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7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71화(339/343)
이현재와 목화가 화목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니, 참을 수 없는 흐뭇함이 샘솟았다.
지동화 식으로는, 목화, 심바, 그리고 봉주가 함께 뛰놀고 있는 장면 같은 건가.
“와, 그러면 졸업할 예정인 거네?”
“응.”
“졸업 사진은? 어떻게 해?”
“친구들 고3 때 찍으면 교복 입구 찍는대.”
이 아름다운 장면에 자신이라는 오점을 남기고 싶지는 않지만, 끼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밥 먹었어?”
의식주,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을 고르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식을 고를 것이다. 모두 중요하지만, 생존에 직결되는 요소다.
게다가 의와 주가 적정 수준으로 제공된다면, 미식의 욕구까지 싹트는 게 인간이다.
“아니요.”
그러므로, 밥을 하자.
목화와 이현재는 이쪽에 관심이 끌린 듯 이쪽을 쳐다봤다.
카네기는 그런 말 따위 하지 않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입맛을 사로잡아야 다루기 쉬워지는 법이다. 괜히 중세 유럽에서 식사가 동시에 정치 협상의 무대로서 기능했을까.
“알레르기가 있는 건?”
이것조차 몰랐네. 지난 가능성에선 대체 뭐 하고 지낸 거야, 우리.
“없어요.”
“좋아하는 건.”
이것도 몰랐어. 어쩌지, 목 매달까. 어떻게 모니터 너머로 그렇게 오래 봤으면서도 좋아하는 음식조차 몰랐을까.
“없어요.”
네 탓이잖아, 망할 이현재. 왜 책 말고는 호불호가 없을까.
[닭볶음탕을 좋아합니다.]그건 네가 해줘서겠지, 사랑스러운 동화야.
감히, 내가 지금 처음 만나 입맛을 사로잡으려는데, 어떻게 네 추억을 들이밀 수가 있을까.
목화가 흠칫 놀랐다.
“저런 상태일 때 건들면, 귀찮아져.”
“아, 그래? 어떤 상태인 거야?”
“솔직히 잘은 모르겠는데, 저렇게 뭔가 멍하니 생각하고 나면 꼭 기행을 일삼거든.”
그런 대화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진수성찬을 차려야겠어. 이 중에 하나는 가장 좋다는 답을 주지 않을까.
리액션을 분석하는 도표를 작성해서 맛을 볼 때의 표정을 상세하게 분석하면 다음에 차려줄 음식을 낯간지러운 대화도 없이 알 수 있겠지.
다행이다. 곧 목화 고3 생활 시작이라 사둔 재료가 있어서.
“오늘 배 터지겠네.”
남기면 안 되지. 내 애정이 가득 담겼으니 단 한 톨도 남기면 안 된다.
최후의 만찬으로도 손색이 없는 식사를 대접해 줘야지.
……음.
* * *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며, 아무런 꿈도 없이 닥치고 책만 읽었다.
누군가 즐거웠냐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그랬다고 답했을 것이다.
불행한 가정에는 저마다의 사유가 있으니,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 역시 저마다의 길이 있을 것이다.
이현재가 책에 매몰됐던 건, 날 선 부모님의 시선으로부터 도피하면서도 세상과 이어지고 싶었던 바람 때문이었다.
그는 부모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고개는 늘 푹 숙이거나, 그게 체면치레 상 불가능하다면 시선만이라도 목 언저리를 보았다.
어렸을 적 기억에는 부모님의 얼굴이 선명하지 않다. 크고 나서는 꼴도 보기 싫어 스스로 눈을 돌려서 마찬가지였다.
그런 자신을 부모님은 뚜렷이 바라봤을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불쾌해져서, 이현재는 더욱더 책을 파고들었다. 자신만이 볼 수 있고, 저들은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안락함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가끔은 보고, 보이는 관계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 상호성이 전해주는 긴장감을 느끼고 싶었다.
비밀을 서로 공유하고, 올곧이 서로를 내보이면, 그때 오는 긴장감이 그리웠다.
눈앞에 바삐 움직이는 저 형은, 어째서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신에게 이런 비밀을 털어놓았을까. 잘못은 아닐지언정, 어디 가서 자랑스레 내어 보일 일도 아닐 텐데.
냄비, 프라이팬, 오븐, 모든 도구가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 일련의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초 단위로 계획이 짜인 듯이 탄탄했다.
행위 예술을 보는 듯한 환상조차 느껴지는, 아름다운 요리.
“…익숙하구나.”
이현재는 문득 중얼거렸다. 무례한 중얼거림이 틀림없어 순간 입을 틀어막았다.
