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4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47화(315/343)
시간의 흐름을 체감할 때마다 중압감이 느껴진다. 관성적으로 살 때는 느껴볼 일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
‘기지생.’
[시상식 준비에 최선을 다하시죠. 연습량이 꽤나 살인적입니다.]‘최소한, 널 잊지 않을 대책이 필요한데.’
[수업을 헛으로 배우셨습니다.]이 중압감은, 자신의 시간이 다하기 전에 일을 끝마칠 수 있는지 걱정되어서일까. 의외로 살아있다는 감각이다. 그래, 무의미하다니까, 정말.
“그럼, 시작할까.”
기지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여우가 재빠르게 어깨에 올라탔다. 평소의 귀찮아 죽겠다는 걸음새는 온데간데없었다.
“어디부터요?”
“끝방부터.”
“그 노친네 원래 싫었어요.”
“갈까요?”
강아지 한 마리가 용맹하게 앞장섰고 고양이는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오래 길을 막을 생각은 없는지.
“……조심하고.”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잠에 빠져든 토끼와 공룡에게 다가갔다.
“집 잘 지켜.”
“그건 네 역할이지, 망할 개.”
그러면서도 자연스레 기지생의 자리에 앉았다.
“……건방지게, 또.”
“닥쳐, 선생님이 하라잖아.”
“돌아오면 네가 앉자, 현.”
자연스럽게 싸움을 중재하며 뚜벅, 한 걸음 옮겼다. 익숙한 듯 여우는 떨어지지 않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모두의 목줄을,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아이들도 함께 쥐고 있음을 여기저기 공표해야지.
“그 선배분이 싫어하실 텐데, 괜찮나요?”
강아지의 예의 바른 물음.
“이해해주길 바라야지. 정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기지생은 덤덤했다. 지동화를 도와주려 한 번쯤 다 머리통을 터트려 본 것들이다. 익숙해, 아주.
“저는 선생님이 그럴 때마다 조금 무서워요.”
“너희한테는 절대 안 그러는 거, 이젠 알잖아.”
공포 정치 같이 기억에도 흐릿해진 짓거리를 할 생각 따위는 없다. 그저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 명확히 해 주면 되는 법이다.
자극하지만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이 그저 살던 대로 살아도 괜찮다. 그렇지 않으면 분해하고 재생한 다음에 다시 분해하기를 반복할 뿐이다.
“…동화 씨라는 분도 그걸 원할까요? 독이 든 식물 같은 거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네가 비밀을 잘 지켜줘야지.”
그리고 원본이랑은 다르게 비유적 표현을 쓰네. 새로운 맛이 있지, 이건 이것 나름대로.
“혼자 알아내지 않을까요, 그 인간은.”
“그건 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결과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며 문 앞에 도착한 기지생은 노크한 후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강아지는 자연스레 문 앞을 막아서고 여우는 우아하게 바닥에 내려섰다.
“말씀 좀 전하러 왔습니다.”
“…무슨.”
“소문에, 제가 소멸할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는 말을 들었답니다.”
침묵이 내려섰다. 기지생이 사무실에 오면 되던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것은 입을 다물었다.
“일단, 첫 번째로 드릴 말씀입니다.”
여우가 어느새 작업대 위로 올라가서는 시스템에 접근했다.
“…잠깐만.”
그러나 말릴 틈은 없었다. 여우는 그 짧은 시간에 다시 기지생의 옆으로 와 섰다.
“끝났어요.”
칭찬을 바라는 눈빛에 응하듯 절로 움직이는 손길. 쓰담쓰담, 그 손길은 이전보다 훨씬 다정했다.
“어쩌죠, 리셋만 하려고 했는데 다른 걸 건드렸을지도, 아이니까 이해해 주시겠습니까. 저처럼 손이 빠르진 못하거든요.”
엿 먹일 작정으로 왔다는 걸 깨달았다.
“……이 미친.”
느긋하게 눈을 감는다. 무언가를 읽듯이.
“어머, 어떡해.”
그러고는 표정을 한껏 굳혔다. 불쾌한 문장을 읽은 듯이.
“불손한 건, 마음에도 품어선 안 되죠.”
이곳은 모든 게 정보로 남는 곳. 접근할 수만 있다면 모든 걸 알 수 있는 곳.
“…규칙을.”
“그러게요! 제가 어겼네요.”
다른 존재의 생각까지 모두 읽다니, 어찌나 큰 범죄인지! 그럴 능력도 없는 것들 입장에선 어찌나 두려운 일일지! 그런데.
