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7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70화(338/343)
“이현재, 너 나와 봐.”
“소란스러워요.”
문밖에서 나이가 곧 권력인 줄 아는 머저리의 노크 소리가 울렸다. 아니, 노크라기엔 과격하니까 타격일까.
과학고 졸업 이후 학과를 국문학과로 결정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렇게 난동을 부린다.
경박해라, 정말. 저런 걸 교수로 두고 있다니, 그 학과 학생은 어찌나 안쓰러울까.
“국문과 졸업 같은 명함을 어디다 써!”
“아버지가 교수로 재직하시는 곳두 그리…….”
아, 빨리 자립하고 싶다. 이렇게 콤플렉스를 자극해서 화나 부추기는 생활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저게 걱정의 일환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이현재는 책상에 쌓아둔 파일을 툭툭 쳤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법 행적 목록.
아, 이거 모으느라고 힘들었는데, 언제 써야 하지. 그 형은 남을 칼로 찔러도 눈 한 번 끔쩍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하면 실례이려나.
‘부디, 자퇴하길.’
하지만, 육성으로, 초면에, 그런 말을 뱉을 수 있는 사람이잖아.
밖에서 소란이 잦아들었다.
정곡이었나 봐. 하긴, 매번 다른 학교로 이직하고 싶어 했으니, 그래서 자기 제자 연구까지 훔치고, 참.
‘벌레 같은 것들.’
어떻게 그런 말을 웃으면서 대놓고 말할 수 있을까. 초면에는 체면을 차리는 게 보통인데.
쾅,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지겹고 지겨운 얼굴. 한 손에는 체벌용 막대.
아, 지겹다, 정말. 이거 가정 학대이지 않나. 성격이 비뚤어진 건 다 이것들 탓이야.
……아니지, 이현재, 침착해. 그건 자기 합리화에 불과해
이현재는 능숙하게 고통에 찬 소리를 억누르며 생각했다.
그랬으면, 학대에 시달리던 인간은 전부 개같이 자라야 하지만, 예외는 충분히 있을 만하지.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되지 못하는 거잖아.
X발, 그러면 이 행위엔 무슨 가치가 있지. 훈육이라기엔 교육이 없고, 저 인간의 화풀이면 맞아줄 이유가 없잖아. 우리 사이 무슨 정이 있다고 이걸 견딘담.
……아, 너무 싫다. 다 터뜨리고 싶어. 가정 관계가 파탄 나면 귀찮은 일투성이겠지. 약점을 제대로 잡고 이용하는 편이 좋은데. 저걸로는 모자라려나.
“네 애비가 말하는데 집중은 않고!”
‘애비는 무슨, 너, 나랑 피도 안 이어졌잖아.’
이현재는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힘으로는 이미 이기니까.
* * *
하, 아직 법적으로 성인이 아니니까 어딜 가지를 못하는구나.
공원 벤치에 일단 앉았다. 다른 친구들은 이제 고3이니까, 수험 생활을 반대하긴 싫고, 이미 합격한 사람 중에 도움을 청할 만한 애는…….
없군. 그럼 선배 중에서인가.
이현재는 당연하게도 지동화의 낯을 떠올렸다.
솔직히, 신비한 일이었다. 이든 선배나 하민 선배는 두세 번은 본 사이였지만, 그 사람은 초면인데. 신기하기도 하지.
‘…아마 뒤가 없이 사는 모습 때문이 아닐까. 예의가 없는 건 아닌데, 예의 없이 굴면 된통 당할 것만 같은 사람.’
품에 있는 말을 뱉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게 반사회적이면 반사회적일수록.
부모와 연을 끊고 싶다는 말은 너무나 불온해서 누구한테도 뱉지 못했다. 어렸을 때는 정신적으로, 크고 나서는 육체적으로 학대받고 있다는 자각은 있다.
세간에는 그걸 자각조차 못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가혹하게 굴려지는 아이들도 있다던데, 사정이 나은 편이지.
대충 참고 집에 남는 게 낫다는 게 합리적이라지만, 오늘은 견디기 힘들어 충동적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하, 그냥 노숙이나 하자. 남한테 폐를 끼치는 건 번거로우니까. 털썩, 벤치에 누웠다.
“…아마, 하루쯤은 괜찮겠지.”
젊잖아. 수렵 생활을 어떻게 했겠어, 그렇잖았으면.
“아니, 그러다 죽어. 최소한 박스로 바람막이라도 만들어야지.”
