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4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46화(314/343)
“준이 형두 똑같답니다! 그 형은 가치관 자체가 범인과는 다르답니다. 저는 살면서 준이 형이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부정적 상황에 맞닥뜨리면 기본적으로 누구 탓이다, 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거죠. 그래서 항상 제가 더 미안해지는!”
이건 미담일까, 폭로일까.
방송 제목은 분명 폭로사무소지만, 열정적으로 토로하는 문장을 듣다 보면 저절로 그런 의문이 들었다.
“예전에 제가 실수로 준이 형이 가방에 달고 다니는 키링을 망가뜨린 적이 있어요. 그럼 당연히 화가 나잖아요, 명백하게 제 책임이니까. 그런데 준이 형은 울먹거리면서두 저한테는 ‘괜찮아, 현재가 더 소중해.’라는 헛소리만! 제가 그날은 밥을 제대로 못 먹었어요, 미안해서. 그런데 저한테 와서는 밥 좀 든든하게 먹으라구 하구! 제 잘못이니까 멱살을 잡혔으면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가족의 부정적인 모습’을 말해도 주변에선 ‘너희 사이 엄청 좋다!’라는 말만 듣는 억울한 동생의 심정에 이입하고 만 이현재.
“제가, 제가 늙어요. 제가, 제명에 죽지 못하면 형들 탓이라니까요?”
그런 이현재의 개인 W앱이 한창인 니체 사옥의 어느 방에, 작은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네?”
혹시 심각한 폭로 연발에 회사 사람이 찾아 온 건가 싶었던 이현재는 조심스레 답했다. 문이 열리자 한 손에 커피 트레이를 들고 웃고 있는 류이든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특별 출연 가능해? 나도 폭로 좀 하게.”
“……여러분, 이든이 형이에요.”
옆으로 약간 물러나 의자를 권하자, 류이든은 능글맞게 인사하며 슬며시 이현재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좀 진정됐어, 막냉이?”
“……네.”
이현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진정되네요.”
“커피가 유효해서 다행이다.”
“형, 다시 들끓는데 방송 끊구 저랑 면담 하실까요.”
꺄르르, 류이든은 이 맛에 산다는 듯이 자지러졌다.
화르륵, 분노가 다시금 타오르는 걸 느낀 이현재는 주먹을 꼭 쥐고 류이든의 팔뚝을 툭 쳤다. 이현재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물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니, 현재야, 하나도 안 아파.”
이현재가 책을 붙잡고 있었던 시간만큼, 류이든은 덤벨을 붙잡고 있었을 뿐이다.
류이든은 안쓰럽게 이현재의 팔뚝을 보고는 어쩌니, 뼈밖에 없어, 라며 안타까워했다. 놀리려는 의도는 없는,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순전한 걱정.
“……이 형이 이렇다니까요, 룸넛 분들.”
체념한 듯 미소 짓는 이현재. 연소가 다 끝나고 처량하게 남은 잿더미같이 흐릿한 미소였다.
“제가, 늙는다구요. 늙음은 젊음의 상실인데, 이러다 하이패션으로 거리를 활보할지두 모르겠어요.”
“확실히, 현재 네가 우리 중에는 제일 정상인 포지션이긴 해.”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면 아니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네요.”
“아니…….”
까지 말한 류이든은 조금 더 건드리면 이현재가 폭발할 거라 생각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솔직히, 요정 할머니가 제일 이상한 사람이지. 내가 투표에서 진 것도 그 할머니 때문이잖아.”
“…아, 그 별명. 얘기해 드려두 되겠죠? 일단 먼저 맞은 건 저니까, 정당방위로.”
댓글 창은 물음표로 가득했다.
얘네들 별명 목록은 왜 하루가 지나 있으면 또 늘어나는 걸까. 덕질 뉴비를 위한 지침서에 추가해야 할 목록은 왜 자꾸 갱신되는 걸까.
그런 의문이 담긴 물음표를 보며 이현재는 웃었다.
“동화 형 별명이에요. 하민이 형이 위즈니에 나오는 요정 할머니가 동화 형 같다면서 시작된 거죠.”
“근데, 아니지 않아? 그냥 요정이면 몰라. 할머니라기엔 동화 형은 너무 동갑 같은 인상이라.”
이 형이 또 아무렇지 않게 근본부터 글러 처먹은 소리를.
