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4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47화(47/343)
47.
류이든의 헛짓거리 덕분에 나는 되도 않는 대사를 한번 쳤다.
“…죄송하지만, 죽어주시겠습니까?”
멤버들과 팬분들은 열렬히 환호해 주셨지만, 류이든은 혼자서 깔깔 웃어댔다.
…하, 저거, 이제 리더라서 독살할 수도 없고.
그나저나… 내 말투가 그리도 우스운가?
“네, 잘 봤습니다. 우리 블로센스, 다음 무대는 좀 특별한 걸로 준비하셨다고?”
“네! 총 두 곡을 보여드릴 텐데요! 하나는 저희 앨범 수록곡인 ‘Our Hour’입니다.”
류이든이 당차게 말하고 대본대로 석준이 입을 열었다.
“또― 두 번―째 무대는, 우리 동화 형님이 심심―해서 작곡한 곡―인 ‘당신’을 보여드릴 겁니다.”
…음, 심심해서 쓴 건 사실이다만, 대본이랑 다르지 않니, 준.
원래 대본엔 ‘동화 씨께서 팬 여러분께 보여드리고자 작곡한 곡’이라 적혀있을 텐데.
“…심심해서 쓴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론 팬분들께 보여드리려고 쓴 곡입니다.”
일단은… 대본대로 말씀드려야겠지.
* * *
적당한 규모의 쇼케이스장은 환호로 가득했다. 굶주렸던 야수들이 포식을 하는 현장 같은, 기묘한 열기로 들썩였다.
처음으로 보는 데뷔곡 무대, 멤버들의 장기 자랑과 토크쇼를 모두 지나 앨범 수록곡 ‘Our Hour’의 흥겨운 댄스곡까지, 블로센스의 팬들은 만족스러웠다.
이현재의 팬은 아이돌 덕질이 처음이지만, 놀랍게도 빠른 적응 속도로 현재 쇼케이스장까지 왔다. 기말 과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지동화가 팬 송, 이라고 하는 걸 만든 거지?’
이현재의 팬은 지금 상당히 기대가 됐다.
아이돌 덕질 선배인 친구의 말로는, 자기 애들이 팬들을 위한 무언가를 준비해 올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하던데.
처음엔 이현재 한 명만 바라보고 시작했던 덕질이지만, 리얼리티를 거치고 나선 멤버들 하나하나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팬 송, 조금 설렌다.’
이현재는 늘 감사함을 입에 올리는 아이돌이지만, 곡으로 그런 마음을 전달받는 것은 또 다르지 않을까.
그리고 수록곡 무대도 마치고, 멤버들이 마이크를 든다.
“자,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어째서 이런 곡이 나온 건지 잠시 들어볼까요?”
류이든이 조심스레 지동화에게 묻는다.
“‘디텍션’에 나가고 나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들어보니 팬분들도 저희가 나온 ‘디텍션’을 좋아해 주신다기에…….”
…팬 송과, ‘디텍션’?
그리고 짧은 설명이 끝나고, 석준과 류이든이 기타를 꺼내 오자, 나머지 멤버들이 둘러싸고 앉아 알 없는 안경을 꺼내 쓴다.
그리고 기타 두 대가 공명하며 안개 낀 런던 도시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먼저 입을 여는 이현재. 훅이 먼저 나온다.
I know who did it, 골목길 안 The body
명백한 이 증거가 널 향해 있네
But I didn’t say it, 믿고 싶지 않았었지
창백한 네 두 손이 검붉게 빛나
그리고 한 번 반복되는 훅. 지동화가 화음을 넣어서 음이 풍부해진다.
이어지는 벌스에선 한 가지 스토리가 형성된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칼을 든 사람과 그 앞에서 쓰러지는 사람을 발견한 ‘나’는 우연히 발견해 버리고 만다.
칼을 든 손에서 빛나는 팔찌를.
그러면서 곡의 분위기는 음산함과 슬픔을 모두 담아내고, 동시에 기타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진다.
흘러나오는 프리코러스, 지동화가 마이크에 입을 댄다.
사랑하는 당신, 아니잖아요, 그렇죠?
사랑하는 당신, 당신일 리 없잖아, 그치
사랑하는 당신, 원하는 대로 해줘요
사랑하는 당신, 저는 눈 감고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죄책감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의 이야기.
충격적인 가사에 이현재의 팬은 서서히 입을 벌린다.
‘…이거 팬 송 아니잖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단 한 번도 팬 송이라고 직접 말한 적은 없었다.
