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6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61화(329/343)
심바 씨는 쓰다듬는 손길을 받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맹수의 기상이 드러나는 자태로 걸음을 옮기더니, 지동화의 무릎에 머리를 얹고 드러누웠다.
호흡이 쌕쌕거렸다. 눈을 꼭 감고 평화를 즐기듯이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지동화는 심바 씨의 얼굴이 올라올 때부터 굳어있던 손으로 뺨의 눈물을 툭 닦아냈다. 그러고는 무감한 얼굴로 다시 손을 뻗어 심바 씨의 목덜미에 손을 올렸다.
“이게 뭘까, 정말.”
옆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침음이 흘렀다.
사육사님은 들고 온 먹이를 식사대에 올려놓고 유리 벽에 등을 대 앉았다. 그의 눈빛에는 신비함과 경악이 날뛰고 있었다.
“심바가 사람을 은근히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는데.”
“사육사님한테도 다가가잖습니까.”
몇 번 보았다. 심바 씨가 사육사님을 편하게 여기는 모습을. 가끔은 다가가려던 움직임을.
“가방끈이 길면, 도리어 방해가 될 때가 있잖아요.”
쓸쓸한 웃음이 이어진다.
“들리는 얘기가 많아요. 호랑이 생태 연구를 하려고 여기 연구원 겸 사육사로 있다 보니까, 안전사고 얘기가 듣기 싫어도 들리거든요. 그러다 보면, 다가와도 뒷걸음질을 치게 돼요.”
지동화는 고개를 내려 심바의 얼굴을 보았다.
평화로워 보이는, 그러나 삶의 끝자락에 선 호랑이.
사육사님은 이성적으로 이런 심바 씨가 무섭나 보다. 언제든 목덜미를 물어뜯을 수 있는 동물이라서.
음, 솔직히 그게 맞다. 차라리 이상한 건 자신이 아닐까. 도저히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고요하다. 지동화는 사육사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늘 이곳을 찾을 때면, 저분과도 자주 대화를 나눴다. 자신과 똑같이 유리 벽 밖에서 심바 씨를 애달프게 보는 눈을 기억하고 있다.
“저는, 잠시 나가볼게요.”
사육사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털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심바가 힘들어 보이면, 저를 불러주시고요.”
“…옆에, 앉으시는 게 어떻습니까.”
멈칫. 걸음이 멎었다.
여전히 심바를 내려다보던 지동화 씨는 정말로 아무런 변화도 없는 표정이었다.
“십 분 후에요.”
동물을 연구한다는 건 대화할 수 없는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다.
그렇기에 홍헌민은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았음에도 비언어적인 신호를 먼저 이해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다.
고작 십 분으로는 혹여 모자랄까.
“아니다, 한 시간 후에 곁에 앉으러 다시 올게요.”
턱,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닫히는 문.
지동화는 순간 ‘이거 괜찮은 건가’ 싶었다. 상식적으로 맹수와 일반인을 한 방에 넣어둔다는 선택이니. 평소의 사육사님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었다.
유리 벽 너머로 홍헌민 사육사님이 방에서조차 나가는 게 천천히 흘러갔다. 슬로우모션처럼.
* * *
문이 닫히자마자, 지동화는 하염없이 울었다.
호랑이는 자신의 뺨에 떨어지는 물줄기에 비라도 오나 싶어서 지동화의 얼굴을 보았다.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호, 눈에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디 상태가 나쁜 걸까.
자신의 몸처럼,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 자신만큼이나 살아왔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처음 봤을 때, 뭔지 모를 곳에 감금돼 한쪽 발에 뾰족한 것에 찔려 있을 때, 자신의 곁에서 가만히 사주를 경계하던 존재.
연약한 자신이 죽을까 곁에서 계속해 신경 써주던 존재다.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본능에 새겨져 있었다.
호랑이는 지동화의 뺨을 한 번 핥았다.
아프지 말거라.
산군답게 자비로운 자태로, 이번엔 자신이 아픈 지동화의 곁에서 사주를 경계할 것이다.
여기는 좁다. 본래 유전자에 새겨진 자신의 영역보다도 더욱.
