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6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63화(331/343)
동화에 대하여.
이현재가 명명한 대화의 시간.
각 멤버의 이름을 넣어 ‘○○에 대하여’ 다른 멤버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이다.
사소한 다툼을 방치하면 곪는다. 이 정도로 성장하고도 한 팀을 유지하려면 아무리 작은 사태라도 서로 의견을 조율하며 최선의 방책을 고심해야만 한다.
솔직히 오랜만이다. 지동화에 대해서는.
보통 맏형 두 명(당연하게도 지동화와 류이든)은 분쟁을 일으키는 이들이 아니다 보니 당연한 이치다.
다만 류이든은 이현재를 놀리다가 짜증에 미치게 만들거나, 지동화는 일을 더럽게 열심히 하다가 채하민을 빡치게 할 때도 있지만, 어쨌든 ‘○○에 대하여’의 주인공이 되는 빈도는 적었다.
“…이거 하는 의미가 있어요? 동화 형 심정은 다들 이해하구 있는데.”
이현재는 원탁에 앉은 류이든을 바라봤다. 그도 지동화가 쓰러졌다는 헛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달려온 참이었다.
목이 타니 커피나 마셔야지.
“사람은 혼자 있을 시간두 필요한 거잖아요. 동화 형이 심바 아끼는 건 다 알구, 정리할 시간이 있어야죠.”
동감이다.
류이든은 이현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내밀었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채는 건 여전히 선수다.
지동화는 이럴 때 위로보다 스스로 정리할 시간이 우선 필요한 인간인 걸 그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몸이 안 좋았거든.”
속일 걸 속여. 류이든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표정은 속아 넘어갔다고 해도, 신체는 제어하기 힘들다.
걸을 때의 자세, 어디에 힘이 들어가는지, 그런 걸 하나하나 관찰하면 아무리 자제해도 평소보다 건강하지 않다는 건 알 수 있다.
지동화를 존중하지만, 아픈 건 아픈 거다.
“다행인지 뭔지, 동화는 스케쥴이 일주일 정도 없거든. 그래서 내버려 두면 계속 안에 있을 텐데, 그러다 악화라도 되면…….”
석준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저 안은 동화 형님의 피난처라고 해도 무방하다. 간단한 세신이 가능하고 갈아입을 옷이 준비되어 있으며, 냉장고에는 보존 식품도 있다.
조금 더 침착하게 굴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냐, 나라도 패닉이 오긴 했을 거야.”
채하민도 고개를 푹 숙인 채 머리를 책상에 들이박았다.
동화야, 동화야, 몇 년을 친구로 지냈는데도 어려운 인간아…….
“그럼 병원 가자고 하면 나오겠죠. 그걸로는 고집 안 부리시잖아요, 형이.”
“거기서부터가 문젠데, 나오면, 어떻게 해?”
“…아.”
맞네. 동화 형이 우울한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우울감에 빠졌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성향에 달렸다.
지동화나 류이든은 그 사실을 잘 알아서, 이현재가 그럴 땐 가만히 두었다 나중에 말을 걸지만, 다른 둘에게는 즉각 다가가 말을 건넨다.
말을 할 때도 그 방법은 조금씩 다르고.
“동화 형은, 일단 내버려 둬야 하는 타입 같죠?”
“확실히.”
“그런데 저희는 꺼내서 병원에 보내야 하구요?”
“응.”
“내버려 두지두 못하구, 어떻게 대해야 할지두 모르구, 아주 답이 없네요?”
이현재는 커피를 쭉 빨아 마셨다.
그걸 위한 ‘○○에 대하여’구나.
* * *
지동화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책이 날뛰고 있었다.
온갖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기억이, 처음부터 끝까지.
누군가가 떠나고 홀로 남는다는 건 그에게 지겹고 지독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 그에겐 너무나 어렵다.
쇼펜하우어, 니체, 하이데거, 이외에도 수많은 철학자가 죽음에 대해 중요한 논설을 남겼어도, 어렵기만 했다.
목화를 재우고 나온 밤을 기록한 책이 펼쳐졌다.
돌아오실 시간이 되셨음에도 늦기에, 아버지께서 샛길로 새셨구나 여겼다.
그분은 늘 갑작스러운 즉흥 여행을 사랑하셨다. 어머니와는 덕분에 늘 다투셨지만.
