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4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49화(49/343)
49.
팬 사인회가 끝나고, 2주 차 음방 활동이 시작되었다.
K―Net이라는 케이블방송국, K―Pop 전문 방송이라는 명칭답게 수많은 아이돌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대형 그룹인 블루잭이 컴백하는 날이기도 하다.
“와… 연예인이다.”
블루잭의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중얼거리는 채하민의 팔목을 붙잡아 조용히 시켰다.
그러자 류이든이 재빠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주도한다.
흠… 총 아홉 명이라 그런지 조금 압도되는 기분이군. 그나저나 아홉 명이면 작곡할 때 더럽게 신경 쓸 게 많겠군.
“오! 반가워요! 블로센스죠.”
리더(추정)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준성이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작업실에 늘어져 있던 그 양반이 아이돌이긴 했군.
그러던 리더(추정)가 류이든과 악수를 한번 하더니 우리를 보고 이름을 물어보기 시작한다.
…자기소개를 생략한 걸 보면 자신의 이름은 이미 알 거라는 전제가 깔린 것 같군.
‘…죄송하지만, 저는 모릅니다.’
그때 채하민이 밝게 웃으며 답한다.
“안녕하세요, 루카치 선배님!”
…러시아 소설 이론가잖아!
나는 화들짝 놀라서 루카치를 바라봤다. 대체 왜 아이돌 활동명으로.
그 눈빛을 느꼈는지 루카치가 멋쩍게 웃더니 나를 보곤 말했다.
“아… 루카치가 누군지 아실 것 같아서 일부러 이름 말 안 했는데, 딱 들켰네요. 저희 사장님이 노문과 출신이셔서…….”
이어지는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생활… 해야겠지.
“…문제적 개인이라는 근대 소설의 핵심 개념을 만드신 분의 이름이 활동명이라니, 참, 그, 음… 독특합니다.”
“…굳이 칭찬 안 해주셔도 괜찮아요.”
그러자 뒤에서 웃음을 꾹 참고 있던 멤버 중 하나가 실실 웃기 시작한다.
“아이고, 우리 철수 형. 루카치 아는 사람 나오니까 당황스럽지?”
…세상에, 본명은 철수군.
그 옆에 있던 다른 멤버가 잇는다.
“와, 나 아이돌 멤버 중에 아는 사람은 처음 봤어!”
…음, 소문으로는 인기 연예인에 대한 악평이 많았는데, 블루잭의 저 멤버나 준성을 보면 참 인성이 올바른 친구들뿐이군.
꼭 성공할 거라는 덕담과, CD 잘 듣겠다는 아마도 입에 발린 말을 듣고 다음 대기실로 이동할 때였다.
앞서가던 석준이 누군가와 어깨를 툭 부딪쳤다.
“아, 씨, 뭐야?”
흠… 당신은 뭐길래 그렇게 무례하신지?
본인의 지적 미성숙을 한껏 뽐내는 말투에 낯짝을 봤더니, 익숙하게 생긴 얼굴이 선뜻 눈에 비쳤다.
‘…아, 얘 이름 기억할 가치가 없어서 폐기했는데. 이지현이었나.’
갓 엔터에서 정황상 나를 오디션을 못 보게 막았던, 음… 어떤 단어가 적합할까.
…인간이라고 부르는 게 그나마 합리적이겠군. 이런 생물도 생물학적으로 분류할 때 인간이 아니라고 하진 않을 테니.
‘…또 다른 가능성에서 하민의 다리를 부순 것도 저 인간이지만, 그건 실현되지 않았으니, 뭐.’
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생각하던 것을 정리하고 ‘인간’의 무리를 살펴봤다.
총 일곱 명. 이전 가능성에서 달라지지 않았다면, ‘갓에이’라는 이름을 달고 데뷔한 팀이겠지.
그리고 그 속에 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서바이벌 탈락자였던 윤성호가 어색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음, 아는 정보가 없군.
“부딪혀 놓고 왜 사과 퍼뜩 안 하냐. 데뷔도 우리보다 느렸으면서.”
오, 그래도 나름대로 인간인지라 최소한의 생각은 하고 반말한 거였군. 선배라는 권위에 기대서 말이지.
윤성호 영입에 준비 기간까지 고려하면, 아무리 빨라봤자 한 달 정도 이를 텐데.
그러자 석준이 태평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다가 윤성호의 얼굴을 보더니 작게 흠칫한다.
…흠, 뭘까.
“하, 진짜.”
그러자 류이든이 넉살 좋게 웃고는 말한다.
“안녕하세요! 갓에이 맞죠? 데뷔 무대 챙겨 봤어요.”
참고로, 저건 거짓말이다. 류이든은 거짓말할 때 턱 근처로 손을 올리려는 버릇이 있으니.
