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5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55화(323/343)
봉사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연락이 쏟아진 걸 보고, 봉주는 순간 불안해졌다.
아버지가 아프시기라도 한가, 라는 생각에 잠시 메시지를 훑어보는데, 외국 친구들도 연락을 보냈기에 일단 알림만 모두 지웠다.
외국 친구들까지 부리나케 연락했으면, 적어도 아버지는 건강하다는 뜻이니까.
저렇게 많은 연락을 일일이 확인하기엔, 봉사를 하는 동안 머리가 너무 바빴기에 밥을 먹고 볼 계획이다.
이어폰을 핸드폰과 연결했다.
음악을 들으며 걸어 도착한 집. 거기엔 아버지가 안경을 쓰시고 핸드폰을 보고 계셨다.
“다녀왔습니다!”
“봉주야, 영상 올라왔더라.”
“아, 네? 그랬나요? 어디 콩쿠르?”
“아니, 선생님이 옆에 앉아 있는데, 네가 피아노 치는 영상.”
“아, 그거구나.”
어? ……음, 그 연락들이 그러면 혹시.
봉주는 핸드폰을 꺼내 내용을 훑어봤다. 대충 ‘이 사람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냐’라는 식의 문자들.
이렇게 인기가 많으셨구나, 신기해라. 물론 알고 있었지만 직접 체감하는 건 또 다른 얘기다.
“듣기 좋아요?”
“응. 네 연주를 내가 어떻게 판단하겠냐만.”
“아니에요. 원래 비전공자가 들었을 때도 좋아야 하거든요.”
연주는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관심 없던 사람도 최소한 듣고 ‘아, 예쁘다.’ 정도는 말할 수 있도록.
“다행이에요.”
봉주는 해맑게 웃으며 방음실로 들어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핸드폰 연락은 무시해도 되겠지. 한 일주일 핸드폰을 안 보면 해결될 일이다.
봉주는 타인의 관심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런 걸로 인기를 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중요한 분들의 연락은 소리를 켜두고 나머지만 꺼두면…….
* * *
지동화는 앨범 막바지 작업 때문에 꽤나 바빴다.
채하민이 ‘집에 좀 와라!’라는 간절한 외침을 전화로 전했으나,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세월이 꽤 흘러, 비활동기에는 실버타운에 들어가 살고 있어서 그런지 작업실에서 거기까지 왕복하려면 상당히 번거롭다.
봉주가, 정말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현재를 보면서 떠올렸던 것처럼.
이현재는 가사를 스스로 쓰기에 기존의 가제였던 ‘Ripe’는 폐기됐지만, 이렇게 다시 새로운 주인을 만났구나.
어쩌면, 기지생의 말마따나 남을 가르치는 게 천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존경스러워하는 게 이토록 기쁠 리가.
띠링─!
[제가 하는 것처럼 말입니까. 관두세요, 인간이 할 짓이 못 됩니다.]혹시 가능하다면, 다음 생엔 유아교육과에 다니게 해줄게.
[아이돌보다야 낫겠습니다. 하지만 철학과나 천체물리학과로 부탁드립니다.]기지생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 늘 그렇듯, 편안한 웃음이 나왔다. 정작 그게 가능할지에 대한 확신은 서서히 희미해져 가고 있었지만.
[뭐, 모를 일이긴 합니다. 당신이 이상한 방법을 개발해 낼지도.]그래야지.
지동화는 작업물을 저장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속이 쓰렸다. 채하민이나 류이든이 봤으면 죽이려 들지 않았을까.
전자는 소음으로, 후자는 물리적으로(일을 못 하게 가둬 두는 게 지동화에겐 죽음과 같았다).
뭐라도 먹을까.
“…동화야.”
음, 채하민이 왜 여기에. 물론 어디 있든 자기 자유지만.
“나는 진짜 걱정이 돼 죽겠어, 진짜. 내가 너 나오면 놀라게 하려고 점심부터 와서 문 옆에 앉아 있었는데 어떻게 한 번을 안 나와?”
“…너 제정신 아냐, 하민.”
인간은 그런 짓을 하지 않으며, 토끼 역시 마찬가지다. 그건 병리적이라고밖에는.
“뭐 했는데.”
“뭐 하긴, 너 나오는지 보고 있었지.”
그러니까, 지금 반나절 넘게 허공을 쳐다보며 언제 문이 열리나, 그것만 감시했다는 거군.
“미친 사람.”
지동화는 간략하게 답하며 걸음을 옮겼다.
“네가 밥 먹을 때 같이 먹으러 나갈 생각이었단 말야.”
