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6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69화(337/343)
옷을 꾸려 입고 머리도 목화한테 손질을 맡긴 뒤, 급히 도착한 약속 장소.
한국대입구역에 도착하니 문득 한숨이 나왔다.
하, 친구 하나 다시 사귀겠다고 별 염병을 다 떨었다.
2번 출구 쪽으로 나오면 술집 골목과 먹거리 골목이 나 있다. 망할 신발 가게 근처에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흡연 구역이 설정되어 있는데(불법이긴 하다는 소리다), 그 길목부터 묘하게 밤공기가 젊다는 느낌이 풍겼다.
비록 담배 연기는 싫지만, 여기부터 거리의 시작이라는 알림 역할은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셈이다.
저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지동화 덕분에 전부 자신의 의지로 걸어가고 있구나.
그 와중에, 망할 나는 동생한테 부탁해서 드레스 업이라니, 이게 내 자유의지라니, 세상에. 수치심이 뒤늦게 몰려오는걸.
[잘 어울리십니다.]‘옷은, 생존 수단인데 그런 게 있나 싶어.’
모로코 소재의 콩트르방디에 동굴에는 약 12만 년 전 동물 가죽으로 옷을 제작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뼈 도구들이 발견되었다(옷에 서식하는 이와 인간 머리에 서식하는 이의 유전적 간격을 토대로 17만 년 전이라 볼 수도 있으나 실증적이지는 않다).
이 시기는 빙하기의 시작 시기와 겹치는데, 의류를 ‘생존’을 위해 제작해 입었다는 추측에 힘을 실어준다.
두꺼운 옷을 입어 더 추운 지방에서 생존하고, 얇은 옷을 입어 더운 지방의 직사광선으로부터 몸을 지킨다.
어느 순간부터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건지는 불분명하지만, 분명히 그 본원은 생존에 있는 것이다.
[배배 꼬였네요.]네가 할 말이야?
[적어도 당신보다야.]조금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음, 이쯤에 신입생들이 미리 모여 만나기도 한다던데, 모꼬지라는 명칭으로.
이현재가 2년을 월반했거나, 아님 1년 월반 후 류이든과 연을 맺었구나. 대단하잖아, 현재.
더 걸어가자 허름해 보이는, 그러나 돈이 넉넉지 않은 대학생이 자주 모임 장소로 고르는 고깃집이 나왔다.
이곳에 온 횟수는 0회. 즉, 모임 참여 횟수가 0회라는 소리다. 보기만 해도 끝없는 소음이 이어질 것만 같은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류이든이 앉아 있는 테이블이 보였다.
휘적휘적, 큼직한 팔을 휘둘러댔다.
“뭐야, 뭐야. 왜 이렇게 꾸몄어!”
호들갑을 떨며 소리치는 류이든은 정말이지 외향적인 인간의 전형을 뽑아놓은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화면 너머에서 볼 때부터 느꼈지만,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지.
“우리 보는 게 그렇게 설렜구나! 사실 추레한 모습으로 만나러 온 게 마음에 걸렸구나! 그렇게 꾸밀 줄도 알면서! 소문에는 옷걸이만 좋은 사람이라고 쫙 났던데! 친해지고 싶은 사람 앞에서는 다르구나!”
닥쳐, 망할 개.
“와……, 나랑 놀 때는 맨날 대충 입고 나왔으면서.”
전부 무시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현재는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는 류이든이 구워 건네는 고기를 맛있게 받아먹었다. 식탁에는 이현재의 나이를 신경 쓰듯 콜라병이 나열되어 있었다.
쟨, 지금은 귀염성 있게 숟가락을 들고 있지만, 언젠가는 수틀리면 망치를 들고 남의 집 문을 부수는 경지에 도달하겠지.
“월반?”
흠칫, 동공이 커져서는 고개를 들어 올린다. 당연히 일순간일 뿐, 눈치는 언제나 빨랐으니 자기 얘기인 줄 알아들었을 것이다.
“아, 네! 1년 일찍이요. 조금 이상해요, 기분이. 다른 애들은 아직 고등학교라니까.”
그럼 올해 신입생이구나. 1년 월반이면 대개 과학고일 텐데, 국어… 국문과?
그 두 단어의 조합이 참, 기묘하다. 지나가다가 들었어도 대략 3초 정도는 멈춰서 그 속에 담긴 사연을 생각해 보게 될 것 같다.
치익, 고기가 올라갔다. 류이든과 채하민이 대화하는 동안, 자연스레 내가 말을 건네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현재는 대화의 화두가 나오길 기다리며 이쪽을 흘깃 바라봤다.
아, 뭐라고 말해야 해, 망할. 이거 유치원에 처음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애 같잖아. 사회성 특강해 줘, 류이든.
