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4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49화(317/343)
나는 의자에 앉았다.
빛나는 조명, 사람들의 환호, 그 속에서 상을 받으러 당당하게 걸음을 옮기는 지동화가 화면 속에 있었다.
주눅 들지 않는 시선, 꼿꼿하게 세운 허리, 덤덤한 듯 보여도, 속내의 기쁨이 은은하게 묻어나오는 미소. 빛이 났다.
나의 길고 길었던 망집을 이뤄 준 사람답다. 내 이야기에 주인공이 있다면, 그건 저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여생을 관찰자로 보낸다고 해도 달가웠다. 도리어, 스스로 다른 선택지를 배제했다.
망할 이야기와는 달리 사람의 생은 편리한 데서 끝나지 않지만, 다행히도 나는 사정이 달랐다. 지동화의 전기가 끝나는 순간이 삶의 종착지다.
어렸을 땐, 부모님이 삶의 주인공이었고, 그 후엔 지목화가, 그다음엔 지동화가 주인공의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그건 당연하다. 부모님이든, 목화든, 단상으로 올라가며 주변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보내는 저 인간이든, 다른 사람이 삶을 바칠 만한 인간들이다.
나는 자신이 태어났던 순간을 회상했다. 지동화조차 그 잘난 머리로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지만, 자신에겐 선명했다.
낯설고, 모든 것이 몽롱한 찰나에, 누군가가 나를 집어 들었다는 사실만이 각인됐다. 생의 본능에 따라, 몸을 붙잡고 있는 존재에게 압도적 두려움을 느꼈다가도, 그 손길이 우호적이라는 걸 깨달을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렇게 나는 울음이 적은 아이로 자랐다.
집은 따스하고, 시원했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여러 책을 읽은 후부터 그 따스함과 시원함이 두 분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더욱 울음은 적어졌다.
누군가를 기르는 행위가 고되다는 건 네 살쯤에 정확히 깨달았다.
나와는 달리 울음이 잦은 아기였던 목화를 보며, 세상에 이토록 작으면서 귀여운데 번거로운 생물이 또 있을지 따져 보다가, ‘나도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는 생물…….’이라는 짧은 단상에서 촉발된 깨달음이었다.
‘저희 기르는 거 번거롭지 않아요?’
‘……뭘 읽힌 거야, 당신. 서재에 좀 이상한 책 좀 어떻게 해 보라니까.’
‘……이상한 건 없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어봐도 될까, 동화야?’
어머니가 나를 안아 올렸다.
‘그러게, 궁금하네.’
아버지도 옆에 다가왔다.
이 장면이 그 근거이지 않나, 아무것도 모르니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는 존재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도 스스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동화는 절대 번거로울 수가 없는데. 아버지랑 달리 똑똑해서.’
‘……여보, 맞는 말이긴 해도, 나 상처받아.’
‘동화야, 절대로 번거롭지 않아.’
거기서 오는 안정감이란 어렸던 내가 제대로 문자화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부모님을 이해하는 게 삶의 목적인 양 굴었다. 그들의 삶은 어떠했는지, 그들이 남긴 일기를 탐독했다. 자식과 부모 사이의 심리를 연구한 서적을 읽고, 부모님과 여러 번 대화를 나눴다.
‘제가 입양아였다면요? 그래도 똑같았을까요?’
이런 토론을 할 때 기본 중의 기본은 사고 실험이다. 아버지한테 배웠다.
‘글쎄, 경험해 보지 않아서 확언은 못 하겠지만, 아마도 그랬을 거야.’
아버지는 익숙한 듯 고심했고.
‘이게 부모 자식 사이에 나눌 대화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결정한 거였으면 나도 똑같았을 거야.’
어머니는 아버지의 옆구리를 툭 치며 답했다.
‘…그건, 신기해요.’
그리고 나는 피를 나누지 않았어도 같았을 것이라 확언하는 부모님을 보며 신비로울 따름이었다.
‘나도 널 보면 신기하곤 해. 어떻게 이 작은 머리에…….’
‘여보를 닮아서 냉소적인 거 아닐까?’
‘당신을 닮아서 생각하는 게 습관인 거지.’
‘…나쁜 건가요?’
옳지 않다는 확신이 있다면 고쳐야만 한다. 어머니에게 배웠다.
‘그래서 하루하루 더 사랑스러워, 동화야.’
‘……엄마도, 그래.’
결론적으로,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정말 깊게 사랑한다는 것만 느낄 뿐이었다.
그러나 이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여전히 사태를 파악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목화를 끌어안았을 때, 첫 번째 목적을 성취하긴 했다.
이게 부모님이 느꼈던 감정이진 않을까. 타인의 마음이라 논증할 수는 없었지만, 비논리적으로 깨달았다.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내가 입양아라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똑같은 깨달음을 얻었으리라는 인식은 불같았다.