“저는 그것보단 동화 형이 요정 할머니면 저희 중에 누가 공주인 걸까가 고민되던데요.”
류이든은 감탄을 터뜨리며 고민하듯 침음을 냈다. 그러나 이내.
“그건 전부라고 봐야지 않나?”
라는 짧은 결론을 내어놓았다.
“……음, 확실히.”
─ 얘네가 또 이상한 소리를.
이현재는 눈에 쏙 들어오는 댓글을 보았지만 차마 말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여러분, 저희가 비밀 하나 얘기해 드릴까요?”
갑작스러운 발언에 류이든조차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화 형이, 저희들 인생 한 번씩 전부 구했어요.”
“아.”
절로 나오는 박 터지는 듯한 소리. 다시 시작된 폭로에 류이든의 눈이 불안으로 물들었다가 가라앉았다.
아무리 이현재가 이성을 잃어도, 넘지 못할 선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전부. 한 번이든, 그 이상이든. 적어도 한 번은 분명히.”
“동화가 그래도 저희를 제일 신경 써주거든요. 무슨 일 생기면 발 벗고 어떻게든 같이 해결해 줘요.”
“제 부모…, 님을 설득해 주신 것두 동화 형이었구.”
류이든은 이현재의 말속에 있는 오묘한 공백에 팬분들이 관심을 쏟지 않도록 곧바로 입을 열었다.
“맞아, 나 서바이벌 때도 옆에서 제일 응원해 준 게 동화였거든.”
“근데, 그 형은 고맙다고 하면 결국엔 네가 해낸 거라면서, 제대로 감사도 안 받아주거든요?”
“맞아. 그리고 걔는 그렇게 믿고 있잖아. 그냥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
“이것두 폭로예요.”
기분 좋은 웃음이 터졌다. 동화 형이 어떤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이현재도 알고 있다.
어떤 은혜를 입든, 어떤 은인을 만나든, 그게 가능하려면 결국 스스로 버티고 서 있어야만 한다. 그것도 은혜를 베풀고 싶을 정도로 똑바르게.
그 모든 건 그 사람의 능력이지, 은혜를 베푼 이가 유별나게 대단한 인간인 것은 아니다.
동의할 만하다. 일단 걸어는 가야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거니까.
지동화의 가치관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개인주의적이고, 모든 선택을 존중하는.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 형은 자기한테만 엄격하거든요.”
자신이 베푸는 쪽일 때는 잘 유지하던 그 가치관을, 자기가 받는 쪽이 되면 아무 가치도 없다는 듯이 버리는 점이겠지.
이든이 형에게 듣기로는, 자신의 윤리관도 그럴 이유만 있다면 얼마든지 버릴 의향이 있는 사람. 물론 ‘그럴 만하다’라는 건 합리화가 아니다. 그게 자신에게 더 소중하다는 판단일 뿐이다.
“동화 형에 대해 말하려면 오늘 밤새 얘기해두 다 못하겠지만.”
이중잣대가 있다, 그 형한텐. 더 정확히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 속내에. 신념을 버리더라도 위하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은 후자에 속해 있을걸.
“잠시라두, 우리는 동화 형에 대해 얘기해 볼 필요가 있어요.”
속단이지만, 자기는 저 위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보면서 자신은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했으나, 그거, 동생이 안타까워서 그런 거라고 봐야지 않을까. 정황상 자기 자신이 직접 오지 못했음을 깨달았음에도 끝까지 노력한 건, 아마 그것 때문일 것이다.
이현재는 지동화가 얘기해 주지 않은 부분을 자신의 추측으로 퍼즐을 맞추듯 논리를 쌓아갔다. 얼기설기 쌓아둔 논리는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건 다, 지동화 탓이다.
“그 형은, 자기 얘기를 할 때면 객관성을 잃잖아요.”
스스로 솔직하게 설명하지 못하니까.
“그렇지. 방향성이 다른 사람들이랑 반대긴 해도.”
류이든은 별생각 없이 동의했다. 평소에 자주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이현재는 류이든의 동의에 탄력을 받은 듯이 책상에 손을 내려놓았다. (기지생은 이 모습을 보고 ‘…쟤 교수 시절 강의할 때 자세네.’라며 그리워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얘기해 봐요. 동화 형에 관한 모든 것을 폭로해 보죠.”
