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4화(34/343)
34.
‘얼추… 기본적인 스케치는 된 것 같네.’
나는 대강 틀을 짜둔 곡을 틀었다. 현악기들이 우아하게 어우러지며, 쓸쓸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후 현악기가 스타카토로 넘어가며, 짧게 소리가 끊기며 울려 퍼지고, 그 속에서 기타가 피어오른다.
…예상보다 더 쓸쓸한걸.
여름 바캉스보다는… 마치 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 둘만 살아남은 형제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더 어울리겠네.
동생과의 일화를 생각하며 만든 곡이라 그런지, 우아한 귀공자는 무슨, 몰락 귀족이다.
나는 절정으로 치닫는 노래를 듣는다.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 공허한 마음을 표현하듯 악기 숫자가 도리어 줄어들며 더 쓸쓸해지기만 했다.
“이건… 우리를 위한 곡이 아니라 나를 위한 곡이군.”
그러니까, 데뷔 앨범에 넣는 건 말도 안 되는 짓거리라는 뜻이다. 이런 곡이 앨범에 있으면 신인상은 무슨, 그룹이 하나라는 느낌도 안 들겠다.
‘음, 곡 정말 마음에 드는데 상당히 아까운걸.’
* * *
2차 기획 회의장, 장해진 팀장은 몹시 당황스럽다.
“따라서 ‘블로센스’라는 이름이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10분의 발표를 마친 류이든이 자리에 앉자 지동화가 수고했다는 듯이 무표정으로 박수를 친다.
왜, 대체 왜 하나의 이름을 주장하기 위해 이 무수히 많은 참고 문헌이 필요하단 말인가.
“이거 발표안은 누가 작성한, 하… 당연히 지동화 씨겠죠.”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연구 논문, 음운론적인 관점에서 블로센스라는 이름이 지니는 긍정적 어감 등 총 15가지의 이유를 대며 팀명이 블로센스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다니.
여기, 대학교였나, 장해진은 순간 과거로 돌아가 발표 수업을 듣는 기분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동화, 대체 왜 이렇게까지.”
지동화는 말없이 작게 미소 지었다.
‘…교수님이 내 과제물 보고 욕하기 전에 지은 표정이랑 똑같은데.’
설마 우리 팀에서 준비한 이름이 그렇게 구렸나? 생각이 많아지는 그녀였다.
“사실, 발표에선 뺐지만 이유는 더 있습니다.”
지동화가 조심스럽게 손을 든다.
“채하민의 생일은 8월 31일, 탄생화는 토끼풀꽃이며, 제 생일은 1월 1일, 탄생화는 스노드롭으로, 제 이름은 겨울 동, 꽃 화 자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조용히 말한다.
“그런데 이름에 블라썸이 들어가면, 몹시 아름답게 맞아떨어지지 않습니까?”
결국 장해진은 지동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엄청 잘 맞아떨어지잖아.’
벌써 그녀의 뇌는 이걸 어떻게 셀링 포인트로 바꿀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기획 회의에서 이현재의 의견을 열심히 피력하고 나서, 우리는 레슨을 받으러 모였다.
“하민, 너 크루즈 같은 거 타본 적 있어?”
안무 레슨을 하던 도중, 나는 가장 부유할 것으로 추정되는 채하민에게 물었다.
“음, 있어. 한 3년 전에?”
새삼 거리감이 느껴지는군.
“…어땠어?”
“음, 아버지가, 뭐더라? 하여튼 자기 친구분들 모아놓고 크루즈에서 파티 비슷한 걸 하셨는데, 그때 간 거라 솔직히 재미없었어.”
그러니까 기업인들 모여서 기부회든 뭐든 했는데, 거기 초대됐다는 건가.
“근데 그건 왜?”
“…곡 쓰려고 하는데, 바다를 가본 적이 없어서.”
그러자 채하민은 잠시 고민하더니 박수를 치며 말한다.
“그럼 이번에 리얼리티에서 자유 시간 줄 때 다 같이 가자!”
거기에 어그로가 끌렸는지 류이든도 물을 마시다가 소리쳤다.
“난 찬성!”
…그냥 집에서 책 읽고 쉴 예정이었는데.
* * *
우리는 이틀 뒤 매니저를 맡아주실 강승원의 안내에 따라 차에 올라탔다.
인천 바다라, 차 타고 가는 건 처음이군.
강승원 매니저님은 아직 4월밖에 안 됐기 때문에 조금 쌀쌀할 거라며 담요를 챙겨주셨다.
차에서 내리자 코끝에서 짠 내음이 퍼졌다.
“…넓고, 아름답네.”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가을의 바다와 달리, 봄의 바다는 생기가 가득했다.