[제가 할 때 같이 하셨으면 좋았겠네요.]비웃지 마, 나도 죽고 싶으니까.
“…현재.”
“네?”
아, 씨X, 또 울 것 같아. 너한테 발목이 부서지고 싶었는데, 딱 삼십 초 정도만 더 대화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잘 지내?”
망할, 화용적으로 서로 알고 지냈음을 전제하는 문장이잖아. 시간 되돌려, 당장.
[미친 사람.]“…어, 네?”
와, 쟤네 고장 났다.
동화가 고장 나는 거 영상으로 남기면 죽이겠지, 내가 동화 씨는 아직 잘 모르는데 그런 스타일이구나.
류이든과 채하민의 말이 고막에 틀어박혔다.
“네, 잘, 지내죠? 못 지내지는 않구 그래요.”
“…응.”
“……어, 네.”
하민아, 쟤 진짜 고장 났어.
괜찮아, 동화가 저렇게 보여도 의외로 남이랑 대화할 때는 눈치가 빨라서.
지금 보면 전혀 아닌데.
그러게, 고장 난 것 같이 보이긴 한다, 너무 똑똑하면 저렇게 되는 건가, 무슨 쟤는 몇 개 국어를 해.
그걸로 과외해서 돈도 많이 벌어.
와, 멋지다, 그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절반만 활용했어도 지금쯤 현재랑 말 텄겠는걸.
지금 외양만 보면 과에서 제일 잘 나가는데 본인은 냉정하게 끊을 것처럼 생겼는데.
푸흡, 이현재가 실소했다. 아니, 비소(誹笑)일까.
“그, 동화 형? 낯가리시는구나.”
쌈을 한 입 야무지게 싸 입에 넣는 이현재. 살아 있다. 생동감이 넘친다.
와, 존재하는구나. 같은 세계를, 그중에서도 이 작은 가게의, 작은 테이블을 함께 점유하고 있어.
“…형?”
기적이다. 난 대체 뭘 계획하고 뭘 자신만만해했던 거지.
앞에 놓인 게 이런 미래였다는 사실을 알았어도, 나는 덤덤하게 최후를 맞이할 수 있었을까.
손이 다시 떨렸다. 목화가 신경 써서 사준 바지를 부여잡았다.
과분하잖아. 어떡하지. 정신이 흐트러져.
“…저기, 형?”
나는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세차게 뺨을 한 번 내리치고, 천장을 보며 심호흡했다.
그제야 대학가 주변 고깃집다운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었다.
그래, 정신 차리자. 머저리 같이 굴지 말고.
이현재도, 류이든도, 전부 좋은 인간들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나 역시 알고 있잖아.
고개를 내리고, 표정을 단정히 했다. 좋은 첫인상을 남기기 위해선 미소를 지어야지.
“응.”
순간 정적에 휩싸인다.
이현재나 류이든도 놀란 게 보였지만, 채하민이 경악에 찬 듯 입에 물고 있던 숟가락을 툭 떨어뜨렸다.
“…와, 하민아, 동화 씨는 괜찮은 거야?”
“전혀 모르겠어. 나 처음 봐. 저렇게 웃는 거.”
“뭔지 모르겠는데, 동화 형이 맛이 간 건가요? 허우대는 너무 멀쩡한데.”
“갑자기 자기 뺨치고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멀쩡한 척 환하게 웃는 건…….”
“심지어 인상이 달라지잖아요. 방금 전엔 정말, 자상한 교회 형 같았는데.”
하, 못 해 먹겠다.
나는 머리를 한 번 헝클이고 상추를 쌈장에 찍어 먹었다.
고기는 질이 낮아 속에 좋지 않으니 먹을 수 없다. 미감은 반쯤 죽었어도, 미각은 너무 통렬하게 살아 있어서.
어차피 친해질 수 있을지 말지는 흐름에 따르는 것이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내어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겨야지.
망할, 아쉽겠지만, 더럽게 아쉽겠지만.
“봐, 이번에는 순식간에 해탈했어.”
“아! 저건 가끔 봤어. 조별 과제 혼자 할 때 짓는 표정이야.”
“그런 논리면…, 저희가 무임승차 급으로 힘든 사람인 거네요? 소문으로만 듣던 무임승차.”
논리가 빈약하네, 현재. 먼 옛날이었으면 순식간에 ‘형, 정신병 진단만 안 받았지….’라고 말을 줄였겠지.
“아니, 즐거워요.”
오해가 불거지지 않게 나는 딱 잘라 말했다.
“그것들은, 비교 불가능이고.”
이번엔 오이를 쌈장에 찍었다.
누가 보면 채식주의자라도 되는 줄 알겠어. 아삭, 아삭,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아, 맛있네.
“벌레 같은 것들.”
