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4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40화(40/343)
40.
이곳은 컨셉 포토라는 것을 찍기 위해 대여한 요트 위.
나는 지금 몹시 당황스럽다.
“옷이, 옷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데 괜찮습니까?”
“그 위에 어차피 재킷 걸치잖아? 괜찮아, 괜찮아. 어서 가서 입어!”
서바이벌 때부터 느꼈지만, 코디네이터분은, 뭔가, 기괴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군.
나는 초커 때와는 달리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 동화, 시스루 입네?”
‘…이 모직물 쪼가리를 시스루라는 고급진 이름으로 부르는 거군.’
“너는 몸 선이 얇고 고운 편이라 잘 어울리겠다!”
하, 이건 너무 당황스럽다. 아무리 이 위에 수트 재킷을 걸친다지만.
나는 조심스레 흰색의 시스루 셔츠 아래에 손을 넣어본다.
‘아주 약간… 비치는군.’
…그래, 받아들이자. 아이돌이 되기로 한 나의 운명이다, 이건.
결국 기괴한 감각을 참으며 시스루 셔츠를 입고, 같은 흰색의 재킷을 입는다.
셔츠의 칼라 부분은 약간 물결 져있어서 우아하달지, 유치하달지.
밖으로 나온 내게 또 다른 소품이 하나 건네진다.
“죄송하지만, 초커는, 대체 언제쯤 그만 볼 수 있는 겁니까?”
“에이, 초커라기엔 그냥 천이잖아?”
푸른색 실크 천을 목에 묶으면, 그게 초커와 다를 게 있나.
“그리고 동화, 너희 팬분들이 너가 초커 하는 걸 엄청 좋아해 주시기도 해.”
…하, 소비자분들의 선택이라니. 이걸 한다고 내가 죽는 것도 아닌데, 그냥 하는 게 그분들에 대한 예의겠군.
나는 별다른 말 없이 목에 천을 묶었다.
* * *
모든 세팅을 마친 나는 요트 위에 올라섰다. 다른 멤버도 하나둘 준비를 마쳤는지 내 곁에 와 선다.
이현재는 민트색 계통의 리본이 달린 셔츠를 입고는 약간 추운지 몸을 떨고 있다.
재킷이라도 벗어주고 싶지만… 이게 내 유일한 인권의 보루라서.
석준은 제대로 된 네이비 색 정장을 조끼까지 갖춰 입고 있다.
류이든은 우리보단 조금 더 캐주얼해서, 캐주얼과 우아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으며, 채하민은 푸른 빛이 도는 블레이저에 셔츠를 입고 있다.
‘이렇게 보니… 나만 빼곤 다들 귀족 같은 인상이군.’
그리고 스태프분이 오셔선 개인 컷을 먼저 찍는다고 소리치고 그에 따라 채하민이 먼저 바닷가로 간다.
“동화 형님, 겨울왕자 주인공― 같습니다.”
“…그게 뭔데?”
석준은 내가 관심을 보이는 게 즐거운지 신나선 설명하기 시작한다.
“얼음 마법을 쓰는 주인공이 하늘에 떠있는 두 개의 태양 중 하나를 얼려 버려 세계를 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음, 전 세계적으로 분포한 신화의 모티프군.
“…고마워하면 되는 거지?”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입니다.”
그러자 이현재와 류이든이 요트 선두에 선 우리에게 다가온다.
“다들 이렇게 입으니까 연습실이랑은 딴판이네요.”
“그치? 사진 잘 나올 것 같아.”
“그나저나 형들, 표정 준비 해 오셨어요?”
…그런 것도 해야 하는 거면, 왜 미리 말을 안 해줬어, 현재.
시험 직전에 시험 범위를 잘못 알고 있던 것을 깨달은 고등학교 동창이 이런 심정이 아닐까.
“…다들 했어?”
나는 조심스레 묻는다.
“네, 준성이 형한테 물어보니까 영상 자료 많이 참고하라길래, 외국 드라마 좀 봤어요!”
“나도 여름 배경 CF 정도 보고 왔지.”
“저는! 여름 배경 위즈니를 봤습니다!”
흠, 큰일이군. 나 때문에 일정이 지체되기라도 하면 스태프분들께 죄송해서 어쩌지.
지금이라도 연습해야겠군.
“…이든 형, 현재, 표정 어떻게 짓는지 좀 알려줘.”
“동화 형님― 저도 잘 가르쳐드릴 수―”
넌 조용히 하고, 위즈니.
* * *
“아니! 동화 군! 표정을 없애라니까!”
