눈은 여전히 담담하다. 여전히 쓸쓸한 듯 따스하다.
얼마나 감사한지. 저 형이 미치지 않았으면, 감은 눈 너머에 동화 형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게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또한 얼마나 다행인지. 이현재는 암전된 방에서 길을 헤매다가 문을 나선 사람처럼 핑, 눈물이 감돌았다.
저 얼굴엔 세월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소년이라 할 만한 낯짝을 달고 냉정한 인상을 가지고 있던 형은, 어느새 청년이라 할 수 있는 얼굴로 따스하게 자신을 지켜봐 주고 있다.
그 두 얼굴 사이, 이현재는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의지하며, 지동화라는 인간을 지지대 삼아 나아갔다. 비단 지동화뿐만 아니라, 모두 다.
저 사람들 없이 이 인생은 어떤 꼴이었을지, 얼마나 울었을지, 얼마나 외로웠을지.
혈육과 말싸움 도중 모든 것을 밝히며 관계를 파탄 냈을 때, 문밖에 그들이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안도했던가.
공항에서 자신의 어깨를 꼭 잡아 주며 걸어가던 저들의 손은 얼마나 다정했던가. 수능 시험장으로 가던 길에, 목에 감고 있었던 목도리는 얼마나 따스했던가.
서바이벌 첫 인상 무대에서 실수했을 때 각자의 방식대로 위로하려 노력했던 저들을 보며…….
어느 시 구절처럼, 모든 감정이 순간 밀물처럼 몰려왔다.
무력하게 휩쓸리던 이현재는 새삼스레 또 깨닫는다.
‘…아직, 애새끼야.’
감돌던 눈물이 고이다 못해 툭, 눈물 줄기로 이어진다. 그런데도 지동화는 일말의 동요도 없이 그저 바라보고 있다.
이 사람들이 더 보호해 줬으면 좋겠다. 미치광이들이지만, 모두들 눈 한구석에 따스한 빛을 품고 있는 이 사람들이.
‘부모를 절연하니 뭐니 해도.’
아직 애새끼다. 다 큰 척, 성숙한 척해도, 아직 어리고 또 여리다.
지동화가 내린 저주의 영향으로 모두들 죽을 때까지 가까이서 살아가기로 했으니, 평생을 어리고 또 여릴 것이다.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도 이현재의 표정은 담담했다. 자잘한 떨림만 있을 뿐, 일그러진다거나 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지금쯤 배경 음악에 깔릴 예정인 ‘독백(Dualogue)’에서는 어떤 가사를 아로새기고 있을까.
아마도, 거의 마지막쯤인.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자기를 들으라고 서로 뽐내듯이 기교를 부리며. 그러면서도 초반부보다는 더 화합을 이룬 것 같이.
내가 다 닳을 때쯤, 네가 다다를 때쯤의 결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우리, 그리고 또 독백
마지막이다. 안도의 한숨이라니. 둘 다 닳을 대로 닳아 죽을 지경인데도, 안도라니.
처음 가사를 쓸 때 이현재는 약간 불만이 있었다. 조금 더 누군가가 비극을 맞는 쪽이 낫지 않겠냐고 주장했지만, 동화 형은 답지 않게 불만이 컸는지 곧바로 반박했다.
‘현재.’
‘네.’
‘해피엔딩도 나름대로 미학이 있어.’
그때는 다시 또 ‘누가 그걸 몰라요? 제가 비극이 좋아서 그러지.’라는 생각을 했다.
어리다, 정말. 동화 형이 쓴 가사는 그저 소망일 뿐이다.
언젠가 우리가 서로 생각이 달라지고, 다른 길을 걷더라도, 끝없이 독백이나 하자는, 거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는, 그게 우리를 닳게 할지라도 포기할 생각 따위는 없다는.
그런…, 지독한, 저주.
이현재는 정정했다. 이 가사가, 꽤 좋다고.
어리고 여린 애새끼에게는 어쩔 수가 없었다. 무수히 많은 독백을 할지언정, 이 형들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야기 속의 이현재를, 현실의 이현재는 죽어도 이해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공감 간다.