조별 과제의 정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머리가 사리로 가득 찼는데 그조차 우무라 영양가도 없어 끓여 먹을 가치도 없는 것들.
“부디, 자퇴하길.”
푸흡, 눈을 뜨니 채하민이 꺄르르 웃으며 류이든의 팔뚝을 퍽퍽 쳐댔다.
“익숙해져야 해! 동화는 가끔 가차가 없어져서.”
“유아교육과 딱지 떼! 언행이 불손해!”
“아이들이 저희보다 욕을 잘하는 시대입니다. 저희도 맞춰 가야 합니다.”
류이든에게 답하며 이미 입을 댔으니 새 수저를 꺼내 쌈장을 덜어 오이에 얹어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알 게 뭐람. 유아교육과를 나왔다고 해도 그쪽으로 진로를 잡지 않을 수도 있지. 모든 건 자유의지에 따라 흘러가는 거니(자유의지의 실존 여부에 대한 논쟁은 분량상 생략한다).
“……와, 캐릭터, 종잡을 수가 없네요.”
네가 가장 재밌어하던 캐릭터였는데. 약간은 씁쓸하네, 나만 기억하고 있다는 건. 그러나 미소 짓는 것 말고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현재 씨는 이번 연극에서 배우로 참여하나요?”
보통 새내기는 배우던데.
“아니요, 각색이요. 국문과기도 하구, 독일어도 조금은 할 수 있거든요.”
극회는 크게 각색팀, 배우팀, 연출팀, 무대팀, 기획팀(이라 쓰고 잡무 담당으로 읽으면 편하다)으로 분류되는데, 놀랍게도 같은 팀에 배속된 셈이다. 음, 이건 좀 기분 좋네.
“아, 그러고 보니, 월반했으면 어느 계통 고등학교예요?”
“과학고죠.”
“음.”
좋아, 해냈다. 대화라는 걸, 해냈어.
나는 오이를 한 입 더 집어 먹고 옆에서 고기 좀 먹으라고 성화인 채하민의 낯짝을 밀어냈다.
다섯 점 이상 먹으면 속 버려. 너는 위장이 튼튼한가 보네.
“…안 물어보네요?”
채하민과 알력 다툼을 이어가던 중, 이현재가 젓가락을 입에 문 채 물었다. 아, 긴장돼. 무슨 개 같은 실수를 했을까.
카네기, 당신 책, 정말 도움이 되는 게 맞을까.
“뭘요.”
“과학고에 국문과면 8할은 묻더라구요.”
난 또 뭐라고.
“가고 싶어서 갔겠지.”
뭐가 더 있을까.
‘가고 싶다’에 서사의 다양성이 발생하겠지만, 본질은 그것일 테다.
애초에 너는 언제든 자기가 원하는 걸 골라잡을 놈이었으니까. 그 시기만 다를 뿐, 자신의 주관을 독선적으로 믿으면서도 최선의 결과를 내는 게 너다.
나 역시, 존경했으니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꺼져, 하민. 더 못 먹어.”
“아니, 동화야, 너 죽어, 그러다가. 여기 그래도 고기 질이 좋은 편이라고.”
“네 위장에 뭔들 못 먹을까.”
왁자지껄, 나의 기행을 끝내고, 있는 그대로 행동하기 시작하자, 그제야 식탁 위 긴장이 녹아내렸다.
알게 모르게, 내가 헛짓거리를 하느라 다들 당황스러웠나 보다. 그런데도 다들 불평 한마디 없었으니, 이것들 사회에 나가면 손해만 잔뜩 보겠지.
[……당신이 할 말입니까?]닥쳐, 나도 아니까. 그러니 이번에는 실버타운을 만들 순 없어도 최소한 계모임은 만들어야겠어.
그렇게, 나는 지동화와 대화하느라, 이현재가 멍하니 웃는 걸 보진 못했다.
* * *
하, 죽을 것 같아.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려는 몸을 정신력으로 부여잡았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오늘 하루.
시간 순서대로 내 모습을 돌이켜 보고 결론지었다.
미친 새끼잖아, 그냥.
정신이 몇 번 오락가락했던 것 같은데. 카네기가 말하길, 유쾌한 인간이 되면 인간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했고, 대개 유쾌함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음과 얼추 통하는 구석이 있으니 괜찮겠지.
“괜찮진 않겠지만, 고생했어.”
목화가 내 어깨를 툭 치고 쾌활하게 웃었다.
음, 얼마나 더 친해져야 이현재가 망치 들고 집 문을 부숴주려나.
“형, 그건 좀 참아 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그동안 방치된 핸드폰엔 이현재로부터의 문자, ‘형, 이현재예요. 번호 이든이 형한테서 얻어 연락드려요. 가끔 놀아요!’라는, 지금의 이현재는 성격상 쉽게 뱉지 못할 문장으로 가득한 문자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