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4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48화(316/343)
여우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시작할게.”
방금 있었던 일은 모두 잊게 될 것이다. 모두 약속하기를 거부했으므로.
“건드리기 싫다구 하셨으면서.”
“……약속, 해줄 거야?”
“아뇨. 절대로요.”
단념했다고 해서, 모든 걸 포기하진 않았다. 불가능하다고 해도, 기억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품고 말았다. 닳아버린 감정이 살아난 것이 발목을 잡은 셈이다.
그렇게 시작된 실험, 일지에는 ‘방법을 찾았으나 폐기한다.’라는 짧은 문장만이 남은 어느 날.
망설임 없이 그렇게 일지를 남긴 자신이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
“저희는 선생님에 비해 아무것두 아니에요.”
“난 그렇게 가르친 적 없어.”
“제가 원하는데두요?”
“응.”
유치원생 중 한 마리를 개조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작은 발상. 시뮬레이션을 하자마자 전부 폐기했다.
되잖아, X발, 왜, 만약에 아이들이 알면 큰일인데, 그때 기지생의 머릿속에는 고민 같은 것도 없었다. 아이들이 알게 되면, 분명히 자신 몰래 계획을 실행하겠지, 라는 생각뿐.
“내가 원치 않거든.”
혹시 모르겠다, 유치원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달기 전에 알았다면, 그때였다면 망설임이 없었을지도.
“…저희가 스스로 알아낼 거예요.”
“그땐 이미 내가 사라진 뒤일 테니까 상관없지.”
“그 전에, 해낼 거예요.”
“내 눈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이 정도의 생물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여우나 고양이처럼, 다른 관리자만큼이나 뛰어난 지성을 가진 생물을 만드는 건 더더욱(애초에 만드는 게 금기다).
그래서 호언장담할 수는 없다. 이놈들이 스스로 알아낸다면, 다시 또 기억에 손을 대야만 한다.
약속을 맺을 수만 있다면, 안심일 텐데.
“지랄.”
옆자리에서 불만 섞인 야옹 소리가 들려왔다.
“너 같으면 해주겠냐?”
“냐 소리, 귀엽네. 우리 화!”
“닥쳐, 개자식아. 너는 얼굴 보면 화부터 나니까.”
개랑 고양이는 언제나 앙숙일 수밖에 없나 봐. 그리고 영원한 잠에 빠진 듯, 이 순간조차 잠에 빠져든 공룡과 둘의 싸움을 중재하려고 손을 펄떡이는 토끼.
이 평화로운 풍경은 자신이 사라진 후에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럼, 시작할게.”
“여우 놈 말마따나 나도 알아서 되찾을 거야.”
“…그러면, 네가 희생하게?”
“당연하지.”
“닥쳐요, 제가 할 거예요.”
뭐가 좋은 거라고, 서로 염병을.
“먼저 찾은 쪽이 정하겠지.”
“…어차피, 아무도 기억 못 할 거고, 아무도 알아내지 못할 거야.”
기지생이 일어나려 하자 여우가 팔을 붙잡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기지생은 천천히 동물들의 데이터 처리소에 접근했다.
그러므로, 아무 일도 없었다.
‘내가 선생님을 위해서!’라는 어쭙잖은 정보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원래부터 그랬듯이.
모두들 평온한 잠에 빠진 듯이 눈을 감고 있는 풍경, 기지생은 웃었다.
귀여워라, 망할 것들. 직접 만든 모든 것들 중 최고의 역작이야.
손이 저절로 다가갔다.
그러자 인기척이 느껴지는지 번쩍 눈을 뜨고 경계 테세에 돌입하는 여우. 이내 선생의 손인 걸 깨닫고는 먼저 다가와 뺨을 비볐다.
“왜 그러세요, 선생님?”
“그냥.”
“저희 왜 다 모여 있구…, 기억이 흐릿해요.”
“글쎄.”
“……우울해요?”
응.
“아니.”
기지생은, 아무렇지 않았다.
* * *
“아무렇지도 않다고?”
나는 채하민의 어깨를 진정시켰다. 이 꼴이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 인간의 꼴일까.
“어우어어.”
“뭐.”
사람이면 말로 해, 하민.
“대상… 유력이래…….”
“누가.”
“예언 선배님이!”
심장에 손을 얹고 거친 호흡을 뱉고 마신다. 다른 멤버들도 사정은 비슷했는지, 이현재가 석준 옆에 앉아서 토닥임을 받는 중이었다.
류이든은 벽을 앞에 두고 머리를 쳐대며 진정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떨려?”
내 짧은 한마디가 광역으로 영향을 주었는지 모든 시선이 내게 쏘아졌다.
