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5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54화(322/343)
다섯 번의 재촬영.
잠시 쉬는 동안, 옆에 앉은 류이든에게 영상감독이 물었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나, 왜 다 똑같이 들리죠?”
류이든은 그저 살포시 웃으며 답했다.
“저도요. 솔직히, 저는 음악적 재능이 크다고는 못할 사람이라.”
물론 점점 연주가 듣기 편안해진다는 감상 정도는 있었지만, 그것도 두 번까지가 끝이었다.
지금 와서는 어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모르는 게 당연할지두요.”
쪼록, 옆에 이현재가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답했다.
류이든은 새삼 재밌는 질문이 떠올랐다는 듯이 물었다.
“동문 다시 보니까 감회가 어때.”
“동화 형한테 배우긴 했어두 분야가 달라서 동문이라기 애매하잖아요?”
짧은 침묵, 감독님이 다른 스태프의 부름에 자리를 뜨고 이현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거, 원래 제 개인 곡 가제였는데, 뺏긴 기분이네요.”
“아예 다른 곡이었잖아. 언더 더 스노우는.”
“알죠.”
지동화는 지금 봉주의 피아노 옆자리에 앉아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 중이었다.
피드백을 하는 모양새였지만, 느끼건대.
“저거, 아마 설명회일 거예요.”
“응?”
“동화 형은 아무 말두 안 해 줄 걸요?”
자신이 직접 가사를 써 갔을 때, 지동화는 아무런 피드백도 주지 않았다. 그저 듣고, 네 의도가 그렇구나, 느낀 다음에 편곡을 고칠 뿐이었다.
그걸 보며 이현재는 조바심이 나서 가사를 몇 번이고 뜯어고쳤다.
프로듀싱할 때는 피드백을 자주 해주는데, 가사를 써올 때는 ‘그건 내가 너한테 믿고 맡긴 거야.’라는 식으로 그저 받아들일 뿐이었다.
“아마 봉주두 그래서 저렇게 여러 번 다시 하는 걸 거예요.”
선생님의 신뢰를 깰 수 없다. 그 생각 하나로.
그리고 이내 곧 깨달을 것이다. 어떤 결과물을 내놓든 만족할 수 있다는 계산 없이는, 지동화가 절대 타인에게 작업물을 부탁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걸 깨닫고 나면 이제 답이 없다. 결국 몇 날 며칠 밤을 새워 가며 끝없는 자기 발전을 추구하는 수밖에.
“옛날 생각두 나구 그렇네요.”
아련해라. 저러고도 동화 형은 ‘왜 얘네는 잘하면서 계속 자기 자신을 의심스러워할까.’라며 의아해하겠지. 다 자기가 원인인데.
이현재는 자신이 지동화 이해학 박사 학위쯤은 된다고 자부했다.
“네가 그런 말을 해도 될 나이가 됐다는 게 안 믿겨, 난.”
류이든의 말에 이현재는 피식 웃었다.
동화 형의 제자였던 적은 없는 인간은 이해 못 할 소리지만, 이현재는 알고 있다.
안타까워라, 우리 봉주. 오늘 하루 내내 재촬영 소리만 하겠네.
* * *
마지막 건반을 누르고, 봉주는 깊게 숨을 내뱉었다.
열한 번째 재촬영, 봉주는 깨달았다.
시험 때의 몇 배로 집중해서 선생님 목소리 한 음절마다 집중했더니, 몽중에 있는 듯 혼미했다.
그러고 마지막 건반을 눌렀을 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상에, 이걸 제가 쳤다고는 도저히.
음악 역사 수업을 들을 때 플라톤은 뮤즈 여신이 잠시 음악가의 몸에 접신하기도 한댔는데, 이게 그건가.
봉주는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쳐다 보았다.
여전히 굳건하게 서서 이쪽을 ‘이번엔 괜찮아?’라는 뜻을 담아 바라보는 선생님.
그러나 봉주는 ‘컨펌, 부탁드려요.’라는 뜻으로 마주볼 뿐이었다. 어쩌면 ‘칭찬, 칭찬을 부탁드려요.’라는 눈일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그런 눈을 그 속내까지 파고들 듯 들여다보시더니.
“잘했어.”
짧은 칭찬.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봉주는 탈진한 듯이 의자에 쓰러졌다.
“흐어.”
