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7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73화(341/343)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니, 그럴 리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지 않고서야.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자신이 왜 이 집에 들어와서 살기 시작한 걸 설명할 수가 없다.
목동에서 한국대입구역이나, 강남에서 한국대입구역이나 거기서 거기다.
솔직히 대중교통만 이용하면 후자가 더 빠르지 않을까. 합리적으로는, 그 어떤 이유도 댈 수 없는 선택이다.
“짐은 이게 다야?”
“네, 책장은 그대로 두구 왔어요. 좋아하는 책은 전자책으로 다 가지구 있거든요.”
책은 전자책이 좋다. 아날로그 특유의 감성, 종이의 질감 같은 것도 놓치긴 아쉽지만, 그보다는 편의성이 비교할 수가 없다.
책만 수백 권이 들어있는 소중한 태블릿을 품에 안아 들었다. 이북 리더기가 더 발전했으면 좋겠어.
“나도 전자책이 더 좋더라.”
자연스레 미소 지으며 동화 형이 다가와 캐리어를 대신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휘청, 쓰러져 내렸다. 쿵, 캐리어를 바닥에 내려놓고 거기에 기대 쉬었다.
…아니, 쉬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견뎌내는 모양새였다.
뭐지, 저건, 왜 쉬지……? 아, 자기보다 두 살이나 어린 동생이 가볍게 들고 왔던 짐을 자신이 들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고, 좌절하는 거구나.
이현재는 비소가 절로 나왔다. 와, 이 형은 정말 괴롭히고 싶은 맛이 있다.
“나약하네요.”
“……공부만 해서.”
“저두요.”
한국대 합격생 중에 책상물림이 아닌 애들을 꼽는 게 더 쉽지 않던가.
“하하, 이든이 형이랑 같이 운동을 해보시는 건 어때요, 형?”
비상한 머리가 어떻게 말해야 동화 형의 아픈 속내를 쿡쿡 찌를 수 있는지 계산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동화 형은 자기보다 어린것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싫어하더라. 은근히 쓸모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네, 이 형은.
“뭐 해, 형.”
목화가 의아하게 다가와서는 캐리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동화 형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힐끔, 가볍게 목화의 손을 한 번 보고는 다시 자조적으로 웃었다.
“역시 나약하네요.”
“신체적 나약함은 극복할 수 있어, 현재.”
“아니야, 형. 춤출 때는 신체적으로도 꽤 건강했는데 지금은 진짜…….”
발이 우뚝 섰다. 자신이 어째서 이 집에 하숙 형식으로 살기를 결정했던가!
물론 밥이 맛있다. 동화 형은 입맛이 더럽게 까다로워서 자기가 만든 음식은 적어도 그 기준을 충족해야만 내어놓으니. 집은 좋고, 조건까지 합리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궁금하잖아, 저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지금까지 봐왔던 지동화는 이상하리만치 가정적인, 옷걸이와 낯짝은 볼 만한데 살릴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생계유지에 목을 매는 사람이었다.
하루의 모든 계획을 초 단위로 짜고, 남이랑 대화할 때도 계산하는 주제에, 춤을 춘 적이 있다고.
클럽에 가지도 않겠거니와 친구 따라 가면 춤은커녕 시끄럽다고 염병을 떨 것 같은 인간이면서, 춤을 췄다고? 그래서 건강까지 좋았다고?
인생에 거대한 변곡점이라도 있었나.
지동화는 이현재의 반짝이는 눈을 보고는 웃었다. 툭, 앞서가던 목화의 등을 손가락으로 쳤다.
“목화.”
“…아.”
정적, 숨이 약간 막힌다. 이현재는 철저하게 배제된 상황에, 목화는 자신의 실수에 사지가 굳었다.
지동화는 이현재의 팔목을 느슨하게 잡아 안으로 이끌었다.
“수치스러운 기억이야.”
더 궁금함을 불러일으키는 언행.
이 형, 분명히 알고 이러는 거겠지? 이 집에 끌어들일 때부터, 이런 식으로, 자꾸 무언가를 질문하게 만들잖아.
건강이 좋을 정도로 춤을 췄으면, 최소한 동아리 가입은 했어야지 않나.
이런 인간이 갑자기 계획에도 없이 충동적으로 동아리에 가입했을 리도 없고, 무슨 생각이었을까.
