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6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65화(333/343)
지동화를 잘 모르겠다. 몇 년을 지냈든, 늘 그랬다.
누가 보면 얼마나 우스운 얘기일까. 솔직히, 자신보다 지동화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목화밖에 없을 텐데.
“화는 풀린 것 같네?”
“원래부터 동화한테 화났던 건 아니라.”
당근 주스의 뚜껑을 땄다.
분노의 방향은 어디인가. 일단 아버지가 조금 더 싫어졌다. 유년기에 그런 일을 겪기엔 가혹하잖아.
가난은 개념보다는 체험이라는 말이 있으니 채하민은 알지 못해도, 가혹하다는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아, 더 원망스러워졌어, 어쩌지.
동화 아버지와 알고 지냈으니, 만일 그분의 사후 남겨진 자식을 찾으려 노력했다면, 그래서 동화를 발견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쓸모없는 가정이 머릿속을 괴롭힌다.
“…하하.”
삶이 바쁜 건 알고 있지. 지금이야 알아서 돈이 굴러가고 아버지는 결정자에 지나지 않는다고는 해도, 그때는 사업이 휘청거렸던 것도 알고 있지.
정신없었을 거고, 이미 돌아가신 걸 알았다고 해도, 자식을 챙겨야 한다는 건 몰랐을 수도 있고.
예전부터 했던 가정이, 지동화의 잠꼬대 덕에 터져버렸다.
어쩌지, 이 부정적인 감정을.
“……어쩌지, 정말.”
화양 어르신도. 어머님이랑 아는 사이였다고. 심지어 친한 친구였다고. 다 원망스럽기 짝이 없고, 동시에 존경스럽기 그지없는 분들이다.
지동화의 삶이 더 나아질 경우의 수가 차고 넘쳤다는 게 분하다. 그중 하나도 실현되지 않았다는 데 성질이 난다. 그 경우의 수에 자신은 없다는 것은 다행이면서도 짜증이 난다.
어쩌지, 정말. 하지 않은 일을 두고 남을 탓하는 건 멍청한 짓거리고, 채하민 본인이 타고난 성향에도 맞지 않는 일이라 속이 썩었다.
“어쩌긴, 동화한테 화난 거 아니면 됐지.”
“악몽을 꾸는 건 처음 봤어.”
“네가? 음, 그렇구나.”
“아무리 봐도, 동화는 자기 꿈도 조절할 수 있는 것 같지.”
“그게 과학적으로 가능해?”
“과학은 동화 분야잖아. 나한테 물어도.”
“현재가 와야 뭐가 될 텐데.”
채하민은 주스를 마저 마시고, 재활용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제 슬슬, 동화 간병, 아니 감시를 하러 가야겠지. 그 몰골로 또 일하려고 할 것 같으니까.
음료수 상자에서 당도가 가장 낮은 도라지 음료를 꺼냈다.
“동화는 아직 자려나?”
“모르겠네.”
류이든은 채하민이 건넨 음료수를 잡아 성분표를 유심히 보다가 씩 웃었다.
“근데, 너는 알잖아.”
멈칫, 음료수 상자를 정리하던 채하민이 손을 멈추곤 활짝 웃었다.
“……와아, 들켰다.”
“너는, 아버지 인력을 그렇게 끌어다 써도 돼?”
“경호는 중요한 거거든.”
채하민은 손목의 워치를 확인했다. ‘숙면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혹시 모르잖아. 누가, 갑자기 나타나서, 칼이라도 들이댈지.”
이후 연달아, 석준과 이현재가 안전히 일하는 중이라는 문자 역시 연달아 도착했다.
아, 안심이네. 건강 검진도 이 병원에서 하면 좋을 텐데. 실력이 좋으신데.
“그럴 리가 있을까 싶다, 나는.”
“하, 유전자가 위험하긴 한가 봐. 나이 들수록 어머니를 닮아가.”
채하민은 상자를 마저 챙기고 류이든에게 손을 흔들었다.
“현재한텐 비밀.”
막내는 알면 죽이려고 할 거야.
* * *
채하민은 떠올렸다. 목화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민 형, 나 솔직히 그때가 잘 기억이 안 나. 엄청 단편적으로만 기억이 나고.’
