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7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75화(343/343)
뭐지.
류이든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 자기관리의 화신 같은 놈은 연예인 연습생이 아니었으면 공부를 계획적으로 했겠지. 화면 너머로 볼 때부터 ‘아, 쟤는 연예인 아니었어도 뭐든 잘했겠다’ 여겼으니.
채하민도, 우리 학교는 무용과가 꽤 유명한 편이지만 실기 위주로 입시를 치른다고 들었으니, 납득할 수 있다.
아마 순수 공부만으로는 들어오지는 못했겠지만.
하지만 힙합과 따위는 없으며, 애니메이션 전공도 마찬가지로 없다.더군다나 한국대 미술 관련 학과는 실기만으로 오는 곳도 아니다.
나머지는 실기 비중이 크지 않은 학과뿐, 공부해야 하는데, 석준이 그게 가능했을까.
내가 나 홀로 아는 진실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때, 시체처럼 널브러진 석준 옆에 채하민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손목의 맥을 짚었다.
“…다행이야, 살아 있어.”
고양이가 갑작스러운 우리의 등장에 놀랐는지 퍼뜩 일어나다 고양이발로 석준의 얼굴을 짓밟았다. 그대로 뒷발의 힘을 모아 도약.
도주하려는지 채하민의 옆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내 발치에 와 다시 몸을 웅크렸다.
…이런 귀여운 생물이 세상에 실존하다니. 이렇게 넋을 놓을까 봐 일부러 고양이 근처엔 가지도 않았는데.
내가 조심스레 고양이에게 거슬리지 않도록 자리에 앉자 놈은 흘깃 눈을 주더니 다리 틈으로 톡 걸어가 다시 똬리를 틀었다.
젠장, 귀여워. 망할, 너무 귀엽잖아.
“어─?”
느긋한 말투. 이제야 일어나는 게 놀랍다.
보통 인간이었으면 고양이가 짓밟았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을 텐데, 햇빛이 지속적으로 눈가를 간지럽혀서 깨어나다니.
……목화가 나를 볼 때 이런 느낌이었구나.
낯짝은 그럭저럭 볼 만한데, 옷 입는 꼴이 무슨. 분홍색 위즈니 공주 프린팅 티셔츠와 헤진 청바지라니.
나는 눈으로는 고양이에게 만져도 될지 조심스레 물으며 귀로는 석준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일지 집중했다.
허락이 떨어지듯 고양이가 눈을 깜빡였다. 나는 조심스레 등뼈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새끼가 아니라 다행이다. 그랬으면 인간 냄새가 묻지 않게 얼른 떼어놨어야 할 텐데.
“저 말고 가까이 가는 거 처음 봅니다─”
“아니, 그보다, 그 괜찮아?”
“아, 네. 근데 왜 안 괜찮을 거라고 생각을…….”
고양이가 잡아끄는 시선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놀란 낯이다.
채하민과 대화를 하고 있지만 시선은 내 무릎에 있는 놈에게 붙박였다.
“여기 쓰러져 있었어! 봄이긴 해도 아직 추운데!”
“괜찮아요. 전 노숙이 익숙해서…….”
뭐야, 걱정돼. 인간이 아니잖아. 왜 얘는 야생 동물이 된 건데.
자세히 보니, 옷 여기저기 풀이 묻어 있었다. 어딜 보더라도 풀밭을 뒹군 흔적뿐이잖아.
난 채하민과 순식간에 시선을 교환했다. ‘도, 동화야, 내가 오지랖 부리는 거 싫어하는 건 아는데, 얘는 주워야지 않을까?’라는 눈빛이었고, 난 ‘우선 들어. 기다려. 안 돼. 씁.’이라는 의사를 담았다.
“노숙이?”
“네, 잠이 올 때─, 잘 만한 곳이 많습니다. 좋아요, 그래서.”
그리고 하품. 다행히 집은 들어가나 봐.
“아, 네가 그 에타에 자주 올라오는!”
“네?”
“응?”
“아니, 최근에 고양이들이나 새가 누구랑 같이 쉬는 모습이 보인다더라고.”
자세히 말해 봐.
“웬 해괴망측한 옷만 입고, 가까이 가면 동물들이 피해서 멀리서 사진만 찍혔는데…, 그게 모자이크하긴 했어도 말만 들어보면 꽤 잘생겼다는 소문?”
“그럼 전 아니네요─. 다행이다.”
어딜 봐도 너야, 미친놈아.
“…근데, 처음 봅니다. 늘 사람이 오면 도주했는데─.”
여전히 시선은 내 무릎 위.
“이름은 펠리스라고 제가 멋대로 지었습니다.”
……고양이 학명이 ‘Felis Catus’ 아니었나?
“아, 성호 형이 소개부터 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수의학부 신입생 석준입니다─. 안녕하세요─.”
젠장, 이 세계도 끝이 났군.
어떻게 석준이, 수의학부를. 내 편견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아니, 인사보다도, 준아! 이렇게 밖에서 자다가 큰일이라도 나면…….”
