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4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44화(312/343)
네스퀵의 우아한 티타임. 정원사로 입사 면접을 온 사람들이 개인성을 확인하기 위해 고용주인 네스퀵이 직접 대화를 나눠본다는 컨셉.
사이사이 작은 코너가 있긴 하지만, 본질은 우아한 차림새로 예의 있는 욕설을 뱉는 이상한 사람이 출연자에게 집요한 질문을 하는 게 목적인 프로그램이다.
“오늘 준비한 차는 히비스커스에 망고를 같이 우린 차예요. 사실 저는 차에 대해 전혀 몰라서 제 비서님이 고심해서 골라주셨습니다.”
나는 찻잔을 들어 한모금 마셨다. 신맛을 베이스로 해 미세하게 느껴지는 철분의 잔향, 거기에 망고의 은은한 단맛이 더해졌다.
맛있네, 만족스러운 미소가 절로 나왔다.
“더럽게 시네, 어우.”
같이 찻잔을 들었던 네스퀵 씨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툭 내려놓았다.
“대관절 저는 차를 왜 마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 ‘나 좀 격식 있지.’라고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역시 소주가 최곤데 PD님이 컷 해서. 이쯤 되면 ‘우아한 티파티 : 소주편’ 나올 법하잖아?”
“……그러게요.”
물론 당연히 티파티가 아니게 될 것이며, 편견을 갖고 싶은 건 아니지만, 소주니까 ‘우아한’도 가져다 떼야 할 테니, 제목에서 ‘네스퀵의 : 소주편’만 남게 되겠지만.
대화를 미처 듣지 못했는지 채하민이 한 모금 마시더니 나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와, 이거 맛있다. 네가 타준 것 같아.”
네스퀵 씨는 기민하게 눈을 옮겼다.
“동화가요, 사실 차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제가 에너지 드링크 좀 그만 마시라고 엄청 뭐라고 하니까.”
채하민 특유의 악의 없는 얼굴만 봐도 엿을 먹이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는 건 알 수 있지만, 네스퀵 씨 입장에선 당황스러운 소식이다.
“아, 동화 씨가, 차를 즐기는.”
“네, 제가 좀 격식이 있습니다.”
그대로 인용해 드리자 채하민과 석준이 의아한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네스퀵 씨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저는 차 마시는 사람만 보면 어찌나 존경스럽던지. 어쩐지 기품이 느껴진다 했죠. 작업물만 봐도 알 수 있지만요!”
아마도 내가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를 카페인 수급용으로 사용하는 모습만 떠올리셨나 보다.
“…그런데 에너지 드링크는 끊었어? 커피는? 아니, 여러분, 이거 흡연자가 금연하는 급일걸요? 저는 절대 못 해요.”
진실의 미간이 얼마나 충격받았는지를 증명한다.
“커피는 적게 마시고, 에너지 드링크는 멤버들 없을 때만 마십니다.”
“사춘기 자녀 같네요. 아버지가 안 계신 틈을 타 코스프레!”
경험담.
“평소에는 동화가 이든이 형 제외하고는 다 관리해 주거든요. 그러니까 역할 교환 같은…, 그런데 잠깐만, 없을 때 에너지 드링크를 마셔?”
“몰랐어?”
“그러게. 관심이 적은 부모다. 정원 관리자로 취직하기엔 좀 부주의하다.”
채하민의 말문이 막혔다.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러나 이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우리가 없는 틈이 있나? ”
“없지, 보통.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끊었습니다.”
응, 그렇지, 채하민이 안심한 듯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 꼴을 보고 있던 네스퀵 씨는 안타까운 눈이 되었다.
“미친, 분리불안까지 있다니, 큰일이네. 고용할 때 두 분 동시에 고용해야만 하는 거죠?”
“네, 그건 당연하죠!”
네스퀵 씨가 의자에 기댔다. 만물에 환멸이 난 듯한 표정. 꿈을 이루고 나니 기대와는 달라 실망한 사회 초년생 같았다.
“내 인생을 바꿔준 사람들이 분리불안에 사춘기 부자 같은 관계성이라…….”
음, 인생을 바꿔줬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그러나 채하민은 뒷부분에 더 중점을 둬 말을 이해했나 보다.
“저희가요, 이번에 실버타운을 만들었거든요.”
“……잠시만. 뭔 개소리죠, 그건 또?”
“아, 저희가 처음 여기서 밝히는 거예요! 저희 집에 아버지가 쓰시던 별장이 있는데.”