제목이 ‘당신’이고 팬들을 위해 준비했다길래 당연히 팬 송이라 생각했을 뿐.
‘게다가 노래가 좋잖아…….’
사실 ‘당신’은 앨범 회의 때 잠시 언급이 됐으나, 앨범의 전체적인 색깔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탈락한 곡이었다.
다만 팬들의 ‘디텍션’에 대한 반응이 상당했기에 팬 쇼케이스 때 공개하고, 이후 공식 계정에 러프한 녹음본을 올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이돌 문화를 잘 모르긴 했나 봐. 이런 가사인 곡도 있구나.’
직접적인 언급은 나오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은근한 비유로 살인을 목격한 사람의 심리를 묘사해 내는 가사라니.
…놀라운걸.
그녀는 조용히 읊조렸다.
* * *
‘…가사야 뭐, 예전에 썼던 소설에서 기본 골자만 가져온 거니.’
나는 쇼케이스가 끝나고 되도록 응원하러 와주신 분 한 분 한 분과 눈을 맞추려 노력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한 곳에서 카메라가 찍히는 소리가 들려 그쪽으로도 고개 돌려 인사했다.
계속 인사를 하는데, 은근하게 허리가 아려 왔다.
‘…그래도 여기까지 시간 내서 와주신 분들인데 최대한 인사드려야지.’
그렇게 내가 계속 인사를 드리고 있자, 다른 멤버도 함께 무대 위에서 인사를 한다.
류이든과 채하민이 폴짝 뛰며 손을 흔들고, 석준은 마이크에 대고 잘 가라고 나긋하게 얘기한다. 내 옆으로 이현재가 쪼로미 다가오더니 같이 고개를 숙인다.
그러자 팬들 사이에서 약간의 웃음이 흘러나오며 함께 손을 흔들어준다.
‘…이분들에겐 내가 어떻게 보이려나.’
연구 결과, 많은 방송인이 그러하듯, 아이돌은 팬분들에게 받는 관심으로 성립하는 직업이다.
팬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아이돌은 개념 정의상 아이돌이 아니다.
가해자라는 단어와 피해자라는 단어가, 서로를 반드시 요구하듯, 헤겔이 주인과 노예에 대해서 평가했듯, 팬은 ‘누군가’에 대한 팬이고, 아이돌은 ‘누군가’가 사랑해 주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내려와야 한다는 스태프의 말을 듣고,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와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드리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 * *
블로센스 팬들의 SNS의 피드는, 팬 쇼케이스 후기로, 정확히는 눈물로 가득 찼다.
―동화 예의 바른 거 왜 이렇게 치이냐 (지동화 쇼케이스 끝날 때 여러 번 고개 숙여 인사하는 사진 모음)
└내 아이돌에게 청학동의 바이브가 흐른다…
―폰으로 SNS 후기 보면서, 이어폰으로 블로센스 데뷔 앨범 듣고, 노트북으로 뮤비 분 단위로 쪼개서 감상 중입니다. (인증 사진)
└참.된.팬.
―오늘 쇼케이스 보고 진짜 데뷔했다는 게 실감이 안 나서 벽에 머리 부딪혀 봤다. (케첩 손에 묻힌 짤)
―내가 아이돌 덕질하다가 이런 가사를 보는 건 처음인데… 당황스러우면서도… 사랑하는 당신이라고 해줘서 좋았어…
RT : 블로센스 공식 계정 “당신” 러프 음원
└이런 거 보면 동화 좀 사이코 같지 않아? 가사 보면 좀 싸해 ㅠㅠ
└어그로 끌 거면 본인의 타임라인으로 꺼져주십시오.
―쇼케이스 토크쇼 일화 모음집 (후략)
└일화 중 절반이 지동화가 기억하고 있던 거 실화?
└이건 지동화가 지동화한 거라 크게 놀랍지 않음 제가 보기엔 10년 전 일도 생생하게 기억할 느낌.
└아니 류이든 ㅋㅋㅌㅋㅋㅋㅌㅋㅋㅋㅋ 하찮고 귀여워… 지동화 버릇은 또 뭔데 ㅋㅌㅌㅋㅋㅋㅋㅋ 하… 밖에선 지식인 그 자체인 느낌인데, 집에선 하찮은 편…
팬들은 팬 쇼케이스에서 대량으로 풀린 떡밥을 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렸다. 팬 쇼케이스에 가지 못했던 이들은 놓친 정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 피드를 훑었다.
그리고 그러던 중, 몇 개의 리트윗이 색다른 소식을 전해왔다.
