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5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53화(321/343)
피아노 앞에서 이렇게 긴장했던 적이 언제였지.
처음으로 선생님 앞에서 연주할 때랑, 오랜만에 만나서 들려드릴 때뿐이었다. 물론 지금이랑 비교하면 약소하다.
대학교 영상 오디션을 볼 땐 긴장조차 하지 않았다. 교수님이 대뜸 불러서 즉흥 연주를 부탁했을 땐 ‘내가 해야 다른 애들도 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떨리진 않았다(여담이지만, 즉흥 연주를 정말 사랑하는 편이다).
시험은 하던 대로 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보아라.
손에 찬 땀과, 떨리는 동공, 그리고 박동하는 심장까지. 심장이 뛰는 걸 가만히 듣고 있다가 봉주는 문득 중얼거렸다.
“…프레스토(Presto)네.”
“그렇게 편곡해 줄까. 삼십 분만 기다리면 되는데.”
제 심장이 뛰는 속도를 두고 한 말을, 선생님은 느긋하게 듣고 물었다. 마이크 앞에 선 모습이 여유롭기 그지없다.
“아뇨, 아니에요. ……저, 선생님.”
“응.”
“제가 여기서 갑자기 머리가 백지가 되어 연주를 못 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계약 위반이니 위약금을 무는 건가. 음악만 하고 살아서 법 같은 건 전혀 몰라 큰일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무슨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셨다.
“그럼 촬영 종료.”
“…다른 날을 잡나요?”
“네가 할 수 있다고 하면.”
“…못하겠다고 하면요?”
“그럼 그런 거지.”
뭐지. 연예계를 몰라서 이러나. 저게 평범한가.
“여기 있는 분들, 내 사비로 고용한 거라 괜찮아. 네가 편한 대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전혀 괜찮지 않잖아. 선생님이 피땀 흘려 번 돈이!
맥락은 이해가 된다. 회사에서 받아먹은 돈도 없고, 투자받은 돈도 없으니 무산되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계약서 읽어 보면, 네가 원할 때 언제든 끝내도 된다고 적혀 있을걸.”
아버지가 대신 읽어 주시고 ‘정말 좋은 조건이라 이런 건 처음 봐.’라고만 했을 뿐, 들은 적 없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하나 전부 배려를. 대학생이지만 선생님 눈에는 아직 한참 어려 보이겠지.
“…실력을 더 길렀어야.”
“충분하대도.”
* * *
쟤는 자기 객관화가 너무 부족해.
지동화는 홀로 생각했다. 그건 자신의 탓은 아닌 듯싶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피아노 같이 연주를 업으로 삼을 생각이 있는 학생들은 대개 어느 학교에 누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그래야 콩쿠르에 나가서 입상하기 쉬우니까. 누가 어떤 콩쿠르를 준비 중인지 소문을 듣고 할 만한 곳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블랙리스트 같은 게 만들어지는데, ‘쟤는 나가면 1등을 거의 무조건 하더라.’에서 ‘쟤’에 해당하는 이들의 리스트다.
그러다가 가끔 그 블랙리스트들끼리 콩쿠르에서 붙는 괴기한 일이 벌어지곤 하는데, ‘내가 쟤보다야.’라는 생각이 근간에 깔릴 때 주로 발생한다.
그리고 봉주한테 전부 발렸다.
지동화는 여전히 그때의 콩쿠르가 끝나고 꽃다발을 건넸던 날을 기억했다.
이틀 연속 밤샘 스케쥴이 끝나고 찾은 콩쿠르. 회사에선 컨디션이 망가지니 재고해 보라고 했으나, 지동화는 고작 그런 사유로 막을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가만히 연주를 감상하고 나서, 지동화는 경이, 혹은 경악을 느꼈다.
터치부터 페달링, 모든 게 자신이 해석한 대로, 의도를 담아서 했던 그 연주.
피아노가 진입장벽이 낮아서 그렇지, 전공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다수의 악기가 그렇듯 인간의 한계를 비틀어 짜게끔 만든다.
