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6화(36/343)
36.
제작 회의와 레슨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 이례적으로 나와 채하민만이 현관에 섰다.
학교에 나가고 없는 이현재와 석준 대신 류이든이 우리를 배웅해 준다.
“잘하고 와, 얘들아. 늘 예의 바르게 고개 숙이고 다니고. 이상한 사람 만나도 얼굴에 내색하지 말고, 특히 동화 형, 너.”
…리더를 시켜놨더니 잔소리가 늘었어.
심지어 어제는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이라며,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세뇌 직전까지 말했지.
강승준 매니저님이 우리를 차에 태워 나간다.
능숙하게 운전하며 우리에게 디텍션의 제작 회의에서 유의할 점을 하나둘 언급하기 시작한다.
“지금 만나뵈러 갈 PD님은 성격이 나쁘지 않으신 분입니다. 저희 회사랑 관계도 좋은 분이시고. 다만…….”
…문제가 있나?
“너무… 독특한 분이시니 주의해 주셔야 합니다.”
“오, 어떤 점이 독특하신데요?”
“뭐랄까요, 자기 세계가 뚜렷해서 거길 침범하면 안 됩니다.”
…그건 그냥 인간에 대한 예의잖습니까, 매니저님.
“침범했다간, 끔찍한 시간을 겪을 거라고 준성 씨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준성, 그분도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니던데.
방송국 WEB에 들어선 우리는 강승준의 안내에 따라 여기저기 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벌써 지치는걸. 집 가고 싶어.’
“이제 이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시면 PD님께서 들어오실 겁니다. 저도 같이 있겠지만, 실수는 최대한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네.”
“네!”
강승준은 한 박자 느린 내 대답과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채하민의 대답을 듣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기괴하게 들리는 순간, 안에서 누군가가 박수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딘가에 처음 도착할 때 자주 배경음악으로 활용되는 TOT의 ‘환영합니다!’라는 앨범 수록곡이 크게 울렸다.
완전히 문이 열리자 ‘(환) 블로센스 첫 예능 경축 (영)’이라는 현수막이 펼쳐져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군.
웬만하면 뇌가 멈추는 일이 없는 채하민도 뇌가 일을 하지 않는지 멍하니 서있기만 한다.
“사랑하는 후배분들! 환영합니다!”
그리고 뛰쳐나오는 것은 케이크를 든 준성.
…저놈, 저거 나름 톱 아이돌 중 하나라며. 왜 이렇게 한가한데.
“후배분들이! 제가 나오는 예능에 나오는데 제가 옆에 있어주지 않을 수가 없죠! 장 PD님은 괴짜시지만 제가 도와드리면 간단!”
“와! 준성 님! 팬이에요!”
채하민은 그렇게 소리 지르며 폴짝폴짝 뛰어가더니 준성이 들고 있던 케이크를 받아 든다.
…케이크가 목적이군. 메모, 토끼는 케이크로 낚을 수 있다.
준성은 조용히 나한테 다가오더니 어깨동무를 하며 말한다.
“제가 보낸 문자를 무시하셔서 약간 서운했답니다, 후배님.”
…음, 그 I Want You 포스터? 미안한데, 제가 I Hate You라서.
“…회의실이 이 난장판이 돼도 괜찮은 겁니까, 선배님?”
“아! 물론 장 PD님께 허락받았죠. 사실 이미 저기 앉아계신답니다.”
…뭐?
나는 준성을 피하느라 눈치채지 못했고, 채하민은 케이크 위의 딸기를 먹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곧바로 준성을 버리고 뛰쳐나온 나는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드렸다.
“…안녕하십니까, PD님, 블로센스의 동화라고 합니다.”
그러자 채하민도 딸기의 달콤함에서 벗어나 내 옆으로 와 90도로 몸을 꺾었다.
“안녕하세요! 하민입니다!”
“이야! 신인이라 그런지 에너지가 넘치네요! 그럼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해 볼까요?”
이 모든 게…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의 효과다.
어제 세 시간 넘게 PD를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의 매뉴얼을 세뇌한 덕분이다, 망할 강아지 놈.
이후 이어진 회의는 단순했다. 방송의 컨셉과 진행 방식, 그리고 사이사이 쓸데없는 준성의 사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여기 역할 카드에 있는 설정을 외우고, 설정대로 움직이되, 출연진 중에 숨어들어 있는 단 한 명의 살인범을 추리해 내시면 됩니다.”
