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4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46화(46/343)
46.
기자 쇼케이스 무대가 끝나고, 기자 질의 시간이 되었다. 질문에 대답은 류이든이 대부분 알아서 하고 있으므로, 나는 그냥 앞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류이든… 무슨 마이크로 사람을 때려잡을 것 같은 눈빛이군.’
열정적으로 단 하나의 실수도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그러던 중 한 기자가 질문한다.
“이번에 데뷔한 신인 중 유일하게 자작곡을 타이틀곡으로 정했는데요, 음악성을 부각해서 다른 신인과는 다른 차별점을 내세운 것으로 봐도 괜찮을까요?”
오, 여기 독사가 한 마리 껴있었군.
다른 신인은 음악성 없다는 식으로 대답을 몰아가기 쉬운 질문이다.
‘…류이든도 눈치 보니 그 속뜻은 알아차린 것 같고.’
다만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마이크를 퍼뜩 들어 올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고.
…하, 뭐 저런 질 낮은 말장난질을. 나는 무표정으로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이번에 데뷔하시는 모든 분께서 대단히 훌륭한 음악성을 보여주셨습니다. 작곡만이 음악성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말하면, 네 주장엔 음악성이 곧 작곡이라는 해괴한 정의가 깔려있는데, 나는 그 정의에 동의하기 어렵다, 라는 뜻이다.
나름대로 예의 차린 표현이니, 알아들었으면 간사한 혓바닥을 내리길.
옆에서 류이든이 씩 웃으며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지동화 씨께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니체 엔터는 TOT 때부터 꾸준히 작곡가 DYE와 협업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DYE의 곡이 이번 앨범에 넣을 후보곡으로 언급이 되었나요?”
…하. 또 이런 종류의 질문이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자. 단 한 치의 꼬투리도 잡히지 않을 답변은 무엇인가.
“…DYE님을 실제로 뵌 적은 없지만, 저는 그분의 작업물에 대한 존경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분과 타이틀 경쟁 자체도 없었다만, 그분과 나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게 가당키나 하겠냐, 는 요지의 답변이다.
* * *
신민수 기자는 갑자기 지동화 쪽으로 몰리는 질문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지동화라는 친구, 사회성은 없어 보였는데,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엄청 계산하고 있잖아.’
물론 필요한 만큼만 말하고, 어떨 때는 지나치게 단호해서 아이돌보다는 기업 기자회견 같은 느낌이긴 하다.
그러니까 사회적인 인간이라기보단 지나치게 논리적이라서 자신의 의견을 오해할 수 없게 강제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어우, 나라도 좀 편한 질문 해줘야지.
“이번에 작곡하신 곡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셨나요?”
정말, 신인이 힘쓰는 게 안타까워서 원래 준비해 온 어그로용 질문은 다 폐기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막힘 없이 답변하던 지동화가 잠시 당황하더니 무표정하게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말한다.
“…저희 멤버와 리얼리티 촬영 때 바다에 갔을 때 한 멤버가 저를 둘러업고 바다에 내리꽂았습니다. 그때 물에 빠지기 직전, 바다에 몸이 반쯤 빠진 채로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그때, 하늘과 바다 그 사이 어딘가쯤에 있는 느낌이 들어서… 작곡하게 됐습니다.”
와, 저렇게 감성적인 노래가 그런 역동적인 순간에 만들어졌구나……. 원래부터 남의 작업물이 만들어지는 계기는 기상천외하기 마련인가 보다.
그렇게 감탄하던 신민수는 뚜렷이 보였다, 한껏 붉어진 지동화의 귀가.
‘…이건, 찍어야겠네.’
그는 조용히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 * *
팬 쇼케이스를 기다리는 백스테이지. 멤버들이 모여 손을 맞잡고 있다.
“우리, 우리 진짜 데뷔했어!”
류이든이 소리치자 멤버들이 와― 소리 지르며 호응한다.
