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4화(4/343)
4.
장해진 팀장은 다른 심사위원의 반응을 살폈다.
짬이 좀 찼다고 해도 그녀는 비전문가, 그렇기에 댄스 트레이너는 어떤 생각인지 궁금했다. 그는 마치 신기한 장난감을 만난 듯한 아이 같은 눈으로 채하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합격이군.’
일단 한 명이라도 건졌으니 오디션을 본 가치는 충분했다.
“잘 봤습니다. 실력이 나쁘지 않네요.”
“감사합니다!”
아까의 악동 같은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채하민은 다시 헤실대며 순한 얼굴로 돌아왔다.
장해진은 옆쪽에 빠져있던 지동화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음은 지동화 씨 준비한 거 볼 수 있을까요?”
지동화는 짧게 대답하며 채하민과 자리를 바꿨다.
“순서는 똑같이 노래부터 들어볼게요. 바로 틀어드릴까요?”
“…음, 네.”
그녀의 사인에 맞춰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울려 퍼지는 메트로놈 소리. 그 위에 트렌디한 기타 사운드가 겹쳐진다.
‘곡 좋다. 무슨 곡이지?’
약간 루즈해지는가 싶을 때 낮은음에서 올라갔다 툭 떨어지는 신디사이저 소리가 귀를 사로잡았고, 그 순간 멜로디가 시작했다.
미안해, 지금 좀 심란해
눈을 뜨는 순간, 처음 보는 공간
숨을 마실 땐, 호흡이 좀 곤란해
불시착의 불안감, It’s so brutal
리듬감을 살린 가사를 부드럽게 부르는 음색은 풀밭에 부는 바람처럼 청량했지만, 곡의 신나는 듯 아련한 분위기와 가사에 담긴 혼란한 심정 때문에 시원함보다 애잔함이 강해진다.
‘무슨 의미지?’
장해진 팀장은 심사라는 걸 잊고 처음 듣는 좋은 곡을 감상하고 있었다.
잠시 후 기타를 포함한 모든 악기 소리가 잠시 정적에 들고 메트로놈 소리만 공간을 채우는 짧은 순간 후에 이어진 후렴구에서 사이렌과 가깝게 들리는 전자음 속에서 지동화는 약간 높은 음으로 노래했다.
Oh, Our love travel, 착륙지는 break up
불시착 끝에 홀로 외로이 남겨지는 비행선
가사를 들으며 장해진은 감탄했다.
‘이별을 불시착에, 화자를 우주선에 비유한 거군. 괜찮네.’
곡도 좋았지만, 일단 지동화에게 잘 어울렸다.
실력이 메인 보컬을 할 정도로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 곡만 들었을 땐 메인을 시켜도 괜찮겠다 착각이 들 정도였다.
누군가가 지동화만을 위해 곡을 썼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이 정도로 자신한테 딱 맞는 옷을 고를 안목이면, 조금만 실력을 키워도 기획팀이나 A&R팀에서 일할 수도 있겠어.
곡은 1절 정도의 분량으로 끝나게 편곡됐는지 얼마 가지 않아 끝났다. 장해진 팀장은 아쉬운 마음에 물었다.
“곡은 1절만 부르도록 편곡해 온 건가요?”
지동화는 질문의 의도가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1절만 작곡된 상태였어서 끝부분만 급하게 완성했습니다. 음, 기왕이면 전체 곡을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준비할 시간이 짧아서…….”
무슨 소리지? 그녀는 아까의 지동화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A&R팀장의 입에선 감탄이 튀어나오는 걸 들었을 때 그녀는 깨달았다.
“이거 혹시 자작곡인가요?”
“…네.”
“가사도요?”
“…네.”
장해진 팀장은 반사적으로 A&R팀장을 바라봤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A&R팀장은 지동화에겐 보이지 않게 테이블 밑 쪽으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곡이 좋다는 뜻인데, 저 까다로운 양반이 좋다고 할 정도면…….’