“살인범은 중간중간에 트릭을 만들어서 살인을 저지르면 되고! 쉽죠, 후배님들! 만약에 살인범이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를 죽이면 승리, 그 전에 검거되면 탈락. 마피아 게임이랑 룰 자체는 같아요.”
“그럼 이제, 역할 카드를 뽑아볼까요. 지금 뽑은 역할을 방송 중에 계속 이어나가야 하니까 신중하게 뽑아주세요!”
…확률은 다 똑같은데 신중해서 뭐 합니까.
나는 곧바로 카드를 하나 뽑아 들었다.
‘기왕이면 조용한 컨셉이면 좋겠군.’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이제 ‘왼손잡이 남자’입니다.]…무슨 역할이 이딴.
“오, 왼손잡이 남자!”
장 PD는 내가 고른 역할 카드를 보더니 미묘한 표정으로 씨익 웃는다.
“고생 좀 하시겠네요, 이 캐릭터 특이하거든.”
그리고 그때 준성의 눈이 활짝 뜨이더니 이쪽을 바라본다.
“장 PD님, 하민 후배 캐릭터는, 좀 이상한데요?”
“뭐길래?”
채하민은 여전히 해맑게 웃는 얼굴로 자기 카드를 보여준다.
“나 프리마돈나라는데, 이게 뭐야, 동화야?”
…와우, 오페라 인기 여가수로군.
“오! 둘이 인연인가 봐! 왼손잡이 남자가 프리마돈나 매니저 역할이거든!”
그리고 장 PD는 황홀하다는 듯이 천장을 바라본다.
“아아, 완벽해……. 두 역할은 친한 사이로 가야 되거든.”
그러자 준성이 내 귀를 잡더니 속삭인다.
“저때 무조건 가만히, 건들지 말고 있어야 해, 후배님.”
…도리어 궁금한데. 이게 판도라의 상자인가.
그러나 그때 준성이 귓속말을 하지 않은 채하민이 묻는다.
“PD님, 동화랑 제가 친한 거 어떻게 아셨어요?”
“…큰일 났군.”
준성은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눈앞에 든 의사처럼 고개를 젓는다.
“하민이라고 했죠! 여기 옆에 앉아봐요. 제가 이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제작 비화를 들려줄게요!”
아… 저런 타입이군.
“…한 20분 말씀하십니까?”
나는 조용히 준성에게 귓속말을 했다.
“한 시간. 저도 처음에 엄청 당했죠.”
저런.
그리고 한 시간 반이 흐르고, 우리는 차에 올라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중.
“…동화야, 나 지금 살아있어?”
“…죽진 않았지.”
반쯤 관에 들어간 모양새긴 하지만.
채하민은 한 시간 넘게 듣고 싶지 않은 장 PD의 캐릭터 만들기 썰을 웃는 표정으로 들었고, 그 결과 지금 얼굴 근육이 반쯤 마비된 상태다.
“근데 동화야, 너는 디텍션 본 적 있어?”
“아니, 너는?”
“난 촬영하기 전에 최근 화들은 조금 챙겨 보고 가려고.”
채하민은 차에 몸을 눕히며 묻는다.
“그나저나 동화, 너가 내 매니저인 거니까, 촬영 중엔 내가 부려먹어도 되겠네?”
…이론적으론 그렇지. 망할 토끼야.
* * *
“아, 그래서 이걸 극한으로 보내면 면적이 된다는 거네요?”
“응, 기본 정적분 개념이 도출되는 과정을 알아야 활용이 되거든. 여긴 분자가 2야. 이럴 땐 어떡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이현재는 내 질문에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기 시작한다.
‘확실히… 똑똑해.’
채하민이랑 룸메다 보니 이럴 때도 확실히 비교가 되는군.
“…이러면 되겠네요?”
나는 빠르게 이현재가 보여준 식을 확인한다.
“…정확해. 습득력이 빨라, 현재.”
“희한한 게, 형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보니까 이해가 돼요!”
지금은 이현재의 과외 시간. 데뷔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과외를 하는 중이다.
“그런데 동화 형, 저희 타이틀곡 형이 쓴 걸로 된 거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우리가 쓴 거지.”