그 사이에서 나 혼자 강제로 채하민과 이현재에게 양손을 붙잡혀 있다.
그런 내 표정을 멀리서 캠코더가 찍고 있는 게 보인다.
‘…공식 채널에 올라갈 백스테이지 영상이랬나.’
아마도 저 영상 속 나는 환멸을 느끼는 표정으로 나오고 있지 않을까.
“…데뷔했다는 얘기 지금 정확히 일곱 번째인 거 알아?”
그리고 환호도 정확히 일곱 번째고.
“원래 반복할수록 좋은 법이잖아요, 형.”
“맞아! 동화야, 너도 좋잖아!”
그러다 채하민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 근데 이제 곧 음원 공개지?”
흠, 들어보니 기자 쇼케이스로 기사 나기 시작할 때쯤 음원 공개한다고 했던가.
“…잘될까요?”
이현재가 조용히 물었다. 그 질문에 갑자기 채하민이 덩달아 침울해지더니 말한다.
“그러게. 이번에… 우리 데뷔하고 블루잭 컴백한다는데.”
아는 이름이다. 아이돌 문화를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있군.
그러자 류이든이 약하게 웃더니 말한다.
“뭐, 지난주엔 하이식스 컴백해서 약간 달리긴 하겠지. 샌드위치처럼 사이에 낀 모양새니까.”
비유라는 어려운 수사법을 구사할 정도의 지성은 갖추었군, 강아지.
“…성적 안 좋으면 제가 작곡 못한 탓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게 옳은 말이다.
물론 아이돌 문화를 공부한 결과, 곡이 좋다고 필연적으로 인기를 얻는 것도 아니며, 콘셉트가 좋다고 반드시 인기를 얻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약 5년 정도 120팀 정도의 데뷔 앨범의 성공과 곡의 질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성공한 앨범 중 곡이 수준 이하인 곡은 없었다.
즉, 달리 말하면 곡의 품질은 앨범이 성공하는 데 필요조건으로서 기능하는…….
“또! 또! 우리 동화, 이상한 생각 하고 있지!”
류이든이 짐짓 엄한 척 소리를 치자 내 상념이 끊겼다.
“실패하면 네 탓이라니, 애들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어! 애들 버릇 나빠지게.”
…류이든, 당신은 말투가 왜, 꼭 …아니다.
“맞아요, 이럴 땐 그냥 상황이 나빴다! 생각하구 책임 회피하는 게 낫지 않아요?”
세상에, 이든 형. 얘는 이미 버릇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것 같은데.
“현재야, 동화가 또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할 것 같은 표정이야!”
채하민이 나를 힐끗 보더니 다 들리게끔 귓속말을 한다.
내가 이 둘 사이에 있었기에 귓속말도 내 앞에서 하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왜 신경조차 쓰지 않을까.
그러자 이현재가 흠칫하더니 불안한 눈초리로 날 바라본다.
“…동화 형, 저는 책임 윤리에 대해 더는 깊이 공부하고 싶지 않아요.”
예전에 책임 윤리가 뭔지 궁금해하길래 한 시간 정도 설명해 줬더니, 아주 학을 떼고 있군.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넘어갈게.”
* * *
‘흠, 이제 음원이 공개됐겠군.’
나는 팬 쇼케이스 한 시간 전, 노트북을 꺼내 앨범을 확인해 보았다.
이번 데뷔 앨범, ‘1st, Blue, Blooming, Blossence’는 수록곡이 총 일곱 곡,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제하면 다섯 곡이다.
이 중에 내가 쓴 곡은 인트로인 ‘Ocean Fall’과 ‘Cloudy Blue’로 총 두 곡.
인트로는 타이틀 완성하고 대중성이 떨어질 것 같은 부분을 모아서 퀄리티를 끌어올린 곡이다. 원래 곡의 시원한 바람 같은 분위기는 덜하고, 바다 아래에서 구름에 둘러싸인 것 같은 몽환적 분위기만 한껏 살렸다.
