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6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66화(334/343)
고양이는 몹시 심드렁했다. 자기 옆에 있는 토끼의 말랑한 배를 툭툭 치니 괴상한 진동이 울렸다.
“몇 번을 들어도 헛소리 같은 얘기군. 그때는 다 네 정신 건강을 걱정했는데.”
지동화는 책을 덮었다. 심바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던 여우를 다정히 쓰다듬었다.
손길의 따스한 온도가 기분이 좋아, 여우는 눈을 감고 웃었다.
“…그렇게 다른데두 똑같은 사람이네요.”
“다른 건 확실한데, 똑같을지는 모르겠네.”
똑같다. 비록 삶이 달라지며 모든 것이 바뀌어도, 그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이렇게 머리를 내밀고 더 쓰다듬어 주길 바라는 게 증거이지 않을까.
여우는 비상한 머리로 결론지었다.
…그럼, 더 좋은 거잖아. 존경하는 사람이 두 배라니. 양적으로는 두 배, 질적으로는 두 배 이상이지 않나?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사실이 그런 거죠.”
이곳에서 지동화가 가장 놀랐던 건 어떤 생각이든, 어떤 감정이든, 즉시 서로에게 공유된다는 사실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멤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도는 눈치껏 알 수 있었지만,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처음엔 익숙해지지 못했지만, 다행이야.
“화, 배 아파.”
“참아, 토끼 새끼.”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서도, 실제론 아프지 않고, 정말 아팠다면 관뒀을 거라는 생각이 그대로 읽혔다. 기묘하디 기묘한 상황인데,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처음엔 ‘너희가 불편하면 아예 없애겠다’라고 얘기했으나 ‘없는 쪽이 더 불편하다.’라고 얘기한 걸 보면 태어날 때부터 그게 당연했나 보다.
비밀을 만들 수 있는 게 교육상 더 좋다고 믿지만,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익숙해지는 수밖에.
“잠시 쉬고, 더 읽을까.”
지동화는 그렇게 말하며 다른 책을 꺼냈다. 언제 어디서든 기지생을 관찰하기 위해 만들어둔 것. 가지고 다니기 좋게 수첩 형태로 안주머니에 넣어둘 수 있다.
“뭐 하고 있는지 보시게요?”
“응, 같이 볼까.”
지동화는 여우가 박혀 있는 책을 들어 무릎에 올렸다.
여우는 뒷발과 엉덩이가 책에 박혀 거동이 쉽지 않다.
처음 빛 속에서 보았던, 그 책 표지에 잠들어 있던 여우를 이런 형태로라도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기왕이면 전부 꺼내줘야 할 텐데.
“전 지금두 좋아요.”
헤실헤실, 눈이 반쯤 감겨서 웃는 모습은 여우가 어째서 갯과 동물인지 증명하듯 귀엽기 그지없었다.
류이든을 제외한 모든 개는 귀여우므로. 지금 옆에 앉아 충실하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류를 포함해서.
“너도 같이 볼까, 류.”
그러자 개는 여우와 똑같은 웃음을 지으며 옆에 올라섰다. 모든 동물 중 가장 덩치가 커서 그런지 소파가 가득 찼다.
……과하게 귀엽다. 기지생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것들을 옆에 두고 그런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까.
* * *
한국대학교 유아교육과, 지동화. 학생증을 보고 있자니 다시 짜증이 났다.
지식이 없다니, 그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쌓아왔는데.
카드기에 학생증 겸용 카드를 꽂았다. 고구마 치즈돈가스, 자하연 근처에 있는 생활협동조합 식당에서 나오는 것들 중 이게 그나마 음식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
“동화야, 동화야.”
다른 음식을 받아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채하민이 손을 흔들며 불렀다.
연어 조림, 내 기억이 맞다면, 저건 음식이라 불러선 안 되는 물건이다. 아마 채하민은 저기 곁들여져 있는 샐러드가 목적으로 보이지만.
무대 의상에 비교하면 수수해도 꽤 화려하게 꾸몄다. 무용과면 실기 연습 탓에 편한 복장을 한 사람이 태반이던데, 꾸미는 게 즐겁나 보다. 그 위에 과잠까지 걸치고 있으니, ‘제가 신입생입니다.’라는 티가 팍팍 났다.
“…뭐.”
“몸은 좀 괜찮아? 감기 걸렸었잖아.”