“그죠, 하나쯤 있죠.”
이 기업가의 자녀들이…….
하나쯤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자기 집도 구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네스퀵 씨는 농담 삼아 하는 말 같지만,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알고 있으니 다르게 들렸다.
“아버지한테 써도 된다고 허락을 받아서 저희끼리 돈 모아서 리모델링을 쫙! 노인이 되었을 때 같이 살기로 했어요. 최근에 그게 완성이 된 거죠!”
나는 눈가를 덮었다.
그거, 말하는구나. 그것도 그렇게 자랑스럽다는 듯이. 그래, 어차피 나중에 가면 다 알게 될 일, 십 년 정도 일찍 밝혀진 것에 지나지 않으니.
“뭔…, 미친.”
혼란스러운 동공, 어딜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빛. 이내 PD님에게 정착했다.
“이거 스케일이 좀 이상한데, 방송 가능?”
“저도, 잘…. 일단 가 보죠.”
“…그래요, 끊어서 죄송해요, 계속 얘기해 주실래요?”
담배 생각이 나는지 검지와 중지를 펴 입에 가져다 댔다가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고 자기 손을 찰싹 내리쳤다.
“네, 동화가 저희한테 저주를 내렸거든요.”
“…동화 속에 나올 법한 마녀 같은 얘기.”
“누구 하나 먼저 우정을 끊거나 그룹에서 탈퇴하면 자기가 직접…….”
문자 그대로 죽일 거라고 했지. 그리고 그건 비방용이고.
“죽이나요?”
그리고 저 사람은 그런 건 크게 관심 없는 사람이고.
“……음, 그게, 죽인다기보단, 음, 어.”
“독살이겠죠? 마녀의 전형적인 방식이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 이제 정답이 나오네요. 확실히 동화 씨처럼 스마트한 사람은 그럴 것 같죠. 그래서요?”
농담인 줄 아시는구나. 정말 진심인데. 그러나 사서 미친놈 이미지를 만들 생각은 없으니 그저 미소지었다.
“어쨌든, 우리는 평생 한 그룹이다, 연 끊지 말자, 그런 얘기를 술 마시고 했거든요?”
“술 마시면 귀여워지는 타입, 좋습니다. 정원사 합격이고요, 그래서요?”
석준은 옆에서 조용히 ‘전혀 귀엽지 않았습니다.’라고 중얼거렸지만, 놀랍게도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저희가 그걸 찍어서 거실 TV로도 틀어놓고…….”
“마녀에 대한 판결은 공개 처형이 국룰이긴 해요.”
“맞아요―.”
“그러다가 이제 얘기가 나온 거예요. 동화의 저주를 피하려면 이건 늙어서도 가까이 사는 게 맞다. 그래서 블로센스 실버타운 얘기가 나온 거죠. 그래서 아버지 별장을 저희가 노후에 살 건물로 개조했다는 거죠!”
네스퀵 씨는 거기까지 듣고 아찔한지 눈썹을 한껏 올리고 입술 한쪽을 짓씹었다.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으로 보였다.
“……이게 구라는 아닐까 의심했는데, 구라였으면 동화 씨가 이렇게 가만히 있진 않았겠지?”
포기했을 뿐이다.
채하민은 이 이야기의 무엇이 이상한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채하민에게 그걸 설득시킬 자신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얘기하는 게 즐거워 보이는데 막기도 좀.
“……네.”
“그럼 이게 전부 트루야?”
“……네.”
“뭘 걸 수 있지!”
쾅, 책상을 치며 네스퀵 씨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찻잔이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절묘한 힘조절.
드레스를 입은 일수꾼, 몹시 신선하다.
“우리 정원에 있는 한 가지 규칙!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담보를 내놔!”
우렁찬 발성, 랩을 하며 단련한 복부 근육을 한껏 활용하면서도 목을 거칠게 긁어내 용이 불을 뿜는 듯한 소리가 정원에 퍼졌다.
이건 어디까지나 예능, 그러니까, 합을 맞춰야, 겠지.
나는 비장한 눈빛으로 네스퀵 씨와 마주했다.
“…제 목을 걸겠습니다.”
“…좋아요. 준 씨!”
“네!”
“한 치의 거짓도 없나요? 위즈니를 걸고 맹세해 주세요!”
“동화 형님이 술 마시면 귀여워진다는 것만 제외하고 전부 진실입니다!”
