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6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67화(335/343)
연습생이 아닌 채로 보내는 학창 시절은 새롭다. 한국대를 목표로 하긴 했는데, 형과 달리 머리가 그리 좋진 않아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침 6시 반, 깨어나 씻으러 나가면 형은 이미 일어나 주방에 서 있다.
“잘 잤어?”
멈칫, 그 일상적인 물음에 몸이 굳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적의 시간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후의 생활은 선명했다. 그렇게 묻는 모습은, 놀랍게도 자신이 아홉 살일 때의 모습과 전혀 달라져 있지 않았다.
‘잘 잤어?’
아마 그때는 7시였지. 지금보다 훨씬 작은 몸집으로 요리를 하면서도 지친 기색 따위 없었다. 아직도 드는 의문이고, 우리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또 다른 형에게도 물어봤던 질문이 있다.
“형.”
“응.”
“…어렸을 때, 지친 적 없어?”
그때 형은 이렇게 답했다. 아직 한창 아이돌로서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 똑같이 닭볶음탕을 끓이면서, ‘전혀.’라고.
“음?”
그럼 이번엔 어떤 답을 듣게 될까.
“전혀.”
똑같네.
목화는 그대로 걸음을 옮겨 옆에 섰다.
인간이 지쳤다는 사실을 깨달으려면 휴식이 필요하다. 몰입해서 질주하던 피로감이 멈췄을 때 한 번에 몰려오는 것처럼.
이전의 가능성에서도, 동화 형은 심바가 죽고 나서야 자신이 힘들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니 그전까지 질주했던 거나 마찬가지다. 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비단 멤버들이나 형제, 그리고 팬에 대한 애정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형.”
“응.”
“어제 말했던 거 있잖아.”
“…몇 시에?”
“형은 이번에도 이상해졌네. 몇 시 몇 분인지 기억을 해?”
“대충은.”
“…더 이상해졌어. 어쨌든, 그 동아리 있지.”
“응.”
“들어가 봐.”
“너 밥 해줘야 하는데.”
한때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지동화치고는 참 소박하기 그지없는 거절 사유다.
연예인이라고 가족 밥을 못 해주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남아도는 대학생은 이런 모습이구나.
“형은 계획에 없는 일이 더 잘 어울려. 가방끈이 길면 길수록 계획이 이상해져서는.”
혹시 모르지. 지난번보다 더 일찍 마음이 녹아내릴지 어떻게 알까.
“유아교육과만으로도 충분해, 목화. 강남에서 영유아 언어 과외 하는 게 얼마나 내 계획에 있었을까.”
독일어, 프랑스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어, 영유아 가르치기엔 충분할 수준의 일본어와 중국어 실력(둘은 이곳에 오자마자 배우기 시작했다)까지 보유하고 있는 형은, 각 언어의 공식 시험 성적과 한국대 유아교육과라는 명함을 토대로 과외에 나섰다.
채하민에게 이런저런 부탁을 해서 주머니가 두꺼우며 대우도 잘해주시는 좋은 가족을 몇 만났다.
“그 돈으로 먹고사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일 좀 줄여. 나도 아르바이트하면 된대도.”
“어릴 때는 일하는 거 아니야.”
그러는 자기는 열다섯부터 할 수 있는 일이란 일은 다 해대고 다녔으면서 염병도 이런 염병이…….
목화는 속으로 혀를 몇 번을 찼는지 모른다.
늘 이렇다. 지난번에는 몇 년에 걸쳐, 그리고 몇 명이 함께 손을 잡고 지동화를 바꾸어 나갔는데 이번엔 얼마나 더 긴 시간이 들까.
확실히 기억하지는 못해도, 하민이 형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다. 최소한 멤버인 세 명은 확실히 기억하지만, 분명히 더 있었다.
교회에서 볼 법한 성자 같은 인간도 있고, 사이비 교주 같은 인간과 그 제어를 총괄하는 멋진 사람도 한 명…. 더 있는데, 누구였지.
“어쨌든, 들어가. 그리고 나도 일하기 시작하려고. 반년 무위도식했으면 이제 밥값 해야지.”
“거절하면.”
“형은 내가 내 손으로 내 인생 나락에 빠뜨리는 걸 지켜봐야지.”
범죄를 여러 번 저지르고 망나니처럼 굴 것이다. 형은 자신에게 너무나 약해서,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이런 짓을 한 적 없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도 너무 다르니 괜찮지 않을까.
