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6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62화(330/343)
슬픈 감정이 지나치면,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살면서 체감해 본 건 몇 번 되지 않는다.
망할, 왜 동물은 사람보다 일찍 죽는 경우가 많을까. 최소한, 자신도 늙어서 손에 주름이 생길 때쯤, 그때 끝이 다가오는 편이 더 나았을 텐데.
작업실에 누워, 지동화는 켜져 있는 컴퓨터도 끄고 드러누웠다. 실버타운으로 들어가기는 망설여졌다. 그러니 홀로 유폐될 수 있는 곳을 찾아, 부러 먼길을 타고 이쪽에 들어섰다.
‘화장을 하려고 해요. 저 개인적으로도 정이 깊어서. 따로 봉안을 해두려고요.’
‘저도, 반을 보태도 괜찮을까요.’
‘당연하죠.’
침묵만을 남기는 대화 뒤로는 기억이 흐릿하다. 안 된다. 좋지 못한 버릇이다. 모든 걸 선명히, 선명히 기억해야만 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않는 것이니까. 이번에도 비겁하게 가둬 둘 수는 없다.
매해 해야 할 연례행사로 찾아가야 할 위치가 변경되었다. 부모님의 유골함이 있는 곳 근처에, 심바 씨도 함께 있을 테니, 사후 세계가 있다면, 심바가 그 곁에 머물러줬으면 좋겠다.
지동화는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몸살은 늘 정신이 유약한 틈을 파고들었다. 긴장의 끈이 팽팽할 때는 그런 적이 활동 초기를 제외하고는 없었는데, 이렇게 감정에 파묻힐 적이면 아픔이 밀려왔다.
이별(離別), 단어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뿐이다. 별(別) 자는 그 기원이 되는 갑골문에서는 칼과 뼈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더 정확히는 뼈에서 살을 발라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별과 나눔을 뜻하는 글자를 만들며, 먼 옛날의 그들은 죽음을 떠올린 것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헤어짐 중 가장 강렬한 것은 사별이었다.
이 이야기는 우연히 읽게 된 책에서 발견한 후 가끔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럴 때 가끔은, 헤어질 영(另, 뼈 발라낼 과(冎)에서 기원했다)과 칼 도(刀)로 구성된 그 모양새가 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어쩌면 그들은 그 한 글자 안에 사별 이후의 심정을 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억지로 이성적인 이야기로 도피하는 것도, 정신력이 버텨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지동화는 그대로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 땅에는, 한 마리의 호랑이가 더는 살아가지 않는다. 핸드폰에 사진이 한 장 오며, ‘아직도 여기서 대기 중!’이라는 쾌활한 문자도 오지 않는다. 낯설다. 모든 날이.
오늘 스케줄에서 실수하지 않은 건, 아마도 그가 가진 정신력의 밑바닥을 쥐어짠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지동화는 무너지듯이, 소파 위에서 잠에 빠져들었다. 작업실에 들어서면 좀처럼 나가지 않는 습성은 다들 알고 있으니, 구태여 찾진 않겠지.
그곳이 마치 호랑이 굴이라도 되는 것처럼, 몸을 누였다. 지친 심신을 회복하기 위해서.
* * *
어두워. 석준은 복도를 걸으며 묘한 생각을 했다. 조명은 이렇게 밝은데도, 참 어둡단 말이지. 회사의 가장 안쪽, 그리고 가장 큰 작업실. 회사 밖에 작업실을 구해도 된다는 걸, 직접 거절하셨다.
아마도, 밥을 안 드셨겠지. 다른 형님들은 찾아가서 괜찮은지만 한번 대화해 보라고 했지만, 이건 불가항력이었다. 동화 형님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밥 먹는 것조차 잊는다는 것이라고, 그는 호언장담할 수 있었다.
동화 형님은 기인(奇人)이라 배고픔도 잘 못 느낀다고는 하지만, 석준이 보기에 그건 육체에서 보내는 신호를 억지로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형님이면 뭔들 못하겠어.
지동화가 외면의 변화는 가장 적어도 내적인 변화는 가장 큰 것과는 반대로, 석준은 외면적으로는 몹시 남성스럽게 컸음에도 속은 여전히 순진한 오타쿠 그 자체였다.
