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7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72화(340/343)
“그런 거죠.”
이현재는 말을 마치고 코코아를 마셨다.
와, 이것도 은은하게 달다. 과하게 단 걸 싫어하는 건 어떻게 알아낸 걸까. 뭐 또 관찰해서 알아낸 거겠지.
지금도 이야기를 들을 때 작은 추임새만 덧붙일 뿐이었고, 대개는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현재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눈에 담고 있었다. 그러고는 깨달았다는 듯이 끄덕였다.
“그래서 노숙을.”
음, 납득했어, 라는 얼굴이네. 신비로워라. 보통은 뭐 그렇게 극단적이냐고 욕을 먹을 짓인 것 같은데.
“…물론, 진짜 하려던 거였나, 하면 아닐지두요. 치기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럼, 부모님에 대한 정 같은 건 남아 있어?”
몸이 굳었다. 훅 들어오는 질문이다.
눈을 어렵사리 마주치자, 그저 환자를 진단하는 것만 같은 의사의 냉정한 눈빛이다. 걱정도 안타까움도 없었다. 현상을 이해하려는 학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기 스스로도 믿을 수 없게, 안심되었다.
아무런 동정이 없어서 편해.
섣부르게 조언을 하려는 게 아니라, 처지를 파악하려고 하는 게 우선이라 다행이야. 아마도 조언을 묻기 전까지는 말해주려고 하지도 않겠지.
적당하다. 이현재가 생각하는 편한 거리감을 파악해서 유지하고 있다.
솔직히 무서운데.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대체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는…….
“하, 모르겠네요.”
그러므로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저 사람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솔직히 반인륜적이잖아요. 가족이니까, 챙겨야 하지 않나 싶기두 하구.”
완전한 거짓말. 그런 어쭙잖은 생각은 진즉에 사라졌다. 이제 와 신경 쓰고 있는 건 고작 미성년자라는 신분과 주변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뿐이다.
그치들이야 내버려 둬도 알아서 먹고살 거고, 내연 관계에 있는 것들 용돈도 챙겨 줄 수 있으니, 그 정도면 됐다.
“…음.”
시계의 초침 소리가 과장되어 들린다. 호러 영화의 어느 기법처럼 기묘한 긴장감이 조성됐다.
“하긴, 전부 말하기엔…….”
아직 덜 친하겠지, 생략된 뒷말을 읽어냈다.
그는 아쉬워 보였다. 모든 걸 털어놓기엔, 관계가 얕다는 사실에.
거짓말인 건 진즉에 눈치챘지만, 거짓말을 한 이유는 오해했나 보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오해라 어처구니가 없었다. 오늘 하루 보여준 비상식적인 행적은 갑자기 어디 내다 버리고!
“마음 내키면, 또 얘기해 줘.”
지동화는 간단하게 오늘의 대화를 정리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 마신 코코아 잔을 가져가 싱크대로 걸음을 옮겼다.
“…와, 형은 진짜, 무섭네요.”
“그런 말 처음 들어.”
그건 그만큼 친해진 사람이 없어서, 아닐까.
채하민은 논외다. 그 인간은 이상할 정도로 모든 것에 호의적이다.
두려움이 사라진 초식 동물 같은 상태인데, 다행히 현대 사회라 안전했다. 무인도에 떨어지면 ‘와, 이거 맛있어 보여.’라고 지껄이곤 독초 먹을 타입이니까.
“나도 뭔가 비밀을 말해주고는 싶은데.”
컵에 물을 받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아쉽게도 나한테는 비밀이랄 게 없어서.”
“…이것두 친밀감의 문제인가요?”
사람에게 비밀이 없을 리가. 원래 모든 인간은 다들 하나씩 숨겨야만 하는 게 있는 법이다.
“네가 궁금한 것 중에 아무거나 물어 봐.”
인간 불신은 기본적인 자세다. 이현재는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심리적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다.
‘물어 봐.’라는 짧은 한마디가 한 번 비밀을 찾아보라는 식으로 들렸던 건 꼬인 심사 탓이었다.
어쩌면, 그냥 더 알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부모님은.”
“돌아가셨어.”
“범죄 행위 저지른 적 있나요?”
“새벽에 무단횡단 정도.”
“가장 미워하는 사람은?”
“없어.”
“그럴 수가 있나요?”
지동화는 입을 가리듯 손을 올렸다. 그 뒤에서 입이 미소 짓고 있으리라는 건 당연했다.
무엇이 재밌는 걸까. 이 대화는 솔직히 불쾌할 만한 개짓거리가 아닌가. 먼저 나서서 비밀을 지껄여놓고는 캐묻고 있는 판국이니.
