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4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40화(308/343)
“여기가 내 새끼들 잠자는 곳.”
파충류들 얘기겠지. 채하민에게 자식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까. 사육장의 큼직한 사이즈, 숫자는 고작 네 개밖에 안 되는데, 이 넓은 방을 전용하고 있다니.
“리모델링하면서 아버지가 골프 연습하시던 곳을 다 갈아엎었지.”
아버님, 괜찮으신가요. 같은 사태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 저는 심정이 어떠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시작 씨’라는 명찰(채하민 특유의 감각으로 꾸며져 있다. 은근히 고상하다)이 달린 사육장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세상에, 시작 씨, 이렇게, 큰 종이었구나.
“많이 컸지.”
“어.”
처음엔 자기 꼬리를 물 정도로 스트레스받으셨던 분이, 이렇게 장성하시다니. 킹스네이크가 말이 킹이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는데.
“제일 잘 먹어. 내가 자주 오진 못하니까 사육사 한 분 고용했는데, 그분께서도 그러시고.”
채하민이 옆에 같이 쭈그려 앉았다.
채하민이 보호 중인 새벽 씨 같은 다른 뱀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복층으로 된 사육장은 한 층만 보더라도 킹스네이크 한 마리를 위해서라기엔 크기가 크다.
호강 중이네. 동물의 생각은 알 수는 없지만,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지는 않으니 아마도.
“우리 애 아픈 거 보고 곡 쓰던 동화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채하민은 내 말에 안중도 없다는 듯 시작 씨가 놀라지 않도록 유리창에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애틋한 웃음. 미친놈.
말을, 그렇게 하면 내가, 운수 좋은 날에 아내 아프다는 거 뿌리치고 일 나가서는 술이나 마셔댔던 인간 같잖아, 미친 토끼 놈아.
‘마지막 시작 : the First Last’라는 낯간지러운 제목을 달고 있는 곡.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놈이었지. 그 새벽에 갑작스레 작업을 하겠다고 얼마나 민폐를 끼쳤는지 모른다.
그때 뱀을 보고 곡을 썼던 게 참 우연치고는 기묘한 일이긴 하다. 전통적인 영생의 상징, 허물을 벗으면서 새로운 몸을 얻지만, 존재는 잃지 않는다고 여겨졌던 생물. 세계관 속 이현재 잖아.
다른 멤버들이 뒤에 있는 대형 사육장 속 거대한 도마뱀을 보며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때, 나는 문득 물었다.
“뱀이 좋은 이유 물어봐도 될까, 하민.”
물어본 적이 없고, 먼저 말해준 적도 없지. 시작 씨를 가만히 보고 있던 채하민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렸다.
“글쎄…….”
고심하듯 찌푸린 미간, 어떻게 이놈은 어릴 적 사진이나 20살일 적이나 그 고된 활동을 모두 수행하고 난 지금이나 얼굴이 그대로일까.
골격 변화가 있으나 도리어 선이 완성된 느낌이라 변했다는 느낌이 아니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같은 놈, 비로소 세 권이 모여서야 하나의 사상 체계를 완성하다니.
“동화였나.”
뭔. 우리가 만난 건 17살 전후, 심지어 내 AI였는데.
“어렸을 때 동화를 읽었는데.”
…저런. 무표정을 가까스로 유지했다. 멍청함이 얼마나 옮은 거야.
[멍청함이 옮은 게 아니라, 채하민 입에서 나오는 ‘동화’라는 음성이 당신을 지칭할 거라는 확신에 빠진 거니까, 음, 멍청한 거네요.]닥쳐, 기지생.
“뱀은 상처받아도 허물 벗으면 재생한다는 내용이었거든. 그래서 계속 기어간다…, 뭐 그런 내용.”
“응.”
“멋있잖아. 어떻게 계속 기어가지, 싶어서.”
채하민은 찬찬히 유리창을 쓰다듬었다. 눈이 반짝거렸다. 어렸을 때 동경하던 대상을 눈앞에 둔 아이답다.
“정확히 그때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동화의 내용은 대충 상상이 간다. 뱀은 원래 나타나면 돌팔매질을 당하는 게 당연한 생물이니까. 하필이면 구렁이로 환생해 자신의 본가로 내려간 군인 아들을 못 알아보고 돌을 던진 건 익숙한 이야기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허물을 벗어 씻어내리고, 다시 기어가는 생물의 이야기. 동화스럽지만, 아이들에게 권장할 만한 이야기라기엔 뒷맛이 씁쓸하다.
“그랬지.”