‘응.’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지동화는 괴로워하며 병상에 누워 앓고 있었다.
‘자다 일어나서, 밥을 먹는데, 맛이 너무 없었거든. 게다가 어머니랑 아버지도 안 보이더라고. 그래서 형한테 맛있는 걸 먹고 싶다고 떼를 썼어.’
‘……응.’
채하민은 그때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너무 가혹하잖아. 어른이더라도, 지금 자신이 그 입장에 선다고 해도 가혹하다고 느낄 텐데. 도대체 그 나이에 어떻게…….
‘형이, 말하더라고. 부모님이 이제 집에 돌아오지 못하실 거라고. 그러면서 애가 이해할 수 있게, 형답잖게 이상한 비유랑 예시를 들어서 설명하기 시작했거든? 요약하면, 모든 생물은 죽는다,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이런 내용이었어.’
아, 어쩌지, 정말.
‘근데, 솔직히, 형, 나 기억이 안 나. 그때 동화 형이 어떤 표정이었는지가. 내가 우느라.’
어떡해야 할까. 채하민은 볼펜으로 자기 허벅지를 찔렀다.
자신이었다면, 만약 거기 서 있는 게 채하민 본인이었다면, 견딜 자신은 있었을까.
어렸을 적부터, 두뇌 하나만큼은 비상했던 게 도리어 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기묘하게 육아 관련 책이 서재에 많았던 것도, 그 책들이 닳고 닳아 있었던 것도, 동화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책을 펼쳤던 걸까.
‘……그러고 몇 년 후엔, 형이 해준 밥이 아니면 맛없다고 할 지경이 됐고.’
요리법을 배우되, 식재료의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여러 요리에 관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울 지경이었다고.
가계부, 통장 관리, 구청에서의 복지 사업 신청, 약식으로라도 진행된 장례식, 동생이 수시로 울면 옆에서 위로해 주고, 그러면서도 공부를 놓진 않았다.
그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일까. ……아니, 그럴 리가.
“동화가 제정신은 아니지.”
채하민은 상자를 병상 옆에 내려놓았다. 자기한테는 수시로 제정신이 아니라는 둥 뱉어대지만, 아무리 봐도 제일 미친 사람은 지동화잖아.
“네가 할 말일까.”
“글쎄. 아무리 봐도 말이지.”
“그래서, 퇴원은 언제 가능해.”
“넌, 작업실에 넣어두면 위험해서. 나도 곧 나갈 거니까 불편하진 않을까 걱정은 마. 건강한 건 알고 있거든.”
상자에서 일부러 싸 온 도시락을 꺼냈다. 비너슈니첼, 그리고 음료는 사과주스.
지동화는 잠시 한상을 보며 침묵했다. 따스하다. 아마도 보온 박스에 가져왔겠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한 점 썰었다. 채하민은 그 모습을 가만히 보며, 어젯밤에 병상에서 악몽에 시달리던 인간으로 보이진 않는다.
“…신기하게도, 밥이 넘어가네.”
그럼, 넘어가야지. 혹시라도 입맛이 없을까 봐 얼마나 고생해서 가져온 건데. 의사 선생님께 부탁도 드렸다고.
……너도 애였는데.
채하민은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려는 한숨을 억눌렀다. 분노의 원인이 고작 이것 하나라서 갑갑하다.
기지생 씨, 시간 좀 어떻게 비틀어 봐. 직접 가서 채두식이라는 이상한 인간 찾아 떠나라고 말 좀 하게. 아니면 자신이라도 먹여 살리게.
채하민은 지동화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걸 보며 잠시 기다렸다. 그러나 몇 번을 말을 걸어도 답해 주지 않는다.
자신과는 전혀 친해지지 못한 그 지동화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위로를 건네도 닿질 않으니.
이윽고 막고 있던 한숨이 터졌다. 지동화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닿지 않는 게 아니라, 답할 수 없는 것뿐이야.”
아, 신비로워라. 몇 번을 경험해도 적응이 안 되네.
“늘, 고맙대.”
거짓말이네. 안 그래도 배배 꼬인 지동화 성격상, 홀로 그 오랜 시간을 지냈다면 더 꼬였을 테니까.
아마 지금쯤,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같은 소리를 하고 있지 않을까.
“……정확해.”
