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4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42화(42/343)
42.
나는 수트를 입으며 한숨을 내쉰다.
참관수업 때 부모님이 바쁘신데, 현재 학교생활이 궁금했던 그들이 내게 대신 가달라고 부탁했다라…….
‘…이현재 부모님도 먼저 부탁하셨다는 게 더 놀랍군.’
대체 인간을 믿는 심리 기제는 어떻게 작동하길래 내가 그런 신뢰를 받나 모르겠다.
어제 오랜만에 부모님과 보내느라 숙소에 없었던 채하민이 휴일에 옷을 입는 나를 신기하게 본다.
“동화야, 어디 가?”
“…현재 학교.”
그러자 채하민의 동공이 떨리더니 말한다.
“…어제도 나갔다고 했지, 동화야?”
“…어제는 준이랑 디즈니 관람회.”
하, 기지생, 이 행위가 정말 의미가 있는 거야?
[주의! 신뢰는 늘 중요합니다.]* * *
이현재의 고등학교에 들어선 나는 학부모 대기실에 들어섰다.
학부모 대기실에서 있는 8할의 어머님과 일부 아버님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게 느껴졌으나, 귀찮으므로 무시했다.
그러고 보니, 현재는 자사고 출신이군. 부모님 영향인가.
자리에 앉아 가져온 책을 조용히 읽고 있으니 곧 선생님이 들어와 학교 커리큘럼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흠, 아주 당연하게도 내가 다닐 때랑 별 차이가 없군.’
그 이후에 학교에서 중점적으로 밀고 있는 사업을 보여주는데, 보아하니 그냥 겉만 번지르르하다.
“그럼 소개는 이쯤 하고, 우선은 수업 참관 먼저 하실 겁니다! 그다음에 개별 상담하시면서 담임 선생님들과 학교생활 이야기 나누시면 됩니다.”
‘…목화 수업도 참관 못 했는데, 아이러니군.’
아무 생각 없이 이현재의 교실로 안내에 따라 들어가 뒤의 좌석에 앉았다.
공교롭게도 이 반에서 참관수업을 온 사람이 나밖에 없는지 나 혼자 뒤의 의자에 앉았다.
음, 근데 교실이 원래 이렇게 조용한가?
* * *
조용해진 교실 속에서 고고하게 책을 읽고 있는 지동화를 보며, 이현재는 당황스러웠다.
‘아직 쉬는 시간인데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형.’
원칙상 쉬는 시간에도 들어올 수는 있으나, 서로 불편할 게 뻔히 보이니까 암묵적으로 수업 시작 직후에 들어오는 게 원래의 관례다.
그리고 지동화는 현재 그런 관습이 불필요하다고 온몸으로 시위하는 중이었다.
‘동화 형은… 평소엔 일반적으로 수치스러워하다가 이상한 포인트에서 수치심이 사라진다니까…….’
심지어 말없이 무표정하게 있으면 워낙에 냉한 인상이고, 게다가 읽고 있는 책은 표지부터가 원서라는 티가 나서, 모두들 조용해졌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조용히 이현재에게 물었다.
“…저분이 지동화지?”
“…응.”
“와, 잘생기셨다.”
그리고 곧 시간이 약간 흐르자 조용함 속에서 웅성거림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현재가 나온다고 해서 더넥니를 응원차 시청했던 반 친구들은, 지동화의 실물에 압도된 것 같았다.
지동화가 풍기는 특유의 겨울 분위기와 그 속에서도 잘생김을 뽐내는 얼굴, 그리고 몸 선을 살려주는 슈트핏.
“현재야.”
“…왜, 현우.”
“나… 형님분 사인 한 장만…….”
이현재는 잠시 자신의 친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 사인으로 만족해.”
그리고 이현재는 몰랐다. 아이들 중 일부가 서로 셀카를 찍는 척 지동화를 열심히 찍고 있는 걸.
* * *
‘흠, 하필 윤리와 사상 시간이군. 기왕이면 내가 고등학교 때 배우지 못한 과목이 재밌을 텐데.’
윤리와 사상은 너무 기초적이라 지루한데.
나는 우선 예의를 차리기 위해 책을 덮고 조용히 수업에 집중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수업에 참관해 주신 이현재 학생 보호자분이 철학과라는 소문이 있던데!”
유쾌한 성격의 선생님은 수업의 재미를 위해서인지 내게 질문을 하기 위한 준비 작업 중이었다.
…흠, 꽤 당황스럽군.