그녀는 천천히 지동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래 실력은 중상에서 상 정도, 음색은 계속 듣고 싶어지는 목소리, 외모는 약간 차가워 보여서 나름 개성 있는 고양이상, 그런데 작사랑 작곡 그리고 편곡도 가능.
세상에.
지동화는 뒤숭숭한 심사위원 쪽의 분위기에 약간 불안한 듯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를 보며 장해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떤 종교를 믿을지부터 정해야겠군.’
* * *
나는 자기들끼리 사인을 주고받는 심사위원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막귀가 아니면 취향 차이일 뿐 나쁜 곡은 아닐 텐데.’
그런데 저 미적지근한 반응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어쩔 수 없군. 나는 채하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씩 웃더니 엄지를 작게 들어 올렸다.
‘…곡이 나쁜 건 아니군.’
그럼 쟤네는 왜 날 가만히 세워두고 지들끼리 난리 법석이란 말인가.
그렇게 지루한 기다림이 약간 이어지고, 심사석 중간에 앉은 여인이 작게 웃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작곡 실력이 나쁘지 않네요. 다음은 춤을 볼 수 있을까요?”
하, 채하민이 춤추는 걸 보고 나서 추려니 쪽팔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식 동기화를 통해 바라본 채하민의 춤 실력은, 누가 보더라도 감탄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하라면 해야지.
* * *
오디션을 마치고 나오는 길. 오늘이 마지막 오디션이라더니 내일 중으로 결과를 알려준단다.
붙으려나. 내 실력은 전반적으로 무난한 편에 드니까 개성이 없어서 탈락하면 월세 받을 수 있는 건가.
“동화야, 붙을 거야!”
…예언자냐, 그걸 어떻게 알아.
얘는 춤 하나만 보고도 뽑을 가치가 있는 애니까 속이 편할 만도 하다.
“너 노래할 때 감정선 진짜 좋더라. 연습실에서 MR 안 듣고 노래랑 같이 듣길 잘했어. 혹시 가사 경험담이야?”
‘대답하기 애매한데.’
경험담이냐면 당연히 경험담이다.
이 세계에 처음 떨어졌을 때 느낀 당황과 혼란을 가사로 쓴 거니까.
사랑 이야기는 양념이자 연막에 불과하다. 그래도 글쟁이 노릇을 괜히 한 건 아닌지 급하게 쓴 가사였는데도 나름 들어줄 만했다.
흠, 솔직히 말하는 게 낫겠지.
“…응.”
채하민은 놀라더니 나를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본다.
아마 내가 애절한 이별을 경험한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어림도 없다.
29년 동안 누구도 사랑해 본 적 없는 나한테 어딜 감히.
채하민은 답 없이 묵묵히 걷는 나를 보더니 나를 보며 묻는다.
“동화야, 오늘 오디션도 끝난 김에 밥 먹으러 갈까?”
지독한 기시감이 느껴지는군.
같이 밥 먹는 건 상관없지만, 그 버섯과 돼지의 이종교배로 탄생한 끔찍한 돈가스를 더는 먹고 싶지 않았다.
“…뭐 먹으러?”
채하민은 씩 웃더니 자랑스럽다는 듯 말한다.
“비너슈니첼!”
‘……!’
얘, 지난번엔 뭔지도 몰랐지 않나.
“…뭔지 알아본 거야?”
“응, 너가 좋아한대서 뭔지 알아봤거든. 나 송아지 고기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어서 궁금했어.”
채하민에 대한 나의 평가가 수직 상승 했다. 꽤 좋은 친구였네, 이 친구.
“그럼 이번엔 내가 아는 데로 가자.”
나는 내 목소리가 지나치게 신나 있단 것도 모르고 채하민한테 따라오라고 말했다. 내가 먼저 걸어가자 채하민은 바로 따라붙어선 말했다.
“근데 비너슈니첼에 버섯 들어가는 건 없어?”
‘그 입 닥쳐, 토끼 새끼야.’
