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4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48화(48/343)
48.
“준아―! 너 보려고 1교시 쨌어―!”
“어! 저―도 오늘 학―교 째고― 녹화 왔습니―다!”
…준, 서로 다른 거야.
사전 녹화는 팬분들의 환호 속에서 잘 진행되었다. 오전 7시에 시작되어서 한 8시쯤이 될 때까지 촬영과 피드백이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사이사이 비는 시간에 팬분들의 포효가 이어졌다. 포효라고 하기는 싫다만, 이보다 적절한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면 우리도 손을 흔들거나 대답하고, 소위 TMI라고 부르는 것들을 알려주곤 했다.
…TMI라, 이제 이 정도 개념어는 자연스레 활용할 정도의 문명성을 갖추었군.
“동화야! TMI 하나만 풀어줘!”
…공부하길 잘했다. 다만 서술어부에 있는 ‘풀다’라는 용어가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만, 이야기해 달라는 의미가 아닐까.
“…저는 비너슈니첼을 좋아합니다.”
그러자 팬분들이 피식하며 웃기 시작하신다.
“동화 형님― 저희 팬―분들 중에 그―걸 모르는 분이― 계실까요?”
“없지. 동화, 네가 좋아하는 가게도 다녀왔다고 인증하시는 팬분들도 많으시던데?”
그러자 팬분 중 한 분이 크게 소리쳤다.
“가봤는데 독일분이라 바로 돌아 나왔어!”
…세상에, 그런 안타까운 일이. 천상의 맛을 그 문턱 앞에서 놓치셨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대답했다.
“…카페에 주문할 때 쓸 문장들, 한국어 발음과 함께 올려두겠습니다.”
* * *
[팬 가르치려 드는 신인 아이돌.jpg](지동화가 독일어 문장과 발음을 음성 파일까지 첨부하여 가르치는 것 캡처)
는 블로센스 지동화(단호좌, 잔인좌로 더 유명함)
얘 자기가 좋아하는 단골 가게 주인장이 독일인이라 팬들이 못 간다고 하니까 이거 올려주면서 꼭 맛있게 먹으라고 당부함 ㅋㅋㅋㅋㅋㅌㄴㅋㅌㅋㅋㅋ
독일어 왜 잘하는지도 의문인데 가게 맛있으니까 꼭 가봐야 한다면서 발음 가르쳐주는 것도 개웃김 ㅋㅋㅌㅋㅋㅋㅋㅋㅌㅋ
심지어 독일어 자기가 직접 녹음해서 발음까지 세세하게 교정해 줬다
(음성 파일)
댓글
―아 엄마 제가 덕질하면서 공부도 한다고 했잖아요!
―진짜 가르쳐주네 ㅁㅊㅋㅋㅋㅌㅋㅌㅋㅋㅌㅋㅋㅋㄴㅋㄴㅌㅋ
―아니 얘네 은근히 이상하면서 웃긴 썰이 많네 ㅋㅌㅋㅋㅌㅋㅋㅋㅋㅋㅌㅋㅋ
―이게 내 돌이다! (자랑스럽)
―와중에 목소리 소 스윗…
―와, 발음 좋은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겁나 잘하는 것 같네
└독문학 전공자입니다. 저희 교수님보다 발음 좋습니다…
* * *
나는 대기실에서 노트북으로 카페에 글을 남기고 전원을 종료했다.
‘…흠, 이 정도면 팬분들도 그 맛을 느끼실 수 있겠지.’
오랜만에 독일어로 몇 문장 말하고 나니 약간 낯설어서 입을 몇 번 옴짝거리고 있을 때였다.
“동화 형,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하는데 다 했어?”
“…응.”
이번 음방에선 사전 녹화로 배치되는 덕분에 지금까지 대기실에서 느긋하게 대기했지만, 이후 음방이 끝날 때 출연진이 다 같이 무대에 올라서 1위를 발표한다고 한다.
왜 이런 비효율적인 구조를 취하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들어보니까 방송이 끝나고 나서도 다시 PD를 기다리고 인사를 해야 한다는데.
그렇게라도 자신의 지위를 확인받고 싶은 PD 개인의 인정 욕구의 소산이 아닐까.
‘헤겔이 이런 지점에서 보면,’
“동화야, 또 이상한 생각 하지.”
…이상하지 않아, 하민.
* * *
데뷔 첫 주 음방 활동이 끝나고, ‘Cloudy Blue’는 놀랍게도 차트 40위권에 안착했다. 준수한 퀄리티의 곡이 조금씩 입소문을 탄 결과였다. 그렇기에 커뮤니티에선 이런 블로센스의 선방에 대한 반응이 팬이 아닌 곳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블로센스가 이번 상반기 신인 중 제일 눈에 띄는 듯]ㅈㄱㄴ
댓글
―블로센스 팬덤 아니고 4년 차 블루투스입니다. ㄹㅇ 인정입니다.