숲을 거닐다 보면 괴이한 장애물을 마주친다. 그러나 넘어갈 생각을 해보진 않았다.
이곳에 찾아오는 이를 기다려야 하니까. 자신의 터전을 벗어나서는, 찾아오지 못할 테니.
호랑이는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물을 보며 걱정이 깊어졌다. 그릉, 옅은 소리를 내고는 지동화의 품에 파고들어 갔다.
예전엔 분명 이 손으로 자신을 안아줄 수 있었는데, 어느새 덩치든 뭐든 자신이 더 커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호랑이는 알지 못한다는 듯이 그 안에 파고들었다.
지금 자신의 몸은 나약해서, 경계에 신경 써야만 한다. 누군가 이때를 노려 습격한다면 약한 자신도 함께 죽을 테다.
그렇다면, 남은 힘을 끌어모아, 목덜미를 물어 들고 도망쳐야겠지.
몸이 문제다. 호흡이 쉽지 않다. 팔다리가 제 뜻대로 움직이는지 잘 감이 오지 않는다.
“심바.”
익숙한 음성이다. 호랑이로서는 음운을 파악할 순 없지만, 음성만큼은 명확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 그에게 그것은 말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울음과도 같이 다가왔다.
오늘따라 떨리는 음성이다. 역시 상태가 좋지 않다.
가로막았던 보이지 않는 벽을 기억한다. 그리고 오늘, 그 벽을 넘어온 것을 안다.
심바는 연신 혀를 내어 지동화를 핥다가도, 그의 손이 자신의 털을 쓰다듬고 있음을 느꼈다.
“아파 보이네.”
익숙하지 않은 음성이다. 그러나 편안한 음성이다.
늘 이곳에 오면, 지동화는 홀로 떠들고, 자신은 그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일이었다.
마치 자신이 무언가에 찔려 괴로워할 때, 옆에 있었던 것처럼.
“다시 만나자.”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음성은 이전과 달리 떨리지 않았다.
혹여 상태가 괜찮아진 건가 싶어, 호랑이는 잠시 지동화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걸,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
[그건 무슨 말입니까.]“끝이 있으면 시작도 있는 법이니까.”
[혹여 다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얘기라면, 늘 말하듯 이론적으로 불가능합니다.]“가방끈이 길면 방해가 될 때도 있잖아.”
호랑이의 눈엔 보이지 않는 대화가 이어진다.
차차, 물이 멎었다. 상태가 호전되는 걸까. 고기를 먹어야 한다. 아프니 입맛이 돌지 않는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아프지 않을 때 잘 먹어둬야만 한다.
“유리 벽을 넘어와서야 이렇게 따스한 것도 느끼는 거고.”
기존의 상식에 지레 포기해서야, 이렇게 쓰다듬을 수나 있었을까.
모든 일이 그렇듯, 류이든이 늘 말하듯, 해보기 전엔 알 수 없는 법이다.
[당신도 새삼 많이 변했습니다.]“그건 몇 번을 말하는 건지.”
지동화는 자신의 뺨을 닦아 내렸다. 다 늙어서는 청승이다.
호랑이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먹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 걸음에 기운이 없었다. 그러고는 ‘안 오고 뭐 해’라고 말하듯 지동화를 빤히 쳐다보았다.
“미안, 심바.”
어쩔 수 없이 일어났지만, 생고기를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신 그 옆에 앉아 심바를 얌전히 쓰다듬었다.
이별이 이렇게 슬프구나.
어렸을 적엔 너무나 급작스러워 받아들일 시간조차 없었는데, 시간이 주어졌다고 해도 바뀌는 건 하나도 없었다.
전화로 받은 부고든, 이렇게 곁에서 지켜보는 평화로운 끝이든, 모든 게 참 슬프기 그지없다.
* * *
홍헌민은 문밖에 서서 핸드폰으로 관찰용 CCTV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했다.
만일 사태가 일어나면 당장 달려들어가기 위해 마취총도 한 손에 든 채였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마취총은 사용 허가를 받아야만 하는데, 일부 맹수를 관리하는 연구자들에겐 긴급 사태에 한해 선사용 후보고가 허락되어 있었다.