“혹시 보호자분! 플라톤 사상이 후대 철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혹시 아시나요?”
…음, 포괄적인 질문이군. 저분도 전공자일 텐데 왜 이런 광범위한 질문을 한 건지.
“…서양 철학사는 플라톤에 관한 주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영향을 미쳤으나, 가장 중요한 영향을 꼽으라면 이원론적 세계관이라 생각합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고개를 부드럽게 끄덕이곤 또 묻는다.
“와! 혹시 예시도 몇 가지만!”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지만, 고대 중세 근대에서 각각 한 명씩 뽑으면 되려나.
* * *
이현재는 생각했다.
‘담임선생님… 생각해 보니까 동화 형 최애 픽이었어.’
예전에 은근히 사인에 관해 물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지금 질문을 던지시는 걸까.
선생님이 던지는 질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답하고, 철학사적인 맥락을 답하는 지동화의 모습이, 이현재는 자랑스러웠다.
‘…역시 형은 대단해. 나도 공부 열심히 해야지.’
그렇게 이현재의 속에서 지동화가 다시 한번 롤모델로 격상되는 와중에, 이 모든 모습을 교실 뒤에 설치된 카메라가 촬영하고 있었다.
이 현장은 학교 공식 동영상 사이트에 정보 공개를 명목으로 제공될 예정이니까.
* * *
‘…흠, 현재가 의외로 교우 관계가 원만하군.’
연습생 생활하느라 친구들을 많이 사귀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다행인 일이다.
나는 이현재의 담임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가려던 때, 선생님께서 나를 붙잡으며 종이와 펜을 내민다.
“저… 사인 한 장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나는 동(冬) 자를 쓰고 옆에 꽃을 하나 그려 넣었다.
…참고로 나는 동 자만 썼는데 채하민이 정 없다고 반드시 꽃을 넣어야 한다고 강요했다.
나는 류이든이 알려준 사인 때 지켜야 할 규칙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질문했다.
“…뭐라 더 써드렸으면 하는 말이 있으십니까?”
선생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 이름 적어주세요!”
…음, 선생님께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정상적이라고 부르는 범주와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군. (정상은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름을 적으려다가 깊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흠, 한 명만 고를 순 없는데.
…어쩔 수 없군. 내가 좋아하는 사상가는 다 적어드리자.
그리고 결국 나는 열 명 정도의 철학자를 적고 돌려드리며 변명했다.
“…가장 좋아하는 분을 고르기 힘들어 모두 적어보았습니다. 원하는 바를 이뤄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잠시 숨이 쉬기 어렵다는 듯 숨을 잠시 멈추시더니, 고개를 힘겹게 끄덕이곤 감사하다며 사인을 돌려받았다.
…어디 아프신가?
* * *
한 아이돌 커뮤니티. 기묘한 글이 하나 올라왔다.
[자기 멤버 참관수업 와서 윤리 지식 풀고 간 아이돌]는 블로센스(더넥니 데뷔 그룹임 ㅎㅎ 많관부) 지동화.
(셀카 너머로 책 읽고 있는 지동화 사진)
학교에 블로센스 이현재가 같은 반에 있어서 등교할 때마다 눈 정화하는 느낌인데, 이번엔 또 덕분에 또 눈 정화했다…
댓글
―ㅋㅋㅋㅋㅌㅋㅋㅌㅌㅋㅋㅋ 아니 대체 왜?
―ㄱㄴㄲ ㅅㅂ ㅋㅋㅌㅌㅌㅋㅋㅋㅋㅌㅌㅋ 대체 무슨 일이 있으면 수업 참관을 가?
―지동화… 개스윗해…
―데뷔 3주 남았다는데… 개설레…
―데뷔 3주 남았는데 참관 수업 간 것도 개웃기네 ㅅㅂ ㅋㅋㅌㅌㅋㅋㅌㅌㅋㅋ 휴일 받았나 보다
다른 대형 남돌의 컴백 소식으로 핫했던 커뮤니티에 ‘자기 멤버 참관 수업에 간 아이돌’이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 때문에 어그로가 끌리기 시작했다.
[ㅅㅂ 참관 수업 현강 동영상 있네](이현재 모교 공식 사이트)
12분부터 보면 선생님이 그 멤버한테 질문하는 장면 나옴
근데 대답을 잘하는 게 뻘하게 웃기네 ㅋㅌㅌㅋㅋㅋㅋㅋ
댓글
―역시 한국대 철학과인가
―근데 아직 1학년이라 배운 게 없는데 왜 잘 앎? 고등학교 때 저 수준 질문에 답변할 정도로 배우나?