└아 나는 블루잭 팬덤 이름 블루투스인 게 아직도 충격적이다 볼 때마다 새롭네 진짜
└ㄹㅇㅋㅋ 아니 왜 블루투스로 결정한 거냐고 팬들이 직접 정했다는 게 더 충격적 ㅋㅋㅋㅋㅋㅋㅋ
└3년 차 블루투스입니다. 블루잭의 이빨이 되어 덤비는 모두 물어뜯겠다는 뜻입니다. 아직 수치스럽습니다.
―그냥 서바이벌발이지 올려치기 작작 좀
└얘! 올려치기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불러야지!
―블루잭 하이식스 샌드위치 상태에서 꾸준히 언급된 것만 봐도… 말해 모해…
대부분의 신인이 차트 인도 못 한 상황에 블로센스만 나름대로 선방하는 모습이 겹치자 아이돌판에선 흔한 머리채 잡기가 시작됐다.
[블로센스 초동 물량 봤냐?]아주 이러다 하이식스 따라잡을 듯 ㅎㅎ
하이식스 요즘 퇴물이자나~
댓글
―ㅆㅂ 블로센스 팬입니다~ 나가 뒈지세요~
―하이 파이브입니다~ ㅆㅂㄴ아~ 다른 돌 머리채 잡는 데 내 돌 언급하지 마세요~ 의도 ㅈㄴ 투명하니까~
―블로센스 팬입니다 요리 보고 조리 봐도 하이식스 따라잡긴 무슨 그냥 신인 중 잘나가는 급인데 아가리 작작
―예의 바른 하파는 병먹금하자~
―아 그냥 나가 죽어주라 ㅜㅜ 니들 같은 것들 때문에 요즘 덕질하다가 정병 올 거 같애 ㅠㅠ
└견뎌! 최애 얼굴 봐! 그리고 견뎌!
반복적인 은근한 이간질과 별것 아닌 꼬투리 잡기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은 블로센스의 팬덤.
그들에게 하나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 떨어졌다.
[블로센스 데뷔 앨범 사인회 안내]* * *
“선배님, 사인회에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정말로 할 짓이 없는지 내 작업실 소파에 드러누워서 폰을 보고 있는 준성에게 물었다.
요즘 공백기라 여유롭다고는 하는데, 아무리 여유로워도 후배 작업실에 눌어붙어 있는 건, 아마도 빨리 곡을 내놓으라는 무언의 시위가 아닐까.
“이야, 우리 후배님, 영업 비밀까지 아주 나한테 다 뜯어 가시려고!”
“…법적으로 영업 비밀의 성립 요건이 무엇인지 알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야, 이걸 법으로 받아치면 나라도 조금 당황스러운데.”
준성은 전혀 당황스럽지 않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그러곤 진지해져선 고민하기 시작한다.
“음, 우선 진지하게 이야기 듣고 답만 해줘도 괜찮을걸? 성의 없는 게 문제인 거니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아, 공부할 때 봤습니다. 동태 눈깔이라는 독특한 개념어를 활용하더군요.”
그러자 준성이 말투가 웃기다며 깔깔대곤 말한다.
“최대한 돈값 해드린다 생각해, 후배님.”
…음, 자본주의적으로 옳은 말이군.
“…팁 같은 건 더 없습니까?”
“에이, 공짜로?”
…하, 지겨운 인간.
“…밥 한 끼로 만족하십시오.”
그러자 준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와 펜을 꺼내며 말한다.
“오케이, 그 정도면 후배님이랑 친해질 좋은 기회지. 뭐부터 얘기해 줄까?”
그리고 모든 대화가 끝나고, 나는 미련 없이 멤버들에게 준성에게서 뜯어낸 영업 비밀을 공유하러 작업실을 나섰다.
“아니, 후배님! 나는 또 왜 버려두고 가!”
“…가서 일 좀 하십시오.”
* * *
블로센스의 첫 번째 팬 사인회 현장.
팬 쇼케이스 사전 신청에서 운수 나쁘게 광탈한 지동화의 팬은, 기계로 추첨하는 니체 엔터의 전통을 고려해 깔끔하게 돈으로 팬 사인회 입장권을 얻어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대포 카메라를 하나 꺼내 들고 팬싸 현장에서 지동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의상 겁나 좋다.’
하늘색 셔츠와 흰 속티, 블랙 진, 그리고 알 없는 동그란 모양의 안경까지. 코디님이 배운 분인 게 틀림없다.
짧은 준비 시간과 멤버들과의 대화(소리치는 팬과 답변하는 블로센스의 연속)가 한차례 진행되고, 본격적으로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지동화가 앞 순번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귀 기울여 듣다가 답변하는 모습을 찍었다.
그러다 자신의 차례가 찾아오자 대기열에 줄을 서서 침착하게 할 말들과 멤버별로 준비해 온 선물을 정리한다.
‘…일단, 아, 잠깐만, 침착해. 뭐부터 물어보지.’
