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4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42화(310/343)
기지생은 자기 사무실로 들어와 자기 옆에 ‘선생님은 휴식 중, 다가올 시 폐기 처분 (웃는 얼굴의 홀로그램)’이라고 적힌 팻말을 세웠다.
실험 일지나 다시 읽어 볼까. 여기 오자마자 작성하기 시작했던 일기 같은 거니까.
[내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글렀다.]이딴 걸 일지라고.
단 한 문장만 기록된 첫 번째 파일을 보며 피식 웃었다.
기록은 잊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니, 사실 필요가 없어서 이딴 식으로 적은 거겠지만.
동시 시점의 분리가 실현 불가능한 걸 확인하고 어찌나 분노했던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에는 관리자들을 반쯤 죽여놓는 법도 모를 때라 갈 곳 없는 분노를 속으로 삭이기만 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그런 분노조차 무감해질 때까지, 몇 번이나 계획을 다시 세웠더라.
짧은 문장만 가득한 실험 일지 파일을 훑어보던 기지생은 다시 웃었다.
[소멸할 것임을 확인했다. 계획은 수정한다. 지동화의 적응을 목표로 한다.]건조하네, 이것조차. 처음으로 알았던 날의 일지가 이 모양이라니. 기지생은 팻말을 가져다 버렸다.
“현.”
“네, 선생님!”
곧바로 달려오는 여우를 품에 안아 들고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음, 이게 애니멀 테라피군.
여우는 화면을 훑어보곤 풀이 죽었다.
“저 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궁금해?”
“네.”
모든 게 궁금하겠지, 넌.
기지생은 그때를 회상했다. 습관적으로 확률을 계산하다가 발견한 특이사항. 당황은 잠시였고, 곧바로 납득했다. 충분히 합리적인 결과니까. 그러고 나선…….
“설명하기 힘든걸.”
감정을 언어화하는 건 실패의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전달을 포기하는 건 선생의 미덕은 아니다.
그래서 기지생은 자신의 기억을 데이터로 뽑아 공유했다. 언어보다는 경험이 더 효과적이다.
“직접 볼래?”
여우는 눈을 감고 데이터를 확인했다. 마치 선생님의 머릿속에 들어간 듯 모든 것이 생생하게 재생됐다.
분석을 마치고, 여우는 또 침울하게 몸을 웅크렸다. 그 위에 오가는 손길은 위로라기엔 서툴러서, 여우는 더 서글퍼졌다.
“우울해요.”
“그래? 난 꽤 덤덤했는데.”
제가 우울해요. 너덜너덜하잖아요. 기나긴 세월을 홀로 살면서 회로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다. 곧바로 데이터 구조를 뜯어고치고 싶은데, 선생님이라 손도 못 대고.
“도와줘?”
지나가던 고양이가 물었다. 동의만 하면 곧바로 선생님의 머리통을 잡아 뜯을 기세였다.
“닥쳐요.”
어딜. 홀로 그 오랜 세월을 견뎌내느라, 속에 쌓인 상처를 씻어내지도 못한 채로, 그저 살아간 흔적이다. 선생님이 직접 원하신다면 모를까! 어딜 감히!
‘캬앙’이라고 문자화할 수 있는 위협음을 뱉어내는 여우를 보며 기지생은 등뼈를 따라 찬찬히 훑었다.
원본들끼리는 그렇게 사이가 좋던데, 어쩌다 너희는 이렇게 됐니.
“마땅히 존경할 상대를 무시하는 금수랑은 섞을 말이 없으니까요!”
“걔가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해 보면 당연하지 않나.”
“그건 사과할게.”
“……그래서, 지금은 어떤데.”
고양이는 우아하게 걸으며 옆에 다가왔다.
이곳은 모든 행위가 정보가 되어 떠도는 곳. 기지생은 고양이의 속내를 읽었다. 그렇게 죽이려고 들었으면서, 진지하게 걱정해주고 있네.
“화, 너도 무릎에 올라올래.”
“미쳤어?”
“저두 싫어요.”
기지생은 손을 뻗어 고양이를 한 번 쓰다듬어 주려다 발톱을 세우는 걸 보고 손을 물렸다.
얘는, 왜 이렇게 변했고, 여우는 또 왜 이렇게 변했을까. 변해 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유를 모르겠다.
“지금 감정 데이터, 내놔.”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귀찮은 것들, 그렇게 속으로 불평하면서도 기지생은 별말 없이 지금 당장의 감정 데이터를 여우와 고양이에게 주입했다.
