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7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74화(342/343)
목화는 든든한 배를 두드리며 길을 걸었다.
연습생, 연습생이라.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이야.
솔직히 잘 기억나지는 않아도, 아득한 먼일처럼 흐릿하긴 해도,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다.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었을까.
확신할 수 있는 건, 형이 뭔가를 흘렸다는 것.
지금 이 세계에 그걸 아는 건, 형제밖에 없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현재랑 노는 중이야.’
라는 헛소리를 한 번 하고는 아무런 말도 없으니 갑갑하다.
다른 구석이 있다. 편의상 처음 만난 형을 작은형, 지금 절찬리 대학교에서 너드 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형을 큰형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생긴 건 똑같으면서 묘하게 다를 때가 있다.
“…혹시.”
직접 알게 할 생각이구나. 뭔가 흘려서 이상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게 목적인가.
어쩐지 ‘오늘 현재가 오면 형은 춤췄을 때가 더 건강했다고 말해줄래.’라는 개소리를 또 하더니.
그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취향이 괴상하다.
힌트를 어느 정도 줬을 때 알아챌까, 그걸 보는 게 즐겁나 봐.
미친 큰형, 묘하게 더 성격이 꼬여 있잖아.
작은형은 비밀을 말해주려고 몇 번을 고민했을 텐데, 큰형은 그런 일말의 고민조차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걸 빌미로 이현재를 집안에 살게끔 하다니, 뭘까, 대체.
무슨 차이지. 도대체. 아니, 정확히는 무슨 속셈이지.
순전히 재미를 위해서는 아니겠지. 그러면 진짜 제정신 아닌 건데.
“목화야아아아, 뭐하냐아아!”
김현진이 불쑥 튀어나와서는 지목화의 등짝을 내리쳤다.
지겨운 인연이지, 정말. 형한테 부탁한 적도 없는데, 왜 다 같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걸까.
“꺼져 줘, 제발.”
“아침부터 덕담 고맙다. 잘 먹을게. 안 그래도 굶어서 힘들었는데.”
“……하.”
얘도, 성격이 뭐 같아. 왜 주변에 하나 같이 이상한 사람밖에 없을까.
“아, 학생회에서 1학년 학생도 받아준다던데, 같이 들어갈래? 스펙 쌓아야지.”
싫어, 학생회장이랑 전생에 아는 사이라 아는데, 성격 더럽거든.
“들어가고 싶다고 들어가는 거 아니잖아.”
그리고 학생 자치니 뭐니, 명분밖에 없는 학생회, 들어가 봤자 생기부에 몇 줄 적히는 게 다인데, 우리 학교는 더럽게 일만 많이 시킨다고.
연습생 신분이었어도 전생의 친구들에게 들은 게 있다.
“어, 미안.”
“……불길하게 왜.”
김현진은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자신이 무언가 사고에 휘말리면 절반 이상은 저 새끼 탓이었어.
이번에는 좀 거리를 둘까 했지만, 저 불도저 같은 양아치는 그럴 틈도 없이 파고들었다.
하, 어쩌지, 정말.
“……신청서, 넣었나 보네.”
괜찮아. 한국은 아직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니까. 들어가기 싫다고 하면 그만이지.
그나저나 형은 뭘 하고 있을까. 이현재랑 같이 등교할 거라던데,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으려나.
목화는 평화롭게 생각했다.
음습하고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알지만, 겉으로는 순한 척하는 진한이 ‘어, 쟤랑 친해지면 편하겠다. 일 잘할 듯.’이라고 생각하게 되리라는 것은 전혀 모른 채.
* * *
가능성이니 뭐니, 직접 말해 봤자 믿기 어려울 뿐이다.
지동화는 자신의 노력으로, ‘동화가 괜히 그런 말 할 사람은 아니니까.’라는 걸 쌓아 뒀지만, 나에게는 쉬운 일도 아니고.
지동화는 아이돌이라는 명목으로 하나로 묶여 계속 일상을 공유했지만, 나는 그게 불가능하니까.
‘사실은 제가 시공간을 점토 다루듯이 휘적댈 줄 압니다. 지금은 제가 직접 막아뒀는데요, 죽으면 다시 그 일을 하러 가게 될 예정입니다.’
어떻게 이딴 말을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요령 좋게 뭐는 숨기고 뭐는 숨기지 않고 정하더라도 똑같다. 결국에는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라는 사실 자체가 묘한 일이니까.
그러니까 조금씩 흘려보자. 지금이 아닌 정보들을.