“당신이 이 팀 리더?”
아, 저 인간 더럽게 재수 없군.
“네, 블로센스 리더 류이든입니다.”
“애들 관리 좀 합시다.”
그러더니 ‘인간’은 앞으로 가며 자기 멤버들을 데려간다.
그러자 윤성호는 멋쩍은 표정으로 석준에게 뭐라고 속삭이곤 뒤돌아 간다.
그런 윤성호에 다시 한번 석준이 흠칫하더니 감사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채하민이 옆으로 와선 속삭인다.
“이지현, 쟤는 인성이 어떻게 하나도 변하질 않았을까?”
“…대개의 성격은 유년기나 청소년기에 형성돼서 고정되니까, 하민.”
“음, 인간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거지?”
예상보다 신랄한 채하민의 평가에 나는 잠시 놀랐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화 형―님, 저 팀 리더분―이 형님을― 뚫어져―라 보시던데, 왜 그―렇습니까?”
그랬군. 몰랐는데.
“그러게, 나도 좀 궁금했어, 저분 우리 동화 형이랑 무슨 일 있었어?”
일단 무슨 일이 있었긴 할 텐데…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추측상 내가 계단에서 떨어질 때 같이 있었던 건 맞다만, 그 인과 과정까지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
내가 말없이 있자 눈치를 보던 채하민이 곧 말을 돌린다. 그것도 티 나게.
“음, 어, 그런데! 성호 형이 저 팀에 들어갔구나. 다들 알고 있었어?”
류이든이 퍼뜩 눈치를 채곤 채하민의 말을 받는다.
“나는 다른 기획사 데뷔조 들어갔다는 것까지만 들었어.”
“신기하다. 저 팀, 나랑 동화 나오기 전 기획사 소속 팀이거든!”
그러자 이현재가 묻는다.
“아, 그러면 하민이 형이 저기서 데뷔하려고 했던 거네요?”
채하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서 데뷔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지.”
저런 아편 소굴 같은 데서 토끼 한 마리 홀로 있는 것보다야, 동물 농장이 낫다.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석준을 바라봤다.
잠에 잘 들지 못했는지 약간의 피곤한 기색이 드러나는 얼굴이 눈에 든다.
* * *
아직 데뷔 초라 스케줄이 많지 않은 덕분에 음방 엔딩을 찍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앉아 생각했다.
오늘 정리해야 할 생각은 총 두 가지.
우선 마약 사건부터.
‘…음, 마약 이슈는 딱 1년 후겠군.’
나의 개입으로 인해서 채하민이 다른 가능성으로 돌아섰다고 해도 아마 마약 사건 자체는 일어날 수밖에 없을 거다.
거긴 내가 개입하지 않은 영역이니까.
가능성의 조각을 처음 봤을 때야 데뷔하겠다는 명확한 뜻이 없어서 대충 넘어갔다지만.
아이돌이 된 지금으로선, 이런 구설수에 오를 인간들은 그 실현 여부를 떠나서 예방 차원으로 거리를 두는 게 합리적이다.
나는 눈을 감고 머릿속을 뒤적이며 가능성의 조각에서 봤던 뉴스 장면을 떠올린다.
‘God : A 멤버들은 사실 마약중독?’
자극적이었던 뉴스의 헤드라인 뒤로, 마약 사건에 연루된 연예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한다.
‘…하, 일단 다 기억나는군.’
이름까진 모르겠으나 얼굴은 다 외워뒀으니 나중에 찾아보면 그만이다.
물론 채하민이 여기 있으니 갓에이 녀석들이 고발당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다음은 석준. 룸메이트인 류이든에게 물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석준이 잠을 자주 설쳐서 왜 그러냐 물어보니 늘 같은 악몽을 꿔서 그렇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자신이 다른 멤버들과 데뷔하게 되는 꿈을.
‘기지생, 가능한 일인가?’
[모든 인류를 전수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특정 인간은 잠재된 가능성에 더 기민하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과거에 그들을 예언가라 부르기도 했습니다.]하, 이건 너무 비과학적인데. 도저히 믿고 싶지가 않다.
물론… 과거로 온 시점에서 내가 믿고 있던 과학이 조금은 뒤흔들리긴 했으니, 믿고 싶지 않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지만.
하여튼 정리해 보자.
첫째, 석준이 꾼 ‘다른’ 멤버와 데뷔하는 꿈은 또 다른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이건 기지생이 가르쳐준 것이니 신뢰할 만하다.
실제로 내가 가능성을 뒤틀지 않았다면 류이든, 채하민, 이현재 모두 이 서바이벌로 데뷔하진 않았을 테고.
둘째, 석준은 일어나선 ‘이 멤버로 데뷔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다른 가능성에서 니체 엔터의 후속 그룹이 망했냐 그렇지 않냐와는 상관없이, ‘멤버’ 자체가 문제라고 설명한 것이다.