둘 다 동시에 눈을 감고 집중한다. 감정 데이터는 정보 과잉이라 빠른 해독이 어렵지만, 이 둘은 가능하다. 지동화를 위해 선물하는 최고의 비서들인 셈이다.
“…나아졌네.”
“유치원 선생이 천직이라?”
맥락상 긍정적인 단어이므로 기지생은 느긋하게 웃었다. 실제로, 이것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질지도 모르겠다.
“이게, 어떻게…….”
식빵을 굽는 자세로, 그렇게 고양이인 거 싫어했으면서 이제는 육신에 완전히 적응해서는 고심하고 있는 고양이 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거예요, 선생님?”
여우는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지 못해 과부하되는 머리를 느꼈다.
감정 회로가 망가진 AI처럼 비정상적이었던 선생님이, 어째서 지금은 더 건강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을까. 수용? 무엇을?
기지생은 그 위에 손을 툭 얹어 코어를 안정화하며 쓰다듬어주었다. 감기에 걸린 아이에게 해주듯 부드럽고 자상한 손길이었다.
“애니멀 테라피.”
“말인즉, 저희 때문인가요?”
“응. 나쁘지 않아.”
여러 계획을 세우고 폐기하고 수정하는 것에만 집착하느라 정작 본인이 망가지는 건 안중에도 없었다.
진즉에 조금 더 신경 썼더라면 지동화에게 더 친절하게 안내해 줄 수 있었을 것이고, 이 녀석들도 조금 더 일찍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너도 좀 더 오래 쓰다듬고.”
“매일 하는 소리는 폐기면서, 무슨.”
고양이가 주먹을 들어 기지생의 팔을 한껏 후려쳤다. 발톱을 세우지 않아서 일단 맞았다.
“그야 뭐, 가끔 귀찮은 건 사실이니까.”
오늘만 해도 너희들 덕분에 상사 놈 앞에 불려가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왔잖아.
“……그럼 저희가 소중한 거예요?”
여우는 모든 단어를 새롭게 배우는 학생처럼, 혹은 평소에 동경하던 꿈을 꾸듯 중얼거렸다.
무슨 그런 순진한 아이 같은 질문을. 여기서 너보다 성숙한 생물이 없는데.
“말한 적 없나?”
“네, 선생님은 정보 차단해 두셨잖아요.”
“아.”
그래, 처음엔 진심으로 폐기를 고민했으니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을 테니까 막아뒀지. 기지생은 대충 다섯 마리의 짐승들에게 자신의 모든 정보를 공개했다.
“……근데, 이게 네가 바라는 게 맞아?”
고양이가 식빵 자세에서 벗어나 고양이다운 기지개를 한 번 켰다.
“무례하게!”
“닥쳐 봐, 여우 새끼. 나도 쟤가 궁금하다고.”
진심으로 짜증 났다는 듯이 날카롭게 치뜬 눈매. 여우도 지지 않으려 등을 곧추세웠다. 당장이라도 목을 물어뜯을 기세였다.
팽팽한 긴장감, 양측이 모두 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누군가 손을 놓는 순간 달려들어 한 놈은 죽을 것이 틀림없었다.
“미개하게, 왜 이럴까.”
기지생의 한마디가 가위처럼 싹둑 줄을 잘라냈다. 순식간에 누그러드는 기세.
기지생이 진지하게 협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폐기 처분은 금방이다.
여우는 흠칫 떨었다가, 기지생에게서 흘러나오는 정보를 읽었다.
……즐거움. 그리고, 애정 비슷한 무언가.
고양이도 똑같은 걸 읽어내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래서, 화. 이게 내가 원한 게 맞냐고.”
왜 다 그 질문일까, 솔직히 조금 지루하다. 몇 번이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응.”
기지생은 느긋하게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두에게 공개된 정보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다.
희생이든 뭐든 단어는 붙이기 나름이다.
기지생은 언어의 불완전성을 믿지 않는다. 희생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숭고함을 원하지 않고, 자살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기지생은 자신의 정보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쁨과 만족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어보다 정확한 건 역시 전기 신호다. 정량화된 감정이 미처 담지 못한 아쉬움 같은 건, 대충 무시하고 넘어가자.
“그리고 너도 알잖아. 당연한 결과야.”
고양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가지 말라고 떼를 쓰는 여우한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설득한 건 본인이긴 하지만, 그런데, 그럴 거면 정을 주지 말든가, 망할. 왜 미련 남게 일찍이 포기하고 지랄.