“대체 망할 그 새끼는 널 어떻게 키운 거야, 목화야.”
“형을 닮은 거지, 어느 쪽이든.”
“……확실히, 만약에 유용하다면 나도 채택할 의향이 있기는 하지만.”
순간, 날카로운 기류가 흘렀다. 이러다 이 가능성에서 처음 하는 ‘목동의 놀이’가 누가 더 자기 인생 잘 망치나로 시작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순간 들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지동화는 절대로 지금 당장 동생을 이겨 먹으려는 생각 따위 없다는 것을.
아무런 논거도 없는, 분명한 억지, 혹은 떼. 이런 걸 부려 봐야 지동화에게 통하는 사람은 현재로선 딱 두 명밖에 없다. 자신과 채하민.
“알겠어. 일도 줄일 테니까, 너도 무리는 하지 말고.”
탁, 신경전을 끝내겠다고 선언이라도 하듯 지동화는 가스 불을 껐다.
약해라. 목화는 속으로 환히 웃었다.
하민이 형이 동화 형에게 같이 들어가자고 제안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신경전이었다.
지동화를 다루는 데 그 사람보다 전문가가 존재할까?
* * *
나는 이 한목 잡기 좋은 겨울 방학에 대체 여기서 무엇을.
극회라고 한다. 연극을 하는 곳.
정확한 이름은 ‘노는 놈들’. 그리고 눈앞에는 동아리 회장이라는 개를 닮은 놈이 활짝 웃고 있었다.
“…와, 동화 씨. 몇 개 국어를 하는 거야.”
류이든. 너는 왜 여기 있는데. 머리가 좋을 건 예상했지만, 아무리 봐도 너는 육군사관학교나 경찰대학교에 가 있을 테니, 한 몇 년 걸리리라 여겼는데.
“제가 말씀드렸죠. 제 친구가 좀 대단하다고.”
“하민아, 이런 애가 있었으면 진즉에 데려오지!”
한국대학교 인문대학, 그중 어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은 대개 각 과에 속해 있는 극회를 갖고 있다.
보통 극회 활동에 진심인 곳은 독문과, 불문과, 노문과 정도가 있는데, 다른 과라고 열정이 적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대학을 다닐 땐 뭣도 관심이 없었으나, 독일어로 연극을 한다기에 잠시 보러 갔던 적이 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연출도 하고 연기도 하더라.
내 기억이 맞다면, ‘노놈’은 독문과랑 연결되어 있는 극회로 알고 있다.
“델프 C2, 괴테 C2, 텝스 900 이상. 이런 능력 있는 인간이 한 명쯤 우리한테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중국어랑 일본어도 된대요.”
닥쳐, 하민. 네 능력이 아니야.
“아언문은 안 한대. 어쨌든,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업어 기르겠습니다. 고학년 중에서도 귀한 인재를 또 우리가 채 가네!”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지는 들었지만, 저는 무슨 일을 하게 되나요.”
“쉽게 말하면, 노동 인력 시장의 직원?”
무슨 개 같은. 동생을 위해 원양 어선에 팔리는 게 이런 거군.
“더 정확히는 도와달라고 하면 가서 도와주는 이쁨받는 직책.”
평범한 심부름꾼이잖아. 가장 고된 직책이네, 망할.
“참고로, 탈퇴는 사양! 안 한다고 하면 두 발을 묶어서라도 데려올 거니까!”
“동화야, 저 형, 한다면 진짜 해. 미친 사람 같아, 아무래도.”
속닥거리는 소리. 그걸 재밌다는 듯이 듣고 있는 류이든. 아무 쓸모도 없는 노력이네, 하민.
“너는 왜 들어온 거야.”
이번엔 류이든이 미간을 찡그렸다.
못 듣겠지. 아주 얄밉겠네. 지동화 그 자식이 왜 류이든이랑 그토록 싸웠는지 알 것도 같군.
도리어 나는 지동화보다 성격이 더 비뚤어져 있으니 아마 더 자주 그런 일이 있겠다.
“저 형이랑은 원래 알던 사이였거든. 무대에서 해야 하는 동선이나 손짓 같은 것 좀 잘 아냐면서 끌고 왔어.”
망할 놈이 또. 이렇게 인맥을 떠먹이다니.