젠장, 상상력이 자꾸만 뻗어나간다. 저런 부류의 사람이 왜 춤을…. 혹시 현대 사회의 어둠인가.
“들어와.”
이현재는 지동화의 말에 발을 뻗었다.
아마 저건, 동화 형이 찾아보라고 했던 자신의 비밀과 관련이 되어 있나 보다. 와아, 얌체 같아라. ‘수치스러운 기억’이라고 퉁 치고 말 돌리는 거구나.
남의 비밀은 함정을 파가면서 자백하게 해 놓고는, 자기 비밀은 뱉지 않겠다 이거구나.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러면 캐 물어야지. 어리잖아, 봐줘요. ‘형’이라는 단어가 중요하잖아요, 형한테는.
동화 형은 방으로 안내하면서도 힐끔 뒤를 돌아봤다.
“내가 강제로 나한테 추라고 시켰거든.”
“형, 그거 말해도 돼?”
“현재는 괜찮지 않을까.”
“와, 나 그럼 다 불어도 돼?”
“그건 이르지 않을까.”
다시 지동화의 사악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한테 도움받는 게 익숙하지 않으니 자꾸 미끼를 걸고 ‘오래 살아.’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여기가 네가 살 방.”
목화가 짐을 내려주었다. 넓은 방, 이 집은 아마 부모님께 물려받은 곳이겠지.
이 방에는 어떤 시간이 지나갔을까. 목화와 동화 형이 각각 방을 하나씩 쓰고 있으니, 이곳은 어쩌면…, 어렸을 때 동화 형이 썼다든가.
침대 같은 것들은 새로 산 건지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책장이나 벽지 같은 것들만 새것이 아닌 듯 약간 손때가 묻어 있었다.
유럽의 어느 도시는 미사일 폭격을 당하였고, 그 잔해 위에 새로이 건물을 지으며 그 경계가 뚜렷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마치 이 방처럼.
이곳엔 누가 살았고 누가 떠났다가, 다시 자신이 살게 된 것일까.
잘 선택한 게 맞을까. 여기서 사는 거.
지동화한테 말릴 대로 말려들어 여기까지 왔지만, 잔해 위에 자신을 쌓는다는 게 조금 버겁다.
“내가 어릴 때 쓰던 방이야.”
“그렇구나.”
이현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부모님께서 쓰시던 방이었으면 심장이 떨리고 위장에 구멍 두세 개는 뚫렸을 거야.
그런데, 그래서 어떻게 속내를 읽었냐고, 소름 돋는 선배 놈아. 무서워 죽겠다, 진짜.
미쳤다고 호랑이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왔……, 그러고 보니 저 인간, 분위기가 호랑이 닮았어.
인간인 자신으로선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편하게 쉬어.”
동화 형은 활짝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하, 뭔가 삶이 꼬이기 시작하는 건지 풀리기 시작하는 건지 감이 안 온다.
이현재는 캐리어를 열다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 뭐야, 엄청 후련하네. 안쪽이 헐렁한 기분이다.
평소에 꽉 묶여 있다가 밧줄이 끊겨서 원래 형태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어색하고, 호흡이 가쁘다.
…진짜, 그 집에서 나온 건가?
이제, 다시 안 들어가도 문제가 없는 거구나.
돈이 문제지만, 이렇게 싸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 게다가 합리적인 식비로 맛있는 식사까지 제공해 주니까 아르바이트만으로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진짜 나왔구나. 이현재는 그대로 침대로 뛰어들었다.
동화 형이 신경을 쓴 걸 증명하듯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조차 없는 매트리스가 몸을 감쌌다.
복잡한 생각이 쓸려나갔다. 잔해니 뭐니, 지동화니 뭐니, 다 사라지고, 눈을 감았다.
‘…내가 나한테 춤을 추게 시켰다.’
습관대로 사고가 이어진다. 그게 무슨 소리일까.
……아, 이상한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가설밖에 생각이 안 나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영향을 미쳐서 춤을 추게 만들었다는 말 같잖은 플롯밖에 떠오르지 않아.
지동화가 주인공이면, 자기 계획의 일환이라면서 과거의 ‘나’의 의사 따위는 무시하고 강요할 것 같지.
‘어차피 난데, 뭐.’라는 식으로. 다른 사람이었으면 윤리적 고민을 했을 인간이…….
“…뭐지, 이 인간, 소설 안에서 굴리니까, 기분이 좀, 좋은데.”
