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5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52화(320/343)
“혹시 오는지 몰랐어?”
어안이 벙벙한 봉주를 보며 지동화가 코트를 벗으며 물었다.
저건 캐주얼이라고 해야 할까, 포멀이라고 해야 할까, 다만 반바지에 반팔 차림이었던 자신이 비교돼 초라해 보였다.
멋있다, 지난번에 해외 공연 나갈 때 입었던 착장.
어렸을 적에 시니컬했던 한 소년은, 피아노와 아이돌에 빠진 웬 청년이 되고 말았다.
“네.”
혹여나 답이 늦어 적막이 내려앉을까 상념을 집어던지고 답했다. 그에 선생님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버님께 닿았다.
봉주의 눈도 그를 따라 아버지를 보자 늙으셔서 그런지 요즘 따라 부쩍 애교가 느신 아버지께서 두 손을 활짝 펼쳤다.
“서프라이즈.”
* * *
가끔은 신비로운 기분에 빠져들곤 한다.
어렸을 때는 선생님이 그렇게 인기를 끌고 있는지도 몰랐거니와, 연예인이 뭔지도 잘 몰랐다.
따스한 사람.
인상은 차가워도 자신을 사려 깊은 눈으로 바라봐 주는 사람.
속내를 읽듯 바라는 걸 먼저 권해주는 사람.
그것만으로도 어린아이였던 자신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연예인인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이름 정도는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사람이라니, 신비롭다.
더욱이, 그런 사람이 우리 집 주방같이 초라한 곳에서.
“여기.”
직접 가져온 찻주전자로 차를 우려 한 잔 건네는 건, 정말.
아버지가 ‘이제 너도 성인인데 이야기 들어 보고 스스로 결정해야지.’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떠난 식탁.
“해외 생활은 좀 어때?”
선생님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묻자 분위기가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편안한 어조, 나이를 조금 먹고 나서야 선생님은 고저나, 쉼표의 위치, 잇단음표인지 아닌지, 세기는 어느 정도로 할지 그 모든 걸 계산해서 문장에 실어 낸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 학교는 다녀본 적이 없어서 비교할 수는 없는데, 솔직히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
자연스럽게 입을 열 수 있는 분위기. 봉주는 이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세심한 배려가 깔려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네, 피아노 치는 건 똑같아서요.”
“판단 기준이 그거 하나인 건 변함이 없네.”
희미한 웃음이 흘렀다. 독방에 가두고, 피아노 한 대만 넣어준 뒤, 밥만 한 끼 정도 제공해 주면 그러려니 하고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평생은 무리겠지만, 한 한 달 정도면.
“한 달?”
“네, 저 혼자 듣긴 아까운 소리니까…. 다른 사람들 연주도 좋아하고요.”
선생님은 이번엔 분명한 웃음을 흘렸다.
소리. 놀이공원에 절대로 가고 싶지 않아 하는 원인이자, 대학교 친구들과 클럽에 가지 않은 이유.
조화롭지 않은 소리를 들으면 손끝부터 저리는 병에 걸린 것 같았다. 봉주에게 소리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 셈이다.
봉주는 새벽의 활기찬 소리는 가만히 들으면 미묘한 박자감을 갖추지만, 도시의 밤은 난잡한 소리로 가득해서 아침형 인간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봉주가 다니는 대학교에는 소문이 돌아다녔다.
목소리는 조곤조곤, 행동은 최소한으로. 자신이 내는 소음조차 달가워하지 않는다더라. 이 정도는 이상한 축에도 끼지 못하는 소문이었다.
대학 친구들은, 정작 봉주는 잘 모르지만, 그를 ‘개성 판독기’라고 불렀다.
뻔한 연주에는 무감하게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다른 소리, 가령 독특한 끝음 처리라도 들으면 동공을 키우며 눈을 반짝여서 생긴 별명이다.
어떤 이들에겐 ‘이상한 아시안’이라는 인종차별적 별명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학교에서 공개적인 연주를 하는 날에 참가자 몇 명을 부여잡고 짧은 인사를 하자마자, ‘번호 좀 알려줄래.’라는 질문을 서슴지 않고 던진다. 그러고 나서는 연락은 일절 하지 않고 콩쿠르나 연주회 일정만 확인해 나타나서는 꽃다발을 주고 그저 사라지곤 했다.
확실히 ‘이상한 아시안’이긴 하다.