나는 뒤로 바다가 보이는 하얀 기둥 사이에서 가만히 다리를 꼬고 고급져 보이는 의자에 앉아있다.
‘망할, 연습한 게 아무 의미가 없잖아.’
나는 옅은 미소를 완전히 없애버리고 지독한 무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본다.
“눈에 독기 빼고! 약간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표정 없애면서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는 건, 서로 모순이잖습니까.’
“동화 군! 혹시 엄청 지루했던 때 없어? 아, 너무 졸리다, 이런 거. 수업 시간에 존 적 없어?”
이거, 진실을 말해야겠지.
“…없습니다.”
그러자 사진을 찍어주시던 분은 순간 당황하더니 묻는다.
“방 안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상상을 해봐!”
‘…저 그런 거, 생각할 시간 많아서 좋아합니다.’
서로 생활방식이 달라서 ‘지루함’에 대한 정의가 불일치하는 상황. 뻥 뚫린 풍경과 달리 서로 답답해질 때쯤…….
띠링―!
흠, 그러면, 책을 읽어도 새로이 알게 되는 어떤 부분도 없을 테고, 스스로 생각해서 어떤 새로운 사실도 알아낼 수 없을, 세상에…….
…지루하잖아.
“오! 좋아! 그 표정! 너무 좋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로 찍어낸다. 뒤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컷들을 확인하는 멤버들이 작게 감탄사를 뱉는다.
“동화야, 진짜… 귀족 같다.”
“음, 귀족은 귀족인데, 느낌이 좀 다른데.”
류이든이 중얼거리자 옆에서 이현재가 박수를 치더니 말한다.
“지루하다구 가신을 죽일 것 같은 귀족!”
그러자 채하민과 류이든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친다.
“현재야, 진짜 똑똑해.”
“와, 딱이야. 칼로 베고 나서도 지루해할 것 같아.”
그러자 이현재는 쑥스러워하며 연하게 웃는다.
‘…그건 그냥 인격장애잖아.’
…일단, 일단 촬영에 집중하자.
* * *
내가 촬영을 끝내고 하얀 단상에서 내려가자…….
“피에 물든 동화, 촬영 끝!”
채하민이 만세를 부르고…….
“잔혹군주 지동화, 촬영 끝!”
류이든이 만세를 불렀다.
저, 망할, 놈들이, 해괴한 별명을 만들어놨군.
“…다 조용하십시오.”
“하민, 주의해. 동화 님께서 지루해하시잖아. 칼에 목 날아가고 싶어?”
그러자 채하민이 과장된 몸짓으로 입을 틀어막곤 고개를 젓는다.
“…두 분 다 정신 이상 징후가 보이는데, 매니저님, 이송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옆에서 작게 웃고 있던 강승원 매니저님은 고개를 짧게 젓더니 답한다.
“제가 봐도, 잔혹한 귀족 같았습니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은, 이현재겠지.
나는 옆에서 어색하게 날 바라보며 웃고 있는 이현재에게 미소를 보내줬다.
“…과외 숙제 늘리자, 현재.”
그러자 순간 아연실색해선 나를 바라보는 이현재.
“혀, 형! 지금도 많은데!”
“…그게 다 너의 지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거야.”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을 강조했다.
너도 책임지자, 현재.
“형! 지금도 촬영 쉬는 시간마다 공부하는데!”
쉿, 공부엔 충분함이 없는 법이다.
* * *
모두의 개인 컷 촬영을 마치고, 단체 촬영을 위해 요트 위에 올라왔다.
“노을 지는 순간 짧으니까 후딱 찍어야 해요!”
스태프분이 소리치고, 요트 위에 하얀색 소파가 설치된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푸른빛과 붉은빛이 흰색 요트와 소파에 은은하게 비쳐 오기 시작한다.
소파의 중앙에 키가 가장 작은 내가 앉고 (놀랍게도 이현재가 1cm 더 크다), 양옆에 이현재와 채하민이, 그리고 소파 마지막쯤에 류이든과 석준이 걸터앉아 정면을 바라본다.
“각자 캐릭터에 맞는 표정 지어주세요!”
“동화야! 지루한 귀족 표정!”
…나, 그런 캐릭터인 지점이야, 하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채하민이 하는 말을 따라 기지생이 가르쳐준 대로 지루한 표정을 짓는다.
들어보니, 류이든은 왕위 계승 예정자 같은 애, 채하민은 파티 자주 열면서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애, 석준은 엉뚱한 성격의 부자, 이현재는 셋째 왕자 같은 애라는 컨셉이라는데, 왜 나 혼자… 사람의 피를 즐기는 귀족인가. 이게 다 이현재 때문이군.