―TOT 준성 인별에 우리 애들 앨범 올린 거 ㅈㄴ 스윗허다 ㅅㅂ (준성이 잘 들어달라며 올린 것 캡처)
―와 견훤 씨도 자기 슨스에 올려주심 (캡처)
‘디텍션’에서 같이 촬영했던 이들이 잊지 않았다는 듯이 재빠르게 홍보성 글을 올려준 것이다.
특히 나름대로 음악을 가린다고 소문났던 소휘가 곡이 좋다며 칭찬을 남긴 글이 나름대로 관심을 받았다.
Official.So_H
(‘Cloudy Blue’ 재생 화면)
오랜만에 들은 좋은 곡
이른 새벽 어슴푸레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모래사장에 앉아 듣고 싶은 곡
#소휘 #블로센스 #Cloudy #Blue #빈말아님
그런 나름대로 방송계 잔뼈가 굵은 ‘디텍션’ 멤버들의 홍보와, 인터넷에서 일종의 밈으로 나름대로 이슈가 됐던 이들의 데뷔 앨범이라는 독특한 배경 때문에, 호기심에 한 번쯤 들어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리고 그 결과, 6시에 공개된 음원이 79위라는 성적으로 차트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 * *
“와! 동화야! 이든 형! 현재야! 준아! 우리 79위래!”
채하민이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커다랗게 소리쳤다.
매니저님이 그 기백에 잠시 흠칫하시더니 조용히 운전에 집중한다.
역시, 토끼의 급발진을 막는 법안이 시급하군.
그리고 멤버들은 모두 피곤한 와중에도 환호한다.
‘…흠, 이건 좀, 유의미한 통계치인 것 같은데.’
나는 석준이 건네준 휴대폰을 보면서 조용히 생각했다.
“우리 동화! 잔혹군주 만세다, 진짜. 곡을 진짜 잘 뽑긴 했다니까!”
“우리 할머니 말이 맞다니까. 귀인 지동화!”
…그 망할 놈의 잔인함 좀.
“…설레발입니다.”
“저―는 79위에 설레―버립니다.”
와우, 여태까지 내가 들은 말장난 중 가장 저질이군.
그러자 채하민이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기분 좋잖아, 동화야. 너 지금 입꼬리 올라간 거 다 보여.”
…사진으로 찍어보면 티도 안 날 텐데, 너는 왜 이런 쪽으로만 뇌가 발달한 거냐.
류이든이 놀랍다는 듯 중얼거린다.
“와, 하민이가 표정 읽는 건 진짜 잘한다.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그러자 채하민은 또 기고만장해져선 말한다.
“내가 사람 표정 보는 건 도사지, 형.”
그 꼴을 말없이 보던 중, 내 폰에 문자가 오는 게 보인다.
…누구지.
―형!!!! 축하해!!!! (‘클라우디 블루’ 89위 캡처한 사진)
…목화잖아.
나는 빠르게 휴대폰을 들어 올려 답장을 작성했다.
“목환가 보다.”
“답장하는 속도 봐. 우리가 보내면 아무 답도 안 해주면서.”
“가―끔 서운하긴 합―니다.”
멤버들끼리 소곤거리며, 그와 동시에 내게 다 들리게 대화한다. 공공연한 비밀인가.
―목화, 고마워.
―형!! 나 데뷔할 때쯤엔 슈스겠다 완전! 나 데뷔하면 형 팔아도 돼?!?!
…하, 얘가 말버릇이 점점.
―응.
* * *
다음 날, 음악 방송 무대 사전 녹화를 위해 새벽 5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숍에 다녀온 후, 방송국에 들어섰다.
…아, 추워라.
초여름인데도 새벽 특유의 쌀쌀한 공기가 두껍게 깔려있었다.
“…이 새벽에 녹화를 하고, 이후 생방송 때까지 대기를 해야 한다는 거지?”
“그렇지. 와주시는 팬분들도 지금 고생하시겠다.”
…잠깐. 팬분들이 와주신다고?
“…우리만 촬영하고 마는 게 아니라?”
“응, 방청 신청 받아서… 하암, 와주시는 분들도 계신다더라고.”
세상에, 대체 왜? 우리 무대가 과연 그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게다가… 이번에 팬분들이 우리 고생한다고 도시락도 보내주신다더라.”
음, 우리에게 도시락을 주지 말고 스스로 삼계탕 같은 걸 사드시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 새벽에 무슨 고생이람.
“…무대 잘해야겠네.”
나는 조용히 혼자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