어딜 강조할지, 빠르기를 어떻게 이해할지, 기호를 어떤 식으로 적용할지, 그런 음악적 고민이 한 음 한 음마다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숨 쉬듯 해내는 고등학생의 모습은 인간 재능에 대한 찬사를 갖게 만들었다. 분명 앞에 나온 이들을 보며 ‘잘한다.’라는 짧은 감상을 느꼈지만, 봉주는 더했다.
꽃다발을 건네러 갔을 무렵, 그 연주에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언어적 한계를 느끼며 걸어갈 때, 봉주에게 한 학생이 다가와 대뜸 물었다.
“…혹시, 연습 몇 시간씩 해.”
그럴 법했다. 닮고 싶을 만한 연주였지. 물론 시간을 따라 한다고 같은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
“그냥, 궁금해서.”
“……그걸 왜 재?”
“알려주기 싫니?”
“음, 그건 아니지만. 잠시만.”
봉주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계산하더니.
“어렵다. 학교 교과 수업 시수가 날마다 달라서.”
“…응? 그럼, 주말엔?”
그리고 그건 계산하기 쉽다는 듯이 웃으며.
“열다섯 시간 정도.”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깨어나서 자기 전까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는 소리였다.
그때, 나는 조금이지만, 채하민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저러다 손을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날 당장 지동화는 손목 관리에 좋다는 것들을 하나하나 검토해서 봉주네 집에 부쳤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지동화는 눈앞의 봉주를 쳐다봤다.
대체, 그런 연주를 할 수 있는 인간이 무슨…….
애초에 자신의 앨범이다. 퀄리티가 떨어지면 얼마를 썼든 폐기 처분할 의향이 있으나, 그렇다고 헛돈을 쓰길 즐기지도 않았다. 좋은 퀄리티가 나오리라고 믿지 않았으면 맡기지도 않았겠지.
‘……나를 닮으려거든, 객관적인 눈도 좀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곡명은 ‘Ripe’. 대개 과일이 익었다는 뜻으로 쓰는 단어다. 삶을 뜻하는 단어랑 발음이 유사하다는 건 꽤 재밌다(물론 어원적으로는 전혀 관련 없다).
봉주를 위해서 쓴 곡.
자라고, 이제 어느덧 성인이 된 봉주를 보면 감회가 새롭다. 그 작던 아이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키도 커서, 어느덧 눈높이도 비슷해졌다.
그러니, 한 번쯤 되돌아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쓴 곡이다.
지동화 자신도, 그리고 봉주도 살아온 시간을 곱씹어 보고 얼마나 컸는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되돌아보는 건 가치 있는 일이다.
그 의도는 아마 잘 전해졌겠지.
지동화는 곁눈질로 수많은 필기의 흔적이 남아있는 봉주의 악보를 보았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어도, 추억 하나를 더 남기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아니, 도리어 이게 본 목적이지.
짧았던 방송 촬영 기간에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건 기념할 만한 일이다.
물론 아직도 선생님이라 부르는 건 부끄러워 죽겠지만.
“그럼, 일단 해볼까.”
“…후, 저 한 번에 컨펌 받을 수 있도록 힘낼게요.”
봉주는 손을 조심스레 주물렀다. 자신의 손을 보물처럼 여기는 태도에 지동화는 흡족해졌다.
그래, 제 몸을 좀 아낄 줄 알아야 한다. 자신처럼.
지동화는 그러면서도, ‘컨펌은 네가 하는 건데’라는 말은 숨겼다. 봉주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끝없이 이 촬영은 반복될 예정이다. 어차피 자신이야 어떻게 연주하든 대부분 만족할 것 같으니까.
목을 한 번 풀고 마이크 앞에 섰다.
촬영 감독님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지동화는 봉주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봉주는 피아노 건반에 손을 한 번 얹고 눈을 꼭 감았다.
아마도 루틴이겠지, 저게.
그리고 섬세한 손길로 건반을 쓰다듬더니, 부드러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순간 지동화는 육성으로 감탄할 뻔했다.
첫 도입부는 자신이 반주를 세심하게 써뒀다. 선생이라는 게 첫 길도 뚫어주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러나 단순한 음정의 기록일 뿐이라, 봉주는 제가 터놓은 첫 소절조차도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깊이 고민했나 보다.
세심한 소리. 봉주가 영위하는 삶의 판단 기준이 되어 버린 아름다운 소리가 지동화의 귀를 간지럽혔다.
