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6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60화(328/343)
지동화는 이른 새벽에 받은 연락에 떨리는 호흡을 진정시키려 했다.
침대 머리맡에 있는, 팬분들이 만들어준 심바 씨를 모티브로 한 인형을 잠시 한 번 눈에 담았다.
음, 저것보단 엄청 멋있어졌지.
인형과 무슨 대화라도 나누듯, 십 초 정도 가만히 눈을 맞추던 지동화는 오늘 아무런 스케쥴도 없었음에 감사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 방에서 나섰다. 이 실버타운의 장점인지 단점인지 잘 모를 것은, 홀로 방을 쓰기에 채하민의 잠을 깨우지 않아도 된다.
호랑이의 수명은 대개 십 년 안팎이라고 한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오래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짐승의 시간을 인간과 비교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더 함께할 수 있었으면 한다.
욕실에 들어가 빠르게 몸을 씻어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르니 조금 더 단장해야 하나 싶지만, 조금이라도 더 함께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니.
지동화는 황급히 밖으로 나섰다.
검은색으로 갖춰 입어 깔끔하지만 묘하게 음울한 인상을 풍겼다.
그는 무표정했다. 어딜 가든 카메라가 따라붙을 수 있는 직업이라, 어쩔 수 없었다.
* * *
지동화가 급히 차를 타고 도착했을 때, 짤막하게 심바의 상태를 설명해 주던 심바의 담당 사육사 홍헌민은 기묘한 제안을 했다.
“음, 심바가요, 아무리 봐도 공격하진 않을 것 같죠? 물론 건강이 안 좋아서 그럴 힘도…….”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슬픔에 잠긴 듯 말을 줄였다.
호랑이가 인간과 친구가 되는 건 망상이라고들 한다. 배가 고프지 않고, 당장에 위협이 되지 않으니 내버려 둘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이다.
그저 곁에 있으면 묘하게 도움이 되는 생물 정도, 홍헌민은 분명히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니 유리벽 너머로 지동화와 심바를 만나게 한다는 건 그에겐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반인이 사고를 입었다간 일단 법적 책임을 무는 건 당연한 일이고, 지동화는 연예인이다.
법적 철퇴 이전에, 살해를 입지나 않을까 두렵다(연예인 팬덤에 대한 왜곡된 편견이다).
“먹이를 놓고 올 건데, 저랑 동행해 보실래요? 가까이 가지는 못하지만요.”
“…네?”
미친 짓이다. 이런 탈선, 그의 인생에서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일반인을 맹수와 한 공간에 둘 생각을 하다니.
“유리 벽에 계속 막히는 게, 안타까워서요.”
홍헌민은 통통, 옆에 있는 유리를 쓰다듬었다.
볼 때마다 애달팠다. 차라리 사직할 각오를 하고, 안에 들여보내 줄까, 고민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학술적 지식과 경험적 이해가 상충했으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심바가 죽으면, 자신이 직업을 유지한들 의미가 있을까.
“절대, 저한테 떨어지시면 안 돼요. 다쳐도 제가 다쳐야 하니까.”
“……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 지동화 씨를 보는 심바의 눈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는 걸.
그리고 또한 알 수 있었다. 심바를 보는 지동화 씨의 눈 역시 평범한 동물을 보는 눈빛이 아니라는 것을.
알 뿐이지, 말했듯 이해할 수는 없다.
동물이 기묘하게 지동화 씨를 따르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도 잘은 모르겠다.
그 특유의 무해함 때문일까. 어느 순간부터 채식을 시작했다고 하던 것도 그런 걸까. 채식 동물로 오인해서…, 아니, 그러면 먹어야 하잖아…….
“제가 다치는 건 괜찮거든요? 밥 주다가 공격받았다고 하면 상해 보험도 있고…….”
“저, 사육사님, 괜찮으십니까.”
지동화가 냉정하게 물어보자, 홍헌민은 그제야 자기 혼자 열심히 중얼거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유리에 댄 손도 다시 눈에 들어왔다. 파들파들 떨리는 손은, 아마도 슬퍼서 그런 것 같다는 감상이 뒤늦게 몰려왔다.