나는 일부러 못 들은 척 하품을 한번 했다. 채하민은 기분 나쁘지도 않은지 헤실대고 있었다.
* * *
내가 채하민을 데려간 곳은 이태원 근처에 있는 비너슈니첼 전문점.
지난 세계 때부터 자주 왔던 곳으로 12개 정도 테이블이 있는 아담한 곳이다.
일단 분위기부터 옛날에 뼈 빠지게 돈을 모아서 독일에 유학 갔을 때 들렀던 음식점과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비슷했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는 점은 지상 최고의 축복이래도 모자람이 없다.
다만, 이 집이 유명해지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Gute Abend. (안녕하세요.)”
내가 들어서며 인사하자, 가게 사장은 잠시 놀라더니 물었다.
“Guten abend! Wie viele Personen? (안녕하십니까! 총 몇 명이시죠?)”
“Zwei. (두 명이요.)”
그렇다. 이 가게 주인 부부는 독일어만 가능하다. 심지어 영어도 못하는데, 대체 왜 한국에서 일하는 건지는 의문이다.
“Folgen sie mir bitte! (이리로 와주세요!)”
나는 얼빵하게 서있는 채하민을 잡아끌고 그를 따라갔다. 자리에 앉자 메뉴판을 건넨다.
“Hier ist die Karte. Möchten Sie zuerst etwas trinken? (여기 메뉴판 있습니다. 마실 것부터 주문하시겠어요?)”
나는 그에 잠시 기다려 달라 말하고 채하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 뭐 따로 마시고 싶은 거 있어?”
얼빵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채하민은 급하게 없다고 답했다. 쟤나 나나 둘 다 올해 성인이니까.
“여기 맥주 맛있는데. 술 괜찮아?”
“좋아!”
나는 주인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Zwei Glas Bier vom Fass, bitte. (생맥주 두 잔 주세요.)”
그렇게 죽 이어진 대화 끝에 음식을 시키고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채하민이 나를 감탄과 놀람, 그리고 약간의 당황이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나는 퉁명스레 물었다.
“…뭐.”
“…동화야, 너 진짜 대단하다.”
낯간지럽게 무슨.
“그건 무슨 언어야? 엄청 능숙해 보이던데.”
“독일어.”
“혹시 다른 나라 말도 더 할 줄 아는 거 있어?”
“…영어랑 프랑스어 약간.”
그러자 화들짝 놀라더니 박수를 치며 묻는다.
“어느 정도 실력인지 물어봐도 돼?”
얘는 왜 갑자기 호구 조사를 시행하는 거지. …하지만 언어 공부 열심히 한 걸 자랑하려니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영어는 지금 갑자기 영국 떨어져도 괜찮은 수준이고, 프랑스어는 일상적인 대화 정도.”
그러자 채하민은 뭘 생각하는지 잠시 말이 없더니 갑자기 이상한 소릴 했다.
“너랑 같이 데뷔하려고 회사 나온 게 사실은 엄청난 기회였던 거 아닐까?”
“…무슨 헛소리야.”
나는 우습지도 않은 소리에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냥 방구석 소설가인 나한테 기대가 과하군. 그리고 얘는 누구랑 같이 데뷔하든 어느 정도의 주목은 받았을 거다.
“너 정도 실력이면 혼자서도 성공했을 것 같던데.”
채하민은 내 말에 감동받은 표정을 지어댔다. 염병한다, 토끼 놈. 당연한 소린데, 지 실력 수준도 객관적으로 못 보고 말이야.
그렇게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나온 비너슈니첼과 맥주. 나는 빠르게 레몬즙을 먼저 뿌리고 작게 조각을 썰어 입에 넣었다. 먹는 법까진 조사가 덜 됐는지 채하민은 내가 하는 모양새를 곧 따라 했다.
바삭.
딱 한 번 씹었을 뿐인데, 터져 나오는 육즙과 튀김옷의 바삭함 뒤에 따라오는 송아지 안심의 부드러운 식감, 그리고 상큼한 레몬향까지.