지동화는 집중했다.
누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
* * *
하루가 또 익어 저물 무렵
피아노 앞에 앉아 일기를 쓰듯 누르는 건반
소리. 소리가. 실수로, 다른 건반을 누를 뻔했다.
처음이다. 오케스트라 협연을 했을 때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무대는 자주 보아왔다. 콘서트는 아쉽게도 가 보지 못했지만, 영상으로나마 선생님의 작업물은 꼬박꼬박 챙겨 보아 왔다.
그럴 때도 참 좋은 목소리라고, 음색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들을 때의 파급력은.
봉주는 자연스레 화음을 내면서도 선생님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따스한 미소, 선생님 친구분들에 따르면 한 달에 한 번 볼 법하다는 그 미소를 지어주셨다.
다시 건반을 보았다.
이 반주가, 저 소리에 걸맞긴 한 걸까. 저렇게 좋은 소리에, 이런 게 맞을까.
음정이 또 익어 쌓일 무렵
침대 위에 누워 영화를 보듯 고요한 천장
컸다. 분명히 크긴 했다. 하루가 익어 저물고, 매일 피아노 앞에 앉아 음정을 쌓아갔다. 봉주는 피아노의 흰 건반을, 고요한 흰 건반을 쳐다봤다.
점점 제가 치는 곡조가 감정적으로 변해가는 걸 느꼈다.
좋지 않다. 이 곡은 너무나 담담하게 삶을 되돌아보는 한 사람의 이야기였으니까.
절제해야만 한다. 감정을 품되, 뽐내선 안 된다.
하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는 언제나 자신에게 있어선 자백제와 같았다. 속 안에 끌어안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게 만들고 표현하게 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는 언제나 논쟁거리밖에 없다. 예중과 예고를 나오며 늘 피아노랑만 살다 보니, 가끔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을 때가 있었다.
정확히는, 이렇게 해서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게 맞나 싶을 때가 있었다.
따스한 마음으로 어수룩한 아이의 말을 들어 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한 잎씩 헤아려 돌이켜보면
자신이 없어 고개를 돌린다
피아노에만 미쳐 살아서야, 그게 가능키는 할까.
순간 상념에 빠져들었다가, 봉주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런 고민은 오늘 촬영이 끝나고, 선생님과 밥을 먹으며 나눠도 된다. 지금은 적어도 저 소리에 누가 되어서는 안 된다.
* * *
연주가 끝나고 호흡을 골랐다. 봉주는 고개를 저었다.
이게 아니다. 연주 수준이 낮아서 귀가 썩을 뻔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소릴.
스태프분들이 예의상 보내는 박수에 만족하기엔, 자신의 귀가 너무나 밝았다. 다들 이런 연주로는 앨범에 실을 수 없음을 아심에도 연주자가 기죽지 않도록 응원해 주고 계신 게 틀림없다.
“…선생님.”
“응.”
“다시, 할게요.”
그렇게 말하는 봉주의 눈은 비장했다.
선생님이 실어내는 감정을 또렷이 느끼고, 멜로디가 거기에 어떻게 상응하는지도 깨달았다.
봉주는 열심히 준비한 악보를 정리하고 뒤집어 두었다.
반주의 전개를 바꿀 필요는 없다. 어차피 다 외웠으니 필적은 방해만 될 뿐이다.
그저 소리를 세심하게 깎아야 한다. 더 좋게.
“대신에, 저 딱 십 분만 주시면 안 될까요.”
“응, 얼마든.”
봉주는 천천히 연주를 시작했다.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적어도, 선생님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을 인간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러려고 지금껏 피아노를 친 게 아닐까.
아름다운 선율이 쏟아졌지만, 봉주의 귀에는 모자랐다.
다른 스탭들이 ‘아까 그거 별로였던 거야?’라고 당혹스러운 눈길을 지동화에게 보내고, 지동화는 ‘전 좋았습니다.’라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봉주에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촬영 중간에 응원 차 방문했던 류이든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봉주, 저 친구는 가끔 동화 같은 구석이 있어.’라고 생각했지만, 촬영장에는 그저 피아노의 세심한 소리만 남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