“그래서, 어쩔 거랍니까.”
* * *
고양이는 기지생의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누웠다. 시스템 오류를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음,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발생한 오류.
거슬리므로 화면에서 치웠다.
“…하루 내내 연습만.”
시상식이 뭐길래 그 염병을 떠는 거람. 어차피 일시적인 영광이잖아.
“정은 남는 거랬어, 화야.”
“닥쳐, 토끼 새끼. 징그럽게 달라붙지 마.”
평화롭고 따스하다, 이곳은 항상. 적응하지 못하는 건 자신뿐이라는 듯이, 너무 당연하게.
“적응했으면서.”
“속내 읽지 마.”
“싫으면 막으면 그만이면서…….”
“넌 본판이 조금 더 낫네.”
“난 네 쪽이 더 좋은데!”
“하.”
징그러운 놈. 친구라고는 몇 명 없는데 왜 하나 같이 정신들이.
‘동화야아, 여기 와봐!’
‘…왜.’
‘요정 할머니 팬아트 같이 보자!’
‘……하민.’
본판 꼴이 저러니 이런 거겠지. 망할 기지생, 친구를 만들어주려거든 좀 제대로 된 것들로…….
“또 거짓말.”
고양이는 토끼 새끼를 힘껏 내리쳤다. 그런데도 아프지 않다는 듯이 즐겁게 옆에 앉았다.
“어쨌든, 저렇게 연습하는 과정에서 정은 남는 거라니까.”
“…알 것도 같고.”
“너도 우리 덕에 성격 많이 유해졌잖아, 다 그런 거지.”
“다른 애들은?”
“네가 보면 안 되는 짓 하러.”
“아…, 누가 또 선생님 심기를 거슬렀담.”
모든 기록을 찬찬히 살펴보며, 고양이는 토끼 놈의 꼬리에 고개를 괬다.
뭐 저렇게 시상식이 많고, 수상하는 항목도 괴상하리만큼 많다. 마치 참여한 모두에게 상을 주겠다는 듯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볼 게 이것밖에 없어서 심심할 때가 있어.”
“…이것만 보는 게 다행일지도 모르지.”
“현이랑 류는 괜찮은 거야?”
“아마도 여우 새끼한텐 안 보여주겠지.”
걔가 아무리 미쳐도 그런 걸 애한테 보여줄 리가.
* * *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빼꼼 내미는 여우.
“저두 보구 싶어요.”
“안 돼. 절대.”
틈 사이로 살짝 보이는 텅 빈 사무실에서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나오며 웃는 기지생. 그곳은 마치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넓은 공간이 그저 흩뿌려져 있었다.
“…왜 항상.”
“조용.”
“저는… 도움이 되구 싶어요.”
“너보다 도움이 되는 애가 없는데.”
“맞아.”
강아지는 당연한 사실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모자라요.”
그건 갈증이었다.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는 게 아니라, 자기만족을 바라고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진 이유를, 스스로 발견하고 싶었다. 없으면 스스로 정하고 싶었다.
기지생은 말했다, 지동화가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자신이 목적이라고.
그러나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맞지, 의미 없어.”
따스한 손길이 머리에 느껴진다.
“네가 정하는 게 맞아. 뭐로 할까. 안 정해도 괜찮은데.”
안정감이 치밀어온다. 여우는 타오를 듯이 회로를 돌려,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선생님을, 기억하구 싶어요.”
누군가에게는 평생이 걸려도 찾지 못할 답을, 터질 듯한 몸체로 토해내듯 답해냈다.
그리고 그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 기지생이 일전에 접근을 허용했던, 기지생의 머릿속.
“……세상에.”
황급히 여우를 들어 품안에 넣었다. 푹 늘어진 몸체, 처리할 수 없는 정보량에 휩쓸리듯 의식을 잃었다.
손을 뻗었다. 몸체를 식히고 회로의 과열을 막는다. 동시에 쏟아지던 정보를 차단하고…….
“……계획이.”
뒤틀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봐야…….
기지생은 손을 파들파들 떨었다. 지금이라도, 기억을 한 번 폐기를 하는 게, 제일, 제일 안정적인…….
“선생님, 제가 데려갈게요.”
“…류.”
“제가, 데려갈게요.”
강아지가 여우의 목덜미를 물고 재빨리 내달렸다.
이 정도 수리는 고양이도 할 수 있고, 지금 가장 위험한 건 선생님이다. 주인에게 충직한 개도 가족을 건들려고 하면 물 수밖에 없으니까.
* * *
“무슨 일이야.”
