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5화(5/343)
5.
“동화야아아, 찬바아라암 기분 조오타아아.”
“치욕스러우니까 닥쳐, 토끼 새끼야.”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떤 철학자는 인간이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을 때 이성적 사고가 가능해진다고 했다.
그러니 그 말대로 따져보자. 어쩌다 이 상황에 처했는가?
1. 채하민은 놀랍게도 맥주 한 잔에 갔다.
2. 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 채하민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동화야, 너어는 노오래 왜 그릏게 잘 만드냐……. 나아중에 녹음하아면 나도 보내주우라…….”
3. 나는 채하민보다 키가 작아 옆에서 부축하는데도 현재 죽어버리고 싶다.
“동화야아, 땅이 어엄청 푸욱신하다……. 여어기서 자아고 싶다아…….”
4. 아니, 이대로 그냥 채하민을 죽여버리고…….
침착하자. 사람을 죽이는 건 지성인이 할 만한 일이 아니다.
어렵사리 채하민을 끌고 내 집에 들어섰다. 채하민을 침대에 던져놓고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한 번에 마셨다. 그대로 병을 침대에서 허우적대는 채하민한테 던져버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관뒀다. 거실에 소파를 사두길 잘했군.
‘그나저나 쟤는 외박한다고 말 안 해도 괜찮으려나. 내가 집에 전화라도…….’
…닥쳐, 지동화. 너는 채하민을 여기에 재워주는 것으로 인간의 도리를 다한 거다.
나는 애써 신경을 끄려고 채하민의 외투만 벗겨두고 방에서 나오려 했다.
그래, 나오려 했는데…. 채하민 핸드폰에 ‘집’이라고 적힌 걸 봐버렸다. 못 봤으면 또 몰라. 젠장할.
나는 심호흡을 두세 번 하고 전화를 받았다.
“하민 도련님, 어디세요?”
‘…도련님?’
* * *
채하민이 고작 맥주 한 잔의 숙취로 내 집 침대 위에서 괴로워하는 와중에 니체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디션에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우리 말고 다른 연습생들 실력이 개판이었는지 결정이 빨리 난 듯싶다.
그리고 그 문자와 함께 떠오르는 알림 창.
[퀘스트 ‘더는 도망쳐선 안 돼!’ 완료!당신은 월세를 내지 못해 노숙의 위기에 내몰렸으나 이젠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물론 서바이벌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말입니다.
보상 : 밀린 월세와 2개월분의 월세로 총 5백만 원 상당의 현금]
…만약에 오디션에서 탈락했으면 그대로 고소당할 뻔했군. 어서 월세부터 내야겠다.
[주의! 보상은 언제든 회수될 수 있으므로 최선을 다해 무대를 준비하셔야 합니다!]‘…나도 알아, 망할 생명체.’
빚지기 싫어서 이런 건데, 왠지 5백만 원을 빚진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더럽군.
하여튼 그런 이유로 채하민도 우리 집에서 씻고 같이 가기로 했는데…….
‘…….’
그 결과, 나는 지금 숨 막힐 듯 부담스러운 기분을 느껴야 했다. 어쩜 일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눈빛이다.
“…미안해하지 말라니까.”
얘가 술을 마시더니 지능이 토끼 수준으로 퇴행했나, 왜 말을 해줘도 들어먹질 않니.
“말이라도 그렇게 해줘서 고마워…….”
“…말만 그런 게 아니라고 몇 번을.”
“아, 맞다. 그런데 어제 집이랑 전화한 기록은 있는데 통화한 기억은 안 나서, 혹시 너가 받은 거야?”
“…응.”
그리고 네가 최소한 고용인을 쓰는 집안 출신이란 걸 깨달았지.
음, 그건 그냥 잊도록 하자. 집안이 어떻든 얘는 그냥 착한데 멍청한 토끼에 불과하다.
“그것도 민폐 끼친 거네……. 나 앞으로 술 마시면 안 될 것 같지?”
“…그 집 사과주스도 맛있어.”
채하민은 그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침울했던 표정은 집어치우고 다시 헤실거리기 시작했다.
금주하라고 돌려 말한 게 기분 좋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 됐다. 우선 씻으러 들어가자.
나는 차가운 물을 맞으며 생각한다. 이 기이한 지적 생명체 놈은 대체 왜 내가 서바이벌에 참여하는 데 필사적일까?
‘생명체. 메인 퀘스트 다시 한 번만 보여줘.’
[메인 퀘스트 ‘조우!’완료 조건 : 채하민을 포함한 네 명의 인물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세요!
보상 : ???]