‘부모님이 안 계신다.’라는 문장은 긍정적 해석과 부정적 해석 모두 가능하지만, 점점 후자가 아닐까 하는 확신이 차올랐다.
“우리 형은 평소에도 내 밥까지 책임지고 있어서 익숙할 수밖에 없지.”
지목화는, 초면인데도 또 비밀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댄다.
…아니지, 숨길 의도가 없으니 비밀은 아닌 걸까.
목화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끊김이 없는 손놀림을 구경했다. 태연하게 노숙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것부터 놀라운 사람, 호기심이 절로 인다.
좋지 않다. 원래 알고 싶은 사람일수록 기대를 품고 실망도 따르기 마련이잖아.
“일단, 전채 요리.”
툭, 툭, 목화와 이현재 앞에 작은 죽그릇이 놓였다.
호박죽이잖아. 이게,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음식이었구나.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무언가가 더 이어졌다.
“칠전판. 싸 먹어.”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긴 접시 한 편에 인도 요리에서 봤던 난 같이 생긴 흰색 반죽과 그 옆에 각 색의 채소가 올려져 있다. 전채 요리라는 이름답게 입맛을 돋우는 산뜻함이 풍겼다.
뭘 어떻게 싸 먹는데요.
“…이런 재료가 왜 집에 있는지, 혹시.”
목화는 질문에도 불구하고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자기는 감도 오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동생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
“몰라, 저 형이 이상한 게 한두 번이어야지.”
그리고 다시 툭, 이번엔 겨울답게 동치미가 올라가 있었다.
“이건 미안하게도 시판.”
아니, 구절판인지 뭔지는 시판이 아니었나요. 도대체 왜 그런 걸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아무리 부모님과 일찍 이별했기로서니, 대개는 밥 지을 줄 알면 다행이지 않나요.
지동화는 그런 우리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고 음식이 줄어드는 속도를 가늠하듯 눈을 좁혔다. 전채라는 건 메인이 따로 있다는 소리니 언제 내어줄지 계산하나 보다.
지동화를 더 알고 싶어 여기까지 왔건만, 도저히 뭐 하는 사람인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익숙한 듯 먹는 방법을 물어보는 목화, 역시 익숙한 듯 손을 움직이면서도 답하는 동화 형.
이 집에선 유일하게 나 혼자 외부인인가 보다.
마치, 소설을 보듯, 그저 보이기만 하는.
툭.
“이건, 네가 좋아한다던 콜라. 원래는 더 늦게 줘야겠지만.”
잡생각을 끊을 요량인지 눈앞에 컵을 들이밀었다. 마치 어딜 도망치느냐는 눈빛이었다.
두 눈을 마주보니 그 속내를 속속들이 읽히고 있는 것만 같다. 어딜 외부인이라고 합리화하느냐고 호되게 혼나는 기분이야.
……이건 세뇌 같은 걸까.
이현재는 손을 천천히 뻗어 컵을 쥐었다.
홀짝, 한 모금을 마시니, 기묘했다. 시원하고 따끔거린다.
그 짧은 만남에서 좋아하는 음료를 말한 적 따위는 없다. 여러 개 중에 무엇에 더 손이 자주 갔는지 관찰했던 거겠지.
보고 있었구나. 무서운 인간.
“메인 시작이야.”
“오, 이거 끝나면 디저트?”
“반상.”
“한식 코스는 전혀 몰라서 그러는데 그게 뭐야, 형?”
“식사지. 밥이랑 반찬이 나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당연하다는 듯이 갈비찜을 소분해 한 그릇씩 놓았다.
“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작은 잡채가 놓였다.
알지, 한식 메인엔 갓 만든 잡채만큼 맛있는 것도 없지.
“이건, 겨울 제철 해산물로 끓인 탕.”
잠깐. 계속 이어지는 음식들. 양은 적지만 종류가 말이 안 된다. 대부분 한 입 먹으면 끝이겠지만, 이 정도면 못 먹지 않을까.
“아니, 다 먹을걸.”
“…네?”
동화 형은 반문에도 불구하고 뒤돌아섰다. 부엌에서는 아직도 무언가 끓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돌솥이 올라가 있었다. 반상을 위한 밥인가 봐. 저것도 먹어야 하는 거지. 와아, 옆에 찌개도 끓고 있다.
이현재는 그제야 깨달았다, 어리광 부릴 대상을 한참을 잘못 골랐다고.
* * *
……뭐야, 왜 다 들어가.