“어쨌든, 그런 거야. 단순한 연락책 같은 일도 할 수 있고, 기획 쪽 일도 할 수는 있는데, 일단은 각색한 각본 문법 검토가 기본 업무겠죠? 원래는 외국인이 오는데, 이번엔 일이 좀 꼬일 대로 꼬여서.”
한국대가 등신들 집합소도 아니고, 자기가 배우는 언어로 각색하는데 문법 검토에 외부 인력이 필요할 지경이면 전부 자퇴하는 쪽이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이롭지 않을까.
물론 글을 직접 쓴 인간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오류가 있을 수야 있겠지만, 심사가 꼬여서 달갑게 들리진 않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회장, 이분들은 누구세요?”
……어, 이 진동수, 익숙하다. 본래 낯선 이가 갑자기 들어서도 낯짝을 확인하기는 귀찮아 가만히 있는 편이지만, 이번엔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이현재잖아. 쟤는 나이상 고3인데,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새로 온 운영 위원분들! 인사해!”
“안녕하세요, 국문과 소속 이현재라구 해요”
과학고 진학 이후 월반 졸업하여 들어왔나 싶었는데, 아닌가 보네.
과학고 월반 졸업 이후 국문과 진학이라는 개짓을 할 리는 없고, 혹시 검정고시인가.
“우리 막냉이!”
류이든의 눈은 과장된 다정함으로 순식간에 물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곧바로 달려가 안아 올렸다.
질색을 하면서 내려놓으라고 호통치는 모습이, 몹시, 몹시도 그리웠다.
아, 멍청한 짓을 할 것만 같아.
이곳에서는 우리는 처음 만난 건데도, 아는 척을 하고 싶고, 먼저 다정하게 고민을 들어주고 싶다.
마지막까지 네가 보내던 친해지자는 신호를 무시해서 미안하다 사과하고, 마지막에 문을 부숴서까지 내 건강을 보러 와 주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망할.
지동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 나갔다.
정신이 유약한 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채하민과 목화가 처음부터 자신과 함께 있어 티가 나지 않았던 거지, 아니었으면 진즉에 이상 현상을 일으키긴 했을 것이다.
심호흡을, 심호흡을 하자. 우선 진정해야만 한다. 이현재는 나를 모른다. 이현재는 나를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 그를 모른다.
기억을 억누르는 건 쉽다. 뇌를 다루는 법이 오랜 시간을 살아가며 발전했으니까. 억누르고 억누르다 보면, 괜찮아질 것이다.
후우, 숨을 마저 고르자 안정이 찾아왔다.
“…동화야, 저는 정말 서운해요.”
개 놈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안정감은 와장창 부서져 내렸지만.
고개를 돌리니 한 손에 밧줄을 들고 슬픈 강아지 같은 눈망울로 이곳을 보는 류이든이 있었다.
“나랑 일하기가 그렇게 싫었다니. 울 정도로…….”
그러면서도 밧줄을 팽, 소리가 나게 한 번 잡아당겼다.
“혹시 나가려고?”
협박이잖아, 미친 새끼야. 나갈까 보냐. 이현재가 있는데.
먼저 친해지는 법 따위는 모른다. 그건 머릿속에 없는 개념이니까.
하지만 그 여우 새끼한테는 너무 큰 마음의 빚이 있다.
“…아니요.”
“에이, 우리 사이에. 말 놔도 돼요!”
“됐습니다.”
“이렇게나 강건해서는! 어쩔 수 없네, 오늘 술이나 마시면서 친해져 볼까요?”
주량이 한 잔인 머저리랑 맞술 따위 마실까 보냐.
류이든 뒤로 이현재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얌전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떡하지. 인간이랑 친해지는 방법 따위 모르는데.
지동화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이현재를 만나기까지는 시간이 있을 테니 가만히 있었건만, 어떻게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
“…식사라면, 함께 하겠습니다.”
“아, 우리 막냉이랑 친해지고 싶구나. ……잠깐, 어떻게 알아요? 막내 미성년자인 거.”
“채하민을 막내라고 부르진 않으셨으니까요.”
나는 간단하게 답하곤 자리를 지나쳤다.
이현재의 곁을 지날 때 같이 커피나 마시자고 물을까 고민했지만, 참아냈다.
친해지는 것도 이론이 필요하고 학술적 근거가 있을 것이다.
우선 카네기의 그 유명한 책부터 읽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