도리어 내가 지나치게 꾸미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지동화와는 달리 나는 꾸미지 않아도 되는 생활을 지나치게 길게 하는 덕분에, 옷이라고는 하얀 티에 검은 바지밖에 입지 않았고, 그 덕에 미감이 다 죽었으니.
과잠은 ‘제가 한국대생이에요!’라는 느낌이 더럽게 풍겨서 입고 싶지 않아, 체크 무늬 셔츠와 사이즈가 조금 큰 청바지, 그리고 아무 데서나 산 볼품없는 가디건 뿐이다.
…여기에 안경만 쓰면 확실한 너드잖아.
“괜찮았어.”
여기서 생활한 지 대략 일 년이 되었다. 적응은 어느 정도 되었지만, 아직 대학생이라는 게 믿기진 않는다.
채하민은 연어조림을 살짝 먹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미리 조언하지 않은 건 미안하지만, 어차피 체중 관리 탓에 많이 먹지도 못할 테니 돌아가는 길에 음료나 사줘야지.
무용과와 유아교육과, 접점이라고는 없어야 정상인데 어찌 된 연유인지 교양 수업이 두 개나 겹친다. 심지어 두 개 모두 점심시간 전인 2교시에.
덕분에 1학기 때부터 월화수목, 4일 모두 점심은 이놈과 먹게 됐다.
강의실에서 쓰러진 나를 주워서 병원에 집어넣은 인연이 하필 겹치는 점심시간 탓에 연장된 셈이다. 지금에 와서는 서로 시간을 맞춰 밥을 먹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아무리 봐도 지동화의 개짓거리라고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망할 지동화, 친해지라고 등을 떠미는군.
근데 보통은 자기 과 사람들과 밥을 먹지 않던가. 나야 OT도, 과에서 진행하는 신입생 환영회도 모두 참석하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치지만.
샐러드를 씹으며 오물거리고 있는 채하민을 보았다. 물어보기엔 지나치게 사적이다.
아무리 봐도 과 사람들이랑 친해지지 못한 인간의 행동 패턴이다.
“왜?”
“아무것도.”
돈가스를 썰어 입에 넣었다. 손끝에 닿는 시선이 느껴졌다.
무언가를 관찰하듯 쳐다보는 눈초리. 대체 남이 돈가스 썰어 먹는 게 뭐가 그리도 흥미로운지는 모르겠지만.
“어? 하민이잖아. 여기서 뭐 해.”
아무리 봐도 식사다. 뇌가 제기능을 못하는 걸까.
음, 시각에 문제가 있는 분일 수 있지. 예전이었으면 직접 뚜껑을 따서 고쳐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흘깃 낯짝을 보니 눈 문제는 아닌 듯싶고, 아마 높은 확률로 지능에 문제가 있나 보다. 어떻게 대학에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자퇴하는 쪽이 낫지 않을까.
“…아, 친구랑 식사하고 있었어.”
채하민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질문이 그 모양이었으니 답하기도 개 같을 심정은 십분 이해했다. 그러니 꺼져줬으면.
“뭐, 그래. 준비 잘하고. 1학년 중에선 유일하니까.”
음, 이것 역시 이해했다.
“뭐 나가나 보네.”
나는 슬며시 끼어들었다. 저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사람이 서 있는 줄도 모른다는 듯이.
“아, 응, 무용 무대가 2학기에 있는데, 학기 끝나기 전에 미리 선정해서 방학 중에 연습한다고 하더라고! 내년에 무대 올려.”
채하민은 그제야 어색한 미소를 버리고 편안하게 말을 시작했다. 시간 낭비다.
“음.”
“다들 신청한다길래 나도 넣었는데, 얼결에 붙어서…….”
저런, 좋지 않다. 대화를 이쪽으로 가져와 꺼지라고 우아하게 눈치 주고 있는데, 열등감을 건드리는 꼴이니. 지능에 문제가 있는 인간이니 뭐라고 한마디 더 하면 어쩌나.
“…아, 먼저 갈게, 하민아.”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구나. 그래도 기왕이면 자퇴했으면 좋겠다.
“아, 응! 잘 가.”
채하민은 쾌활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잠시 떠나가는 놈의 뒤를 눈으로 좇으니 자기 친구에게 뭐라 뭐라 지껄이고 있었다.