아, 이제 정말, 심바가 죽는구나. 그 십 년이 넘는 시간이 이렇게나 순식간에.
그러니까, 모르겠다. 마지막 선물을 해주고 싶다.
그렇게 가까이서 보고 싶어 하던 둘을,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아뇨. 모르겠네요. 이렇게 길게 담당한 아이는 처음이었거든요.”
이제는 중년이 되어 눈가에 주름이 생긴, 인자한 얼굴로 홍헌민은 웃었다.
그의 얼굴엔 긴 시간 햇빛 아래에서 심바를 지켜본 걸 증명하듯 노화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동화 씨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질 않으셨네요.”
“…자주 듣습니다.”
“그 특유의 침착함은, 나이도 더 많은 제가 본받아야 할 점이고요.”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은 사람이야, 정말.
몇 년이, 아니, 몇십 년이 지나도 저 상태 그대로 있을 것만 같다.
매일 와서 유리 벽 앞에 앉아 가만히 바라보고, 혼자 대화를 걸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옆엔, 심바가 늘 멍청하게 유리에 머리를 박고, 애달프게 손을 벽에 얹고, 지동화가 사라지면 며칠을 우울해할 것이다.
그 풍경은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영원히 그렇게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 이 문을 열면, 여전히 그 풍경이 펼쳐져 있을 것 같았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
비록 그사이에, 현실적인 이유로 유리 벽이 막혀 있었지만.
문고리에 손을 얹고 잠시 숨을 골랐다.
“어떠세요? 해보시겠어요?”
“다친다면, 제가 다치는 걸로 하고 싶습니다.”
“저, 잘려요.”
“…음, 그럼 심바의 선택에 맡기는 쪽으로.”
“와, 제가 평생을 기른 아이한테 미래까지 맡기다니, 낭만적이네요.”
“저도 친구한테 목덜미를 물릴지도 모르니, 같습니다.”
홍헌민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문을 밀고 들어섰다.
* * *
자신이 안으로 들어서면, 당연한 연례행사인 듯 심바 씨가 달려 나와야 했다.
유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왜 이딴 게 자신의 앞에 놓여 있냐는 듯이 불만스럽게 유리를 발로 툭툭 쳐 보아야 했다.
그러나, 심바 씨는 이쪽을 보곤,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다, 아주 천천히 걸어 나와 유리 앞에 턱 앉았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모든 걸 깨달았다는 듯이, 이곳을 넘어 지동화와 만날 수 없음을 알았다는 듯이.
여기, 네 자리잖아, 어서 앉아.
무언가 말을 거는 것처럼 보였다.
지동화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일까, 이 기분은. 홍헌민 사육사님이 정신이 없는 틈을 타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을 때, 느꼈던 기묘한 감각에 다시금 휩싸였다.
드디어 저 벽 없이 한 공간에 들어가게 될 예정이라니.
정말 그래도 될까. 그건 무언가, 어겨선 안 될 규칙을 어기는 것이 아닐까.
“…음, 심바, 기다려, 잠시만.”
지동화는 심바 씨가 기다리는 자리를 외면한 채 사육사님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에 자리에서 일어난 심바 씨는 천천히 걸어 지동화의 뒤를 따라가다, 벽에 걸음이 막혀 그대로 주저앉았다.
홍헌민 사육사님을 따라 들어간 곳에는, 정말 음식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보호구 같은 건 착용하지 않나요?”
“웬만한 건 착용해도 물리면 뼈 부러져요. 이빨보다는 치악력이 더 문제인 거죠. 호랑이는 목을 먼저 물어 버리거든요? 그래서 거길 튼튼하게 대비하느니, 다가가지 않는 쪽이 합리적인 거죠.”
음, 그리고 저흰 다가가려고 하지 않나요. 오늘 물리면 살아도 전신이 마비될 수도 있겠군.
“일부러 겁주십니까.”
“네. 솔직히 이게 맞는 건지 저도 모르겠어요. 어릴 때야 야성이 없다지만, 다 크고 나서는 절대 아니거든요. 물론 우리 센터가 심바를 굶기지는 않지만요! 저 진짜 걱정되니까, 제 뒤에 꼭 서세요, 아시겠죠!”
지동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목숨이 꼭 나 하나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목숨은 부지해야지.