나는 천천히 다리를 꼬고 앞을 바라보고, 나머지 멤버들도 각자 연습해 온 표정을 짓는다.
“…좋습니다! 엄청 좋아요! 다른 포즈 한번 더!”
디렉터님께서 앞에서 미칠 듯 박수를 쳐댔다.
…하, 아이돌은 대체 무엇을 하는 직업군인 걸까.
* * *
컨셉 포토 사진과 뮤직비디오 촬영이 끝나고, 컴백까지 2주 남은 시점에 우리는 최후의 휴일을 하루 선물받았다.
물론 명목상 리얼리티가 촬영되지만, 오늘은 절대로 밖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동화야, 오늘 뭐 할 거야?”
“…독서.”
“와아… 동화야, 쉬는 날인데?”
나는 읽고 있던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원서를 내려둔다.
“…너는 뭐 할 예정인데?”
“나는 오늘 요리에 도전해 보려고!”
…안 될 텐데.
“…밥은 지어본 적 있어?”
“아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저 미친 토끼, 물가에 아이를 내놓는 심정이군.
“…하다가 잘 모르겠는 거 있으면 와서 물어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채하민을 다시 한번 불안하게 보고는 책을 들었다.
‘…평화롭군.’
* * *
# 리얼리티 가편집 부분
지동화가 책을 읽는 모습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우측에는 시계가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어떤 짓도 하지 않고 책만 읽던 지동화, 순간 집중력이 깨졌는지 고개를 든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한번 갸웃하곤 문을 연다.
그러자 보이는 풍경은, 흰 눈이 내리듯이 온 사방이 밀가루 범벅이 된 모습이었다.
순간 납득이 가지 않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지동화와, 미칠 듯이 기침을 하는 나머지 멤버들.
그때 채하민이 지동화를 발견하더니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서, 서프라이즈!’
지동화는 그 모습을 다시 멍하니 바라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뭐 만들려고 했어?’
‘…버섯튀김.’
그러자 지동화가 잠시 멈칫하더니, 조용히 말한다.
‘…청소부터 하고 나랑 같이 만들자.’
* * *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바닥을 닦고 있다.
“동화야, 미안! 내 손으로 버섯을 맛있게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그 사악한 식재료는 절대로 맛있어질 수가 없는데 말이다.
이현재도 열심히 바닥을 닦으며 말한다.
“근데, 동화 형, 버섯 좋아하는 거 맞아요?”
…하, 어떤 식으로 만들어진 헛소린지 알겠군. 이제 채하민의 오해를 풀어줄 때가 됐지.
“사실 동화, 너한테 만들어주려고 한 건데, 실패해서 너무 아쉬워…….”
…아, 이러면 말하기 좀.
“…하민, 사실 나, 버섯 안 좋아해.”
그러자 바닥을 닦던 채하민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저, 정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채하민은 미안해 죽으려 하는 표정을 짓길래 나는 조용히 말했다.
“…식성이 변해서, 지금은 안 좋아하는 거야.”
그러자 눈에 띄게 안심하는 채하민과,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내가 한 말이 우스운지 숨죽여 웃는 이현재,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밀가루로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잠깐.
“…준, 뭐 해.”
“밀가루로― 사람을 만들고 있습니다―”
…너는 진짜 진지하게 연구가 필요해 보이는데.
“…그렇군.”
* * *
장해진은 천천히 일정을 되새기고 있다.
컨셉 포토가 일주일에 걸쳐 올라가고, 뮤비 공개, 쇼케이스 진행하고 그다음에 미니 앨범 음원 공개.
그리고 그사이에, 지동화와 채하민의 디텍션 회차가 방영된다.
“감이 와……. 디텍션으로 어그로를 최대한 끌면 나름대로 희망이 있어.”
하이식스와 블루잭의 컴백과 일정이 겹친 걸 알았을 땐 접시에라도 코 박고 죽고 싶었는데, 준성이한테 들어보니 디텍션이 나름 화제가 될 거라고 한다.
“이 대리, 홍보팀에 줄 자료는 다 준비됐어?”
“네, 팀장님. 그런데 조금 많지 않습니까?”
“준성이가 말하길, 후회없는 투자가 될 거랬어.”
만약에 아니면 준성을 후회하게 만들어줄 속셈인 건 비밀이다.
“뭔가, 감이 온다고. 신이 아직 죽지 않고, 우릴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아.”
장해진은 천천히 하늘을 올려 본다.
제발, 이번에도 니체, 당신이 틀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