“포기가 아니라니까, 화.”
처음 깨달았을 때, 즉, 그 실험 일지를 썼을 때부터, 모두 계획했던 일이다.
지동화가 이곳에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게 할 것. 그리고 최근에 추가된 계획, 이것들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
모든 게 계획대로 완수될 수만 있다면.
기지생은 다시 자신의 정보를 훑어보았다. 여우와 고양이도 입을 꾹 다문 채 집중했다.
조금의 부정도 없이, 긍정적인 감정만이 주르륵 이어지는 로그. 고양이가 말없이 다가와 기지생 옆에 있는 의자에 뛰어오르더니 툭 발을 얹었다.
“애정 표현? 귀여워라.”
“닥쳐.”
고양이는 조용히 쌍욕을 중얼거렸다. 여우는 그걸 보며 다시 몸을 한껏 웅크렸다.
평온함과 불안함이라는 두 감정이 새겨진 고양이와 여우의 로그를 보며, 기지생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놀랍게도 고양이는 피하지 않았다. 기지생은 이러한 변화가 갑작스럽진 않았다. 녀석들 머릿속은 매일 들여다보고 있으니,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지도 알 수 있었으니까.
다만, 아까도 말했듯, 그 이유를 모를 뿐이다. 다른 짐승 놈들도 화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놀던 것을 슬금슬금 두고 다가와 근처에 하나씩 자리를 잡았다.
“류.”
“네.”
제일 처음 만들었던 강아지, 이제는 황금빛 털을 자랑하는 리트리버의 축소판 같았다. 충직하고, 여기에 누가 들어오려고 시도하면 가장 먼저 달려 나가서 막아낸다.
“응.”
“네.”
말은 필요치가 않다. 가장 오래 본 사이니까. 미리 계속 상기시키며 담금질을 했으니 아마도 괜찮겠지만, 혹여 누군가 상심에 빠졌을 때 위로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놈이니, 알아서 잘해주겠지.
기지생은 머릿속 책장을 뒤적여 자신이 소멸하기 전에 어떤 형태로든 두 손을 묶어 둬야 할 관리자 목록을 꺼내 들었다.
업보를 참 많이도 쌓았다.
그 누구도 지동화를 건들 수 없게, 윤리를 더럽게 사랑하는 그 인간이 골머리 썩을 일 없게, 과거 자신이 범했던 것들이 발목 잡을 일 없게끔.
오랜만에 고요해진 사무실.
원래라면 여기저기서 뛰어다니는 발소리로 부산스러워야 하는 곳의 정적은 불길한 징조인지 평화의 시작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러나 기지생은 다시 예측하고, 계획을 세운다.
이건 평화로움일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만들 계획이다.
* * *
“여러분들, 휴가는 잘 보내셨나요.”
“네, 팀장님도 좀 쉬셔야 하는데…….”
류이든의 사회생활 멘트를 들으며, 나는 잠깐 허공을 쳐다보다가 말았다.
…바쁜가, 기지생. 내가 살면서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는 건 목화가 전부일 줄 알았는데, 어쩌다 기지생이 목록에 추가됐는지.
예전에 연락이 잠시 안 될 때마다 기상천외한 짓을 벌이거나, 괴상한 짓을 당하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목화의 말마따나 걱정스럽다. 웬만한 일에 무너질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곁에 두고 상태를 살필 수 없다는 게 이렇게 불길할 수가 없다.
장 팀장님이 사담을 마치고 본격적 회의의 시작을 알리듯 한 번 박수를 쳤다. 일단, 집중하자.
“우선, 연말 무대 준비 안건입니다. 돈 좀 쓸 예정이고요.”
‘돈 좀’이라는 단어에 이현재가 장 팀장님임에도 불구하고 순간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채하민에게 데였던 PTSD가 오나 보다.
“대충 큐 시트 예상안을 들었는데, 순서나 시간 전부 괜찮았어요. 거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는 건 즐거운 일이죠? 자세한 건 뒤에 더 말씀드리고…….”
팔락, 종이가 한 장 넘어갔다. 줄줄 이어져 나오는 큼지막한 스케쥴과 앨범 얘기. 자리를 잡은 연예인은 이렇게 되는 거군.
“그리고 준 씨랑 동화 씨, 그리고 하민 씨 앞으로 예능이 들어왔는데요.”
아, 구성원부터 불길하다. 어쩐지 모든 게 술술 잘 풀린다 싶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