이 아이가 부모님이 서로를 사랑했던 결실이라는 인식은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누군가 입에서 피를 토하듯 살아야 한다면 그건 나였으면 좋겠다는 신념이 그 불을 영원히 타게 할 장작이 되었다.
‘…형, 왜?’
‘글쎄.’
‘무슨 일 있어?’
‘……응, 여기 앉아 볼래. 조금 긴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마침내 목화는 기억조차 못 하는 대화는, 너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굳은 다짐이 되었다.
그렇게 생긴 두 번째 삶의 목적.
이건, 지동화도 기억하고 있는 영역이며, 목적 달성은, 실패.
사유는, 내가 나약했으므로. 혹은 정해진 순리가 그러해서. 물론 순리를 탓하는 건 비굴한 짓이지만.
그다음 페이지는 이곳에서의 생활.
버러지 같은 나는 해내지 못했지만, 지동화는 해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었으며, 결과는 성공이다.
엄밀히 따지면 실패로 점철된 역사지만, 수정된 계획 아래에서는 성공이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에서, 나는 중심을 꿰차지 못했다. 더 정확히는, 그런 욕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점의 후회도 없이 도리어 만족스러운 걸 보면,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나도 누군가에게 내 부모님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건, 지동화도 선명히 기억하지 못하는, 네 살 시절의 소망이었다.
그러므로 이게 정신적 결함의 원인이라면,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는 모든 과거를 돌이켜 보며 정리했다. 감정을 되찾은 건 이럴 때 참 문제가 된다. 사념에 빠지는 시간 때문에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할 때도 생기니까.
‘현재, 괜찮아?’
‘…네. 아, 울면 안 되는데.’
이현재가 두 손으로 꽉 쥐고 있는 트로피. 일정 기간 내에 다른 그룹보다 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물건.
그러나 지동화는 저 물건에서 무엇을 볼까. 그는 타인과의 대비에서 오는 저열한 만족감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시간.
지동화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물리적 형상으로 응고할 때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저 도금인지 도색인지 모를 쇳덩이에서, ‘다섯이 함께 보낸 시간’을 보며 만족스러워 할지도.
피상적으로만 관측하면, 무가치해 보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가치중립적이니, 텅 빈 흰 방에 페인트통을 들고 던져진 인간이 열심히 색을 칠하는 건, 제삼자의 눈에는 별로 가치 있는 행위는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한텐 다를 수밖에.
잘못 칠한 곳이 눈에 밟히고, 아름답게 그려진 풍경화에는 넋을 잠시 잃고, 그렇게 붓질 한 번 한 번을 반복할 테다.
포기하고 붓을 놓든, 어떤 색이 모자라 한숨을 쉬든, 옆방에 있던 이가 갑자기 뛰쳐 들어와 페인트통을 던지든, 그 방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라는 건 두려운 일이다. 방에 밀어 넣는 것조차 허락을 구한 적 없으니 더 그렇다.
─와, 이거 어디에 전시해 두지?
─우리 실버타운에 전시장 있다며.
─거기에? 그럴까? 와, 어떡해, 동화야!
─무엇을.
─아니, 설레지 않아? 막, 전시장에 우리가 받은 거 하나둘 전시하기 시작하면!
─……그건, 그럴 것 같네.
이 모든 순간을 그러므로 내 눈으로 담도록 하자.
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걸어가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과정을. 화면을 수놓는 저 많은 기록을.
눈앞에 있는, 셀 수 없는 모니터들. 직접 확장한, 무한에 가까운 시공간에 펼쳐진 모니터들 하나하나는 기지생이 관리하는 시공간 속 모든 생물의 생애를 짧은 줄글로 기록하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는 것도, 거기에 쓸 붓과 페인트의 종류도 자신이 정할 수만은 없다면, 최소한 붓질만큼은 그 사람의 뜻대로.
한 줄 한 줄, 뇌를 혹사해 가며 모두 저장했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긴 한데.”
옆에 앉아 고롱대는 고양이가 문득 껴들었다.
“…저도요.”
여우도 껴들었다.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나, 이젠 정해진 바도 없다.
시공간이 끝에 다다라 다시 시작할 때는, 또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테니, 언젠간 사라질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더 기억하고 싶다.
* * *
뱀 한 마리가 별세했다. 그저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한 산에서 살던 뱀 한 마리에 불과했다.
“…선생님, 쉬어야 해요.”
“그러게.”
정신은 조금 알딸딸하다. 별다른 이유는 없이, 너무 많은 것을 쉬지 않고 쑤셔 박다 보니 생긴 일이다.
“그러게, 라고 말씀하셔두 쉬지를 않잖아요?”
지동화는 지금, 류이든을 군대에 보내기 위해 실버타운에 모여 담소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머릴 자르는 편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잘생겼단 뜻이야?