내가 그렇게 괴롭힌 걸 벌써 까먹었나.
“형이 편곡하거나 작곡한 곡으로 노래하면, 엄청 편한 거 알아요?”
…맞춤 제작인데, 당연한 거 아니냐. 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감추려고 노력한 곡이니.
“그리고 또 내일은 촬영도 가는데 저 이렇게 과외도 봐주고… 괜찮아요?”
그리고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문을 열고 류이든이 들어온다. 손에는 과일이 들려있다. …내 열다섯 살 때 모습 같군.
“어우, 우리 새끼들! 이렇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다.”
정정, 그냥 팔불출 보호자다.
“그래도 너무 오래 하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 좀 쉬면서 해.”
그러곤 과일을 책상에 놓아두며 이현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내일은 나랑 같이 운동하러 가자, 현재.”
“…와, 너무 좋아요.”
저, 건강중독자 놈. 능글맞은 성격으로 자꾸 사람을 꿰려 하는군.
“동화도 이틀 뒤에 같이 가자.”
하, 리더라 봐준다.
“…응.”
그러자 류이든은 이현재 방에 걸려있는 카메라를 보고 손을 흔든다.
“팬 여러분들! 제가 드디어 동화를 집 밖으로 끌어내 운동이라는 걸 시켰습니다! 동화가 녹음이랑 안무 연습 때 말고는 나가는 꼴을 제가 못 봤는데, 드디어!”
…아주 난리가 났군. 외향적인 놈.
* * *
“자, 하민, 오늘 같이 나오는 분들의 이름은?”
“준성 형, 제인 씨, 견훤 씨, 소휘 씨!”
“정답. 그분들의 최근 활동은?”
“준성 형은 패스, 제인 씨는 ‘내 아들의 연인’ 주연, 견훤 씨는 ‘두 시의 리듬’ 라디오, 소휘 씨는 ‘나를 두고 가요’ 앨범 발매!”
“…괜찮네. 만났을 때 할 일은?”
“90도로 인사!”
앞에서 운전을 하는 강승준 매니저님이 우릴 보곤 계속 피식 웃으신다. …저는 진심으로 걱정이 됩니다, 매니저님.
“디텍션에서 중요한 것은?”
“살인범이 살해를 저지를 때 남긴 흔적이랑 살해된 사람이 남긴 다잉 메시지로 범인 추리하기!”
“넌 범인이야?”
“난 아니야!”
그렇군. 유용하게 써먹어야겠다. 옆에 꼭 붙어있어야지.
그리고 그렇게 대학로의 한 대공연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안녕하십니까, 블로센스의 동화 하민입니다.”
“오! 새로 온 게스트구나! 반가워, 난 제인. 알지 모르겠네.”
“…내 아들의 연인, 감명 깊게 봤습니다.”
“저도요! 저는 5화에서 나오던 선배님 감정선이 너무 좋았어요!”
“오! 너희들 아는구나! 그거 그렇게 성공한 건 아니었는데.”
…당연히 모른다. 외운 거지, 그냥.
나름대로 인기 있는 배우 제인은 나름 라이징 스타로 꽃피는 중이라고 한다. 물론 초면이다. 실제로도, TV상으로도.
“나도 들었어. 준성이 회사 신인 아이돌 그룹이라 그랬지? 나중에 앨범에 사인도 좀 해줘.”
…확실히 준성의 말마따나 성격이 좋군. 들어보니 이런 신인한테 살가운 기성은 많지 않다던데.
“너희도 분장 받아야지 않아? 역할 뭐 뽑았어. 우리는 게스트가 역할 먼저 고르거든.”
“저는 프리마돈나요!”
“…마담의 매니저입니다.”
“오! 나는 프리마 우오모야.”
…일등 남배우 역할.
“나는 쓰리피스 수트랑 오페라 가면이던데, 하민…이라고 했지? 너는 어떤 분장이야?”
“저는 드레스래요!”
키 181에 나름 골격이 큰 거대한 토끼 놈이 입는 드레스라니, 정말…….
“세상에! 오프숄더였으면 좋겠다!”
“저도 기왕 입는 거 예쁜 거면 좋겠어요. 살면서 처음 입는 거거든요.”
“와, 얘 꽤 재밌네.”