처음 갔던 제주도 여행. 어머니가 처음부터 끝까지 짜둔 계획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어린 지동화를 목마 태우고서는 말을 타러 도주했다.
‘이래도 되나요.’
‘이때가 아니면 말을 언제 타보겠니.’
‘위험해서 빼셨다고 어머니께서.’
‘사는 건 원래 위험한 거야.’
다른 기억이 끼어들었다가, 다시 그날로 되돌아갔다.
시계를 보며, 지동화는 기다렸다, 연락을.
핸들을 잡은 아버지가 폭주했다든지, 아니면 아버지가 어디를 가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애교를 부리며 떼를 쓰고 있다든지, 하는 어머니의 연락을.
초침이 지나가고, 지동화는 천천히 생각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오랜만에 둘이서 애정 여행을 떠나셨다.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서 먼저 연락하는 일은 피하려고 했지만, 집에 아이를 기다리게 하는 건 올바른 교육 방침이라고는 볼 수 없다.
‘…목화가 기다렸는데.’
약간 탓하는 마음이 들었던 건, 목화 때문이었다.
자기 혼자였을 때야 돌아오시겠거니, 했겠지만 목화를 홀로 두다니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어 대화해 보아야겠다.
번호는 모두 외우고 있어서 자연스레 유선 전화의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눌렀다.
통화음이 이어졌다. 어머니는 컬러링 따위 설정해 두지 않으셨다.
이윽고 이어지는 소리샘 알림.
지동화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고심했다.
이거, 더 전화해도 괜찮을까. 두 분의 시간을 과하게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학술적으로 연인이 단둘이 있을 때 벌어지는 행위는 단순한 편이다. 행위의 의미는 이해 불능이지만, 현상적으로 존재하니 무시할 수는 없다.
‘……음.’
침음성을 흘리다가, 지동화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 번 더 수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돌아오시겠지. 책 좀 읽다 잠이나 자자.
초등학생 저학년답게 독서를 생활해 버린 지동화는 그렇게 생각하며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을 꺼내 와 독서등을 켰다.
전화기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이어지는 독서의 시간, 시계를 보지 않고 집중해서 한 문장씩 읽는다.
그렇지 않으면 난해한 논리 구조를 놓치고, 어이 없이 처음부터 다시 읽을 수밖에 없다.
지동화는 옆에 작은 공책과 연필을 두고, 떠오르는 의문을 아버지에게 묻기 위해 기록했다.
물론 묻기 전, 책을 한 번 다시 읽고 나름의 답을 찾은 것은 지우겠지만.
모든 집중력이 문장에 쏟아질 때, 정적을 깨며 통화음이 울렸다.
지동화는 놀라지도 않고 책에 어머니가 만들어준 책갈피를 꽂아놓고, 전화기를 확인했다.
‘어머니네.’
그렇게 중얼거리고.
‘여보세요.’
약간 심통이 난 듯 답했다. 홀로 잠든 목화에 대한 소소한 복수다.
‘…아, 박가을 씨 자녀분이시죠.’
‘……네. 맞습니다.’
불길함. 음절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불안함.
어머니가 핸드폰을 잃어버릴 사람이 아니다. 그건 아버지나 그러는 거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남이 핸드폰을 들고 연락하게 두는 상황.
‘아, 혹시, 지금, 어딘지, 집이죠. 집이겠네요. 제가, 제가 갈 테니까, 자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줄래요.’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어머니랑 아버지가, 병원에 갔거든요.’
빠른 이해. 지동화는 잠시 침묵하다가 ‘네.’라고 짧게 답했다.
책을 내려놓고 공책도 덮었다. 목화를 혼자 두는 게 맞는지 아닌지부터 고민했다.
머리가 팽팽 돌았다.
어린아이다. 일어났을 때 혼자인 걸 깨달으면 얼마나 무서울까.
아니다, 그보다, 만에 하나 중상을 입으신 거라면,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을까.
지동화는 결정이 빨랐다.
정신분석학적으로, 깨어났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으나 이후 부모님이 돌아왔다, 보다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병원에 이송될 정도로 부상 입은 모습을 어린 나이에 보는 게 더 좋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혹여 인터폰을 눌러 목화가 깰까, 지동화는 외투만 입고,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가 문 앞에 섰다.