“미친, X발, 어떡해. 너희들은 뭐 하는 애들인데!”
내가 목을 건다는 발언보다, 석준이 위즈니를 건다는 발언이 더 신뢰가 가는 거군. 네스퀵 씨 안에서 나는 대체 어떤 이미지인 걸까.
그보다 품위를 유지해 주세요, 네스퀵 님. 머리가 헝클어졌습니다.
“진짜 무슨 동화도 아니고, 영원을 약속한 거네?”
“맞아요. 영원한 거죠! 저주는 언제나 유효!”
“…저주가 유효하다는 건 또 무슨 얘긴지.”
“오늘 올라간 뮤직비디오가 있는데요!”
“…하민, 그거 말하면 현재한테.”
나는 차마 뒷말을 뱉지 못했다.
“또 죽는 거죠? 죽는 거잖아요! 여러분들은 왜 서로를 죽이는 게 당연하고, 그걸 또 달게 받아들여요! 현재 씨는 뭔가요. 독살입니까?”
“현재는 직접 뭅니다―.”
“그래요, 아직 이가 가려울 나이긴 하지, 막내니까. 현재 씨도 스마트하지만 이 갈이는 해야죠!”
네스퀵 씨는 이제 포기했나 보다.
“하민 씨, 선택해 주세요. 막내한테 물릴 건가요, 아니면 진실을 밝힐 건가요?”
“아…, 세상 사람들 전부 막내 귀여운 거 알아야 하는데…….”
어찌나 뒤틀렸는지, 우리는. 이제 팬분들을 포함해서, 우리에게 관심이 있으신 전부가 알게 되겠네.
소속사가 알아서 판단하시겠지. 이런 걸 방영하는 게 좋은 건지, 아닌지.
“그래도, 우리 막내가요, 저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꼭 알려드리고 싶어요!”
나는 이제 모르겠다. 살면서 모든 것을 홀로 계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 * *
방송이 끝났을 때, 원래 탈진해야 할 사람은 우리였다고 한다. 질문에 대답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기운이 빠지고, 말해도 괜찮은 건지 수시로 점검해야 하니까.
하지만 정작 탈진한 건 네스퀵 씨였고, 그녀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드레스 자락을 끌며 ‘니코틴, 니코틴이 필요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여러분!’이라고 소리쳤다.
“…동화야, 사실 아까 그거, 오늘 얘기하고 온다고 현재한테 허락 맡았다?”
“방송의 재미?”
“응. 그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 잘했나?”
어떻게 살아 있지.
류이든이 말을 꺼낸 것이었다면 필시 영면에 들었겠지. 이현재가 애정에 약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약할 줄은 몰랐다.
“…잘했어.”
얘기를 시작한 것만 제외하면. 아무리 봐도 그건, 대중에 공개되기엔 너무 과격하지 않았나 싶어.
“형님, 그래도 형님이 저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드디어 공식적으로 밝혀져서 저는 기쁩니다―.”
“…그래.”
너희가 행복하다면, 뭐.
그렇게 우리끼리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힐을 신고 황급히 뛰어오면서도 완벽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네스퀵 씨가 돌아왔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걸 보니, 촬영장에서는 흡연 구역에 가도 전자 담배를 사용하는 건 변하지 않았나 보다.
“아니, 근데 이거 진짜야? 방송용 MSG 없이?”
“네, 동화 술주정은 흘러가듯 얘기한 적 있긴 한데, 좀 많이 순화했거든요.”
그러니까 과장을 하긴커녕 오히려 축소했다는 소리다.
“아니, 너희는 결혼 안 하니? 내가 이거 묻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데 아이돌한테 그게 무슨 미친 소린가 싶어서 닥쳤거든요.”
“만약에 하면, 근처에 집을 사야죠.”
채하민은 올곧은 눈으로 네스퀵 씨를 쳐다봤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1+1’을 물었을 때처럼, 마치 그게 수학의 공리(公理)라도 된다는 듯이.
털썩, 카메라가 꺼지니 품위 유지는 잊었다. 그저 드레스 자락을 흐트러트린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괬다.
“진짜 동화 같다. 낭만적이야.”
그러니까, 마녀가 선량한 네 명의 사람을 현혹해서 영원을 맹세케 하는 동화라는 거구나.
……평범한 피카레스크잖아. 왜 내가 악역인지.
“와, 나도 아버지랑 화해했다는 얘기로 좀 놀라게 해 주려고 했는데, 이거 상대가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