지동화만큼은 아니지만 이현재도 기억력에는 자신이 있다. 한국대 합격이 증명한다. 관찰하는 건 어렸을 때부터의 습관이다. 가정에서 소외당하며 자란 덕이다.
다시, 그에게는 이중잣대가 있다. 주변인으로서는 득이 되는 이중잣대지만, 이런 모순은 가지고 놀기 너무 좋은 소재다. 소설 속 인물이었으면 벌써 개인 리포트라도 한 편 썼을 거라고.
“그 이중잣대를 부수고 짓밟다 보면 즐겁지 않을까요?”
류이든은 이현재의 눈이 광기로 가득함을 깨달았다. 다른 어떤 멤버들보다도 농밀했다. 설레어 죽겠다는 듯이.
지동화가 말한 적이 있었다. 이현재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뒤틀려 있는 모습을 보는 걸 즐기는 놈이라고. 소설을 좋아하는 것도 그것 때문일 것이라고.
처음에 류이든은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 막내처럼 착한 애가 어딨다고. 그러잖아도 팀 내 유일 정상인 포지션이라 고생이 많을 거라고.
그러면 지동화는 아무렇지 않게 ‘현재 성격에 진짜 싫었으면….’이라고 말끝을 살짝 흐렸다.
그렇게 시작된 이현재의 제2차 폭로전.
지동화가 말했던 원칙과 그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들 모음집(실질적으로는 미담집이었다). 마치 오늘 이 자리에서 지동화를 공식적으로 ‘요정 할머니’로 만들겠다는 듯이, 채하민의 정신 건강을 위해 일단 거짓말을 하고 나중에 직접 사실로 만든 썰 등을 연신 쏟아냈다.
류이든은 마치 청강생처럼 질문도 집중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쏟아지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현재가 말을 잠깐 쉬었을 때.
“…막냉아, 사소한 궁금증인데.”
류이든은 가까스로 질문을 하나 꺼낼 수 있었다.
“네?”
“너는 소설을 왜 좋아해?”
“아, 갑자기 또 대학교 면접 같은 질문을…….”
의도를 전혀 모르겠는지 한 번 갸웃.
“글쎄요. 타인이 지옥이었어서 그런가.”
“…뭔 소리야?”
짧은 노크 소리, 그리고 벌컥.
“소설은 주체가 객체화되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라는 뜻.”
검은 모자를 쓴 지동화가 약간 붉어진 귀를 단 채 들어왔다. 그 손에는 W앱 화면이 송출되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현재, 음흉하네.”
“와! 봐요!”
이현재는 한껏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여러분, 동화 형 귀 붉어진 거 오랜만이죠! 저번에 멘탈 수업 교수님 코스프레 할 때도 안 붉어졌던 귀가!”
지동화는 무례한 등장에 죄송하다고 화면을 향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에요?”
“그만해달라고 부탁하려고. 그리고, 네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도 겸사겸사 정정해 주고.”
“와, 엄청 부끄러웠나 봐요, 여러분. 어쩌죠, 저 좀 즐거워졌어요. 그리고 이걸로 그게 전부 사실이었다는 것도 증명이 완료!”
지동화는 언제 카페까지 다녀왔는지 오곡 쿠키와 초코 쿠키를 류이든과 이현재 앞에 각각 내밀었다.
“루미너스 여러분, 저는 이현재에 관한 폭로 하나만 짧게 하고 떠나겠습니다.”
한 번 목을 가다듬고는.
“이현재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상한 인간을 보는 게 즐거워서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하죠?”
“이현재가 멤버들을 아끼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곁에 두고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그건 좀 사실과 상당히 다른데요?”
무시.
“다음 광기 선거 때는, 이현재에게 한 표 행사 부탁드립니다. 류이든보다 심각하니.”
할 말은 끝났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그날 밤, 지동화는 공식 계정으로 ‘안녕하십니까, 동화입니다. 저는 멤버들이 요정 할머니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짧은 글과 채하민과 찍은 셀카를 한 장 남겼고, 이현재는 그걸 보며 다시 박장대소했다.
“형은, 진짜, 자기한테만 박하네요.”
라는 짧은 감상평을 전달받았지만, 지동화는 그저.
“글쎄.”
라는 짧은 답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