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6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68화(336/343)
식사를 하기 전, 그는 집에 잠시 다녀와야 한다는 핑계를 지극히 논리적으로 제시하고 부리나케 목화를 불렀다.
지금의 자신은 과거의 지동화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최소한 남들에게 단정해 보이는 옷이 무엇인지 알았던 지동화와 달리, 나는 미감이 죽을 대로 죽은 상태다.
“무슨 일이야?”
“…첫 인상을, 조금 좋게 만들어야 해서.”
채하민을 보러 갈 때나 입는 옷은 과히 추레하다. 차려 입거나 꾸미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단정한 인상을 남겨야만 한다.
이현재가 왜 자신과 친해지려고 했더라, 지동화는 머리를 굴렸다.
한국대 국문과 교수로 있던 놈이 의외로 내 소설을 잘 읽다가 잘 쓰던 글을 왜 갑자기 때려치웠나 싶어 인터뷰를 청했던 게 친해지는 시작이었지.
그러니 우선 일을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때려치우면 되나.
“그럴 리가. 형, 진정해. 왜 논리가 비틀리는 상황까지 간 건데.”
“목화, 학문 분야를 막론하고 실증적 학문에서 전례가 있다는 건 귀납적으로…….”
“아, 오랜만이다. 그리웠어, 이 개소리.”
툭, 말이 끊겼다. 우리 목화, 귀여워라.
지동화가 끊기는 걸 볼 때는 참 유쾌했지만 막상 당하면 불쾌하지 않을까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네. 지금 보니 그저 귀여울 따름이다.
“나한테 맡겨. 내가 형 오늘 코디해줄게. 이건 처음이네. 작은형은 알고 보니 패션 센스가 꽤 좋았던 사람이라.”
목화는 옷장을 열며 활짝 웃었다.
“단정함이라…….”
목화가 옷을 고르는 사이, 나는 유명하디 유명한 카네기의 저서를 떠올렸다. 그 망할 실천서, 한 번 읽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렸지만, 내용이 워낙 단순해 요약이 쉬워 다 외우고 말았다.
일단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으면 첫 대화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조언. 잘 웃어야 한다. 음습한 인간에게는 몹시 실천하기 어렵지만.
나는 입꼬리를 은근하게 끌어올리다가 허망한 심정에 휩싸였다.
수치스럽잖아, 더럽게. 원래 친구 사귀는 게 이리도 개 같은 과정이었던가.
지동화, 도와줘.
[말씀하세요.]어떻게, 친해져야 하지.
[그걸 제가 어떻게 도와드립니까.]폐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한숨. 난, 네가, 어떤 부탁을 하든, 최선을 다했어.
[채하민 주변 인물의 모든 약점은 드릴 수 있습니다.]그건, 나도 할 수 있고, 망할 새끼.
자신이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본 경험 따위 없다. 시운관에 있을 시절, 유치원생들은 친해지려고 노력했다기보다는 가르치다 보니 친해졌다.
아니지, 솔직히 여우 빼고는 데면데면했다.
[채가 서운하다고 전합니다. 화는 닥치라고 합니다. 현은 웃으며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아, 부끄럽다. 감정을 유발하는 회로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학생들 앞에서 친구와 친해지는 법을 묻는 선생이라니…….
나는 별생각 없이 거울을 보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정말 볼품없는 낯짝이다. 이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의심되는 냉랭한 인상을 어떻게 손봐야 할까.
툭, 옆에서 옷가지같이 가벼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눈으로 좇으니 목화가 나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형, 살다 살다 이런 모습도 보네.”
그러게나 말이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짓인지. 사람이 하지 않는 짓을 갑자기 하려니 속부터 뒤틀렸다.
“현재 형이랑 그렇게 친했어?”
“아니.”
친하지 않았다. 그건, 글쎄, 굳이 따지면, 추운 겨울, 그 시린 날을 알기에 서로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값싼 난로에 함께 손을 쬐는 것과 같았다.
그저 우연히 난로 앞에서 만나서 손을 쬐며 ‘춥네요.’, ‘그러게요.’라는 짧은 대화를 주고받고는 침묵에 휩싸이듯이.
* * *
“형, 오늘 논문집 하나 새로 나와서 가져왔는데, 읽어볼래요?”
“거기 둬.”
그때, 나는 뭘 하고 있었더라. 아마도 과학 관련 논문에 빠져 있었다. SF 소설을 쓰며 원고료를 받고, 무수히 많은 논문을 옆에 쌓아둔 채 무식하게 읽어내렸다.