나는 모래사장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었다. 발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모래의 감각이 간지럽다.
“…와, 저 바다 엄청 오랜만에 와요, 형.”
“…나도.”
나는 천천히 걸어가 바닷물에 발을 담근다.
‘…와, 차가워.’
나는 천천히 쪼그려 앉아 손을 넣고 첨벙였다.
‘…와, 첨벙대.’
그렇게 한동안 물이 전해주는 감각을 느끼고 있을 때, 멀리서 거대한 크루즈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비너, 빈, 비너, 슈니첼―”
나는 조용히 노래를 흥얼거리며 한동안 그렇게 계속 그렇게 첨벙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석준이 누군가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동화 형님― 엄청― 신나셨나 봅니―다.”
“그러게, 동화 형, 자기 흑역사를 자기 입으로 부르고 있어.”
나는 못 들은 체하며 고개를 위로 들었다.
오, 저기 하늘이 청명하군.
* * *
# 리얼리티 1화 편집본 중
지동화가 쪼그려 앉아 바다에 손을 넣고 첨벙대는 모습이 계속 지나간다.
[10분째 이러고만 있는 중]지동화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계속 첨벙이는 물이랑 지나다니는 배만 바라보고 있다.
그러곤 ‘비너슈니첼’이라는 가사로 구성된 콧노래를 계속 흥얼거리고 있다.
[동화 씨, 대체 왜 이러는 건지……?]그런 지동화의 뒤로 네 명의 연습생이 모이더니 번쩍 들어 올리곤 달려가기 시작했다.
‘와! 잠깐, 저 수영할 줄 모릅니다! 죽음의 가능성이 목전에! 잠깐, 최소한 제 녹음기라도 살려주십시오!’
그러자 블로센스의 다른 멤버들은 녹음기만 받아 들곤 지동화를 바다에 빠뜨린다.
잠시 허우적대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크게 소리치며 달려 나갔다.
‘류이든! 당신, 이리로 오십시오!’
류이든은 다가오는 지동화를 피해 달리기 시작한다.
‘왜 나한테만 그래, 동화 형!’
‘이딴 계획이 나올 구석이 당신 뇌 속 말고는 있겠습니까!’
그리고 둘이 계속해서 달려가 백사장을 뛰는 모습이 멀찍이서 찍힌 화면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나오는 사랑스러운 음악. 마치 ‘나 잡아봐라.’라고 하는 고전적인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블로센스는 멀리서 볼 땐 희극이지만,]그리고 기어코 류이든을 따라잡았는데, 도리어 류이든에게 한 손으로 들려서 다시 바다로 빠지는 지동화의 모습이 클로즈업으로 들어간다.
[가까이서 봐도 희극이다.―편집하면서 웃은 담당 PD 왈]
‘류이든! 당신, 내가 꼭! 척살할 겁니다!’
‘역시 동화 형은 화낼 때가 제일 멋있더라.’
* * *
나는 몸을 바르르 떨며 자리에 앉았다. 강승원 매니저님이 몸에 계속해서 담요를 둘러준다.
“괜찮으십니까?”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그런데 오늘부로 블로센스가 4인 체제로 바뀔 예정인데 괜찮으십니까?”
“외람된 말씀이지만, 류이든 씨를 죽이기엔 나약하십니다.”
“…이젠 정말, 독살뿐인 거군요.”
“그나저나 아이디어는 좀 얻으셨습니까?”
나는 한숨을 내쉰다.
“놀랍게도, 네.”
나는 녹음기를 꺼내 틀어줬다.
‘빈, 비너, 빈, 슈니, 첼러―’
감미로운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강승원 매니저님이 순간적으로 풋, 하곤 웃음을 흘리신다.
…제길, 다음엔 다른 단어로 녹음을 하든가 해야지.
“곡이, 푸흡, 좋습니, 다.”
…차라리 시원하게 웃으십시오.
* * *
바다에서 돌아오고 나서, 나는 작업실에서 네 시간 정도 작업을 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후, 새벽 2시군, 벌써.’
거실에 앉아있는 류이든, 내가 들어오는 걸 보더니 손을 흔든다.
“동화, 꽤 늦었네.”
“…곡 작업 늦으면 민폐니까.”
그걸 보던 류이든은 부엌으로 가 물을 한 잔 따르며 말하길…….
“리더, 내가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음, 당연한 소리.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다른 멤버도 형이 하는 데 불만 없었고.”
“사실, 나는 너가 리더 하는 게 아직도 더 좋다고 생각해. 나보다 동생인데, 가끔 더 형 같기도 하니까.”