이런 일을 알면 자신을 아껴주시는 팀장님도 별수 없이 자를 수밖에 없겠지.
지동화가 화면 안에서 다 운 것을 확인하고 재빨리 달려가 총을 반납했다. 사용 목적에 ‘안전의 제고’라는 단순한 단어를 나열하고 다시 들어섰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나긋한 목소리가 반기듯 울렸다.
“오셨나요.”
홍헌민이 몸에 힘이 풀렸다. 평화로운 걸음으로 안에 들어섰다. 절로 긴장이 차올랐다.
하, 살면서 여기 앉아 있는 건 꿈꾼 적만 있는데, 현실이 되다니.
지동화 씨의 다리 위에서 얼굴을 비비던 심바가 홍헌민을 쳐다보더니 ‘뭐야. 안전한 거잖아.’란 듯이 다시 고개를 내렸다.
홍헌민은 천천히 그런 심바에게 다가가 앉았다.
기척을 느꼈을까, 심바는 발 한쪽을 홍헌민 쪽으로 뻗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퍼뜩 긴장했지만, 홍헌민은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그 발이 힘없이 툭 무릎 위에 얹어지는 걸 모두 천천히 눈에 담았다.
“……정말, 정말 얼마 안 남았네.”
먹이조차 먹지 않았다. 동물에게 생존은 지극히 중요한 일이다. 병이 아니다. 그저 육신이 자신의 한계와 부딪친 것이다.
꾸역꾸역 연명하게 만들 수도 없다. 동물의 의사를 알 수 없는 자신으로서는, 그게 심바에게 고통이 될지 행복이 될지 알 수 없다.
“정말, 이 일을 하는 게, 참 힘드네요, 이럴 때는.”
홍헌민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손을 뻗어 심바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친밀한 접촉은 처음이다. 심바는 발톱으로 약하게 홍헌민의 무릎을 긁었다. 혀를 내어 홍헌민의 손을 한 번 핥았다. 그 간지러운 감촉에 홍헌민은 웃음을 흘렸다.
“귀여워라…….”
그러나 웃는 얼굴과는 달리 저도 모르는 새 목소리는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이 아니라 슬픔 때문에.
지동화는 그를 배려하듯, 눈물을 모른 척하고 여상히 답했다.
“그러게요.”
“이렇게나, 귀여워. 리포트 제출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예요.”
저 벽은 안전함을 위한 장치다. 호랑이라는 짐승이 인간의 사회에 섞여들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벽을 넘어서 호랑이와 친구가 되었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면, 대개는 ‘학대했겠지.’나 ‘오해겠지.’라고 할 것이다.
“영물이었구나, 우리 심바.”
지동화는 그의 농담에 웃음을 흘렸다.
“안 된다는 건 대개 이유가 있는데…, 참 이상해요.”
착잡하다.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나 안전하다는 것을.
심바는 적어도 영물 가까이 되는 생물이라는 것을.
그러나 불확실성이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니.
“그래도, 다음에는 이렇게 위험한 생물한테 다가가시면 안 된답니다.”
다시 웃음을 흘렸다.
지동화는 심바가 천천히 잠에 빠져들려는 모습을 보며, 뭐라 답하려다 멈췄다.
홍헌민도 ‘음.’이라는 짧은 침음을 냈다.
고요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침의 이곳은 본래 소란스러워야 하는데, 평소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다, 홍헌민은 숨을 내쉬는 것도 고요히 하려고 애썼다.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심바의 호흡이 멎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푹 자고 다시 보자.”
지동화가 조용히 중얼거렸을 때, 홍헌민은 그 말의 진의를 깨닫지도 못했지만, 울컥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러게요, 다시 깨야지, 심바.”
고요한 오전, 창밖에 펼쳐진 숲에서부터 바람이 불었다.
따스한 햇살이 변화하는 각도에 따라 이곳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 각이 더욱 가팔라졌을 때, 심바는 숨을 멎었다.
과연 그에게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행복했을까, 홍헌민은 거기에 자신이 없었다.
언제든, 동물에 대해선 불확실함이 넘쳐나니까.
그러니 부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자신도 심바와 지내며 행복했듯, 이 아이도 그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