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5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56화(324/343)
채하민은 단상에 올라가며 고심했다. 동화랑 오래 알고 지낸 탓일까, 꽃밭 같았던 머릿속에 나무도 자라고 동물도 뛰놀다 보니, 가끔 상념이 들 때가 있었다.
이 직업은 놀라울 때가 있다. 더 정확히는, 우리 그룹에 놀랄 때가 있다.
아이돌의 장수 기준은 대개 7년으로 잡곤 한다. 인기를 나름 끌었던 그룹은, 재계약 시즌에 불상사를 겪는 게 꽤 흔한 일이라 그렇게 부르곤 한다.
정말, 여기까지 왔구나.
다들 솔로 앨범 하나씩은 냈고, 개인 활동의 비중 역시 커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한집에서 살고 있었다.
실버타운의 최대 주주인 자신도 어린 마음에 ‘다들 여기서 살자!’라는 희망에 부풀었지만, 지금은 주변을 둘러보며 깨달았다. 그게 참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친하게 지내는 건 비교적 보기 쉽지만, 단체 생활을 계속 유지하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게 다.
“……여기서 뭐 해, 하민.”
얘가 건 저주 때문이다.
단상 앞, 두 손에 앨범을 꼭 쥐고 서자 고개를 든 지동화.
모자, 마스크, 그리고 선글라스는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지 애초에 없는 것처럼 묻는 말투로 물었다.
무슨 말이든, 말하는 대로 되는 사람. 혹은 말하는 대로 되게 하는 사람.
지금은 알고 있다. 지동화는 마음먹은 대로 일이 풀리게끔 늘 최선을 다하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것을. 아마 뒤에서 멤버들 한 명 한 명을 챙기며 노력 중이겠지.
“팬이라서요!”
속삭이듯 말하고 앉자 지동화가 물었다.
“커피차로는 성에 안 찼나 보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분은 좋은지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음.”
짧은 끄덕임. 그러고는 미소 지으며 앨범을 받아 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에요.”
놀아주겠다는 신호. 채하민은 약간 흥이 나서 모자, 선글라스, 그리고 마스크를 벗었다. 뒤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아, 네! 이번에 새로 입덕했어요.”
“혹시 계기가 뭔지 여쭤도 될까요.”
“곡이 좋아서요. 작곡 직접 하시잖아요!”
평소라면 칭찬을 했을 때 미간을 찌푸려야 하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역시, 팬분들한텐 다르다, 지동화!
“…부끄럽네요.”
“제가 입덕은 늦었어도, 과거 활동은 다 훑고 왔거든요.”
지동화는 사인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네.”
“형이 제일 고생한 것 같아요.”
“…무슨.”
몰입에 실패했는지 지동화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저 사인을 끝마치고 건넸다.
채하민은 그걸 소중하다는 듯이 품에 꼭 안아 다른 팬들처럼 행동했다.
“진심이에요.”
“…알아.”
그러고는 펜을 들어 책상을 툭툭 쳤다.
“멍청하게도 자신이 한 고생을 넌 모르지만.”
언제나 이랬다. 지동화는 자신의 고생이 ‘제일’이라는 사실을 한사코 부정했다.
다들 한 팀으로 활동하는데 거기에 경중을 두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면서. 그는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지동화 덕분에 멤버들 모두 열심히 하면서도 제 앞에 떨어지는 콩고물의 크기에는 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멤버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가장 눈치가 느린 석준조차 알고 있을 텐데.
게다가 지동화나 류이든 중 한 명이 곁에 있으면 저절로 불안한 심정이 안정된다. 류이든조차도 지동화한테 심리적으로 의지하는 부분이 있으니, 동화가 제일 고생이겠지.
어쩌지, 정말. 은혜 갚기는 또 끝없이 멀어졌다. 친구끼리 무슨 은혜냐는 말을 붉어진 귀로 가끔 했던 지동화라도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사인, 감사해요, 형!”
마지막에 채하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백스테이지로 떠났다.
어떻게 갚을까, 정말.
채하민은 무대 뒤편으로 가며 화양 어르신을 생각했다.
괜히 재벌 집안 아들이겠는가. 정보를 토대로 돈을 축적하는 어르신 이야기는 이젠 알 나이가 되었다.
남의 약점을 부여잡고 있는 게 비도덕적이라고 눈살을 찌푸리기엔, 자기도 동화 덕분에 꽤 자랐다. 한때 둘이 아버지의 소개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분은 말씀하시길.