“굳이 지금 고르라면, 네 부모 정도.”
예상외의 답변에 이현재는 움츠러들었다.
지동화는 눈까지 약간 가늘어졌다. 호선을 그린 눈꼬리는 보기 좋았지만, 약간 섬칫한 감도 있었다.
아, 이게 진짜 미소구나. 예전에 보여줬던 미소는 가식이었고.
“…더 없나요?”
이현재는 기죽지 않고 더욱더 파고들었다.
“네 일이 해결되고 나면, 채하민의 과 사람들이 미워질 예정이고.”
산뜻한 표정으로 담백하게 말하고 있지만, ‘일’이 ‘해결’된다는 말을, 이런 사안에 말할 수 있던가.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 문제는 ‘일’이라고 단순히 말하기엔 복잡하고 질척거리며 ‘해결’이라고 말하기에는 비인간적이다.
‘미워질 예정’이라는 말도 그렇다. 그게 어디 쉽게 쓸 수 있는 표현이던가.
이현재는 차분히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 사람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려 할 때면 다시 해괴한 짓을 반복해서는 퇴짜를 놓았다.
이현재는 사람을 소설 속 인물처럼 가벼이 분석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 인간은 정말 모르겠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한다구 생각하세요?”
허락해 버리고 말았다. 이현재는 지동화의 배려로 유지하고 있던 거리감을 직접 허물었다.
지동화의 관점에선, ‘아직 친하지 않아서 묻지 못했던 것’을 직접 말하고 있는 셈이다.
“네가 바라는 그대로.”
지동화는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역시 그 너머에는 입술이 고운 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현재는, 만약에, 이 모든 대화가 지동화가 의도한 대로 이어졌다면, 자신은 무슨 기분일지 추측하다가 접었다.
“큰 도움은 못 돼도, 방을 하나 빌려주는 건 할 수 있어. 부모를 끼지 않으면 부동산 계약도 힘드니까.”
바라는 게 뭔지도 알고 있나 보다. 부모와 연을 끊고 혼자 살아가고 싶다, 라는 작은 소망을.
“……왜.”
보통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간한테 이렇게까지 해주던가.
“왜죠?”
머릿속에 다양한 예상 답변이 흘러갔다.
‘……혹시, 이 인간 날 어디 팔아먹으려는 걸까?’라는 의혹에까지 도달했을 때.
“동생이랑 동갑이라.”
이번에도 또, 자기 혼자 상식적인 답변을!
이현재는 오묘한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왜 가끔씩 핀트가 돌아오는데! 차라리 처음부터 끝까지 미친놈이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사람한테는, 아이답게 클 시간이 필요해.”
어?
“……애답게요?”
“응. 유아교육과잖아.”
“약간, 자존심에 상처가 난 것 같은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장 과정에서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는 감각이 없으면 심리적으로 위태로워지거든. 정신분석학적으로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지.”
순간, 이현재는 비딱해졌던 심사가 바로잡혔다.
피사의 사탑을 옆으로 밀어 올려 바로 세운 것만 같은 충격이 몰아쳤다.
이건, 아무리 들어도…, 경험담이잖아. 동병상련이라는 사자성어를 이렇게 깨달을 줄은.
머리채를 틀어 잡힌 기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동화는 이현재를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히 이해했던 게, 그런 거리감을 얼마 만나지 않고서도 깨달았던 게, 사실은 전부, 본인도 그러해서…….
“……노숙해 본 적 있어요?”
이현재는 또 멍청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응. 동생한테 못 할 짓을 하고 충격받아서.”
쾅, 이현재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곳에는 지목화가 서 있었다. 밑에는 핸드폰이 바닥을 기듯이 팽그르르 돌고 있었다.
일부러 던져도 저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다.
“…진짜야?”
“목화, 둘이서 대화하는 데 엿듣는 건…….”
설득됐어. 엿듣는 건 옳지 않지.
“안 엿들었고! 언제 자는지 물으려고! 잠시 나왔는데!”
아, 또 설득됐다. 그런 이유라면.
오늘 처음 만났을 때의 온화하고 부드러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마치 매운 거 싫어하는 연인에게 ‘오늘 X떡 어때?’라고 물었을 때나 지을 것 같은 정색한 표정.
이현재는 자신과 상관 없는 형제 간의 말다툼을 들으며 웃음을 참았다.
‘과거 일로 트집 잡는 것도 귀찮으니, 다음부턴 그런 짓은 하면 안 된다.’라는 말로 다툼이 끝나는 것을 보며 ‘저 형은 동생이 억제기구나.’라는 우스갯소리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너도.”