나는 눈을 감고 깊이 맛을 음미했다.
그 순간 낯선 환경에 불시착했다는 불안감은 끝이 나고 커다란 충만감만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이 기분을 표현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
‘…오늘 가서 글이나 곡 중 하나는 무조건 쓴다!’
채하민은 나를 보더니 피식 웃더니 자기도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는다.
“오, 동화야, 이거 엄청 부드럽네.”
“그렇지? 원래 비너슈니첼은 송아지 안심으로 만드는데, 한국에서 슈니첼이라고 파는 것들 보면 돼지고기 쓰는 곳밖에 없었거든. 그래서 내가 여기 발견했을 때 진짜 거의 구원받은 것 같았…….”
눈빛이 왜 저러지. 채하민은 말하고 있는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 뭐 이상한 말 했나……?
“…왜?”
“아니, 너 그렇게 말 많이 하는 거 처음 봐서.”
…젠장, 그걸 그렇게 직접 말하면 아무리 나라도 쪽팔리는데.
뭐라고 반응하기가 그래서 시선을 창가로 돌렸다. 그러나 때마침 버섯 수프가 나와서 나는 민망한 기색을 애써 숨기고 주인장에게 인사했다.
채하민은 수프를 보더니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아, 얘한테 뭐 시켰는지 설명을 안 해줬나?
“이건 뭐야?”
“버섯 수프. 너 버섯 좋아하는 거 같길래.”
채하민은 아까 춤 실력을 칭찬했을 때랑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 저런 시선은 언제 받아도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비너슈니첼을 써는 데 집중했다.
* * *
채하민은 앞에 앉은 동화를 보며 생각했다.
‘부끄럽나 보네.’
표정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귀 끝이 시뻘겠다. 아마 내가 감동받은 표정으로 바라봐서 그런 것 같다.
동화는 감정을 잘 숨긴다고 생각하나 보지만 아쉽게도 부끄러워할 때는 귀가 너무 진실해서 표정을 아무리 갈무리해도 티가 난다.
솔직히 조금 놀리고 싶은데, 그랬다간 다시 안 놀아줄 것 같아서 관뒀다.
채하민은 비너슈니첼을 썰며 오디션 때를 회상했다.
솔직히 곡이 처음 흘러나왔을 때 자작곡이란 걸 조금 의심했다. 실력이 좋을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 곡을 뽑아낼 정도인지는 몰랐다. 뉴욕 거리에서 흘러나올 법한 트렌디한 곡.
그런데 노래랑 춤도 준수하고, 4개 국어까지 할 수 있는 두뇌다? 아마도 동화는 비록 사회성은 모자라도 천재라 불릴 만한 친구인 것 같다.
“동화야.”
동화는 샐러드와 비너슈니첼을 함께 입에 넣으려다 멈칫하더니 잠시 포크를 내려놓고 채하민을 바라보았다.
“만약에 성공해도 나 버리면 안 돼.”
동화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며 답했다.
“…내가 성공했으면 너도 성공했을 텐데, 뭘.”
말이 퍼뜩 이해되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채하민을 보고 지동화가 말했다.
“…같이 데뷔하자며?”
“…그러네. 너 말이 맞아!”
채하민은 다시 비너슈니첼에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는 지동화를 보며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의외로 남 감동시키는 데 도가 텄다니까.’
물론 동화 본인은 당연한 사실을 말한다는 태도라 그런 걸 노리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채하민은 기분이 좋아서 옆에 있는 맥주를 들이켰다.
“오, 나 처음 마시는데 되게 시원하고 맛있다.”
“…처음 마신다고?”
“응, 스무 살 딱 됐을 때 데뷔조 오디션 준비 때문에 바빴잖아? 그래서 술자리 같은 데 못 갔거든.”
“…뭐, 맥주니까 취하지는 않겠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동화의 예측은 드물게도 빗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