괴상한 소리가 절로 입에서 나올 정도. 온몸의 긴장이 풀린 듯 그제야 팔에 힘이 들어갔다.
연주할 때는 관절에 힘을 주면 도리어 방해가 돼 억지로 빼다 보니, 팔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했다, 어떻게든.
피드백을 신청했을 때 그저 듣기만 하고 그에 맞춰서 노래 부를 때 강조하는 점을 달리하는 선생님을 보며, 이게 온전히 자신의 일이라는 사실이 해일처럼 몰려왔었다.
그 덕일까. 집중력이 높아지고, 목소리를 돋보일 수 있는 연주를, 드디어, 해냈다.
이게 선생님이 의도한 건 아니었을까. 홀로 얼마나 성장했는지, 연주로 보여주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제야 자세를 바로잡고 앉아 촬영장을 둘러보았다.
자신만 만족한다고 해서 촬영이 끝나진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음향 감독님과 촬영 감독님이라고 소개해 주셨던 분들도 서로 짧은 대화를 나누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OK 사인인가 보다.
“고생했어.”
선생님은 어느새 한 손에 주스를 들고 있었다.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는 전혀 마시지 못해서 그렇다.
추측하건대, 어렸을 때 선생님이 자신이 커피를 마실 때마다 자주 주스를 사준 게 원인이지 않나 싶다.
그 이후로 가끔 카페에 가게 될 때면 선생님이 사 왔던 주스를 마셨으니까.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
“네. 선생님이 노래를 잘하시니, 제가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정해 온 게 다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봉주는 언젠가처럼 입을 열었다.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 저절로 입이 열릴 수밖에 없었다. 습관이랑 똑같았다.
아무리 다 컸어도, 어렸을 적의 영향은 크게 남는다.
악보의 첫 음이 수많은 것을 결정하듯이.
“제가 피아노를 치면서, 고심해봤어요.”
“응.”
“이 곡이, 삶을 되돌아보는 거잖아요.”
“응.”
“절 위해 쓰신 곡이고요.”
그래서? 말하지 않아도 선생님의 눈이 답했다.
“첫 음을, 저는 잘 잡은 것 같아요.”
“……중요한 일이긴 하지.”
선생님은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으셨다. 피아노 실력이 이제는 더 뛰어난데 그게 가당키나 하냐는 식이었다.
봉주는 아무리 봐도 그게 의뭉을 떠는 것처럼 보였다.
늘 다 알면서도 그러셨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진즉에 피아노 밖의 것이 되었는데.
그건 인간으로서 존경하며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똑같이 의뭉을 떠셨다. 기묘한 대답으로 말의 의미를 연주에 한정했다.
의미는 분명히 ‘선생님을 만난 덕에 잘 산 것 같다.’라는 것이었는데.
나이를 먹은 봉주는 지금 가장 총명한 시기다. 심지어 한국대 철학과 출신의 선생님도 두고 있다. 그렇기에 왜 그러시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부끄러우시구나. 하긴, 누가 존경한다는 말은 그럴 만한 칭찬이긴 해. 남을 칭찬하는 덴 익숙하면서 듣는 데는 늘 저러시지.
봉주는 약간 흥이 나서 자연스레 피아노 건반에 손을 얹었다.
다시 만나면 들려드리려고 준비한 곡이 많지만, 지금은 그냥 아무렇게나 흥겨운 곡을 연주하고 싶은 기분이다.
“연주해도 돼요?”
“응.”
그래서 봉주는 지동화가 작곡한 곡 중에서 가장 흥겨운 곡, ‘흥’을 피아노로 바꿨다.
연습해 본 적은 없지만, 즉흥 연주는 그것만의 매력이 있다.
그렇게 연주에 집중하느라 봉주는 몰랐다.
촬영 감독님과 음향 감독님이 대화의 흐름을 듣더니 촬영을 끝마치지 않았다는 것을. 카메라는 돌고, 여전히 음성은 기록되고 있었다.
한 곡을 마쳤는데 스태프분들이 박수를 치기에,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선생님을 위해 좋은 영상물을 촬영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상기했다.
나름대로 감사를 표할 수 있는 방법이 봉주에게는 좋은 연주밖에 없어서, 봉주는 즉석에서 메들리를 짰다.
마친 것 같던 연주에 뒤의 음을 섬세하게 연결해 선생님의 데뷔곡으로 넘어갔다. 옆에서 ‘…음.’이라는 작은 감탄이 터져 흐뭇해졌다.