‘걔는 왜 나한테 배운 걸 이상하게 쓰나 몰라.’
억양과 말투, 단어의 선정, 모든 걸 계산하는 건 정치에서야 흔한 일이다.
상대방을 압박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원하는 바를 토해내게 하는 것도 전부 말을 통해 이뤄지니까.
지동화는 화양 어르신과 알고 지내며 그런 것들을 배워 갔다고 한다.
‘남을 움직이려거든 약점이 제대로인데 말이야.’
그리고 지동화는 그 재주를 은혜를 입히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곤란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고, 알아서 자신을 위해 노력하게끔.
화양 어르신은 그게 의도가 아닐까 추측했지만, 채하민이 보기에 그건 천성이다. 성질이 사나웠던, 과거의 지동화도 버섯 돈가스를 끝내 다 먹지 않았던가.
백스테이지에는 긴장했는지 후, 길게 숨을 뱉고 있는 봉주가 무대를 위해 준비 중이었다.
팬사인회에서 꼭 이 무대를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선생님의 제안에 부리나케 달려왔다.
여기 또 은혜 입어서 자기가 먼저 동화를 위해 일해 주는 아이가!
“와! 봉주야!”
동질감에 입꼬리가 떨렸다. 소리 낮춰 부르니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하민 형!”
“온다는 얘기는 들어서 보고 가려고 했더니!”
하민은 봉주를 꼭 포옹했다. 어렸을 때부터 곁에서 삼촌처럼 지내다 보니 몸에 익었다.
“언제 또 이렇게 컸어.”
이 정도면 동화랑 키 비슷하겠다. 매년 한 번 정도는 보는데도 이렇게나…….
“저도 아침마다 가끔 놀라요.”
“그래, 더 커서 동화 뭉개 버리자.”
“…음, 그래도 될까요?”
“그게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떼었다.
정장을 갖춰 입은 모습은 동화 따라간 콩쿠르 때마다 보는데 나이를 먹으니 옷의 태가 살았다. 패션으로 이름 날리는 채하민은 옷깃을 정리해 주며 어깨를 토닥여 줬다.
“봉주 씨 스탠바이 할게요.”
그에 채하민은 두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쳤다.
“긴장하지 말고!”
“네!”
지동화한테 은혜 갚기 캠페인이나 열어 볼까.
채하민은 봉주를 무대로 보내며 고심했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갚아. 지동화는 채권자로서는 최악이다. 다 갚았나? 싶을 때쯤 이자를 붙이고, 새로운 빚을 얹어주니까.
참 죄가 많아, 우리 동화는.
* * *
공연을 마치고, 나는 옆에 앉은 봉주에게 물병을 건넸다.
“어땠어?”
“저는 클래식 공연만 했잖아요. 응원이나 환호 같은 건 처음이라 당혹스러웠는데, 은근히 신나더라고요.”
“하긴.”
박수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열광이 존재하나 봐요, 뒤이어 나오는 말에 지동화는 그저 웃었다.
문화의 차이일 뿐, 네 무대에서 느낄 감동은 비슷한 수준일 텐데.
채하민은 봉주에게 쿠키를 챙겨주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정말 삼촌 같은 모양새였으나, 생긴 게 아이돌이라 그리 정겨운 모양새는 아니었다. 차라리 육아 예능을 보는 기분이다.
“어쩜 이렇게 피아노를 잘 치니.”
“선생님 덕분에요, 형.”
자신은 왜 선생이고 쟨 왜 형일까. 모든 이유를 안다고 해서 진실에 납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진실을 지적하면 도리어 화를 내는 사람도 왕왕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게. 우리는 동화한테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까.”
옆에 앉아 자신도 같이 쿠키를 먹던 채하민이 중얼거렸다.
“맞아요, 저 갑갑해질 때가 있어요.”
“나도! 쟤는 맨날 괜찮다고만 하고, 뭐 해준다고 해도 괜찮다고 하고. 내가 얼마나 슬픈데.”
“선생님의 나쁜 습관이죠.”
“하, 버릇은 세 살에 고쳐야 한댔는데…….”
뭐 해, 망할 하민아. 봉주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선생님이라 불린 이상 올바른 태도를 보여야 하므로 지동화는 얌전히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우리 동화 생일에 연회라도 열까?”
“연회요?”