점심 무렵에 온 이유가 이거였군.
“그럼 지금 포기한 건, 배가 너무 고파서?”
“……응. 나는 네가 점심 그렇게 일찍 먹었을 줄 몰랐다, 동화야. 원래 작업할 땐 식사 시간 좀 늦어졌잖아.”
안 먹었다고 말하면, 더 시끄러워지겠지.
“설마, 안 먹었어?”
“먹었지.”
냉정하게 뱉고 외투를 챙겼다.
채하민의 거짓말 탐지 능력과 지동화의 방호 능력이 부딪쳤다.
점점 더 미세한 반응까지 파악하는 놈이나 점점 더 자신의 세밀한 근육까지 조절할 줄 아는 놈이나 제정신 아니긴 매 한 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블로센스 내에서는 지동화의 거짓말 맞히기가 일종의 놀이가 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거짓말이구나.”
글렀다.
지동화는 속으로 한 번 혀를 찼다.
여기서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 봤자 그것 역시 거짓말이라는 증거만 줄 뿐이다.
지동화는 재빠르게 걸어 나갔다.
“뭐 먹을래.”
“동화야.”
“버섯 돈까스나 먹으러 갈까.”
“……아, 나는, 정말.”
채하민은 그 뒤로 별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동화의 뒤를 따라 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도 제정신은 아니야, 동화야.”
“……뭐.”
그래서 친구 하나 보지. 낯간지러운 말은 때려죽였다.
* * *
오랜만에 찾은 식당. 고즈넉한 맛이 있다. 사실 허름하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으나, 한 사람의 삶이 녹아든 가게에 그런 표현은 온당치 않다.
지동화는 아주 당연하게 앉아서 치킨가스를 시켰다.
이곳에서 버섯이 들어가지 않는 유일한 음식은 그것이었다.
한 사람의 삶이 녹아든 가게지만, 그 버섯 사랑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어머.”
서빙하시던 분이 알아보시고 화들짝 놀랐지만, 지동화가 공손하게 인사하자 순간 진정했다.
엔터 건물 근처라 아주 가끔 연예인이 오는 일도 있기야 하니, 그녀는 마주 공손히 인사하고 음식만 놓고 들어갔다.
“신비로워, 가끔.”
지동화는 ‘뭐가’라는 흔해 빠진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게 필요하지 않았다.
“너는 말만 하면 원하는 대로 다 될 것 같단 말야.”
“…뭐가.”
그러나 이번엔 참을 수 없었다.
세상은 본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기에 의미가 있는 건데, 이 토끼 새끼는 무슨 소리를.
“말하는 거 듣고 있으면, 왠지 들어주고 싶은 느낌.”
“그건 너나 그래.”
아니, 정확히는 우리 멤버들이나, 아니, 그 망할 사이비 종교 집단까지 포함해서 그렇다.
“그래서, 오늘은 집에 갈 예정?”
“미안하게도.”
“안 미안하잖아. 이번엔 내가 이겼는데 또 거짓말을.”
거짓말 맞히기 승리자 채하민은 당당하게 돈까스를 썰어 입에 넣었다.
마들렌 효과처럼, 몇 입 씹었더니 이곳에서 지동화와 먹었던 식사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처음으로 같이 밥 먹었는데.”
그리고 그때는 자연스레 처음인 지동화 대신 주문하느라 버섯이 들어간 돈까스를 두 개나 시켰다.
버섯의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 지동화를 몰랐던 시절이라니, 그런 게 존재는 했었나 까마득하다.
“그러고 보면, 왜 그때는 뭐라고 안 했어?”
그렇게 물으면서도 채하민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알잖아.”
안 친했으므로.
지동화의 친구라고 불리는 영역에 가장 빠르게 접근한 인간이 채하민이긴 해도, 그때 당장은 아니었다.
심지어 그 영역에 발을 들이고 나서 한참이나 말하지 않았다가, 서바이벌이 끝나서야 알게 되었으니.
“참, 신비로워.”
“내 눈엔 네가 더.”
지동화는 확신했다.
아마 몇 년을 더 같이 시간을 보내든, 지동화는 채하민처럼 살 수 없을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요즘엔 이든이 형이랑 운동을 나가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너 또 쓰러질 거야.”
아주 가끔, 지동화는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았다.
지동화는 자기 몸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어서 그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데 능숙한데, 그럴 때 병이라도 들면 속절이 없었다.
이건 자기 관리를 잘하는 건지, 뭔지.
채하민은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그 사실을 깨달았기에, 지동화의 한계 직전이 어딘지 파악하고, 그 직전에 도달하기 전 작업실에서 빼 오는 걸 지상과제로 삼았다.