―ㄴㄴ 현재 윤사 과정에 없는 내용임 (윤리교육과 2학년)
―나는… 지동화가 공부를 했다면 세상에 큰 도움이 됐을 거라 생각해…
―그리고 그게 지동화 덕질 포인트잖아 배덕감 ㅎㅎ
―배덕의 동화…
[내가 보기엔 이건 소속사 마케팅의 일환 아닐까?]어떤 사람이 자기 직장 동료 참관수업 보러 감 ㅋㅌㅌㅋㅋㅋㅋㅌㅌㅌㅌㅌㅋㅌ
댓글
―ㄹㅇㅋㅋ
―아 말이 되냐고 아이돌 참관수업 ㅋㅋㅋㅌㅋ
그리고 그렇게 소소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잠시나마 회자되며 대형 남돌 사이에서 가끔이라도 블로센스가 언급되는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
* * *
채하민은 방에 홀로 누워서 멍때리고 있었다.
오늘은 류이든과 함께 놀러 가긴 했지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동화가 왜 나만 빼고 놀러 다닐까.’
동화는 원래 집에 있는 걸 최고의 행복으로 여겨서 잘나가지 않는데, 이번 휴일엔 멤버들과 한 번씩 다 놀러 갔다.
바로 자신을 제외하고.
첫날에 자신이 놀자고 했을 땐 집에서 쉴 거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래도 나름 친한 사인데. …서운하다, 아주 서운해.
요즘엔 연습 때문에 다 같이 놀러 가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혹시 내가 동화한테 잘못한 게 있나?’
채하민은 머리를 굴려 되돌아봤지만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내가 싫은가?’
그렇게 채하민이 미칠 듯이 땅굴을 파고 있을 때, 지동화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민, 나 왔어.”
* * *
“…응.”
음, 풀 죽은 토끼라, 무슨 일 있나 보군.
룸메이트라서 내가 나중에 들어오면 하루 종일 무슨 일을 했는지 떠드는 게 일반적인 녀석인데.
솔직히 마음 같아선 그냥 무시하고 침대에 눕고 싶지만, 채하민이 나한테 해온 게 있는데 그러기는 양심이 찔린다.
“…무슨 일 있어, 하민?”
그러자 이불에 파묻은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뭘 봐, 토끼.
“…왜?”
“나는 아주 서운해, 동화야.”
뭔, 또. 나는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려는 깊은 한숨을 힘겹게 참아내고 침대에 앉았다.
“…왜?”
“왜 내가 놀러 가잘 때는 안 가고…….”
뒷말은 안 들어도 예상이 되는군. 하, 피곤한 토끼 놈.
…하민, 나는 놀아준 게 아니라 망할 기지생 때문에 노동을 하는 거야.
익숙한 모습이다. 이건 목화가 어렸을 적에 내가 공부에 집중하느라 자신과 놀아주지 않으면 보이는 반응이니까.
다만 스무 살짜리인 녀석이 열 살 때의 목화랑 겹쳐 보이는 건 문제가 아닐까.
해결법 자체는 단순하지만…….
“…안 그래도 내일은 너랑 놀려고 생각 중이었어.”
그러자 채하민은 벌떡 일어나더니 진짜냐고 몇 번을 확인한다.
“…응.”
망할 토끼 놈아.
나는 고개를 한번 젓곤, 채하민에게 말했다.
“…그래서 뭐 할 건데?”
“아, 나 이번에 삼촌 지인이 파충류 농장 연다는데 거기 같이 가자! 다른 멤버들도 같이 가면 좋겠다!”
나는 미소와 함깨 고개를 끄덕여 주며 생각했다.
‘기지생, 만약에 이 개고생을 했는데도 보상이 별로면 심장이 정지하도록 만들어드릴 예정이니 기다리십시오.’
* * *
…흠, 이래도 괜찮은 걸까.
“와, 와, 와, 동화야, 너 지금 엄청 멋있어!”
나는 여러 마리 뱀을 몸에 감고 의자에 앉아서 생각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일이지.
처음에는 단순히 뱀을 보러 온 것이었는데, 도대체 나는 왜 지금, 카메라 앞에 앉아서, 무표정하게 뱀을 바라보는 사진을 찍고 있는가.
“와! 좋아요! 동화 군, 다른 포즈로 하나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렇게 말입니까?”
“와, 너무 좋아요.”
…그래, 이게 다 저 토끼 놈이랑 기지생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