덕질이 처음도 아닌데, 약간의 긴장감이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무대로 올라가 좌석을 보니 나이순으로 좌석을 배치해 뒀는지, 이현재가 먼저 그녀를 맞아준다.
‘…오, 여우 머리띠 잘 어울린다.’
그녀가 대기하고 있을 때 받은 건가 보다. 이현재는 쑥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인다.
그녀는 한 멤버가 사인할 땐 다른 멤버를 보지 않는다는 규칙을 스스로 세워서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이현재와 대화를 나누고 석준에게 넘어가 얼굴을 확인할 때가 되어서야, 석준 머리 위에 공룡 뿔 같은 것이 한 쌍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잠깐만, 이거, 그러면.’
다음 채하민에서 토끼 귀를 매달고 해맑게 웃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그녀는 확신했다.
이다음은 지동화,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들었다.
‘…와, 고양이 귀.’
* * *
‘…수치스럽군.’
한 번도 이런 것을 착용해 본 적이 없는데.
나는 괜히 머리에 달린 해괴망측한 물건을 만지작대며 다음 분이 오기를 기다렸다.
“와! 그럼 이렇게 운동하면 되는 거야, 이든아?”
“네! 그리고 집에 가셔서 요거 한번 검색해 보시면…….”
…왼쪽에선 헬스 강의가 펼쳐지고 있군.
이윽고 넘어온 팬분을 보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분은 나를 멍하니 보시더니 읊조린다.
“…와, 고양이 귀.”
…안 어울리는 거 압니다만, 앞서가신 분이 껴달라고 하신 겁니다.
“…서바이벌 할 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팬분이 화들짝 놀라더니 말한다.
“어떻게 알았어?”
…제 기억이 맞다면 거의 매번 앞 열에 앉으셨는데,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어제 멤버들과 공유하며 외웠던 준성의 조언대로 눈을 맞추며 답변했다.
“음, 얼굴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당황한 얼굴로 눈을 크게 뜨신 팬분이 중얼거린다.
“와, 씨…….”
음, 얼굴 외우고 있는 건 조금 미친 사람 같은 건가. 다음부턴 티 내지 말아야겠군.
“…동화야, 이거 선물이야.”
나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물건을 받아 들었다.
고양이 재봉 인형. 목에 방울 달린 목줄을 차고 있는 까만 고양이다.
“…직접 만드신 것 같은데 솜씨가 좋으십니다. 저는 이런 쪽으론 손재주가 없어서, 예전에 동생 옷을 수선하다가 그대로 제가 잠옷으로 입은 적이 있습니다.”
준성의 팁, 쓸데없는 정보를 되도록 많이 제공하라.
나는 녀석을 팬분에게 돌려주고 어깨 한쪽을 내밀었다.
“…여기에 고정해 주시겠습니까? 별일 없으면 끝까지 차고 있겠습니다.”
준성의 팁, 선물은 되도록 직접 쓰라. 하긴, 선물을 샀으면 직접 채워주고 싶지. 나도 목화 선물을 사면 직접 채워주곤 하니까.
그녀는 약간 떨리는 손으로 고양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내 어깨에 고양이를 올려둔다.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고 감사 인사를 한 뒤, 아주 천천히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이 짧은 만남을 위해 돈을 투자한 사람들이니, 최대한 길게 마주할 수 있도록.
“…동화야, 궁금한 게 있어.”
약간 비장한 목소리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신은 정말 실수를 하지 않는 걸까?”
나는 잠시 손을 멈추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흠, 제 의견으로, 인류가 만들어낸 개념의 ‘신’이라면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신은 존재하지 않나 봐.”
오, 흥미로운 주장이다만 근거는 무엇일까.
“네가… 너무 완벽해…….”
나는 꽃을 그리던 손이 순간 흠칫해 엇나갈 뻔한 걸 간신히 억제했다.
“…감, 사합니다.”
…대체, 무슨.
* * *
팬 사인회의 막바지. 100명 규모의 사인회가 7시에 시작해서 9시 반까지 이어졌다.
원래는 더 짧은 시간 안에 끝내도록 예정되어 있었으나, 류이든을 필두로 해서 우리가 모두 연장을 주장해서 얻어낸 결실이다.
마지막으로 활동 틈틈이 밤새며 준비한 커버 댄스 메들리와 데뷔 타이틀곡 무대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춤을 추는 와중에도, 우리 머리 위에는 팬분들의 강력한 요구를 수용해 여전히 동물 머리띠가 올라가 있었다.
심지어 내 어깨에는 고양이가 실로 옷에 묶여 떨어지지 않은 채로 달라붙어 있었다.
‘살면서… 고양이 귀를 껴본 적이 있었나.’
내 기억이 맞다면 고양이 귀는커녕, 이런 장식용품에 돈을 지불해 본 기억조차 없다.
모든 것이 끝나고, 우리의 인사를 받으며 나가다가 ‘개혜자였다, 진짜’라며 만족스럽게 소리치는 분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만족하신다면야 이런 수치스러움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