내가 멍하니 지난 몇 달 동안의 결실인 앨범이 ‘워터멜론’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며 감회에 젖어있을 때였다.
“…동화, 24시간 시스템 때문에 처음엔 순위 팍 뜨진 못할 거야. 그러니까 만약 낮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네 탓이라는 말은 더 하지 말고.”
내 말이 조금 신경 쓰였는지 류이든이 옆에 앉아 툭 말을 건넨다.
…이 문화판은 학문처럼 공부를 해도 해도 끝이 없군.
“…그게 뭐야?”
그러자 류이든은 당황했다.
“음, 그러니까 다른 분들은 24시간 동안 재생된 수로 싸우는 반면에, 처음 공개되면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싸우는 건데…….”
류이든의 설명을 듣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즉, 누적된 것끼리의 비교라는 거군.
“그러니까 실망할 필요 없다는 거고.”
흠, 완전히 이해했다. 다만…….
“난 결과가 나쁘다고 실망하는 편은 아니야, 이든 형.”
“…그래?”
그러자 류이든은 씩 웃더니 기특하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고, 우리 동화. 아주 기특해! 아주 장해!”
와우, 이런 연령 6세 정도의 취급은 실제 나이 6세 때도 경험한 바가 없는데.
“…자살 기도가 참신한 편입니다.”
내가 조용히 말하자 류이든이 손을 뗀다.
“아니, 기자 대답부터 지금까지, 너무 기특하길래!”
그렇게 말하며 류이든이 퍼뜩 자리에서 일어나선 도망쳤다.
하, 아주 활기차군.
* * *
팬 쇼케이스에서의 무대.
우리가 안무를 할 때마다, 웨이브를 탈 때마다, 음을 높일 때마다, 군무가 터질 때마다 환호성이 들려온다.
무대를 마쳤을 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크기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몹시 크군.’
나는 묘하게 상기되는 기분을 느끼며, 무대가 끝나고 멤버들과 함께 일렬로 서서 인사했다.
“To be Blooming! 오랜만이에요!”
약간의 인사와 잡담 끝에 곧 무대 위에 세팅되는 의자, 내가 자리에 앉으러 갈 때였다.
“동화 교수님! 암기 테스트 봐주세요!”
무대와 토크 사이, 잠시 잠잠해진 분위기 속에서 커다랗게 울려 퍼지는 소리.
곧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리얼리티 1화를 아직 기억하실 줄은.’
나는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그럼 구두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블로센스가 팀명이어야 하는 이유 세 번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리고 울리는 대답.
“음운론!”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합격입니다. 수업 태도에 가산점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긴장하던 멤버들까지 웃음이 터졌다.
“동화야, 너는 그걸 여태 외우고 있던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몰라서.”
그러자 관객석에서 진심이 담긴 감탄 소리가 섞여 나왔다. …왠지 수치스럽군.
그렇게 잠시 멤버들끼리의 짧은 소란 끝에, 무대 위가 정돈되었다.
그리고 이런 자리가 처음인 우리를 돕기 위해 특별히 초대된 MC. 톱급 아이돌이라면서 의아할 정도로 할 짓이 없어 보이는.
“이야! 반갑습니다! 특별 MC 준성입니다! 우리 블로센스 팬 여러분 반가워요!”
준성이 올라왔다.
* * *
한창 즐겁게 이어지는 쇼케이스 중, 준성의 능숙한 진행과 입담이 좋은 류이든 덕분에 토크쇼는 매끄럽게 흘러갔…….
“그런데 하민 씨, 동화 씨의 비밀스러운 모습을 목격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음?
나는 그런 비밀스러운 짓 따위 한 적이 없는데.
“네! 사실 저희 멤버들이 동화 작업실에 자주 놀러 가요, 커피 사 들고. 동화가 거의 작업실에서 살거든요.”