“……어?”
목화의 지목에 이현재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 왜요? 저는 얌전히 웃음이나 참는 중이었는데.
“노숙해 본 적 있냐고 물었잖아. 너, 절대 하면 안 된다. 저 형을 닮겠니, 뭐니, 그런 개소리 하면서 그러면 안 돼!”
왜 갑자기 타깃이 자기가 된 거야.
“아니, 닮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
“목화, 얘 오늘 노숙하려던 거 주워온 거야.”
빠른 배신.
저 간사한 혀를 보아라. 무엇이든 받아들일 것만 같은 넓은 포용력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보호받는 감각’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그러자 목화는 동공을 크게 확장하고, 자신의 치열이 상당히 고르다는 것 역시 보여주었다.
“절대, 안 돼.”
그대로 바닥에 꿇어앉아 목화는 이현재의 두 손을 끌어모았다.
“무슨 이유인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아직 물어볼 수 없지만.”
그건 네 형이 이미 다 들었단다. 하지만 지동화는 입을 굳게 다문 채 흐뭇하게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차라리 우리 집에 와. 빈방은 있으니까.”
꼭 잡으며 간절하게 비는 게, 이상했다.
왜 이 집 형제는 모르는 사람이랑 다름없던 자신에게 이리도 친절한 걸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신이 마음먹고 이 집에서 금품을 탈취하려고 한다면 어쩌려고!
“…내일부터 당장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
오기가 들었다.
“그러면 그렇게 해. 우리 형이 돈은 잘 벌어 와서…….”
“…내가 뭐라도 훔치면 어쩌려고!”
“훔칠 인간은 그런 말을 하지 않고, 해도 오기로 하는 거겠지.”
뭐야, 동갑인데 왜 이렇게 지혜로워.
어안이 벙벙하다. 목화의 올곧은 두 눈은, 동화 형의 그것과는 감각이 달랐다.
목화는 거리감 따위 모르는 것처럼 굴었다. 저돌적으로 들어오면서, 그저 자신의 걱정을 부딪쳐 올 따름이다.
어디 가서 죽으면, 이 집안의 형제는 마음 아파하며 자신들의 무능을 탓하겠구나.
그리고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려고 하겠구나.
무언가 말려들었다는 깨달음은 번개와 같았다.
이현재는 끼익, 거리는 소리를 내듯 지동화를 쳐다보았다.
만족스러운 미소가, 시선을 받으니 불이 꺼지듯 자연스레 사라졌다.
다 계획했나 봐. 뭘 어떻게 한 건진 모르겠지만, 지목화가 나올 타이밍까지 염두에 두고 대화를 끌고 갔나 봐. 미친 새끼 아니야.
그것도 고작, 지목화에게 ‘얘는 노숙을 생각했더라.’라는 짧은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말해주었다는 합리성을 위해.
식사를 통해 안심시키고, 직접 모든 사실을 털어놓게 만들고, 그다음에는 자신과 달리 거리감 따위 조절할 생각 없는 인간과 연을 맺게 해서, 불편하다는 생각은 느낄 새도 없이 ‘그러겠노라.’라고 답하게끔.
“그래서, 어느 방이 좋아, 현재.”
“맞아, 정해! 오늘은 부실해도, 나중에 노숙하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오게끔 미리 준비해 둘게! 아예!”
“……어?”
말려든다. 은근하게 목화를 장기말처럼 이용하고 있어, 저 인간.
아니, 말려들었다. 지목화의 손을 뿌리치기가 너무 힘들었다. 자신의 가정사를 전혀 모르는데도, 순수한 형태의 걱정이 쏟아졌다.
“그리고 형은 그렇게 중요한 걸 왜 이제 말해!”
그건, 내가, 너한테, 정서적으로 가깝게 다가갈 시간을 주려고. 목화, 너는 천성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쉽게 마음을 열게끔 하니까.
“진즉에 말해야지!”
그러나 그런 사실을 모르는 지목화는 그저 분노할 뿐이었다.
지동화를 향한 그 분노 앞에, 이현재의 의사는 표현될 수 없다. 그 분노의 원인이 ‘자신을 향한 걱정’이라서.
“……혹시, 공원에서 만난 것도, 뭔가 계획되어 있었나요?”
“그럴 리가.”
지동화는 느긋하게 답했다. 그러나, 왜인지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떨치기는 쉽지 않았다.
“현재야, 저 인간은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
그리고 역시, 목화는, 아무것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