이제는 그런 상식적인 건 문제가 안 된다.
도리어 석준답다. 애초에 어딜 가든 잘 자던 녀석이니.
기왕이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보다는 내 옹졸했던 상상력이 더 중대한 사항이다.
지동화! 얼른 나와서 해명해!
[뭘 해명하겠습니까. 랩을 하고 싶다든가, 가수가 되고 싶다든가, 하는 욕망을 없애니 알아서 수의학부로 들어갔는데.]나는 석준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잖아.
[정확히는, 이현재가 아니고서는 하나도 몰랐던 것입니다.]……아, 확실히.
나는 말없이 석준과 눈을 마주하다 채하민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녀석들은 왜 엮였을까. 왜 귀찮은, 나 같은 인간과 엮여서 수많은 삶을 앞으로 함께 누리게 된 걸까.
그리고 왜, 어째서, 그 모든 걸 이해해 준 것일까.
[당신이 직접 골랐잖습니까.]무례했지. 동생을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동화와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인간 후보를 멋대로 골랐으니.
그러고는 몇 번의 실험에 걸쳐서 아무렇게나…, 아니지, 아니야.
더 정확히는, 이것들은 조금만 밀어줘도 알아서 지동화한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한 번도 강제한 적은 없었다. 옆에 두기만 해도 거리낌 없이 친구가 되었던 인간들이다.
참, 괴상하지. 어쩌다가 내가 이 속에 끼어들었을까.
왜 모니터 밖에만 있다가, 이제야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걸까.
왜 이 아름다운 경험을, 지레짐작으로 포기하려 했던 걸까.
[원래 계획이 무너지는 것도 삶의 묘미지 않겠습니까.]그러니까, 전부 곁에 둬야만 하겠다.
지금까지는 이현재와 목화 둘만 곁에 남으면 아무렇지 않겠다 싶었지만,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궁금하다.
왜 이렇게 묶였을까.
지동화 말마따나, 그저 툭 밀어주기만 했는데 왜 다시 같은 학교에 전부 모였을까.
호기심은 강렬하다. 알고 싶다는 욕구가 범람해서 순간 호흡이 멎을 뻔했다.
이 인간들의 모든 면모를 알고 싶어. 어느 순간, 어느 때에, 어떤 일을 겪어 이곳에 왔는지 전부.
“준.”
“네?”
“우리 동아리 들어올래.”
“……네?”
“……혹시 고양이한테 반한 거야?”
채하민은 갑작스레 먼저 다가서는 내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나 보다.
언젠간 또, 너희한테 모든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이현재처럼 수작을 부리실 겁니까?]모르겠다. 아무런 계획을 세울 수가 없네.
아는 게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러니 우선은, 알아가야지.
* * *
연극 동아리 ‘노는 놈들’의 실무진은 괴상한 다섯 명의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부터 전부 다른 이 다섯 명은, 최근 지동화의 집에서 단체 하숙을 시작했다.
“방이 있네요?”
“아버지가 가끔 사람을 주워오는 기질이 있으셔서, 조금 큰 집을 고르셨어.”
“너는 괜찮아?”
“나야 뭐, 형이 좋다면야…. 그리고 최근엔 학생회 일이 많아서 집에도 늦게 들어오고…. 아, 김진한 죽이고 싶다. 오늘도 나갔다 올게.”
목화는 그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가방을 들었다.
지독한 피로감이 느껴지는 얼굴을 보니 진한이라는 사람이 열심히 괴롭히는 중인가 보다.
단체 하숙은, 순전히 덩치만 크고 실속은 없는 바보 같은 한 사람 덕이다(사실 실속은 있지만 욕하고 싶은 마음이 더해지고 말았다).
이든이 형은 의외로 공연 기획 같은 부류에 진심이었는지 이리저리 수완을 발휘해서는 학교 공연뿐만 아니라 외부 공연까지 기획하는 데 이르렀다.
연기하는 이들의 무대 뒤에서 공연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총괄하는 작업은, 솔직히 뒤치다꺼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문자 그대로 ‘노는 놈들’이라 일할 때를 제외하면 대개는 동아리방에서 놀 뿐이었다.
가끔, 연기팀과 합동으로 기획이 시작되면 대개는 류이든이 자신의 친척 집으로 데려가 합숙하지만, 이번에는 여의찮아 지동화의 집에 발을 들인 것이다.
“자금을 더 따와. 대관비가 얼만데, 무슨.”
“에? 동화 형, 그 예산에 맞추는 것 정도도 못 해줘? 사랑스러운 동생한테?”
“인건비를 줄이는 수밖에는 없어.”
“…아, 그건 좀 그렇네. 다들 우리 지인이라.”
이현재는 먼저 온 류이든과 집에 있던 지동화가 다투는 걸 보며 웃었다.