흠, 그냥 사회성 결여자를 참 좋게 봐주는군.
“그런데… 너 작업하느라 고생하는 거 보면, 나라도… 어떻게 좀 도와주고 싶어서.”
…이건 좀 의외인데. 아주, 약간 감동적이다.
“…그럼, 내일 작업실 와서 같이 작업해 줘. 우리 곡이니까 우리가 써야지.”
“오! 좋아, 동화 형! 리더 권한으로 애들 다 데리고 갈게!”
아, 벌써 내일이 기다려지는군.
* * *
“모두 이번 버전은 어떻습니까?”
나는 작업실에서 앉아 묻는다.
“…동화 형, 이제 풀어줘.”
나는 류이든을 보고 미소 지으며 답해줬다.
“이든, 당신은 발언권이 없습니다.”
“형님― 지금 다섯 시간째인 거 알고― 계십―니까?”
나는 역시 미소를 지어주며 답했다.
“…준, 나는 4일 연속으로 밤새워도 괜찮아.”
체력이 원래 약한 이현재는 반쯤 혼절한 상태고, 채하민은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으며, 류이든과 석준은 아직 떠들 힘이 있는 걸 보니 괜찮나 보다.
“…이게 다, 블로센스가 성공하기 위한 거잖아.”
“애초에… 준이 말고는 작곡할 줄도 모르는데, 동화 형?”
나는 반발하는 류이든을 보고 다시 씩 웃었다.
“리더님, 어제 분명 제가 작업하느라 고생하는 걸 보니 리더라도 자기가 해주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팀을 위해 곡 작업하는 저를 작업실에 버려두고 도망치실 셈입니까?”
“…그럴 순 없긴 한데.”
류이든은 얼굴을 몇 번 쓸어내리더니 중얼거린다.
“…그럼 리더님의 의견을 존중해서 리더님이랑 석준 말고는 가서 볼일 봐.”
그 순간 류이든과 석준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채하민과 이현재는 환호성을 지르더니 붙잡을 새라 작업실을 뛰쳐나간다.
“형님! 저는 대체 왜!”
오우, 말이 빠른걸. 반발하는 석준과 달리 류이든은 자기가 한 말 때문인지 조용하다.
“…작곡 가능자니까.”
“아니, 형님, 뭔가, 뭔가 잘못된!”
“팀을 위한 거야, 준.”
절대로, 절대로 어제 바다에서 너희가 나를 빠뜨렸기 때문이 아니란 말이다.
* * *
그렇게 다섯 시간 정도 더 작업하는 중, 나는 류이든과 석준이 같은 부분을 한 시간 동안 듣고 있었더니 정신 나갈 것 같다고 소리 지르는 걸 사뿐히 무시했다.
그렇게 석준과 류이든이 앓는 소리와 내가 마우스와 키보드 누르는 소리만 들리다 곡의 가장 기본적인 스케치가 완성된 순간…….
“드디어, 드디어 해방입니다!”
“준아, 준아! 이거 현실이야? 왜 이렇게 현실감이 없지? 여기 들어온 지 벌써 열두 시간 가까이 돼 가는 기분이야!”
아주 난리 났군. 나는 통쾌한 심리를 숨기며 그 둘을 바라봤다.
“…도와준 덕분에 더 좋은 곡이 완성됐습니다.”
“동화 형, 너는 평소에도 이렇게 쉬지도 않고 작업만 해?”
그럼 일을 하다가 관두기라도 한단 말인가?
“응, 당신도 뭐 하나 잡으면 끝까지 하는 타입이잖아.”
“…내가 끝내고 싶은 건 일이지 목숨은 아니라서.”
그렇게 말하면 누가 죽이려 든 줄 알겠다. 아직 류이든 암살 계획은 시작도 안 했는데.
“이제 내일 약간만 손 보고 A&R팀에 드리면 손볼 건 손봐주실 거야.”
그렇게 말하며 작업실에서 나오는 길, 나는 목화에게 잘 자라는 문자를 보내려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동화 형님― 아직도 그 핸드폰 쓰시는― 분― 처음 봤습니다.”
“…아직 잘 굴러가.”
핸드폰을 열고 메시지 창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멈칫했다.
‘안녕하십니까, 동화 후배! 내일 만나서 우리의 미래 앨범 작업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면을 향해 손가락을 뻗고 있는 준성의 사진에 ‘I WANT YOU FOR MY ALBUM’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는 짤)’
…뭐지, 미친 사람인가. 정성스럽게 미친 사람이군.
나는 문자를 잠시 천천히 읽다가, 핸드폰 커버를 닫았다.
‘…내 멤버들 곡 써 주기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