따라서 결론, 석준은 이전의 가능성에서 한 팀으로 데뷔한 이들과 불화를 겪었다.
그러므로 추측, 석준 성격상 누군가와 다툴 인간은 못 되니 따돌림일 가능성이 높다.
…윤성호를 보고 흠칫하는 석준은 아마도 그런 꿈속에 윤성호가 존재했기 때문이겠지.
다만 윤성호의 경우 가해자라고 섣불리 확신하기엔 근거가 빈약하다. 솔직히 말해서, 빈약한 걸 넘어서서 윤성호가 서바이벌 때 보여줬던 모습은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 정리해 보자면 갓에이라는 팀은, 94.7퍼센트 정도의 확률로 마약을 할 멤버 여섯 명과 0.1퍼센트 정도의 확률로 같은 멤버를 따돌릴 멤버 한 명으로 구성된 건가.
…세상에나, 이렇게 보니 윤성호가 안타까워지려 하는군. 저 팀과 엮이는 사건은 무조건 피해 가는 것이 옳을 것 같다.
* * *
원래 모든 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희망보다는 단념이 더 가까운 유년기를 보내며 깨달은 교훈이다.
“그럼, 라디오 출연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견훤 씨께서 이번 라디오 게스트로 우리 팀을 청했습니다.”
강승원 매니저님은 차근차근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다만, 전원 출연은 아니고 단 세 분만 요청했고, 동화 씨를 픽스했습니다.”
자세히 듣고 있던 류이든이 답했다.
“…흠, 라디오면 누가 좋을까요.”
“기획팀과 상의한 결과, 이든 씨와 석준 씨가 괜찮을 거라 결론 지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생각 없이 매니저님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저희만 부르기는 화력이 약할 거라 생각했는지, 데뷔한 신인 중 ‘그나마’ 잘나가는…….”이라고 말하는 강승원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간 게 신인들을 모두 짓밟고 있는 성적이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갓에이라는 팀도 함께 부르기로 했답니다.”
…그래, 사는 게 그렇지, 망할.
나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만, 석준 저놈이 가는 곳이니 윤성호만 없으면 되는 일이다.
…만, 내가 PD여도 윤성호는 픽스할 거라는 게 문제지.
같은 서바이벌 출신이 서로 다른 팀으로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는데, 그걸로 어그로를 끌지 않을 리가 없다, 그 망할 놈들.
…그렇다고 여기서 석준은 빼고 가자고 할 수도 없다. 근거가 없으니.
윤성호가 가해자든 아니든, 반복적인 악몽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석준은 꽤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어쩐다.
* * *
작업실에 나와 류이든, 석준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일단 라디오에서 라이브가 5분 내외라니까, 한두 곡 정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뭐가 좋을까?”
“…저녁의 리듬은 10시쯤에 라이브니까, ‘클라우디 블루’ 어쿠스틱으로 편곡할까.”
그러자 류이든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뭘 봐.
“동화, 내가 늘 말하는 거지만,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이번엔 다른 분들한테 맡기자.”
성격상 보통 편곡을 하자고 하면 내가 주도해서 하는 걸 알고 있는 류이든이, 내 건강이 걱정됐나 보다.
옆에 있던 석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작곡도 고생하셨―는데, 편곡은 AR팀분들―께 맡겨도― 괜찮습니다.”
…흠, 이번엔 남한테 맡기고 싶진 않군.
나는 둘을 보다가 다리를 반대로 꼬며 답한다.
“…준, 네가 주도하는 게 어때.”
석준은 평소 작곡을 공부하던 녀석이고, 옆에서 봤을 때 실력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그런데도 평소엔 사정상 내가 작업할 때 보조하는 입장이지.
이렇게 결실을 맺을 기회는 자존감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악몽.
악몽을 꾸는 원인은 모르겠다만, 일단 편곡에 정신을 쏟아서 숙면을 유도해야겠다.
석준은 류이든 다음으로 체력이 좋은 놈이라 기력이 남아도는지, 밤마다 위즈니를 돌려보는 버릇이 있으니까.
집에 들어가자마자 곯아떨어지게 굴려주면 악몽을 꿀 새가 있을까.
그러자 석준은 약간 당황했는지 고개를 갸웃하곤 묻는다.
“제 실력―이, 아직― 미―숙하지 않―습니까?”
“…어쿠스틱 편곡은 잘하고도 남을 실력이고, 나도 보조할 거야.”
류이든이 나를 가만히 보더니 내 의중을 파악하곤 웃으며 말한다.
“나는 작곡을 몰라서, 옆에서 좋은 귀가 돼줄게. 우리 준이 편곡 기대된다!”
…쓸데없이 눈치만 빨라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