사육사님이 고기를 챙겨 들고 앞장섰다. 그러고는 뒤돌아서서 바구니를 하나 건넸다.
“오세요.”
“네.”
그걸 받아 들고, 지동화는 덤덤하게 웃었다.
몇 걸음 앞, 두꺼운 철문이 보였다.
터벅, 터벅,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철문.
곧 있으면 저곳을 건너게 되는 거구나.
갑작스레 심장이 뛰었다.
심바 씨와의 첫 만남을 제외하곤, 한 공간을 점유한 듯, 점유하지 못했지만, 오늘은, 아마도 마지막으로.
하아, 깊게 숨을 내쉬었다.
슬픔이 밀려오려다가도, 마지막에 보여주는 표정을 단정히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끼익, 괴이한 쇳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부가 드러났다.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유리 벽이 보장하는 안전함에서 벗어났다는 건, 동물에 대한 신뢰라는 이해 불가능한 개념을 받아들인다는 소리다.
……신비로워라. 누가 옆에서 설득해도 듣지 않을 소리를, 이렇게 스스로 믿고 있다니.
지동화는 사육사님의 말에 따라 뒤에 얌전히 서 있었지만, 어서 빨리 발을 내딛고 싶었다.
“자, 그럼 동화 씨…….”
라는 말이 튀어나올 때, 그 뒤로 심바 씨가 사족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기척에 사육사님이 고개를 돌렸다.
심바 씨는 문턱 앞에 털썩 앉았다. 기다린다는 듯이, 들어오라는 듯이.
지동화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천천히 걸어갔다.
생물이라면 느껴야 할 생존 본능조차 발동하지 않았다.
마침내 지동화가 문턱 앞에 섰을 때, 심바 씨는 잘생긴 얼굴을 지동화의 바지춤에 툭 부딪쳤다.
한 걸음 더 내딛자, 이번엔 지동화가 들어올 수 있도록 일어나 옆으로 살포시 자리를 옮겨 주었다.
다시 한 걸음 더, 지동화는 어느새 사육장 안에 있었다. 멍하니 고개를 돌려보자 유리 벽이 보이고, 그 너머로 심바 씨가 보아왔을 풍경이 펼쳐졌다.
“……이렇게 쉽게.”
저 유리벽 하나 넘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일 줄은 전혀.
멍하니 있자, 심바는 몸에 힘을 주었다.
경직되는 근육, 홍헌민의 눈엔 그게 분명한 도약의 자세로 보여 순간 손을 뻗어 지동화를 밖으로 빼내려 했다.
물리려거든, 자신이.
그러나 짐승을 따라잡기엔 인간의 반응 속도는 미약해서, 심바는 그대로 지동화를 덮쳤다.
마치 쓰러지는 게 대자연의 규칙이라는 듯이 등을 바닥에 대고 말았다.
서서히 다가오는 심바 씨의 잘생긴 낯짝, 지동화의 목을 노리듯 뻗어온 그 얼굴은.
핥짝, 한 번 얼굴을 핥았다. 마치 자신의 가족에게나 해주듯이.
그에 홍헌민은 또다시 자신의 상식이 와장창 무너져 내림을 느꼈다.
“……이게 대체, 뭐야.”
그런 중얼거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심바 씨는 계속해서 지동화의 얼굴을 핥다, 지동화가 멍하니 고개를 들자 한 걸음 물러섰다.
“……안녕.”
조용한 중얼거림.
자신의 앞에 호랑이 한 마리가 우뚝 서 있었다.
위용이 넘치는 자태 그대로, 건강이 나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게.
“오랜만.”
완전히 상체를 들어올려 드디어 마주보는 심바 씨.
그는 맹수다운 자태로 턱을 괴고 누워 있었다.
“쓰다듬어 봐도 괜찮을까.”
심바 씨는 알아들을 수 없는 질문을, 지동화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마치 답을 기다리듯 시간을 끌고, 천천히 손을 뻗었다.
머리에 손을 얹자, 심바 씨는 잠시 눈을 감았다.
지동화는 천천히 손바닥을 움직여 그 털을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부드러웠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촉에, 지동화는 멍하니 눈물을 한 방울 흘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