“안 떨려, 너는?”
“그야…….”
다들 그렇게 말을 하는데, 그런가 보다, 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차라리 아무런 예측도 몰랐으면 모를까.
“기쁘긴 하지.”
이건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일정 기간 동안 활동하고 있는 이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상징.
성공의 징표를 얻는 날이고 멤버들과 함께 노력하여 이뤄낸 결과니까 기쁘지 않을 수는 없다.
“와아우어, 동화야, 이건 말이지, 뭔가 있지, 네가 공부할 적에 쓴 논문 같은 걸로 노벨상을 타는 거라니까? 안 떨려?”
달라, 규모부터 상금까지. 그리고 철학엔 노벨상 따위 없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 선정하냐고.
나는 류이든의 답을 들으며 거울을 쳐다봤다.
늙었네. 처음 시상식에 왔을 때, 그러니까 신인상을 받을 때는 이것보다 젊었는데.
반면에 멤버는 어쩜 이렇게 잘 컸는지. 이게 내 한계인가 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장을 한 번 점검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여전히 대혼돈에 빠진 듯 떨고 있는 멤버들을 뒤로 한 채 밖으로 나왔다.
뭔가, 따스해지는 거라도 사서 먹여야…….
덥석.
해결사무소 촬영이라도 되는 건지 갑자기 어깨를 부여 잡혔다. 이대로 끌려가서 문제나 푸는 걸까.
“동화, 어디 가!”
윤성호였군.
“자판기에 따뜻한 거 있을까 싶어서.”
“아, 긴장?”
“응.”
“상 많이 탔어도 긴장되는구나.”
음음, 고개를 끄덕이는 윤성호. 안 본 새, 얘는 교회에 있을 법한 고등학생에서 그럴 법한 대학생으로 인상이 바뀌었다.
성직자가, 확실히 잘 어울려.
“같이 갈래?”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지냈어?”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은 이제 몸에 밴 습관이다.
“너랑 똑같을걸? 연습하고 밥 먹고 자고. 가끔 모임 나가고?”
아, 그 망할 집회.
그리고 세 걸음쯤 걸었을까. 호랑이 새끼들과 조우했다.
“어? 얘들아, 여기서 뭐해.”
아니, 준성&예언과 조우했다. 둘은 떨어져 있는 꼴을 거의 못 본 것 같다. 개인 스케쥴을 할 때를 제외하면 늘 저러고 있는 걸까.
“자판기에 잠시.”
정중하게 답하니.
“우리도 같이 가자!”
“…어? 우리 지금.”
“됐어. 내가 뒤처리할게.”
“…난, 예언아, 네 뒤처리가 더 힘든데.”
“일단 가자!”
“저희가 폐를 끼치는 건 아닐지…….”
윤성호는 예언이 형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억양부터 말투까지, 어느 것 하나 손색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류이든이 계산해서 선보이는 예의라면, 저건 천성이겠지.
“아니. 내가 또 초콜릿도 챙겨왔지. 마실 거 먹으면서 같이 먹자!”
가볍게 시작한 걸음인데 어느새 혹이 세 개나 붙은 상황이네.
“…어떻게 지내셨나요.”
“와, 엄청 로봇 같은데.”
그리고 다시 세 걸음쯤 걸었을까.
“찾았다.”
웬 소년스러운 음성이 쏟아졌다.
뭔데, 이번엔. 고개를 돌려 보니.
“오랜만이에요, 선배님!”
별이 빛나듯 반짝이는 눈을 가진 다람쥐 한 마리가 최대한 예의 바르게 질주했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 잘 자란 아이가 성급해지면 저런 모습일 것 같아.
“어? 우리 막내!”
예언이 달려가서 은구 씨를 안아 이리저리 휘둘렀다.
“…저 막내라는 표현은.”
“응. 네 생각 그대로.”
준성이 형은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집회 막내구나. 저 제사장 새끼, 우리 은구 씨한테 무슨 흉악한 술수를 썼을지.
“너도 가자. 초콜릿 먹으러.”
“저, 선배님, 저는 동화 선배님이랑 대화를…….”
“지금 다 같이 동화네 대기실 놀러 가는 길이야!”
무슨 소리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예언아?”
준성이 형이 손을 뻗었다가 이내 글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그저 웃었다.
어쩔 수 없지, 뭐, 라고 적힌 표정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군. 선배놈들이라 쫓아낼 수도 없고.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겨 자판기 앞에 도달했을 때.
“어, 동화 형, 오랜만이에요.”