이현재는 자신의 위장 크기를 새삼 깨달았다. 배를 만져 보아도, 평소보다 많이 먹었달 뿐이지 불쾌하다는 감각은 전혀 없었다.
아슬아슬한 한계, 딱 기분 좋은 포만감. 음식의 양까지 절묘하게 조절하는 능력이라니, 뭐 하는 형인데! 한국대엔 이런 인간뿐인 걸까!
“후식.”
지동화는 마침내 작은 망고 아이스크림까지─이것도 수제라고 한다. 평범은 진즉에 포기한 셈이다.─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맺힌 땀을 조금 닦아 냈다.
다행히 인간이구나. 생리적인 현상은 발현하니까.
마침 음식을 다 비우고 입이 심심하다 싶을 때쯤 따스한 음식이 올라오기에 무슨 기계가 아닐까 의심했는데.
‘우연히 만난 후배가 노숙을 시도하길래 상자와 테이프로 바람막이를 만들어주고는, 진심으로 응원한 다음에 이런 진수성찬을……?’
그게 무슨 이야기지. 플롯이 어디서부터 글러먹은 걸까. 인간에게 기대하는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라서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이현재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었다.
조금 투박하게 느껴지지만, 은은한 단맛. 정성 들여 만들었다는 게 돋보였다.
아, 체념하자. 해탈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저 형이 뭘 하든, ‘와! 그것두 되는군요!’라고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잠깐.
“……이제 와서 묻는 게 상당히 우스운데요, 형은 안 드세요?”
“점심을 거하게 먹어서.”
“지난 번에두 고기는 몇 점 안 드시더니, 그래서 그랬군요.”
“아쉽게도, 고기 질이 낮아서.”
그러고는 언제 꺼내 왔는지 오이를 잘라 만든 한입 스틱 같은 걸 꺼내서는 쌈장에 찍어 먹었다.
죄악감이 장난이 아니다. 진수성찬을 차려준 사람 앞에서 후식을 먹는데, 정작 그 사람은 오이를 먹다니.
음식점에 갔는데 직원분들이 식사 중인 것만큼 죄송스러워.
“내가 만든 쌈장.”
그러고는 자랑스레 쌈장 종지를 들어 자랑해 보였다. 그 표정에서 박스로 바람막이를 만들 때의 표정이 겹쳐 보여 웃음이 흘렀다.
무언가를 어필하며 ‘내가 믿을 만한 선배다.’라는 걸 보여주려는 것 같은데, 제대로 핀트가 어긋나있었다.
이 사람, 강원도 같은 데 들어가면 ‘나는 자X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겠지. 아니야, 촬영 소리 들으면 꺼지라고 할 사람이지. 진짜 자연인이 될 거야, 이 사람은.
웃음이 자꾸 새어 나왔다. 다른 선배들이 말할 때는 나오지 않는, 진짜 웃겨서 터져 나오는 웃음.
“너무 미안할 필요는 없어. 내일 아침에 먹을 거거든.”
잔반 처리. 젠장, 길거리에서 노숙하려는 걸 구해준 선배한테 그 보답으로 잔반을 먹이고는 그 앞에서 쾌활하게 웃다니!
이현재는 자신이 어디까지 떨어진 건지 깨닫고 말았다.
세상에, 평범한 쓰레기잖아.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어?”
둥, 이현재는 마치 협상테이블에 오른 것 같았다.
목화는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아마 동화 형이 배려의 일환으로 쫓아낸 거겠지.
이곳까지 왔다면, 답해 줘. 동화 형의 눈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아버지한테 맞았어요.”
“응, 그래.”
둥, 이현재는 협상테이블이 접히는 소리를 들었다. 지동화는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코코아를 한 잔 타왔다.
“어디서 잘래. 빈방은 있는데 이불뿐이고, 침대를 원하면 내 방에 누워도 돼. 내가 이불에서 자면 되니까.”
진짜 끝? 이게? 이걸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쉬움이 샘솟아, 이현재는 자기도 모르게 이미 입을 놀리고 있었다.
“…더 들어줄 순 없나요?”
“네가 원하면.”
그러고는 곧바로 자리에 앉았다.
‘……아.’
조금 알 것 같았다. 이 사람 눈에는, 자신이 지켜줘야 할 애로 보이는 거구나.
그래서 민감해 보일 주제는 최소한으로만 접근하고, 불편해하지 않게끔 최대한 배려하는 거구나.
이현재는 그 당연한 사실이 왜인지, 벅차게 느껴져서 가만히 앉았다.
일부러 불러 앉혀놓고는 한참을 말없이, 뭐라 정의해야 할지 모를 감정을 억누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