추웠다. 연말이니까.
힘겹게 시간을 내서 나갔다가 다 함께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밤에는 돌아온다고 하셨다.
싸늘한 공기가 폐부에 들어섰다.
지동화는 자기 뺨을 한 대 후려쳤다.
어머니는 늘 침착하게 행동하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이성을 잊으면 인간은 무너져 내린다고 하셨다.
침착해야 한다. 침착, 침착.
‘아, 너구나. 왜 나와 있어! 추운데.’
소방복을 입으신 분은 지동화를 보자마자 손을 약하게 잡으며 이끌었다.
‘침착해야 해. 알겠지. 어머니랑 아버지가 급히 병원에 가셔서 수술을 하셔야 하는데…….’
‘네.’
‘……응, 어, 그.’
자기보다 더 침착한 얼굴이다. 더 침착한 음성이다.
뭐지, 이 아이는.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여. ……라고 생각했다가 떨리는 손을 그제야 느꼈다.
아, 떨고 있어. 억지로 누르고 있구나.
‘동의서를, 써야 하나요. 직계 비속이라.’
그게 뭐니. 소방관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안아 들었다.
급하다. 지동화는 그 순간 한 번 이성이 흔들렸다.
동의서를 대신 써야 한다는 건 의식이 없다는 소리다.
울어선 안 된다. 감정에 휩쓸려 봐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현대 의학을 믿자. 그 기나긴 역사를.
수술하는 이의 실력을 믿자.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어야 옳게 된 사회다.
광범위한 신뢰의 기반을 믿어야만…….
그렇게 자신에게 세뇌하며, 차 안에서도 무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동의서를 작성할 때도, 수술이 끝나길 기다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괜찮니.’
‘네.’
‘……그래. 옆에 있어 주고 싶은데, 아저씨가 지금 가봐야 하거든. 다시 올 테니까, 꼭 기다려줘, 알겠지.’
‘네.’
지동화는 토하고 싶었다.
의자에 앉아 있지만, 머리가 팽팽 돌아서 두통이 찾아왔다.
불안정한 사고가 무수히 많은, 불안한 상상을 낳았다.
감정의 폭주는 이성이 폭력적으로 억눌렀다.
의사가 다가온다.
입을 연다.
말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뱉는다.
그 순간, 지동화는 입을 눌러 막고 화장실로 달려가 토했다.
음절의 이해는 빨랐지만, 수용은 느렸다.
의미를 안다고 해서, 모든 현실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침착해야 한다.
아버지가 해주신 음식을 모두 토해내고 물을 내리고 나서야, 생각이 들었다.
보호자가, 있던가. 없지. 양가의 조부모는 이미 떠났다.
알고 지내는 사촌도 없었지. 있다고 한들, 대우와 목적, 그리고 그들의 성품 측면에서 신뢰할 수 없다.
돈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유년기에 중요한 건 관심과 관리다.
목화한테는 좋은 성장 환경이 필요하다. 만일 다른 사람이 기르게 된다면, 그건 적어도 중학교 때는 되어야만 한다.
그때 입양을 결심하는 이들은 손에 꼽으니, 자신이 끝까지 책임 지면 될 일이다.
……할 수 있을까?
정확히는, 해야 하는 일이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단어에 불과하다고 한다. 혈연은 생물학적 관계일 뿐이라, 더 깊은 의미는 시간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정서적인 지원과 의지할 버팀목이, 아직 어린아이에겐 필요하다.
그렇게, 지동화는 자신의 생일날, 그렇게 결심했다.
기침이 터져나왔다.
그게 기억 속 어린 자신이 변기를 부여잡고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 큰 자신이 소파에 누워 하고 있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치기였을까. 그러고는 결국, 목화를 버티다 부러졌으니.
머저리 같은 새끼.
지동화는 상념에 깊이 빠져들었다.
꿈인지도 모르겠다. 정신이 몽롱하고, 의식이 불안하다.
나이를 그만큼이나 처먹고도, 유약하고, 멍청하며, 아는 건 뭣도 없는, 쓰레기.
항상 침착해야 한다던 어머니의 말씀과 이성적으로 행동하라던 아버지 말씀을, 다 크고도 잘 못 지키는 불효자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