류이든에 따르면, ‘걔는 나중에 장례식장에도 위즈니 캐릭터 넣어달라고 할까 봐 좀 무서워.’라고 진지하게 중얼거렸던 전적이 증명한다. ‘그럼, 존중해야지.’라며 지동화가 곧바로 답하고, ‘뭐, 그러기는 할 건데, 우리 준이 누가 뭐라고 할까 봐….’라고 류이든도 수긍했다.
그걸 몰래 엿들었을 때 느꼈던 안정감. 어디서 내놓기는 나이가 나이라 슬슬 부끄러움을 배워가던 석준이 방송에서 대놓고 공주와 왕자, 그리고 동물의 피규어로 가득 찬 방을 보여주게 된 이유다.
힘들 때일수록 밥을 먹어야 헛생각이 들지 않는다. 윤성호나 류이든이 늘 해주던 말이었다. 연습생 때부터 약간 겉돌았다는 건, 늙어서야 깨달았다. 아마도 자기는 참 멍청하고 눈치가 없어서 몰랐던 것 같다. 자기를 싫어하는 것쯤은 알았지만, 따돌림이라고는 차마 인식하지 못했다.
석준은 남들의 악의에 둔감해서 그런지, 도리어 선의에는 민감했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이들은 눈빛만 봐도 그날 하루의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끼며 늘 행복하게 사는 건 주변에 그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손에 샌드위치와 주스를 들고, 마침내 작업실 문 앞에 도착했다. 자신도, 다른 멤버들도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회사에서 가장 큰 작업실이다.
짧은 노크,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 그럴 리가. 다들 개인 스케줄로 떠나 유일하게 시간이 있었던 자신이 밥을 사 왔지만, 그럴 리가. 이럴 때 하민이 형님의 예측이 틀릴 리가 없다. 동화 형님 한정으로 천재적인 눈치를 가졌는데.
‘동화가, 많이 힘들어할 것 같아. 그러니까 찾아가 주라, 준아.’
어떻게 동화 형님의 현 위치를 그리도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하민 형님은 이렇게 동화 형님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고 찾아가 보라 부탁하고는 했다. 그럴 때면 늘 틀리지 않았는데.
심바 씨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자신과는 친하지 않은 분이지만, 동화 형님에겐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석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번 더 문을 두드렸다. 여전히 답이 없었다.
……아파서, 쓰러지셨나.
동화 형님은 스트레스가 극도로 심각해질 경우, 머리를 혹사하곤 했으니까. 그것도 정말 나쁜 버릇이지만, 형님의 머릿속을 따라잡을 재주가 없어서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석준은 퍼뜩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파에 쓰러져 있어. 어쩌지, 응급조치, 응급조치. 뺨을, 쳐야 하나. 아니야, 그런 폭력적인 게 응급조치라는 단어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을 리가!
“혀, 형님, 일단 제가 안아 들고 뛰겠습니다.”
석준은 음식을 내팽개치고 번쩍 지동화를 들어 올렸다. 류이든 다음으로 육체적 능력이 발군인 인간이라고는 해도, 지동화도 건강 관리에 힘썼는데 무겁다는 기색조차 없었다.
터벅터벅 그대로 걷다가 뜀박질이 시작되었다. 무지가 죄라면 석준은 중죄라, 이 꼴로 밖에 나가는 게 무슨 개짓거리인지도 이해하지 못했고, 재빨리 차를 타야 한다는 생각에 회사 이곳저곳을 뛰는 것도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도 알지 못했다.
“동화 형님이! 심바 씨를 따라!”
라는 헛소리를 뱉어서 직원들이 막 스케줄을 끝낸 류이든에게 ‘준 씨가 그런 말을 하던데요?’라고 말을 옮기게 될 줄도 몰랐다.
머릿속엔 소중한 이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밖에 없었다. 원래 그런 멍청이다. 올곧고 순수한 게 선해 빠져서, 사회적 여파를 신경 쓰거나 주위의 시선에는 얽매이지 않는다. 그런 복잡한 계산보다는 단순한 결과에 사로잡힌다.
물론 어렸을 적에는 강이 있는 줄 모르고 나비를 쫓는 아이에 불과했지만, 나이를 먹으며 긴급한 사태에 닥치면 강이 있는 걸 알아도 나비를 쫓아 달리고 마는 괴상한 어른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내려놔, 준.”