─헛소릴.
시시콜콜해라.
* * *
뉴욕 곳곳에 설치류 방지 쓰레기통과 살상용 약물이 살포되어 다량의 쥐가 죽었다. 연달아 꺼지는 모니터들을 보며, 그저 기억해 주었다.
반면에 지동화는 예언의 카페에 다른 이들과 함께 모였다. 지동화를 신으로 모시는 종교 집회였다.
─자, 드디어! 우리 동화 씨의 솔로 앨범이 발매되었습니다, 여러분! 박수!
─형, 호들갑 좀 그만.
─심지어 솔로 앨범 전곡이 자작곡! 수록곡은 일곱 곡인데 전부 멤버들이나 목화 씨처럼 의미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작성한 감사 인사! 우리가 모시는 분이 이토록 대단해요!
─저도 언젠가 거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요?
─조용, 다람쥐. 솔로 앨범 또 나오려면 얼마나 걸릴지 몰라.
─곡 다 좋더라. 근데 진짜 음방 무대는 안 나가?
─한 곡만 하기가 좀 그래서요. 대신에 무료 콘서트를 좀 열지도.
─회사가 그걸 허락하든?
─……준성이 형, 본인도 허락한 것 아닙니까.
─하긴, 형도 이사잖아요.
여전히 시시콜콜하다.
* * *
길고긴 시간, 의자에 앉아 지동화를 가르치고, 동물들을 쓰다듬으며, 드디어 오늘은 무엇도 죽지 않았다. 대신에.
“선생님.”
“응?”
“저희, 같이 모여 앉아요.”
“…그럴까.”
끝을 준비하는 방식치고는 초라하다. 나는 의자에서 내려와 여우를 안아 바닥에 앉았다.
다른 동물들도 모두 내 곁에 와 가만히 얼굴을 비볐다.
“화, 오늘은 쓰다듬어도 돼?”
“…어.”
조심스레 고양이의 얼굴 위에 손을 얹어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어서 차례차례, 한 마리씩, 모두.
─기지생.
[부르셨습니까.]─……미안.
결과적으로, 나를 기억하는 방법 따위는 모두 알지 못했다. 나는 여우가 화내거나 침울해하지 않도록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애초에 불가능했다. 내가 일부러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까. 비겁하고 치졸하지만, 계획의 달성을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진즉에 선생님에게 ‘제가 틀렸습니다.’라고 하면 좋지 않았습니까.]평화롭다.
나는 여우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슬퍼?”
“네.”
“미안해. 나는 꽤 기뻐서.”
드디어 끝이 났다. 이 길고 길었던 삶이.
“원래는, 혼자 외롭게 떠났을 텐데.”
그것도 자신이 꿈꿀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으로.
“너희들이 우는 것도 듣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사라질 문장들. 그러나 그건, 지난 몇십 년을 무의미한 일에 바친 자신에게 중요하진 않았다.
“선생님.”
“응, 현.”
“저는, 선생님을 평생토록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
미안하지 않다면 거짓이겠지만.
“선생님두, 저를 평생토록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나는 한껏 미소를 지으며 여우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귀여운 것. 어쩌면 좋을까. 유일한 미련이 있다면 이것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아닐까.
한 마리씩 다시 들어 올려 그 털의 감촉, 눈의 생김새, 크기를 하나하나 새겼다. 무의미함은 어찌나 두려운지.
정보는 이미 과밀하다. 뇌는 터질 것만 같았으나, 억지로 모든 정보를 부여잡았다.
나는 저 세계를 참 아꼈고, 그것보다 훨씬 더 이 짐승들을 사랑했다. 내 자식들이라고 해도 좋을 아이들이다. 장난 삼아 선택했던 유치원 교사가, 어쩌면 천직은 아닐까.
끝이 다가옴은 화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목화가 지동화의 손을 꼭 부여잡고 있었다.
한 사람의 생애는 저물지만, 여기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모든 동물을 한껏 끌어안았다.
“기억하지 못해도, 지동화랑 사이좋게 지내고.”
그 짧은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나는 의식이 꺼지는 것을 인지했다.
* * *
‘뭐지, 이 진도 2 정도의 지진 같은 떨림은.’
불쾌하다기엔 약하고, 신경 쓰이지 않는다기엔 강한 흔들림에 눈을 뜨려 애썼다. 그러나 따스한 이불 때문에 쉽지 않았다.
“동화야, 괜찮아?”
들릴 리가 없는 미성. 나는 벌떡 자리에서 몸을 들어 올렸다. 어째서, 어떻게.
“……채하민?”
“아! 내 이름 아는구나! 모를 줄 알았는데.”
멍청한 웃음, 항상 화면 너머로…….
아니, 어떻게…,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