차라리 얼굴이 못났거나 행실이 바르지 않았다면 번호를 주지도 않았을 텐데, 아쉽게도 봉주는 훌륭하게 성장하고 말았다.
미형에 우아한 걸음으로 다가와 번호를 물으면, ‘아, 친해지고 싶구나’ 내지는 ‘혹시 관심이?’라는 상상을 부추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정작 연락이 없어서 ‘뭐 하는 놈이지?’라고 생각할 때쯤 연주가 끝나면 꽃다발만 건네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연주만 할 수 있으면 끝없는 관심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몇 사람이 연습에 매진했다는 소문이 그 위에 얹히기도 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소문.
그리고 정작 본인은 그런 소문에는 관심이 없었다.
거기엔 귀를 끌 만한 화성도, 주의를 집중시키는 타악기의 파열음도 들어있지 않으니까.
소문에 소문이 쌓이는데, 본인은 그저 평화롭다.
다른 사람의 시선도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악기에 미친 놈일 뿐이다.
“…가끔은,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의심스러울 때가 있어, 봉주.”
선생님은 조금 씁쓸해 보였다. 봉주가 미처 알지 못하는 그의 속내는 다음과 같았다.
‘어째서 제 손이 닿는 사람은 전부 하나 같이 괴짜 같은 구석이 생기는 걸까. 이게 진짜 버그인 것은 아닐까.’
그저 여리기만 했던 아이가 점차 자라서 자아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은 아름다운 구석이 있으나, 봉주의 경우에는 괴짜로 자란 셈이라 아름답기만 한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남아있다.
“왜요?”
“…글쎄.”
답하기 곤란하다는 뜻이다. 선생님은 대개 확신하지 못하는 건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그보다, 방학 때 계획은?”
“일단, 복지 센터에서 피아노를 가르쳐 보면 어떻겠냐고 직원분이 연락을 주셨어요.”
“응.”
“해 보려고요.”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뒷말은 약간 쑥스러우니 생략했다.
“그래.”
아무런 평가도 돌아오지 않는다. 원래 그렇다. 선생님은 선택에 대해서 아무런 평가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억양, 세기, 빠르기, 모든 게 들리는 귀에는 그 속에 담긴 대견함이라는 감정을 알려 줬다.
“혹시 너무 바쁘지 않다면, 공연 반주를 부탁해도 괜찮을까.”
막말로, 명령해도 들을 텐데.
“……도리어 제가 지원해서 떨어져야 할 자리가 아닌가요?”
봉주는 그제야 아까 전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입에 올렸다.
무슨 공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급이 다르다. 해외에서도 공연할 지경의 아이돌 멤버 공연의 반주? 그건 경력직의 사람이 할 일이다. 고작 대학교 학부생이 아니라.
“제 실력에 어떻게 하겠어요.”
“자기 객관화가 부족해, 봉주.”
그건 선생님 친구들께서 선생님께 훨씬 자주 하시는 말씀이잖아요.
“네 실력이면, 내가 모셔가야 하는 거야.”
“선생님, 저를 칭찬해 주셔서 늘 감사하지만…….”
봉주는 뒷말을 고민했다. 예의 바른 단어를 쓰고 싶다. 그래야 듣기에도 좋으니까. 담고 싶은 의사는 명확하다.
헛된 칭찬을 해주셔도 저는 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세상엔 아직 자신이 듣지 못한 연주자들이 너무 많았다. 못 들은 소리가 너무나 많았다.
제가 치는 피아노도 퍽 괜찮긴 하지만, 이것보다 잘난 소리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런 생각에, 봉주는 잠시 황홀경에 빠지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때 들었던 도 소리를 뛰어넘는 게 있을지도 모르지. 아마 없겠지만.
피아노는 소모품이라 복지센터에 있던 건 거의 못 써먹을 수준이었다는 걸 지금은 알지만, 그럼에도 그때 들었던 ‘도’라는 짧은 음정만큼 아름다운 소리는 들은 기억이 없다.
“그럼, 거절?”
“네, 제가 옥에 티가 되면…….”
“그럼 피아노는 아예 빼는 쪽으로 가야겠네.”
“…네?”
* * *
정장을 입은 채, 머리를 정돈한 봉주는 거울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때 빼고 광을 내야 하는구나. 깔끔하게 보이기만 하면 되지 않나, 라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엔터테인먼트란 이런 건가 보다.
아직 이십 대 초반, 앳된 티가 없다고는 못하겠으나 골격이 서서히 드러나는 시기.