와, 그래, 그 형은 늘 이런 말투였는데. 뒤늦게 말을 놓으라고 하니까, ‘그럼, 그래.’라고 몇 번을 거절하다가 허락해 줬는데.
“가능하면, 집에 있는 게 좋겠지만.”
그 말도 맞다. 동화 형은 다른 둘이랑은 성격 자체가 달라서 이 추운 날 외출하기보다는 집에서 쉬는 걸 택할 편이지.
“…네?”
벌떡, 뭐야, 왜 육성으로 들려.
입으로 그대로 뱉으며 누웠던 벤치에서 일어섰다. 그제야 동화 형이 한 손에 여러 박스를 들고 있는 게 보였다.
“…노숙, 하시게요?”
이게 그 자리 쟁탈인가.
“아니, 너 덮어 주려고.”
“…네?”
뭔 미친 소리야.
“여기면, 이렇게 세우는 게…….”
동화 형은 자리에 털썩 앉아서는 청테이프와 박스를 여기저기 붙였다. 솜씨가 놀라울 정도로 정교했다. 유아교육과에서는, 혹시 놀이도구 같은 것도 직접 만들어서 그런가.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곳을 보았지만, 그런 건 전혀 신경 쓸 바가 아니라는 듯이 자기 할 일에만 집중했다. 그런 자세 덕일까, 이현재조차 뭐라고 말하지 못한 채 지켜보고 말았다.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벤치의 한 편을 막을 수 있는 바람막이가 세워졌다. 은은한 미소, 자신의 솜씨를 감상하는 장인 같은 만족감이 묻어났다.
“…이게.”
“바람막이. 이불용은 여기. 골판지로 되어 있어서 접을 수 있는 쪽이야.”
지동화는 손짓으로 누워 보라고 사인을 보냈다.
어안이 벙벙해 이현재는 그대로 누웠는데, 그러자 몸의 크기를 대충 가늠하더니 박스를 접기 시작했다.
그러자 침낭처럼, 몸에 딱 붙진 않아도 위에 덮을 수 있는 상자가 되었다.
“안에 신문지를 구겨 넣으면 그런대로 방한이 될 거야. 잠버릇이 심한 편?”
“…아뇨, 손 정도만 휘적거린다구 수학여행에서.”
“그럼, 장갑을 끼는 편이 낫겠네.”
아, 모르겠다. 이 형을 더는 모르겠어. 왜 노숙의 스페셜리스트인지, 그 성장 과정을 이해할 수가 없어. 혹시, 해보셨나? 아니,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지금 이 시점에 그걸 해주는 게 맞나?
“…보통은, 왜 노숙하냐구 묻지 않나요?”
그러자 동화 형은 아무렇지 않은 낯으로 답했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이 뱉은 말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네가 하고 싶은 거겠지.”
와, 알 것 같다. 이 형은 타인의 삶에 깊게 개입하는 건 싫어도, 죽지 않게 돕고는 싶은, 복잡한 인간이구나.
어리광 부리고 싶게 만드네. 먼저 나서서 돕는다고 하면 꺼려질 텐데, 이렇게 필요한 것만 도와주니 더 도와 달라고 떼쓰고 싶어.
“그래서, 노숙을 도와주시는 거예요?”
“응, 그냥 자면 죽기도 해. 몇 번 봤거든.”
“……미친, 대체 무슨 삶을 살아오신 거예요?”
“실언이네. 잊어 줘.”
그러고는 털썩 일어섰다. 엉덩이를 몇 번 털고는 이현재를 보았다.
“음, 신문지 사줄까?”
그 정도는, 너도 간섭받은 느낌은 아니지? 느긋하게 뒷말을 이었다.
따스해 보이지만 볼품없는 옷. 여기저기 헤진 곳이 보였다. 지난번에는 정말 열심히 꾸민 거구나.
“…와, 살다 살다 처음이에요. 쩐다, 형.”
“칭찬이면, 고마워.”
“저, 하루 재워 주실래요?”
당혹감이 얼굴에 흐른다. 하긴, 그렇겠지. 거의 초면이나 다름없는데 재워 달라고 해봤자.
약간 씁쓸했다. 경우도 없지. 강에서 구해 놨더니 봇짐 내놓으라고 한 모양새인데, 서운해하기까지 하다니. 나가 죽어야겠다.
“노숙은, 안 해도 돼?”
아, 거기가 문제? 그건 무슨.
그러고는 자기가 만든 박스를 약간 아쉽게 바라본다. ‘고생했는데, 조금은 아쉽네.’라는 눈초리.