그러니까, 자기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소리다.
누구한테 배신을 당하든, 호구 잡혀 이용을 당하든, 원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씻어 내리면서, 허물을 벗듯 깨끗해져서, 계속 살아가겠다는 속내.
채하민은 눈물샘이 몹시 유약하지만, 자신의 일로 운 걸 본 적은 거의 없다. 타인의 일에는 그리 쉽게 눈물 흘리면서도 정작 자기가 힘들 때는 울지 않는다.
“…힘들었겠네.”
채하민은 가만히 시작 씨를 보고 있다가 웃으면서 자기 귓구멍에 무언가 들어 있지는 않은지 의심스레 만지작댔다.
“…어?”
그리고 당연히 아무것도 없다. 휙 돌아본다.
“뭐라고?”
“글쎄.”
그러고는 내 속내를 가늠하듯 눈을 마주했다. 그렇게 하면 읽을 수 있으리라는 신뢰가 엿보였다.
“엄청 변했다, 동화야.”
“뭐가.”
“옛날이었으면, 무조건 ‘그 동화, 아이들한텐 좀.’이라고 말했을 텐데.”
소름 돋는다, 망할.
“비서님?”
예사롭지 않은 눈빛, 그리고 이어지는 채하민의 관찰 결과 발표,
정확하다. 스토커한테 일거수일투족을 파악 당하는 기분인걸. 물론, 실제로 스토커였다면, 그리 아름다운 이야기는 못 됐겠다.
“부당 해고하면, 너라도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거야, 하민.”
“어? 비밀로 해달라고 하셨어? 괜찮은데.”
무릎을 끌어안는다. 턱을 얹고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활동하면서 깨달은 건데, 네 비밀을 들어서도 그렇고.”
나도 옆에 앉았다. 책상다리로 앉아 시작 씨가 가만히 은신처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저 거대한 짐승들은 무엇인지 보다가 이내 신경을 끊었다.
“어떻게 견뎠나 싶었어, 넌.”
음, 오그라드는군.
“글쎄.”
우리 뒤로 사부작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문으로 도망치는 다른 멤버들의 발소리.
류이든이나 이현재가 먼저 눈치채고 자리를 마련해 주나 보다.
“그런데도 계속 기어가고.”
“…단어 선택이 상당히.”
혹시, 나는 네가 보기엔 뱀 한 마리에 불과하니, 하민. 역지사지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 억울한데. 차라리 고양이로 하든가.
“근데 묻기는 좀, 그렇잖아? 그렇게 사는 게 힘든데 어떻게 포기하지 않았냐고는 차마…….”
기지생, 설명. 네가 답할 문제잖아.
[시간을 되돌리겠다는 망상을 실현하겠다고 설치던 미물한테 무슨 고상한 신념을 기대하십니까.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살았을 뿐입니다.]“상상해 봤거든. 만약에 네 말대로, 너는 아이돌이 되지도 않고, 그냥 살았으면 어땠을까.”
“응.”
“그럼 난 갓에이에서 데뷔했겠지?”
채하민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대충은 알거든. 걔네, 질 나빴잖아, 처음엔. 성호가 환웅처럼 다 사람 만들어놨지만.”
“그쪽으론 천재지.”
화양 씨 밑에 들어가서 악한 인간의 기본만 습득했으면 어느 집단에 들어가든 다 자신의 뜻대로 부리는 훌륭한 소시오패스가 탄생했을 텐데.
“그리고 난 아니거든.”
“응.”
명확하지.
“아무리 상상해도, 내가 행복해질 수는 없을 것 같거든. 아이돌 활동을 할 수는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럼, 나는 무너졌겠구나, 싶고.”
결국 이 이야기의 결론은 어디일까.
장황한 독백 앞에 나는 채하민의 둥근 머리통을 내려다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나는 말없이 뒤로 손을 뻗었다. 비스듬히 반쯤 누운 자세, 평소라면 반사적으로 거부할 자세였다.
“그래도 살았을걸.”
무너질까, 과연. 가끔 차오르는 회한 같은 건 있겠지만, 채하민은 정신적으로 단단하니까. 동화 속의 뱀을 동경하던 정신머리가 어디 갈까.
삶이 고되고 슬퍼도 채하민은 결국 기어갔을 것이다. 춤추는 이들을 지원하는 재단을 운영하든, 아버지의 뜻을 따라 회사를 운영하든, 어떻게든 살아갔을 것이다. 나처럼.
“지금보단 슬퍼하면서.”
나처럼.