곁에 놓고 직접 붙잡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나비 따위 총으로 쏘면 그만이다. 지동화는 흔들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석준에게 말을 건넸다.
“…형님?”
“골 울려.”
이건 진짜다. 끔찍한 두통이 머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럴 땐 이 두통이 익숙하게
“괘, 괜찮으세요! 형님이 쓰러진 줄 알고!”
“……잔 거야.”
지동화는 석준이 내려주자마자 두 발로 서서 머리를 부여잡으려다 말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회사 사람들 중 일부가 다가오려다 지동화가 두 발로 서는 걸 보며 다행이라며 돌아섰다.
아, 상황이 모두 이해됐다. 지동화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려다 자신의 주머니에 없음을 깨달았다.
“준, 핸드폰 좀.”
“아, 저 봉투에 넣어 둬서.”
“…음, 나도 자주 그래서 할 말은 없지만.”
지동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지나가던 직원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김주희 대리님.”
“……어? 제 이름, 어떻게 아시는.”
자기 명치께를 만지는 걸 보니 사원증이라도 걸고 있나 확인하는 듯했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회사 직원이신데요.”
당연히 모두의 이름은 미리 외워 두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부를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죄송하지만, 핸드폰을 빌릴 수 있을까요.”
“아, 그럼요. 여기요.”
“감사합니다.”
지동화는 알고 있다. 류이든은은 미쳐도 제대로 미친 새끼라는 걸. 나머지 두 놈도 미친 건 매 한 가지다. 그러나 스케줄표 상으로, 볼 때, 류이든에게는 어서 연락을 줘야.
“동화 형!”
저렇게 과속해서 뛰쳐나오는 사태를 막을 수가 있다.
“쓰, 쓰러졌다며! 막, 막,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간다고!”
“……하.”
이 근처에서 스케줄이 끝나는 이 미친놈이 달려오는 사태는 정말, 번거롭기 그지없다.
“오보.”
“흔해 빠진 변명! 창의력이 낮은 걸 보면 아픈 게 틀림없어!”
두통이 심각하다. 몸살 기운도 아직 빠지지 않았다. 이것들 앞에서 쓰러지는 건 단 한 번뿐인 일로 족하다. ……아니, 두 번이었던가.
“다, 나가.”
지동화는 부러 냉정하게 한마디를 뱉었다.
“……어? 어, 어, 그런데, 너 몸은.”
“괜찮아.”
류이든조차 연기인 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평온한 얼굴.
“조금, 시간이 필요해서.”
아니, 무감한 얼굴. 일견 슬퍼 보이기도 하고, 안타까워 보이기도 하고, 미안해 보이기도 했다. 무엇이 슬픈지는 자명하고, 무엇이 안타까운지도 알 수 있었지만, 무엇이 미안한지는 잘 모르겠다.
“…응.”
류이든은 한 걸음 물러섰다. 지동화는 평소 명백한 거부 의사를 잘 밝히지 않는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 중 이현재 다음으로 싫어하는 게 많은 사람인데도.
지동화를 오래 지켜봐 온 류이든은 알고 있었다. 대개는 싫다는 감정보다 우선하는 게 있어서. 그리고 보통은…….
류이든이 물러서자, 지동화는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터벅거리는 걸음걸이는, 여기 있는 누구도 보지 못한, 심바의 걸음걸이처럼 힘이 없었다. 머리는 복잡하고, 감정이 요동치며, 저 둘에겐 미안해 죽겠다.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차근차근 서재에 책으로 쌓아둘 시간이. 오롯이 홀로 삭혀, 자신의 안에 묻어야만 한다. 그게 올바른 애도의 태도다.
지동화는 작업실로 들어서, 문을 닫아 잠갔다. 뒤늦게 계단에서 누군가 뛰어 올라오는 소리가 울렸다. 밀치듯 문을 여는 폭발음, 채하민이 주변은 둘러보지도 않은 채 작업실로 달려가다, 류이든에게 손이 잡혔다.
“……형?”
“들어가면 동화, 너랑 절교해.”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 연구 제12강, 협상할 땐 상대방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미끼로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