스타일리스트가 흐뭇함에 호호, 웃었다. 꾸미는 맛이 나는 낯짝이야.
“어우, 동화 씨는 어디서 이런 연주자를 데려왔대.”
저희 집에서요. 봉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피아노를 아예 뺀다니, 그건 안 될 소리였다. 선생님이 작곡한 곡을 자기가 얼마나 사랑하는데, 피아노가 들어가는 악보를 전부 버리겠다는 선언이잖아.
“…선생님은, 정말.”
현명하다. 선생님의 곡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서 그런 식으로 유도한 거니까.
선생님이 손으로 쓴 악보의 복사본을 심심할 때마다 펼쳐서 읽어보는 습관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이래서 아버지가 ‘약점을 쥔 사람한테는 굽힐 줄 알아야 한다.’라는 조언을 해주셨던 거구나.
그 뒤에 ‘그 사람의 약점을 쥘 때까지만.’이라고도 했지만, 선생님에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니 생략.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어낸 악보는.
“…아으아.”
자신이 연주해야 하는 곡은 단 한 곡. 그것도 선생님 옆에 비치된 피아노에서. 그것만으로도 긴장감이 차올랐다.
이번 솔로 앨범은 자신이 고마워하는 이들 한 명 한 명을 위해 작곡한 곡을 담아낸 거라고 하셨는데, 이 곡이 자신을 위해 작곡한 거라는 설명을 들을 땐 정말이지 기절하고 싶었다.
봉주는 처음 악보를 펼쳐 봤을 때를 회상했다.
‘이거야.’
‘……와, 제가 이런 선물을 받아도, 음, 어?’
선생님이 주신 악보는 반주 지시가 텅텅 빈 곳이 많았다. 즉, 최소한의 의도만 담긴 악보. 나머지는 자율에 맡기겠다는 의사가 선명했다.
반주자를 믿지 않고서는 맡길 수 없는 악보인 셈이다. 선생님의 절친한 친구 중 한 분인 류이든 씨는 ‘얘는 신뢰가 너무 무거워.’라고 농담을 하신 적이 있는데, 이런 것 때문 아닐까.
‘…선생님, 혹시.’
‘응, 네가 채워줄 수 있을까.’
자신을 위해 쓴 곡이라고 말한 다음에 그렇게 부탁하면 어느 누가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렇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면전에 들이밀면, 대체 누가 거부할 수 있냐고.
“긴장돼요?”
옆에서 머리를 만져주시던 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실수는 문제가 아니다. 솔직히 악보만 있으면 실수는 할 일이 없다. 그럴 실력이었으면 지금 다니는 대학은 못 다녔을 테니까.
다만 문제는 자율성이다. 시키는 대로만 연주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이건 이야기가 다르다.
선생님 작품이잖아. 거기에 손을 대라는 거잖아.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어차피 오늘은 촬영이니까 여러 번 해도 된대요. 제가 또 들었죠.”
“귀가 밝으시다니, 축복받은 일이에요.”
정확히는 이번에 촬영한 영상의 음원을 그대로 앨범에 넣을 거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따지고 보면 오늘 곡을 완성하는 셈이다.
그러고 나서 오늘 했던 대로 무대 위에서 공연…….
“…확실히, 동화 씨가 왜 데려왔는지 알 것도 같고.”
봉주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넘겼다.
게다가 페이가, 이건 대학교 학부생이 받을 금액이 아니다.
아무리 자기가 반주를 자율적으로 한다고 쳐도, 그리고 공연까지 함께하기로 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금액은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계약서를 보자마자 아버지께선 ‘…음, 봉주야, 너한테 거는 기대가 크신가 보다.’라며 침음을 흘리셨다.
“돈이 화수분처럼…….”
이게, 해외에서도 인기를 끄는 아이돌의 위엄인 걸까.
페이를 줄여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노동청에 신고당하고 싶지 않다.’라는 논조의 답변뿐이었다.
말인즉 정당한 대가라는 소리인데…, 으어, 신뢰가 무겁다.
똑똑, 정갈하지만 확실히 이목을 끄는 노크 소리.
그 이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선생님. 봉주의 얼굴을 보자마자 미소를 지으셨다.
“준비됐어?”
아니요. 저는 선생님 곡에 손 얹기에는 십 년은 이른 것 같아요. 평소에는 숨 쉬듯 자연스레 건반을 눌러댔는데, 지금은 피아노 앞에 처음 앉았을 때처럼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조차 못 잡는 걸 보면 틀림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