점점 더 친해지고 있어서, 신기해. 이따금, 다섯 명 중 한 명이 없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솔직히 일이야 류이든과 지동화만 있어도 어떻게 굴러가겠지만, 일할 때의 분위기는 또 다른 문제다.
“나중에 아버지한테 손 벌려서 공연장 하나 사면 좋겠다. 그럼 재단도 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네 힘으로 해. 아버지 힘 이용하지 말고.”
“어, 그거 그때까지 같이 일해주겠다는 고백으로 받아들이면 되나? 나라면 공연장 하나는 가질 수 있다는?”
“꺼져, 제발.”
“이사장님, 이라고 한 번만 불러봐. 울림이 좋겠다!”
저 둘만 있었으면, 동화 형이 이미 살인 미수로 잡혀갔겠지.
그러니 하민이 형이 있어야 한다. 동화 형의 분노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그러나 셋만 있어도 안 된다. 준이 형이 있어야 느긋함이 생기니까.
동화 형과 이든이 형이 폭주 기관차처럼 일하기 시작할 때, 제동을 걸어주며 잠시 쉬어야 함을 알려주는 존재다.
그리고 자신은 이 모든 걸 지켜볼 뿐이라 솔직히 쓸모는 없지만, 그래도 욕심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
“현재, 뭐 해─.”
석준이 언제 들어왔는지 이현재 옆에 털썩 누웠다. 수의학부라더니, 눈밑에 다크서클이 짙다.
이현재는 그 밑에 조용히 쿠션을 놓아두었다.
“고마워.”
아, 그러네. 그러고 보니, 이 형은 자신이 없으면 자기관리를 못 하겠구나.
의외로 현실 감각이 적어서 옆에 붙어 딴지를 걸어줄 필요가 있으니까.
이 형은 동화 형이 스카웃하지 않았으면 절대 우리 동아리랑 이어질 연은 없었겠지.
“그러고 보니까, 형.”
“응?”
“동화 형은 형 왜 데려온 거예요?”
“몰라─. 고양이가 나 좋아해서 그런가. 뭐, 나는 형이 좋으면 좋아.”
위즈니에 나오는 동물 캐릭터에 빠져, 지켜주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한국대 수의학부에 진학한 미친놈다운 대답이네요.
“갑자기 데려온 거예요? 원래 알던 사이두 아니었구?”
“응. 고양이가 좋아해서 나도 그러겠다고 했어─.”
가끔은 의아할 때가 있다.
이 다섯 명 중에 유일한 정상인은 자신 하나뿐인데, 가끔 이 모든 게 어떤 계획하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
이현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에 돌아갔다. 그곳에는 얼마 전에 발견한 사진이 한 장 놓여 있었다. 조금 늙은 다섯 남자가 찍은, 아마도 가족사진.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해명할 수 없지만, 왠지 우리랑 닮은 것 같아.
이 집에는 무언가 기이함이 있다.
괴현상이래도 좋으나, 그런 걸 믿지 않는 이현재로서는 이게 지동화의 모종의 계략이 아닐까 의심될 때가 있다.
“…이 형, 우리랑 말년까지 친구 하겠다는 계획이라도 세웠나?”
그런 집착으로 사진까지 편집한 거면 좀 무서운데, 진짜.
아직은 다가서지 못한 진실, 그러나 이현재는 무언가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사진 뒷장에는 쓰인 지 오래된 듯 풍화된, ‘블로센스 30년 기념 가족사진.’이라는 의미 모를 문장이 적혀 있었다.
‘……블로센스라, 화장품 이름 같냐, 왜 이렇게.’
어딜 봐도 잘생긴 중년 다섯 명의 30주년 기념사진이라…….
이현재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모든 게 지동화의 계획하라는 망상까지 하고 나니, 지동화가 계획대로 되지 않아 괴로워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아이돌이나 시켜 버릴까.”
소설을 쓰면, 어떻게든 망가뜨릴 수 있을 텐데.
갑자기 눈떠 보니 아이돌, 지동화 성격에 얼마나 곤란스러워할까.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 이런 바보 같은 제목두 붙여 버리구.”
상상, 예전과는 다른 상상이다.
예전에는 부모님의 눈을 보고 싶지 않아 빠졌던 거라면, 지금은 그저 즐거운 유희였다.
지동화가 갑자기 아이돌이 되어 처음 만나는 인물은 누가 좋을까.
아무래도 폭주하지 못하게 막아줄 채하민이 최선이겠지.
그다음엔 무언가 목적의식을 부여해줄 류이든.
자신이나 석준은 조금 늦게 만나도 괜찮을지 모른다.
‘다 쓰면 보여줘야겠다.’
엿같아 할 표정을 상상하니, 조금 즐거워졌어.
이현재는 사진을 서랍 안에 밀어 넣었다.
그곳에는 지동화가 자신에게 흘린 여러 힌트들이 모여 있었다.
언젠가 모든 걸 알게 된다면, 당당하게 물어봐야지. ‘이게 맞나요?’라고 느긋하게 웃으면서.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 외전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