“와, 다행이야. 기지생 씨랑 같이 살아도 잘 맞춰 살 수 있을 것 같네.”
박수 세 번. 채하민은 흥겨워졌다.
솔직히,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랐거든. 애초에 위로할 수 있는 일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지동화가 가르쳐줬다. 과거의 트라우마는 스스로 살아가며 극복하는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러게, 다행이네.”
“뭐가?”
“다음엔, 잘 부탁해.”
“……설마. 다음이 있어?”
유리병이 이리저리 부딪히는 소리, 간병용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 경악에 빠진 얼굴. 아니, 안도감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지동화는 채하민의 얼굴을 온화한 눈으로 보다가.
“그러기로 했어.”
활짝 웃었다. 반면에.
“그러기로, 했어? 그게 무슨.”
채하민은 의아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언젠가 술에 취해 그룹을 탈퇴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던 지동화처럼, 광기에 가득 찬 눈을 하고 있었으니까.
“너희랑 얘기하면서, 그렇게 하기로 했거든.”
저런 상태의 지동화는 논리가 뒤틀릴 대로 뒤틀려서 괴상망측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소리다.
이성적인 추론과 감성적인 욕망 사이 어딘가,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기묘한 정답.
“…자세히 얘기해 볼래?”
“그럼.”
지동화는 환자복을 입은 채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정말로 병인처럼 보였다.
“다음엔, 어떤 경험을 하고 싶어, 하민.”
압도적인 광기. 채하민은 더 궁금해졌다.
아, 뭘까. 저 머릿속엔, 대체 어떤 생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아마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그 단순한 생각 하나에서 시작된 거겠지. 그러니까, 그 단상에서 출발해 환생 비슷한 걸 시도하겠다는 거잖아.
그게 가능한지 여부는 떠나고서라도, 신뢰의 광기가 엿보여.
“…대학생.”
“그래.”
“너랑 같은 대학에 다니고 싶네.”
지동화의 신뢰는 무겁다. 블로센스 내부의 교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이번에도 지동화가 믿는 대로 아마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그래?”
“응. 연예인도 좋지만, 그냥 살아가는 것도 한 번쯤은 경험해 보고 싶어.”
“그다음은?”
“그럼, 좋아. 너랑 소꿉친구인 걸로. 너랑 한집에 사는 것도.”
“그리고.”
“어렵다. 나 한 천 개 정도 생각해 봐도 돼?”
“응.”
번쩍이는 눈. 채하민은 지동화의 저 눈을 믿을 수 있었다.
아무리 헛소리라고 해도, 지동화가 뱉으면 진실이 되는 법이다.
“…뭐라는 거야, 미친 형.”
그리고 이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류이든과 목화가 중얼거렸다.
“안녕.”
지동화는 그런 둘을 보고도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었다. 맛이 가도 제대로 갔다는 걸 깨달은 류이든. 그리고 그런 형의 모습을 보며 얼굴을 가리고 만 목화.
“…형, 많이 힘들었어?”
목화는 달려가서 지동화의 등을 쓸어내렸다.
미쳤잖아, 그냥. 어떡해, 정신병원에 넣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과거의 상처가 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글쎄. 의외로 괜찮은데.”
“이렇게 홀가분한 얼굴은 진짜 믿을 수가 없다, 형. 어젯밤에 어땠는지 알아?”
“넌, 영원히 내 동생이겠네.”
“그러게, 아쉽다! 나도 동생 하고 싶은데.”
지동화와 채하민의 대화는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었다. 최대의 이성이 꺾이면 어떻게 되는지, 선하고 순한 인물이 그를 추종하면 어떻게 되는지 증명되었다.
그러고 나서 지동화는 비너슈니첼을 맛있게 썰어 먹었다.
채하민은 옆에서 주스 뚜껑을 새로 하나 따 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유일한 정상인 두 명은 그런 일상적인 풍경에 휩쓸리고 말았다.
“…한 번쯤은, 나도 형이고 형이 동생이면 어떨까 싶은.”
“나도, 대학교는 같이 다녀 보고 싶다. 현재랑 너 볼 때 조금 부럽기도 해서.”
오후의 햇살이 병실 창문을 갈라 쏟아져 내렸다.
한가한 오후, 너무나 일상적인 풍경. 누구도 이상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