이런 사람들과의 추억을 홀로 알고 있으라니, 그건 너무 잔인하다.
이현재는 다시 또 눈물을 흘렸다.
* * *
촬영이 끝났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이현재가 그대로 얼굴에 두 손을 파묻었다.
달려가 위로할 작정이었던 멤버들조차 도저히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발이 굳었다.
“에, 어?”
“동화 형, 눈으로 욕했, 어?”
“그런…, 거야, 동화야?”
“아니니까 침묵.”
눈으로 욕하기는 무슨. 그저 심바 씨나 봉주가 성장한 걸 눈으로 목도했던 그 심정 그대로였는데.
“…아으, 허.”
이현재는 이제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억눌린 울음이 뚝뚝 끊기듯 흘렀다. 이쯤 되니 류이든의 말을 합리적으로 재검토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할지도.
내 얼굴이 좀 무섭게 생겼나.
팬분들께서 ‘악동’이나 ‘양아치’ 같은 컨셉을 보고 싶다고 해도, 시도할 수 없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양아치인 건, 양복을 입은 조폭 말고는 연상이 안 된다고.
나와 류이든 사이에 미칠 듯이 시선이 오가고, 채하민과 석준이 서로를 부여잡으며 공감성 눈물을 생성해 내고 있을 때, 이현재가 손으로 눈을 가린 채 고개를 들었다.
입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입가의 눈물 자국만으로도 염전 하나는 거뜬할 지경의 눈물을 뿜어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저주, 유효한 거죠.”
정말 뜬금없는 말. 무슨 의미인지 곧바로 이해한 게 나밖에 없을 정도로.
대체 왜 여기서 내 흑역사를 꺼내는 걸까. 혹시 내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었더니, 그때 생각이 나기라도 한 걸까.
술에 취해 우정이 끝나게 되는 원인은 죽음밖에 없다고 선포했던 날, 내 주사가 자기혐오가 아니라 그저 솔직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날의 기억이 아프게 되살아났다.
“…응.”
일단 내가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에, 쉽게 답했다.
누군가 먼저 우리를 떠난다면, 내 손에 죽었거나, 다른 원인으로 죽었거나, 둘 중 하나다.
“그게, 참, 미친 짓 같아요.”
현재, 내 과외생이고 막내라고 해서 내가 천박한 언사를 몹시 삼가고 있지만, 히끅거리면서도 내 주사를 돌려 까는 너를 보고 있자니, 결심이 흔들려.
“…그래서, 너무 안심이 되는 걸 보면, 저두 미친 새낀가 봐요.”
수구초심이네, 우리 현재. 그래, 너도 우리 그룹 멤버잖아. 나 말고 다 비정상인 것들밖에 없는 그룹.
“…저는, 씻고 올게요.”
이현재는 벌떡 일어나 잰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던 류이든이 그제야 알아챘는지 입을 막고, 자신의 가슴을 움켜잡고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너무 귀여운데.”
“뭐가.”
“지금! 애정 표현 0인 우리 현재가!”
“으어?”
채하민과 석준은 공감성 눈물을 슬며시 닦아 내고 의문을 표했다. 너희들은, 그래, 너희다워서 좋다.
“우리랑! 평생 친구라 좋다, 그렇게 말한 거 아냐?”
“맞아.”
“어? 어?!”
채하민이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토끼 같은 발걸음으로 화장실 앞에 도착하더니 소리쳤다.
“현재야, 막내야! 다시, 다시 말해 줘! 뭐라고!”
할 리가 있나. 차라리 내가 그런 애정 표현을 한 번 더 하는 게 쉬울…, 리는 없지. 나보다는 이현재가 말랑하다.
똑똑, 예의 바른 노크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격정적인 목소리로 ‘한 번 더! 쉽게! 사랑해, 나도!’를 외치고 있는 채하민을 보며, 나는 류이든을 보았다.
“다 찍었어?”
“…어?”
“비하인드는 네가 찍는다며.”
“…어, 다 찍었어. 어? 다 찍었다고? 그럼? 어?”
우리 현재가 드디어, 흑역사를 하나 남기는구나.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