“그렇죠. 사실 공용 작업실이었는데 회사에서 동화 씨 개인 작업실로 쓰라고 장비도 바꿔줬다죠?”
“네, 그런데 어느 날은 제가 실수로 노크하는 걸 잊고 들어가 버렸는데…….”
…아, 아, 그날 일인가.
“동화가 가로로 긴 소파에 다리는 벽에 기대고 얼굴은 바닥 쪽으로 90도로 꺾인 채 세로로 누워있었어요.”
채하민은 굳이 손짓을 더해 몹시 구체적으로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딱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채하민은 또 굳이 의자를 반 바퀴 돌리더니 상체를 뒤로 누여서 고개를 뒤로 확 젖혔다.
“이런 상태에서! 눈이 마주쳤죠!”
…아주 쓸데없이 몸을 잘 활용하는군.
준성은 듣더니 나를 보고 묻는다.
“아니, 동화 씨, 왜 그런 거예요?”
“…글 쓸 때 생각 안 나면 그렇게 있는 게 버릇입니다.”
“와, 동화 씨 또 어김없이 귀가 붉어졌네요!”
…그런 건 대체 왜 말하는…….
나는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저만 이리 공개되는 건 공평하지 않으므로, 제가 관찰한 멤버들의 치부를 하나씩 공개하겠습니다.”
그러자 멤버들이 휙 나를 돌아보더니 눈짓으로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
“오, 점차 분위기가 뜨거워지는데요! 한번 들어볼까요?”
* * *
류이든이 길 가는 분께 오지랖 부렸다가 수상한 취급당한 이야기 : 할머니 짐이 무거워 보여서 들어드리겠다고 했는데, 요즘 세상에 남을 어떻게 믿느냐는 되물음을 받았다. 그러자 류이든이 억울해서 진심이라고 얘기하자 할머니가 관상이 개상이라 수상하다며 떠나셨다.
채하민의 말실수 모음 : 대표적으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주문할 때 ‘아메리카 주세요’라고 이야기했다. 돈으로 미국까지 구매하려는 그의 위용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다.
석준의 위즈니 굿즈 비하인드 : 자신의 용돈을 두 달 동안 모았으나 굿즈를 살 돈이 모자라자 어머니께 참고서 명목으로 7만 원을 요구했던 이야기. 참고로 석준의 어머니께서 류이든에게 확인 문자를 보냈기 때문에 실패했다.
이현재의 편법적 과제 수행 : 이현재가 최근 어떤 철학자에 대해 궁금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아는 대로 얘기해 주면 녹음했다가 나중에 그대로 옮겨 적어서 발표문으로 활용한 것을 확인했다.
내가 차근차근 암기한 것을 이야기하자 자기 차례가 아닐 땐 활짝 웃던 녀석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니, 동화 형. 너는 대체 왜 이렇게 기억력이 좋아? 그거 서바이벌 때잖아!”
류이든이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치고.
“왜… 내가 말실수한 걸 다섯 개 넘게 기억하는 거야, 동화야.”
채하민이 경이롭다는 눈초리로 날 바라본다.
이현재는 숙제를 그렇게 한 것이 팬분들께 들통난 게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숙였고, 놀랍게도 석준은 마이크를 들더니, 그때 자기가 산 상품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쟤는… 대체… 내가 만난 모든 인간 중 가장 심오하게 난해한 뇌 구조군.’
그렇게 앨범 제작 비하인드를 가장한 상호 폭로전이 지나가고, 팬분들께 받은 질문까지 답하고 기자 쇼케이스 땐 없었던 두 번째 무대를 보일 차례가 왔다.
“두 번째 무대를 보기 전에, 한 가지 보고 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준성이 마무리 멘트를 할 때, 류이든이 번쩍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러곤 나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팬 여러분! 동화가 ‘디텍션’에서 했던 명대사, ‘죄송하지만 죽어주시겠습니까’를 실물로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 개…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