“형, 혹시 정신적으로 병이 있나요.”
“음, 아마도. 현대에 살면 하나쯤은 달고 살지 않나.”
끄덕, 보통은 무례한 질문이라고 뭐라 할 만한 질문인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지껄였다.
아니, ‘듯’이 아니라 진심이겠지.
“형은 그 수준은 넘어선 것 같은데 말이죠.”
“음, 그것도, 아마도.”
끄덕. 진지하게 받지 마요.
이현재는 폭소하고 말았다. 아, 어리광 부려야겠다.
이 형이라면, 미친놈처럼 굴어도 ‘네가 선택했으면, 뭐.’라고 할 것 같아. 갑자기 국문과에 지원했다고 문을 강제로 열어 때려 패는 누군가와는 달리.
“원래 형처럼 똑똑하면 다 미치나요?”
“내가 아는 미친 사람은 다들 똑똑하긴 했어.”
너도 그렇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가만히 응시하는 눈에서 답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실을 목도하는 사람 같은 뚜렷한 눈초리. 자신은 아직 정상이 틀림없는데도 저 눈을 보고 있자니 ‘나도 그렇긴 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어쨌든, 그럼 일어나자. 저것도 분해하고 재활용하는 곳에 둬야 하니까. 집에 가려면.”
이현재가 일어나자 우르르, 상자가 흘러내렸다. 하나하나 쌓아 정리하자, 꽤나 무거웠다.
“여기는 뭐 하러 오셨어요?”
“과외 하러.”
“아, 강남에서 하시는구나. 그럼 집은요?”
“목동 근처.”
“조금 머네요.”
“응.”
그러고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툭툭, 무언가를 누르더니.
“얼른 처리하자. 택시 곧 온대.”
“오, 부유하시구, 그런 건가요?”
“너, 몸이 얼어 있어서.”
아, 정말, 모르겠다.
새로운 패딩이나 옷은 사지도 않는 걸 보면 돈을 아끼는 편일 텐데. 나 때문에 택시를 타겠다는 걸까.
* * *
몰랐네, 이현재한테 노숙하는 기벽이 있는 줄은. 아니면, 부모님이랑 다투기라도 했겠지.
아직 교통 정리가 덜 끝난 것 같았으니까. 뭐든, 아쉽다. 오랜만에 공학적 지식을 활용할 기회였는데.
“들어와.”
“단독 주택…….”
이현재는 뻘쭘하게 뒷목을 쓰다듬으며 걸어들어왔다.
“혼자 사…, 시나요?”
그런 건 보통 오기 전에 물어야지 않을까, 현재. 너도 약간 얼이 빠져 있구나.
“아니.”
“와…, 큰일이네요. 부모님께는 뭐라구 말씀드려야 할까요.”
“안 계셔서 괜찮아.”
그리고 나는 이현재가 뭐라 답할 틈도 없이 소리쳤다.
“목화.”
일단 같은 지붕을 공유할 사이이니 소개해야겠지. 방안에서 편한 차림새(민소매에 반바지)로 있던 목화가 나오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이분, 혹시 현재?”
“응.”
터벅터벅, 격한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내 명치를 한 번 후려치더니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뭔, 미친. 혹시 이전 가능성에서 알던 사이가 나오면 명치를 치는 게 저놈 규칙일까.
처음 정신 차렸을 때도 그러더니.
커헉, 짧은 신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괘, 괜찮으세요?”
“응.”
미소, 이럴 때는 미소다.
카네기, 나는 당신을 믿어. 아직 류이든에게 사회성 특강을 받지 못했으니까.
“저분은……?”
“내 동생이야.”
“아아, 아, 그렇, 군요.”
아마도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사실에 충격이라도 받았나 보다.
처음 만났을 때는 더 나이가 많았으니 충격받을 일도 없었는데, 새로운 경험이다.
벌컥, 문을 열고는 깔끔한 차림새로 갈아입은 목화가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동화 형의 동생, 지목화라고 합니다!”
“…아, 네! 이현재라구 합니다. 열여덟이에요!”
“우연찮게도 저랑 동갑이네요! 말 놓을까요!”
KTX 같은 속도로 친근하게 다가오는 목화.
아마, 예전에도 친구로 지냈으니, 저렇게 다가오는 거겠지.
아니면 저게 천성인가? 목화는 원래 남이랑 친해지는 데 능숙하니까.
“어, 그, 그래?”
아, 저 표정도 처음 보네. 저런 당황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