그리고 이현재는 그것들을 대충 훑어보면서 내가 무슨 생각 중인지를 가늠하려 노력했다.
“내가 뒷조사를 좀 했는데.”
“응.”
“그럴 바엔, 차라리 지금이라두 동생을 만나서 사과해요.”
“……현재.”
“부모 새끼들 뒤치다꺼리가 개 같아서 도망쳐 오는데, 볼 때마다 갑갑하거든요.”
이 집의 문은 이현재 한정으로 늘 열려 있었다.
왜 그랬더라. 음, 동병상련에 가까웠다. 이현재는 정신적으로 뒤틀려 있었고, 나도 그랬으니까.
난로를 같이 쬐는 심정으로, 언제든 와서 쉬어도 된다고 했다.
“목화한테는 찾아가지 마.”
평소였으면 경멸했을 것이다.
어딜, 남의 인생에. 하지만 난로를 공유한 지도 꽤 되었기에, 이 정도 말은 해도 괜찮다 싶었다.
동생이 아닌 목화라고 칭한 것 역시 경고다. 너 정도로 음습한 인간이면 뒷조사로 다 확인했을 테니, 선 넘지 말라고.
“하아, 다른 사람한테 간섭하는 게, 저도 세상에서 제일 싫답니다.”
알고 있다. 그가 부모로부터 얼마나 간섭받아 왔는지.
그래서 비뚤어지게 자랐고, 착실히 모은 약점들로 부모를 굴복시켜 쇼윈도 가족으로 지내고 있다는 것 역시.
이현재는 인품이 좋은 교수로 유명하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면서 이현재는 평소의 양복 차림이 아니라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핸드폰으로 커피를 주문하고는 챙겨온 책을 읽었다.
늘 이랬다. 모여서 하는 건 고작 짧은 대화와 독서.
그러나 그게 삼 년이 넘게 이어지면, 결국엔 정이 들고 만다.
매해 마주치는 사람과 같이 난로를 쬐다가 문득, ‘그래서 요즘은 잘 지내요?’라고 묻게 되듯이 정이 가는 것이다.
그러면 ‘사는 게 좀 퍽퍽하네요.’라고 답을 받았을 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어렴풋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타인에게 간섭하고 싶지 않다, 이현재가 늘 품고 사는 신념.
그는 그런 신념조차 몇 번 접으며, 나의 우울함을 해소할 방안을 수십 번 제시했다.
사실 이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현재의 고민을 듣고, 상담해준 적이 몇 번 있었으니까.
그건 모종의 허락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형, 닥치구 따라와. 그러다 이상한 선택이라도 할까 봐 무섭다.”
그날의 이현재는 몹시 분노해 있었다. 반면에 나는 조금만 더 연구하면 혹시, 라는 생각에 매몰되어 있었다.
서로 똑같은 목표를 두고 있는데 실현 방법이 다르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살벌한 눈빛. 그때 나는 깨달았다.
동생이 어디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언제 가야 만날 수 있는지까지 이미 다 조사했구나.
어쩌면 오늘 만날 약속까지 잡아놨을지도 모른다.
“…안 돼.”
“뭐가. 내가 네 멱살 잡구 동생 앞에 던져 놓을 거야.”
알고 있다. 저건 걱정에서 비롯된 악착스러운 행동이라는 걸.
이현재는, 의외로, 나를 꽤나, 존경했다.
삼 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며, 나를 유일한 친구로 여기고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거야, 현재.”
그리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어떻게 동생을, 직접 두 손으로, 버려 놓고, 친구라니, 당치도 않다.
그건 속죄하는 인간의 태도가 아니다.
“형은, 도대체가. 그럴 거였으면, 내가 이 집에 들어오는 걸 먼저 막았어야지.”
맞다. 외로운 인간에게 외로운 인간이 곁을 내어주면, 친구라는 이름으로 단단히 묶이기 마련이다.
“이것두 형이 선택한 거야.”
그것 역시 맞다.
외로웠다. 누구라고 외롭지 않았을까.
그저, 난로를 같이 쐴 사람이 한 명 필요했을 뿐이다.
친구라고 부르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아는 사람 한 명은 갖고 싶었다.
나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끝까지 버텼어야지. 끝까지 외롭게 죽었어야지.