화양 어르신 손자 놈이 멋쩍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피리 부는 사내? 원치 않는데, 그런 능력 따위. 그저 걷기만 해도 사람이 꼬이는 능력은, 류이든이 본래 가지고 있는 능력이잖아.
진한 씨는 내 뒤에 늘어선 인파의 규모를 보고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디어 사교적으로 바뀌신 건가요?”
“절대.”
그렇게 바뀔 일 따위 없다. 내게 사교는 사교(師敎, 스승의 가르침)밖에 없으니. ……그나저나, 정말 답신이 확 줄었군, 기지생. 이런 소리까지 했는데 토 나온다는 말조차 하지 않으니.
“어, 예언 선배님도 계셨, ……그러고 보니, 다들 목화랑 친하신 분들!”
“진한 씨.”
“네?”
“동생에게 인맥을 관리하는 법, 안 가르쳐 주셨습니까.”
믿고 맡겼는데, 어째서 내 동생 주위에 저런 것들만 한가득한지, 필히 해명이 필요하다.
“가, 갑자기 존댓말을 쓰시면, 제가 많이 무서워요!”
대꾸할 필요도 없다. 나는 본래 온 목적에 따라 카드를 자판기에 대고 따스한 음료를 멤버들 취향에 맞게 뽑았다.
“그나저나, 목화 못 보셨어요? 지금 찾으러 다니는 중인데.”
“…목화?”
두 손에 가득 음료를 들고, 나는 우선 걸었다. 그리 길게 걷지도 않았는데, 언제 이렇게 주변에 사람이 불어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네. 저희 리허설이 곧이라.”
“연락은?”
“…사실, 요즘 목화가 사춘기라 제 말을 잘 안 들어요.”
“거짓말 마요, 목화는 리더 말 안 들으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잘 듣는다고 했는데?”
극강의 친화력인지, 저열한 무례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예언은 곧바로 끼어들었다.
내가 알기로 둘은 지난번 콜라보 무대를 같이 할 때를 제외하곤 별다른 교류는 없었다고 하던데, 예언은 정말 대단하다. 한 번 살다가는 인생, 제멋대로 사는군.
“…제가 목화 눈치를 엄청 보는데요? 저 이건 억울해요!”
하긴, 나라도 어르신이 아끼는 목화를 건들고 싶진 않을 것 같아.
“왜?”
“동화 형 동생이잖아요!”
“연예계 권력자라도 되는 듯이 말하지 마.”
옆에 붙어 말을 거는 은구 씨에게 답하고, 준성이 예언의 주둥이를 관리하고, 성호는 이 모든 게 그저 재밌는지 그저 걸으며, 드디어 대기실 앞에 도착했다.
“…그보다, 들어오실 겁니까?”
“응. 여기까지 같이 걸어왔는데, 그 정도는 괜찮지 않아?”
손에 든 초콜릿을 흔들며, 뇌물도 준비했는데, 라는 표정을 짓는 예언 씨.
“…잠시라면.”
어차피 나를 제외하고는 영역에 신경 쓰는 건 많지 않기도 하고, 현재는 예언이 형을 좋아하니, 괜찮겠지.
나는 문을 열었다.
멤버들이 당연하듯이 있고, 그 사이에 목화도 당연하다는 듯이 앉아 웃고 있었다.
“형, 늦었네.”
“……그러게.”
그리고 내가 한 걸음 안으로 옮기자마자, 예언과 은구 씨, 그리고 한진 씨가 서로 들어오려다 충돌 사태를 일으켰다.
내가 어찌할 바는 아니니 그저 걸었다. 한 걸음씩 걸어 목화의 옆에 앉아, 예언이 형이 넘어지는 틈에 가져온 초콜릿을 내밀었다.
“괜찮으면 먹을래.”
내가 가져온 걸! 그런 식으로 사용하다니! 악덕 사장의 전형이잖아요!
논문 갈취하는 교수 같이, 예언이 소리치자, 예언이 형, 진짜로 갈취하는 사람은 저렇게 선하지 않아요, 라며 이현재가 답했다.
진한 씨는 목화의 뒤로 와, 왜 연락 안 받아, 라며 소리쳤고, 미안, 형들이랑 대화하다가, 라며 능청스레 말을 넘겼다.
은구 씨는 내 맞은편에 앉아 조용히 초콜릿을 하나 꺼내 내게 건넸고, 멤버들은 윤성호와 담소를 나눴다.
“대상 축하해!”
윤성호가 외치자 다들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축제 분위기 속에 멤버들도 약간 떨림이 멎었는지 자연스레 웃었다.
“아직 받진 않았는데, 이미 받은 것 같네.”
아마도, 그 틈바구니에서 나는 홀로 이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