그럴 때마다 지동화는 ‘요즘은 운동해.’라는 짧은 한마디로 반박했다.
도대체 이 실랑이는 언제 끝이 날까.
둘 중 한 명이 포기하면 그만인데, 서로 절대 내놓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둘 다 약간 즐겼던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 울고 했을 때는 잘 들어줬는데…….”
“지금도 울면 들어주긴 할걸. 석준이 벌레 같이 기어가는 것도 다시 보고.”
요즘 따라 제일 바쁜 인간은 아마 채하민일 텐데.
연기하느라 이곳저곳에 얼굴을 비추고 다니니까. 솔로 앨범을 내기도 했고.
“아, 그나저나 이번 앨범 준비는 잘 돼 가?”
“응. 막바지. 3주 내로 나와.”
“와, 나 팬싸 당첨되면 가야지.”
“미친 소리.”
실제로 할 생각은 없었지만, 저 답은 꼭 듣고 싶었다.
“팬분들 자리 뺏지 마.”
“당연하지.”
채하민은 해맑게 웃었다. 시간이 흘러, 그의 머릿속이 꽃밭일 게 틀림없어 보이는 무구한 웃음이 아니라, 조금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웃음이었다.
“…만일, 농담이 아니었으면 직접 처리했을 거야.”
“와아,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큰일이네.”
* * *
그래서 왔다.
채하민은 모자와 마스크, 그리고 선글라스를 쓴 채 웃었다.
관계자분에게 부탁해서 몰래 이벤트성으로 마지막에 넣어달라고 청 드렸다.
팬분들의 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또 개인 앨범 팬미팅이니 동화한테만 얼굴을 보여주고 몰래 빠져나갈 계획이다.
채하민에게 지동화의 위험도는 최하급일 정도로 온순한 생물이라 가능한 결정이었다.
사실 팬분들은 눈치를 챌 것 같아 함께 대기할 수는 없었지만, 몰래 무대 옆, 스태프석에서 지동화의 팬미팅을 지켜봤다.
어쩌지, 이것 좀 스릴 있어. 이따가 저 뒤로 돌아 단상에 오를 생각을 하니 설렐 지경이었다.
지동화는 평온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얼굴이었다(이런 표현을 쓰는 건 지동화 지인 중 채하민이 유일하다, 그의 얼굴은 순진이라는 단어와는 너무나 멀다).
그리고 어느 한 분이 올라왔을 때, 지동화는 눈을 약간 크게 뜨고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짧은 문장. 그러자 건너편에 있는 분이 감격한 듯 입을 틀어막고는 책상에 얼굴을 들이박았다.
“언어학 논문을 많이 읽어뒀는데, 학사 졸업 논문 얘기할까요.”
콩콩, 머리를 두어 번 박은 팬분이 고개를 들었다.
“부끄러워! 절대 안 돼. 혹시 몰라서, 정말 기억해 줄까 하고, 오기 전에 졸논 꺼내 읽었는데, 못 참았단 말이야!”
지동화는 느긋하게 웃었다.
“저는 재밌었습니다.”
오랜 연예계 생활은, 지동화가 자신의 얼굴을 무기로 쓰게 만들었다.
그게 자신을 아껴주는 분들에 대한 보답이라는 듯이, 얼굴의 각도, 시선의 위치, 하나하나 세심하게 계산해서 행동했다.
그럴 때마다 붉어지는 귀가 채하민은 볼 때마다 신비했다.
동화는 왜 안 익숙해질까. 아마 평생이 가도 저렇게 수치스러워 할 것 같아.
그러나 재밌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오늘 자신이 진 게 아니라면, 분명히.
“잊어줘, 부탁할게. 그런 논문, 절대 안 돼. 내가 미쳤지, 박사를 줬어야 했는데.”
그러면서 주섬주섬 자신의 논문을 꺼냈다.
물론 채하민의 눈에는 양장으로 된 두꺼운 책으로 보였다.
“끈이 짧아서 제대로 이해는 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소중하게 품에 안아 드는 모습은 계산된 게 아니었다.
채하민은 흐뭇해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박사 따자마자 오려고 했는데, 전임강사 자리가 들어와서 준비하느라. 석고대죄하려고 왔답니다.”
“몇 년 후였어도, 기억하고 있었을 테니 괜찮아요.”
다시 머리를 박으려 하시는 팬분, 그러면서 조심스레, 그러면서도 무례하지 않게 그 밑에 손을 넣어 박지 못하게 만드는 지동화.
“평생, 아이돌 해줘.”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외치고 있는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