그렇게 채하민이 뇌를 빼놓고 있는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리고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누는 중에 한 사람이 더 분장실로 들어온다.
…견훤과 준성. 같이 들어오는군.
“어! 준성아, 얘네가 네가 꽂은 애들이야?”
“에이, 선배님, 꽂았다뇨. PD님이 좋게 받아들여 주셨죠.”
“에이, 이 바닥 한두 번 보나. 근데 신인 홍보하기엔 우리 프로는 너무 컨셉이 강하지 않아?”
나는 그 틈을 타서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십니까, 늘 라디오 즐겨 듣고 있습니다. 블로센스의 동화입니다.”
“오, 내 라디오 들어주는구나. 고맙네. 어제 한 라디오에서 나온 사연 재밌었지?”
하, 이럴 줄 알고 어제 라디오랑 예전에 나왔던 라디오 레전드 사연을 전부 외워왔지.
“…경기도 안산에 사는 45세 가정주부분의 사연이 저는 재밌었습니다. 특히 남편한테 한 말이 재밌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 비위를 맞춰주려니 벌써 사회성 수치가 떨어지는 기분이다. …다음부터 예능은 무조건 채하민 류이든을 추천해야겠군.
그런데 정작 견훤이 당황하는 표정을 보였다. 기분 좋으라고 열심히 듣는 척해줬는데, 왜 저런담.
류이든이 최선을 다해서 사회성 특강을 해줬는데 제대로 못 하고 갈 수는 없다.
“…그거 말고 다른 사연은?”
…아, 뭔데. 더 자세히 들려주면 되나.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거주하는 24세 학원 강사분의 사연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교육에 대한 회의감이 인간 실존의 고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자 견훤은 더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준성을 힐끗 쳐다본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단 말인가?
“하하, 우리 후배님이 기억력이 좀 좋아요, 선배.”
“나 무슨 AI랑 대화하는 기분이었어, 준성아. 얘, 캐릭터 특이하다더니, 그렇네.”
…모르겠군. 어려워, 정말. 차라리 철학책을 읽는 게 더 쉽겠어.
그렇게 나름대로 훈훈하게 대화가 진행되는 속에 소휘가 자리에 들어온다.
어느새 지친 나와 여전히 활기찬 채하민은 바로 가서 인사를 올렸다.
…류이든, 당신의 노력, 헛되지 않으리.
그리고 그렇게 인사하는 우리를 소휘는 한번 흘깃 보더니 웃는다.
“너네 아이돌이야?”
흠, 말투가 공격적이군.
“…네.”
“요즘에 아이돌들 너무 많아서 나는 잘 모르겠더라. 판이 판이라 그런지 실력 없으면 금방 사라지더라고.”
그렇게 싱긋 웃고는 지나간다.
…오, 예의 바르게 돌려 까는군. 너네도 곧 사라질 텐데 니네랑 친해져서 뭐 하냐는 말이다.
일단 한 명한테는 사회성을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나한텐 이득이다.
그리고 이런 눈치는 더럽게 없는 채하민이 나를 붙잡고 속삭인다.
“동화야, 저분은 기억력이 안 좋으신가 보다.”
하, 정말 대단해, 마담.
“…그러게.”
* * *
분장을 받을 순서가 돼 우리는 의상과 소품을 받아 들었다.
“…모노클을 왜 끼는 건지.”
검정 연미복에 모노클, 반만 깐 머리를 한 채 나는 거울을 들여다 본다. 대체 이게 무슨 컨셉인지.
“아! 동화 씨, 이거 까먹으셨어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목과 허리를 일직선으로 한 채 고개를 숙였다.
“…진짜 신사 같네요.”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고 채하민이 나오길 기다린다.
“와! 동화야! 이거 봐! 밑으로 공기가 들어와!”
…미친놈.
채하민은 노란색 계통의 댄스 드레스와 굽이 낮은 단화를 신고 챙이 큰 모자까지 쓰고 있다. 치마의 폼이 크고, 상의도 널럴해서 발랄한 이미지가 부각된다.
“…마담, 촬영하러 가시죠.”
“어! 벌써 연기하는구나. 그럼 나도.”
그러더니 채하민은 우아한 자태로 걸어 나오며 말한다.
“그래, 매니저, 와서 양산 좀 씌워줘.”
…여기 실내입니다, 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