비밀을 직접 캐낸 사람은, 그 비밀이 어떤 종류든 책임감을 느낀다.
‘사실 김치를 싫어하지만 억지로 먹고 있다.’ 같은 비밀이라 할지라도, 알게 된 이상, 그리고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한 이상, 김치찌개를 피해 점심을 고르는 배려는 하게 되는 법이다.
하물며 집 구석구석에 있는, 지금은 사라진 시간의 기록들을 자신이 직접 발견하게 되면 어떨까.
이현재는 앞으로 그 방에서 가계부나, 있을 수 없는 사진, 혹은 내가 직접 썼던, 발행 연도가 지금보다 미래인 책들. 그런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직접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현재는 나한테 그걸 보여준다든가, 목화한테 내민다든가 하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이게 왜 여기 있지.’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목화는 정말 모른다.
이전의 가능성을 기억하는 게 나뿐이라는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낡은 가계부는 조작하기 가장 쉬워서 일찌감치 두고 나왔으니, 이현재는 무심코 그걸 보았을 테고, 목화는 다닌 적도 없는 학원의 기록을 보며 의아해하겠지.
중고장터에 처음 한 장을 제외하고 쓰지 않은 가계부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건 다행이 맞을까요.]‘그러게, 쓸 마음을 먹었다는 건, 충동 소비가 심하면서도 그걸 억제할 만큼의 자제력이 없다는 뜻일 텐데.’
어쨌든, 어쩌면 목화한테 이미 물어서 ‘얘는 왜 거짓말을 할까.’라는 오해에 빠졌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이현재는 합리적이니 나를 범인으로 의심하겠지만, ‘이 인간이 말 같지도 않은 걸 계속 조작하네!’라는 생각에 빠져들 때쯤, 모든 비밀을 자백해야지.
사실은, 이전에도 우리는 알던 사이였다고.
식(食)과 주(住) 측면에서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면서도 부모님께 인정받지 못했던 콤플렉스는 남아서 마음 한구석에 있던 ‘왜 나한테 잘해주지?’라는 끝없는 의문을 품겠지.
지속적인 호의와 왠지 자신을 잘 아는 것처럼 읽어내고, 그 집에는 가끔 몇 달 후에 일어날 일을 적은 메모지 같은 것도 발견되다니. 아무리 현실적인 인간이어도 흔들리겠지.
[……성격이 더럽습니다.]그러게. 그런데 어쩌겠어.
한집에 살면서 무슨 말을 해도 믿게 만드는 건, 나에겐 재주가 없다.
이현재의 꿈을 도와주지도 못했고, 부모님을 직접 곤죽을 낼 수도 없으니까, 은인이 될 수도 없다.
모든 걸 말해주고 싶어도, 그대로면 들어주지 않을걸.
[……음.]아마 네가 뭔가 계획해 두긴 했겠지만, 가만히 있어, 기이한 놈아. 모처럼 직접 살아서 설레니까.
“어, 동화 형.”
이현재가 직접 제 발로 걸어서 이쪽에 손을 흔들고 있다.
대화를 나누고, 같이 학식을 먹으러 들어간다.
채하민과 류이든이 올 때까지 잡담을 이어가던 중, 이현재가 ‘아!’ 소리와 함께 박수를 쳤다.
“맞다, 근데, 목화 혹시 연습생 같은 거 한 적 있어요?”
중요한 순간이다. 당혹감을 조금 내보이고, 곧바로 갈무리.
지금의 이현재가 표정을 잘 읽지는 못하더라도 알아챌 정도로만.
“아니, 목화는 계속 법조인이 되고 싶다던데.”
거짓말은 아니야. 이번에는 정말 그랬거든.
로스쿨 학비를 보고 내가 지금 열심히 일하는 중인 것 아니겠니.
“아…, 그래요?”
순수한 척 웃고 있지만, 알고 있다. 저 눈은 알고 싶다는 학구열을 담은 눈이다.
학구열은 설명하기 힘든 욕망이지만 집착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이현재가 저러면 꼭 이상한 수단을 쓰더라도 답을 알아내곤 했다.
예전에 동생에 관한 정보를 몰래 알아 온 것만 보더라도 알 만하지.
“…그렇군요.”
덜 친해서 숨기는 거라고 생각하겠네. 보통은 이런 거리감을 느끼면 서운해하지만 이현재는 아니다.