음을 기억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선생님의 곡은 늘 명확한 이유와 논리로 음표가 배치되어 있다. 가끔은 철학 서적 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것도 읽으면 재밌는 철학 서적.
마침내 연주가 끝날 때, 봉주는 후련한 마음으로 피아노를 떠났다.
아, 즐거운 하루. 감독님들께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떠날 무렵.
“저, 봉주 씨.”
한 관계자분이 다가오셨다.
“네?”
“이 영상, 저희가 써도 될까요?”
“……당연하지 않나요?”
“아, 아뇨. 메들리 연주하신 거요. 이건 계약에 없던 거라, 추가 계약을 해야 하거든요.”
“아…….”
음, 못 들어줄 연주는 아니었고 영상 찍히는 거야 뭐, 콩쿠르 나가면 허다하게 찍히는 거고. 어디 올라가 있는 것도 익숙하다. 굳이 돈을 더 받기엔 이미 제 능력에 비해 과하게 받았으니까.
“그냥 쓰셔도 돼요.”
그렇게 답할 무렵, 턱, 선생님이 어깨를 부여잡으셨다.
“안 돼, 봉주.”
떨어지는 정언명령.
“자원봉사가 아닌 한, 노동엔 대가가 필요해.”
“…네!”
어쩌면, 이 기회에 선생님은 자신에게 큰 용돈을 주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었지만, 선생님 말씀을 따르면 자다가도 피아노 꿈을 꿀 정도로 복이 오는 법이다.
* * *
세 명의 연예인, 정말 잘생긴 분들과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새로운 계약서를 검토받은 뒤로 봉주의 생활은 큰 변화 없이 그저 흘러갔다.
앨범이 나오고 공연을 할 건데, 앨범 발매까지 한 달 정도 남았다고 하니까.
“자, 이걸 눌러볼까.”
봉주는 그동안 예의 그 복지 센터에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옆에는 작은 아이가 봉주의 말에 따라 건반을 누르고 있었다.
띵. 봉주는 순간 미간을 찌푸릴 뻔했다.
이 피아노, 너무 구리다.
아이가 듣기엔 나쁜 소리라 귀를 막아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소리가 울리자, ‘오!’라는 감탄을 뱉었다. 그에 봉주도 정신을 차렸다.
어제 계획했던 대로, 생전 처음 피아노를 치는 작은 아이에게는.
“…이게, 도야.”
순간 봉주는 입술을 악물었다. 자신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될까.
“와, 선생님, 신기해요.”
선생님이라는 소릴 듣는 것도 정말, 가당키나 할까.
하지만 그런 고민은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이 아이에겐 이게 피아노와의 첫 만남이고, 이 교육 프로그램에 신청했다는 건 관심이 있었다는 소리니까.
마치 어렸을 적의 자신처럼.
흉내라도 내어 보자. 그래도, 나름 피아노 전공생이 아닌가.
피아노와의 첫 만남, 이 아이가 좋아할지 싫어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자신 때문에 싫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하나 아이에게 가르치고, 만약에 연습을 열심히 한다면 어떤 곡을 연주할 수 있는지까지 한 번 보여주고 있을 때였다.
무음 모드로 해둔 봉주의 핸드폰이 울리고 그 위에 영어로 ‘야, 너 뭐야.’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후에 연달아 그런 내용의 메시지들이 오다가(한국어 연락도 그 사이사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심지어는 전화까지 걸려 왔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봉주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을 뿐, 어떤 답장도 받지 못했다.
마침내 봉주가 한 아이를 보내고 다른 아이가 올 시간까지 기다리며 작은 방에서 기지개를 켰을 때, 봉주는 핸드폰을 확인하지 않았다.
피아노가 앞에 있는데 그런 전자 기기 따위랑 놀 시간이 있을 성싶나.
아무리 구려도, 피아노는 피아노다.
어떻게든 원하는 소리를 미칠 듯이 탐색하다 보면, 그 한계치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복지 센터 복도를 걷던 선생님들이 발을 멈추고 잠시 듣고 가거나, 차라리 그 앞에 앉아 커피를 나누는 동안, 봉주는 그저 웃으면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아니, 무슨 소리가 이렇게 예뻐. 우리 피아노 이렇게 좋았어?”
복지 센터 직원이 밖에서 말하는 것도 듣지 못하고, 모든 연락을 무시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