어쩌지. 변인 통제가 오랜 습관이었는데, 저건 어떻게 해야 하나.
“…쟤는 눈이 좀 무서워.”
채하민은 최선을 다해 샐러드를 씹으며 야채의 싱싱한 맛을 음미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대충 보아도 무언가 찝찝하다는 표정이었다.
“눈?”
“응. 처음엔 다정해 보였는데, 눈이 좀…….”
“음, 그래.”
“아, 그나저나, 우리 동아리 가입할까?”
“너 방학 때 바쁘다며.”
“응, 근데, 아무래도 거절하려고. 아직 실력도 모자라고.”
그러고 나서는 짧게 ‘아마 아버지가….’라는 말을 하려다가 멋쩍게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힘을 쓴 것 같다.’라는 얘기였겠지. 그리고 너는 그런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고.
그게 네 선택이라면 나는 존중할 수밖에 없지만, 네 과 사람들은 열등감에 파들파들 떨겠네. 진실을 알든, 모르든.
무용과 놈들 전부 치부를 하나씩은 알아두고 싶어라. 대자보 세례를 받고 강제적으로 자퇴할 지경에 이를 정도의 치부를.
“무슨 동아리?”
“아, 극회가 있는데, 소문으로 들어보니까…….”
* * *
집에 돌아오면 우선 청소를 시작한다. 목화한테 줄 저녁을 차리기 전에 미리 끝내야 하니.
체내의 시계가 똑딱였다. 시운관에서 생활할 때의 습관 때문에, 시간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하다.
정확히 몇 초가 흐르고 있는지 알게 되면, 모든 행위를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덕분에 부지런함으로는 어딜 가나 지지 않게 되었지만.
밥 준비를 마치면, 대개는.
“형, 나 왔어!”
목화가 교복을 입은 채 흥겹게 문을 열었다. 목화는 처음부터 어디에도 입양되지 않은, 지목화 그대로다.
“형, 에타에 형 얘기 올라오더라!”
“그래?”
알 게 뭐야. 그런 건 소문 확인용으로도 쓸모가 없다. 채하민이 떠드는 걸 듣고 있다 보면 소문의 팔 할은 귀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아니, 들어보라니까. 사범대 너드남 누구냐잖아.”
“험담이네.”
더욱 쓸모가 없었군.
“요즘 너드가 형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니까?”
너드의 사전적 정의는 ‘지능이 뛰어나지만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일치하는 번역어는 없지만 도학선생이나 백면서생 정도로 번역할 수 있으며 어느 모로 보나 부정적 어투가 강하다.
…라고 동생에게 말하기에는, 나는 독하질 못하다.
“그래서 모의고사는 어떻게 됐어.”
“하하, 놀라지 마! 두 개 빼고 전부 안정적으로 1등급 예정!”
“잘했어.”
사르르 얼굴이 녹는 게 느껴졌다. 솔직히, 놀라길 바랐다면 상대를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지만.
“아니, 에타에는 왜 형 웃는 거 얘기가 하나도 없을까. 한 번 보면 난리 날 텐데.”
목화는 그렇게 떠들며 옷을 옷걸이에 걸었다.
기억을 전부 동기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중요한 사실만을 남겨 뒀다고 하더니, 확실히 말하는 걸 보면 고등학생답게 어린 감이 있다.
“오늘 저녁은 뭐야?”
순식간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옆에 다가왔다. 앳된 얼굴. 항상 모니터 너머로만 보던 얼굴이다.
“닭볶음탕.”
“시험 볼 때만 해주는 게 확실해, 아무리 봐도.”
“동기 부여지.”
“내가 좋아하는 건 잘도 기억하고 있었으면서, 왜 그렇게 빈도가 낮나 했더니.”
오후, 목화와 함께 사는 집은 늘 그렇듯 고요하다.
가족사진이 벽에 걸려 있고, 그 위로 노을녘이 진다. 닭볶음탕이 끓는 소리만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생활감이 있었다.
일상적이다. 이런 일상이, 가끔은 말도 되지 않게 벅찰 때가 있다.
가능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고, 계획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꿈으로 갖기에는 과분해서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어 모든 게 낯선 것투성이다.
목화의 장래 희망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그걸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숨이 조금 가쁠 때가 있다.
“행복하네.”
망할 지동화, 이런 걸 혼자만 누렸던 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