류이든도 석준도 이현재도 그렇게 살아갔을 것이다. 삶에 회한은 넘쳐나지만 오롯이 받아들인 채로. 전부 하나 같이 뱀은 못 돼서 허물은 벗지 못하고, 그렇게.
음, 그렇다면, 지금 이 삶은 모종의 탈피인 셈인가.
“그렇지. 그래서 너한테 고마운 거야.”
채하민은 고개를 들었다. 혹시라도 울까 싶었지만, 아무런 눈물 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미소만 가득했다. 어쩌면 우울했을 가능성보다, 내게 감사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큰 듯했다.
“여기, 우리 실버타운으로 하려고. 보여주고 싶어서 데려왔어.”
“그래?”
“응. 매일매일 너한테 어떻게 보답할까 고민했거든. 집에 돈 많은 게 이럴 땐 정말 좋더라.”
폭발하는 기세로 일어섰다. 쾌활한 몸동작. 난 피식 웃음이 샜다. 채하민이 건넨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가, 내 노년을 마무리 지을 예정인 곳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바닥을 밟으니, 싱숭생숭한 감정이 몰려왔다. 마지막까지 여기서 살 사람이 누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렇겠지.
“3층으로 가자. 한 번 더 개축해서 엘리베이터도 만들 거니까 걱정은 말고.”
“그 정도는.”
“늙으면 또 모르잖아. 우리 아버지도 봐. 체력이 엄청 약해지셨어.”
그럼 그렇게 되지 않게 지금보다 더 열심히 운동해야겠네.
*
채하민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가자, 이미 도착해 있던 멤버들이 굳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형, 이거 다 뭐예요.”
그럴 만도. 미친놈, 아까 전의 훈훈한 분위기는 어디로 가고.
온 벽에 붙은 멤버들의 사진. 마치 성장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연표처럼, 채하민이 모을 수 있는 한 모든 연령대의 멤버들 사진을 전시해 뒀다.
“추억.”
채하민은 황홀한 눈빛으로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며 3층 거실에 세워진 기둥과, 그 기둥을 장식하는 멤버들의 성장 과정을 눈에 담았다.
“이걸 추억이라 부르는 인간은 어디에두 없어요, 형. 동화 형, 제발 뭐라구 설득 좀 해 줘요. 하민이 형이 저런 눈빛일 때는 이든이 형두 못 말리잖아요!”
“……왜, 좋은데.”
“닥쳐요! 제발! 형은 왜 이렇게 멤버들한테 약한데요! 예언이 형이 이랬으면 정신질환이 의심된다고 조심스레 말했을 거면서!”
“우린 유효해, 현재.”
우리를 묶어둔 저주도, 우리의 어딘가 뒤틀린 정신도, 전부 유효하다.
다들 한군데씩 비틀려 있잖아, 나를 포함해서. 원래 그런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연대의 시작점이지.
“여기가, 우리 실버타운이야, 우리 현재! 막내!”
채하민은 여전히 황홀한 눈빛으로 이현재를 꼭 끌어안았다.
“저 진짜 물어요! 진짜 개처럼 문다구요! 놔요!”
“십 년 단위로, 한 장씩, 우리 사진 찍어서 여기에 걸어두는 거야.”
“진짜 상상만으로두 끔찍하니까! 물론, 물론 형이 저를 아껴주구, 이런 건 다 좋은데! 이건!”
류이든이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다가 다섯 개의 방과, 그 중앙 기둥에 걸려 있는 멤버들의 가족사진(이라는 이름의 단체 사진, 채하민과 류이든의 주도 아래 매년 찍으러 갔다.)에 홀린 듯 다가갔다.
“……나쁘지, 않을지도.”
그 짧은 한마디에 나도 류이든의 곁으로 걸어갔다.
솔직히, 나쁘지만, 이 정도는 수용해 줄 수 있다. 내 손으로 멤버들의 여생을 저당잡았는데 이 정도는 그 대가로 싼 편이다. 석준도 옆에 와선 우리 사진을 보며 히죽 웃었다.
“재밌겠다─.”
“……형한텐 기대두 않았어요.”
“왜, 현재. 하민이 형님이 즐거워하시잖아─.”
“뭐가, 왜, 대체. 이런 집에서 살구 싶어요? 아침마다 일어나면 이런 사진을 봐야 한다구요! 제가 방구석에 틀어박히는 꼴을 보구 싶은 거죠, 전부!”
말인즉, 우리랑 같이 사는 건 좋다는 거군.
“익숙해지자, 현재.”
비정상들끼리 사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