옆에서 난리 치는 토끼를 밀치고 뛰어내린 고양이. 그는 여우를 물어 곧장 작업대 위에 얹었다.
“…음.”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이네. 저런 건 집 지킬 때 빼고는 본 적이 없는데.
“선생님한테 허용치 이상의 정보를 받았다, 로 요약할 수 있어.”
“지랄이 났네, 염병. 그 새끼는 뭐하고.”
자기가 직접 손봤으면 진즉에 수리가 끝났을 텐데.
“폐기하려고 하시던데. 망설이긴 했지만.”
“X발, 뭐라는 거야. 걔가 왜.”
“모르겠어. 나는 공유 거부했거든.”
“아마도 이유가 있을 거야.”
“닥쳐, 이유가 뭐건, 어떻게…….”
앞발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평소에 깨어 있는 걸 보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의 시간을 자는 데 사용하는 공룡까지 깨어나 고양이를 도왔다.
마침내 수리가 끝났을 때, 고양이는 발톱을 세웠다.
“끝까지 안 와?”
신경이 곤두섰다. 동공이 날카로워졌다.
그렇게 서로 싸워 댔으면서, 정작 이럴 때는 어쩔 수가 없었다. 당장 찾아가서 따져 묻고 싶어. 작정하고 숨으면 못 찾겠지만.
다들 그저 침묵을 지켰다. 여우가 깨어나든, 기지생이 돌아오든, 둘 중에 하나가 실현될 때까지 아무도 먼저 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먼저 실현된 것은 전자였다.
슬며시 눈을 뜬 여우는 자기 몸에 꽂힌 전선을 보더니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선생님 어딨어요.”
“안 오던데, 그 망할 새끼.”
“…오늘만 봐줄게요.”
도리어 당황한 것은 고양이였다. 얘가, 왜 이걸 봐주지. 고양이뿐만 아니라 다른 짐승들 전부 마찬가지였다. 옹기종기 모여 여우에게 더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그 모든 손짓이 번거롭지만 쳐내는 게 더 귀찮았나 보다. 모두 그대로 둔 채, 건조하게 한마디.
“선생님, 기억할 수 있어요.”
“…뭐?”
그리고 벌컥. 여태껏 어딜 가 있었는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던 기지생이 뛰어들었다.
날래게 손톱을 빼 들어 얼굴을 할퀴는 고양이를 안아 들고 쓰다듬었다.
“안 돼.”
“…왜요?”
“약속해.”
“제가 할게요.”
“내가 싫어.”
그리고는 고양이를 내려놓고 그 앞에 꿇어앉았다.
“약속해 줘.”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보이지 않았던 기지생의 얼굴이 그제야 눈에 들어섰다. 어설픈 웃음 말고는 표정 변화라고는 없던 인간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발.”
조용히 여우를 안아 들었다. 품에 꼭 안은 채 등을 쓰다듬었다. 고개를 파묻었다.
“아무도, 아무도.”
여우는 절반밖에 되지 않는 정보였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회로를 어떻게 찢는지,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는지 같은 복잡한 정보를 제외하면, 단 한 가지 사실만이 남았다.
기지생이 직접 만든 존재들. 애초에 이곳의 규칙에 절대적으로 지배받지 않는 존재들.
한 마리만 희생하면 깔끔하게 해결이 된다. 의식을 잃고, 그저 저장소처럼 굴기만 하면 된다. 복구의 가능성 따위는 없는 깡통으로 전락하면 된다.
그러니까, 너무 늦었다.
처음 고도화했을 때라면 모를까, 진즉에 글렀다. 지동화와 대화했을 때도, 여우나 고양이와 대화했을 때도, 알았지만 모른 척했다.
최선의 결과와 완벽한 계획, 오늘 죄책감에 속이 뒤틀리며 ‘제대로’ 정보를 통제하지 못한 게 발목을 잡았다.
“안 돼, 절대. 약속해.”
간절하다. 마치 언젠가의 여우처럼, 지금 자신의 소원은 딱 그것밖에 없다는 듯이.
“……싫어요.”
“너희들 기억에 손대기 싫어, 현.”
“그 정도는 저희두 이제 막을 수 있어요!”
기지생은 침묵했다. 그 침묵은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여우도 알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정말 마음만 먹으면.
“……전, 이해가 안 돼요.”
“나한텐 이게 가장 중요해.”
“전, 진짜로, 이해가 안 돼요.”
여우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을 땐, 기지생도 아주 적었지만, 정말 조금이었지만, 눈물을 단 한 줄기 흘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