논리가 무너져 내리고, 감정이 범람한다. 자기 자신에게 토기가 쏠려 견디기 쉽지 않다.
그대로 이현재를 밀어 문밖으로 쫓아냈다.
오늘 이후로, 더는 그가 벨을 울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옳았다, 이게. 맞았다. 계획한 대로, 살아가자.
그리고 연구가 완성되었을 때, 이제 정말 돌아갈 수 있겠다 여겼을 때.
“형, 오늘두 안 열어주면, 나는 문을 부술 거예요.”
나지막한 경고가 문밖에서 울렸다.
캉, 캉, 시멘트와 철근이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문밖에서부터 쏟아져 들어왔다.
뒤늦게 알았지만 문밖에서 그는 슬레지 해머(속칭 오함마라 불리는 것)를 들고 양복을 입은 채 맑게 웃고 있었다.
그의 웃음은 늘 맑았으니, 그가 미친 건 아니라는 소리였다. 아니면 원래부터 미쳐 있었거나.
그럼에도 나는 문을 열지 않고, 지하실의 인터폰을 껐다.
이현재는 그걸 보며 짜증이 난 듯 욕지기를 한 번 뱉고, 문고리를 가로로 한 번 후려쳤다.
문이 나무 재질일 경우, 이렇게 후려치면 잠금장치까지 한 번에 고장 낼 수 있다.
쾅, 무기질적인 소리. 이현재는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언젠가 해 보고 싶었어. 나무로 된 문이라, 처음 왔을 때는 운치 있다고 느꼈지만, 지금 보니 위험투성이다.
“이 형은 보안 의식이 이렇게 떨어져서야.”
이 집을 관찰하러 오는 이들을 처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는 있을까, 우리 형은.
이현재는 콧노래를 부르며, 해머를 바닥에 끌며, 그리고 삼박자로 걸으며, 약간은 아저씨처럼 안으로 들어섰다. 뒤늦게 봤을 땐, 전형적인 깡패 같았다.
“어디 있을까요, 형.”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현재는 걸음에 망설임 따위 없었다.
“오늘은 발목 하나는 내줄 생각하구 계세요.”
그의 손의 망치는 그 말이 단순한 위협이 아님을 증명했다.
“동생분한테는 죄송해두,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네요.”
그리고 처음부터 예정된 목적지였던 지하실의 입구, 이현재는 예의상 노크를 한 번 하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해머를 우에서 좌로 후려쳤다.
몇 번 연습하고 온 게 분명한 깔끔한 손놀림에 끼익, 힘없이 문이 열렸다.
어디 있을까, 우리 형. 이현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 * *
“…뭐야, 무서워.”
목화는 내가 옷 입는 걸 도우며 중얼거렸다.
음, 그럴 만도 하다. 이현재가 지하실로 들어갔을 때, 나는 이미 시운관에 끌려가서 아무도 없었다는 이야기니까.
“아쉽긴 해.”
그때 문을 열고 나섰다면, 기나긴 여정을 돌고 돌아 이제야 목화를 만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덕분에 만난 인연들 역시 존재하지만, 그 당시의 이현재에겐 미안한 마음이 컸다.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이미 친구였던 거겠지, 분명.
그렇지 않고서야, 비록 뒷조사였다 할지라도 서로의 내밀한 비밀까지 공유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뭔 개소리야, 형. 그건 친구 아니지 않아? 누가 친구 뒷조사를 해.”
사람마다 정의가 다른 법이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던 우리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 알고 싶으면 그냥 질문하면 되잖아! 3년 넘게 알고 지냈는데!”
상식이 통했으면 내가 이 모양으로 살지는 않았지.
나는 목화의 갑갑한 심정을 들어주며 거울 안을 들여다봤다.
…뭘까. 뭐가 다르지. 미감이 다 죽은 게 확실하다.
누군가가 화려하게 차려입으면 알아챌 수 있으나, 이렇게 평범하게 입으면 그게 그거 같다.
“아, 역시 옷걸이 하나는 진짜 타고났다. 부모님한테 감사하자, 형.”
목화는 신이 난 듯 말하며 등을 떠밀었다.
“제발, 형이 친구라는 게 대체 뭔지 배우고 오길 빌게.”
“응, 다녀올게.”
이날, 계절학기 진행 중이라 나름대로 한가한 에타에는 ‘이분 누구냐’라는 질문이 참 많이도 올라왔으나, 그건 목화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사실이며, 별로 알고 싶던 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