“해외 대학교 같은 데 가면 파티 같은 거 안 하나? 그런 거.”
그건 미국 하이틴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잘못된 환상이잖아. 꼭 여자 주인공이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에 남자 주인공이 반할 것 같은.
아쉽게도 우리 중엔 여자 주인공도 없거니와 남자 주인공 역시 없다.
“다들 모여서 동화를 위해 사 온 선물 설명회도 하고.”
“오…….”
짧은 감탄. 이에 채하민은 응원이라도 받은 듯 말을 이어나갔다.
“봉주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어렸을 때 바이올린 배웠거든. 오랜만에 연습해서 들려도 주고. 봉주랑 합주도 해 보고.”
“…그건 죄송해요. 제가 귀가, 그, 좀 예민해서.”
‘네 연주는 쓰레기일 게 틀림없어서 귀를 오염시키고 싶지는 않다.’라는 문장을 들었음에도 채하민은 여전히 밝은 웃음을 흘렸다.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고 굳건하게 선 자태가 마치 장군과도 같았다.
“못 들어주겠어도, 거기에 동화에 대한 감사를 담아 연주하면 괜찮을 거야.”
안 괜찮아,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새끼야.
지동화는 클래식을 들으며 기뻐하는 아이 옆에 가서 ‘아이는 활발하게 커야지!’라며 헤비메탈을 틀어주는 인간을 보듯 채하민을 노려봤다.
헤비메탈은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정해진, 차라리 계시에 가까운 장르고 채하민의 바이올린은 아마 그에 준할 것이다.
그러나 봉주는 순간 감명을 받은 듯 재차 감탄했다.
“맞아요, 사실 음악은 감정이 제일 중요하긴 해요.”
“감정을 살리려면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지동화는 곧바로 냉혹한 현실을 가르쳐주었다. 실력 없이 감정만 들어차 있는 음악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그러자 봉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아요, 동의가 이어졌다.
“실력조차 압도하는 감정이 있잖아. 애인을 잃고 노래를 부른다든지 하면…….”
허나 채하민은 다시 사족을 덧붙였다. 이번에도 봉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확실히 그래요. 절제하지 못할 크기의 감정은 확실히요!
“나에 대한 감사는 그 정도 감정에 비교하기엔 미약하지.”
지동화도 지지 않고 반론을 붙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봉주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가요? 의문이 뒤따랐다.
아니, 자신이 죽은 것도 아니고 여기 어디에 의아해 할 문장이 있을까.
지동화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차라리 자신이 죽고 나서 저런 대화를 나눈다면 십분 동의하겠지만, 자신은 두 발로 서 있잖은가.
“아니지, 동화한테 감사한 마음은, 너무 커서 벅차오를 지경이지.”
채하민은 순하고 선한 얼굴로 악마처럼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그 정도 크기의 감사를 표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걸 가르쳐 주듯.
“……맞아요, 진짜 그래요, 형.”
신의 목소리라도 들은 신자처럼, 봉주는 멍하니 감탄했다.
“그럼 같이 동화한테 감사하기 위한 연회 할까?”
“와아, 상상만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봉주가 하고 싶어 하는데 동화가 안 올 리는 없겠다, 그치?”
채하민은 여전히 해맑은 미소로 웃었다. 그러나 지동화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자기가 오라고 해 봐야 오지 않을 게 뻔하니 봉주를 꼬드겼다는 거군.
언제부터 이런 계획을 세웠을까. 설마 오늘은 아니겠지.
토끼 같은 얼굴에 순한 성격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지동화를 다루는 데 그는 점점 더 능숙해져 가고 있었다.
“…하, 언젠데. 봉주 방학 기간은 알아?”
“돈이면 못 하는 거 많이 없어, 동화야. 내일 당장도 할 수 있는데?”
채하민은 핸드폰을 한 번, 짧게 흔들었다.
연회를 어느 정도 규모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채하민이 자기 입으로 직접 ‘돈을 쓰겠다.’라고 선언한 이상, 휘황찬란할 건 분명했다.
“……하민.”
“어!”
“바이올린은 켜지 마.”
지동화는 봉주에게 음료를 건넸다.
사이에 있으니 자꾸 먹을 게 들어와 당황스러웠지만 봉주는 우선 받아 한 모금 마셨다.
“……응.”
짐짓 아쉽다는 듯이 다시 봉주에게 쿠키를 건네는 채하민.
이번에도 봉주는 얌전히 받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