이현재는 벌떡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을 손바닥 안에서 굴릴 줄 아는 인간이라 그런가, 멋대로 죽였다 살렸다 할 수 있는 상상 속에 놓아두니 상당히 유쾌하다.
책상에 다가갔다. 이것도,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자리에 앉아서 뭔갈 고민했겠지, 그 인간.
이현재는 의자를 당겨 앉아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아, 더 궁금하네.’
말이 춤이지,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온몸의 근육을 조지는 종합 운동의 일종이지 않나.
그 몸은, 숨쉬기 운동밖에 모르면서도 입이 더럽게 까다로워 먹는 양이 적은 인간의 몸뚱이다. 그러면서 골격이 좋은 편이라 티가 안 나는 거지, 더럽게 말랐을 거야.
‘춤췄을 것 같지는 않은 몸인데, 목화의 말투는…, 거의 직업적인 감각으로 말했으니…….’
그거 말해도 괜찮냐는 반문까지 얹어서 생각해 보자.
이현재는 대학 생활이 시작되는 이 무렵, 남들은 면허를 따거나 어학 점수를 딸 이 시기, 지동화라는 인간의 한마디를 해명하기 위해 수많은 글자를 새겨 내렸다.
‘……아, 망할, 자꾸 머리가 이상한 플롯으로.’
전생에 춤을 췄다는 상상이 또…. 현실 안에서만 해명해야 하는데.
아니다, 현실에서만 해명하기엔, 아직 지동화를 잘 몰라.
이현재는 기지개를 켰다. 책상도 이제 자신이 쓰는 것이니 정리해 둘 필요가 있겠다.
서랍을 열어 필기구를 넣으려는데, 이미 그 안에 작은 노트가 들어 있었다.
뭐지, 이런 건 따로 넣어둔 적이 없는데. 동화 형이 미처 빼두지 못한 건가.
순간, 무례하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어.”
가계부, 구나.
이현재는 자극적인 정보는 전혀 없는, 정갈하게 써진 지출 내역을 눈으로 훑었다.
이 방은 어렸을 때 지동화가 사용했다고 했지.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 방에서 동화 형은 연필을 꾹꾹 눌러 가계부를 썼구나.
이현재는 손으로 종이의 표면을 약간 눌러봤다. 힘이 과하게 들어가 있다.
연필을 잡을 때 손목에 무리가 생기지 않으려나 싶을 정도로. 왜, 왜 그랬지.
……힘들었구나.
자신이 이 모든 걸 떠맡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격정을 불러일으킬 때, 그걸 억누르려고 무의식적으로 연필에 힘을 줬구나.
정취가 이상했다. 창문으로는 노을빛이 쏟아졌다.
학교를 마치고, 장을 보고 나서, 영수증을 하나하나 고사리손으로 모아, 이곳에서 연필에 힘을 줘 가계부를 작성했다.
이현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섰다.
상상, 어린 지동화가 무표정으로, 그러나 손목에는 힘이 들어간 상태로, 가계부를 꾹꾹 눌러 쓰다가 가끔 손에 힘을 풀어 몇 번 주무르면, 우연히 저 노을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았을까.
소멸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풍경. 죽음을 생각게 하는 시간이니.
다시 자리에 앉아 이현재는 우울한 눈으로 가계부를 보았다.
그리고 ‘목화 보컬 학원비’라는 항목을 보자마자 터져 나오는 해답들.
혹시 목화가 연예인 지망생이었나?
그래서 동화 형은 개같이 하기 싫었지만, 동생을 보러 같이 학원에 다녔다는 게 ‘춤’의 해답인가?
아니, 이상하잖아. 그런 등신이 어디 있어. 과보호도 그 정도면 정신적인 문제다.
이현재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것처럼 몇 번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다 보니 의자가 엉망으로 놓여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 소파에 누운 목화 머리맡에 앉았다.
“…목화야.”
“왜?”
“혹시, 연습생 같은 거 한 적 있어?”
벌떡, 그리고 갸웃, 목화는 혼자서 뭔가를 골똘히 고민했다.
그다음은 절레절레, 또 피식.
“아니,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음, 그렇구나.”
“왜?”
“아니, 잘생겨서.”
이현재는 순수하고 맑게 웃었다. 그러나 속내는 복잡하디 복잡했다.
무언가, 알아선 안 되는 것에 차근차근 다가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