스스로도 아직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인연이라 거리를 두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스스로 이 집에 들어온 이상 ‘이 형은 의지할 만해.’라는 결론에 다다른 것일 테니 차라리 더 친해지려 들 것이다.
혹은 자신의 비밀을 앞에 내놓으며, 형도 얼른 그 비밀을 말하라는 식으로 천천히 접근하지 않을까.
“둘이 뭐 해? 엄청 냉랭하던데. 막내 괴롭히기라도 한 거야?”
류이든이 이현재의 옆에 앉으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아뇨, 전혀요.”
“아, 그래? 둘이 이렇게 빨리 친해질 줄은 몰랐네. 동화는 X톡에서도 한마디도 안 하니까, 더 적응이 필요할 줄 알았어.”
“그거야 뭐, 같이 사니까요. 저 동화 형네에서 하숙 중이에요.”
“……뭐? 그게 돼?”
“아, 네. 집에 빈방이 있어서.”
이현재를 놀리는 건 재밌지만, 나중에 해야겠지.
“와, 하숙이라……, 재밌겠다.”
“죄송합니다. 방은 더 없어서.”
텅,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동화야…, 하숙도 해, 너희 집?”
충격에 휩싸인 목소리.
“조금 더 일찍 말하지. 통학하기 힘들었는데! 기사님도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기사님이라는 단어, 함부로 쓰지 마, 미친놈아. 대한민국에는 그런 게 흔하지 않다고.
현실 감각이 여기저기 망가져 있어서 걱정이야, 하민.
“죄송해요. 제가 노숙을 하다가 동화 형한테 들키는 게 빨랐네요.”
현재, 그거 자랑이야?
“뭐? 아니 또 무슨 소리야, 그건? 노숙을 왜?”
“그러게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그러고는 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보세요, 당신은 제가 중히 여기는 비밀을 아는 상태인데, 그러고도 맨입으로 닦을 셈인가요?
그 의중이 너무 명확해서 우습다.
“그러게, 네가 왜 그랬는지 참.”
나는 자연스레 받아넘겼다. 옆에 앉은 채하민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아내었다.
기사님이랑 같이 왔다기엔, 땀을 흘린 모양새네. 오전 강의는 없어서 지금 온 걸 텐데.
“오늘은 차 안 탔나 봐?”
“아, 응. 아버지랑 싸움이 조금 있었어서.”
어, 익숙한 플롯.
“아니,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말이 그렇게 충격이셨나 보더라고. 전에 말한 무대 있잖아? 그거 거절한 걸 이제 들으셨나 봐. 왜 거절하느냐고, 그게 네 커리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아느냐고 화를 막 내셔서.”
그리고 정반대인 인물.
아버님이, 그렇게 변하셨구나. 예전에는 연예인 한다고 때려죽일 기세셨는데.
“잠시 가출이나 할까 봐.”
“고등학생인가요?”
이현재는 냉정하게 답했다. 다 커서 하는 짓은 왜 자기 친구랑 똑같냐는 눈빛이었다.
“아니, 아버지는 나한테 과보호가 심하셔서 가출이 제일 좋은 협상권이거든.”
닥쳐, 하민. 자기 안전을 무기로 사용하다니.
“…뭐, 하루 정도면 우리 집에서 가출해.”
그러자 이현재가 ‘이 형은 남이 노숙하는 걸 참 싫어하는구나.’ 같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 그래도 돼?”
“목화랑 현재한테 허락만 받으면.”
우리 집이니까.
나는 이현재 쪽을 보았다.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표시, 이현재와 친해지기 가장 좋은 수단이지.
이현재는 약간 놀란 눈으로 잠시 보다가 ‘어쩔까요.’라며 채하민을 놀려댔다.
즐거운 식사 자리네, 정말.
* * *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목.
나는 유아심리학 강의를 들으러 사회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교양이 근처에 있다며 따라온 채하민은 길가의 고양이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얘는, 정말 어쩌지. 뭔가 사회의 쓴맛을 보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으려나.
“……어?”
“왜?”
채하민은 무언가에 시선이 한껏 꽂혀 있었다.
“저거, 쓰러진 거 아니야?”
슬며시 들어 올린 손가락, 끝을 보니 언덕 위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위즈니의 유명 공주가 그려진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모습.
……위즈니?
채하민과 함께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는 죽은 것처럼 들판 위에 쓰러진 채였고, 그 머리 위에는 이곳을 영역 삼아 다니는 고양이 한 마리가 똬리를 틀 듯 앉아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뭔.”
석준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