확실히 미심쩍군. 퀘스트 수행 대상이 4명, 그리고 서바이벌 데뷔 인원은 총 5명. …우연이라기엔 너무 딱 맞아떨어지는데.
저 기이한 생명체 놈은 내가 이런 개같은 사태에 처한 원인을 알기 위해서라도 이 퀘스트를 수행할 걸 권했다.
그렇다는 건 퀘스트를 완수했을 때 준다는 보상은 필연 그 단서가 될 텐데… 저 퀘스트 조건인 ‘4명과 친해져라.’라는 것이 왜 이리 마음에 걸리는지 모르겠다.
‘하, 지금은 의도대로 놀아줄 수밖에 없나. 호기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도 하니.’
만약에 시공간 이동의 이유를 알려주지 않기만 해봐라.
저놈은 이 세계 속의 존재는 아닌 것 같으니, 내가 그날로 시공간 연구 시작해서 직접 찾아가고 만다.
* * *
“안녕하세요! 이번 서바이벌 기획 맡은 기획2팀 팀장 장해진이라고 합니다. 어제 오디션장에서 뵀죠?”
니체 엔터 사옥 회의실로 갔더니 기획팀장이 우리를 맞아준다. 딱 보니 비즈니스에 능숙한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편집자가 떠오르는군.
“서바이벌 참여 확정을 우선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명목상 니체 엔터테인먼트 내부 연습생들로 이뤄지는 오디션이라는 컨셉이라 두 분 모두 임시라 하더라도 회사랑 계약 맺어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한번 보시겠어요?”
나는 계약서를 건네받고 빠르게 훑어봤다.
‘비교할 만한 연습생 계약서라곤 허점투성이였던 갓 엔터 것밖에 없었으니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군.’
어쩔 수 없이 나는 채하민이 말을 꺼내기를… 잠깐. 뭔가 이상한 걸 읽은 것 같은데.
“여기에 연습생 개인의 문제로 프로그램 진행에 피해를 줄 시 손해배상을 수행한다, 라고 적힌 것은 뭔가요?”
“음, 우선 저희가 서바이벌 인원을 추가로 모은 이유는 아시죠? 그래서 이번에 새로 들어간 조항이에요. 두 분은 저희가 따로 개인 조사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요.”
“그러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명시를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너무 모호해서 웬만한 일로도 손해배상 진행이 가능할 것 같거든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 조항대로면 실력 부족을 이유로 서바이벌 진행에 ‘피해’를 줬다고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장해진 팀장이 당황한 눈초리로 날 바라본다. 예상도 못 했다는 표정인데, 혹시 연습생들이 이렇게 계약서 조항에 태클 거는 게 무례한 건가.
아이돌판을 잘 모르니 귀찮은 일투성이다. 나중에 하루 날 잡고 공부를 하든가 해야지.
“저희도 처음 넣은 조항이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그럼 조항에 언급된 ‘개인적인 이유’를 위법한 행위로 한정해 둘게요. 학교 폭력 같은 것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채하민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채하민은 입 모양으로 ‘잘했어’라고 말한다.
칭찬해 달라고 본 거 아니야, 미친 토끼야. 문제 될 거 없냐고.
내가 눈으로 욕하자 다시 씩 웃은 녀석은 장해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계약서대로면 서바이벌 탈락 후에도 니체 엔터에 남아있을 수 있네요?”
“네, 두 분께도 좋은 기회잖아요? 우리도 인재를 떠나보내긴 아쉽기도 하고.”
전혀 아쉽지 않다. 채하민은 어떨지 몰라도 두 번은 없다.
“동화야, 탈락해도 연습생 할 곳 찾으러 다니진 않아도 되겠다, 그치?”
기쁘다는 듯 말하면 내가 좀 죄책감이 느껴지잖냐.
“…그러게.”
그래, 말로는 뭔들 서비스 못 하겠냐.
“계약서에 대해선 이쯤 하면 됐고. 정말 혹시지만, 학교 폭력이나 그 비슷한 이슈 같은 거 없으시죠?”
“네!”
채하민은 당차게 답한다. 하기야 채하민이 그런 짓을 하면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는 거다.
나도 채하민을 따라 답을 하려 입을 열었다가… 흠칫했다.
나 아무것도 모르잖아?
띠링―!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지동화의 과거는 현재 당신과 비교할 때 연습생 생활이 추가된 것을 제외하고 크게 변한 부분이 없습니다.]즉, 학교에서도 따돌림당했겠군. 아, 아닌가. 연습생 생활하느라 공부 잘한 건 아니었을 테니 따돌림당할 이유가 없잖아.
‘기왕이면 이것도 알려줘, 지적 생명체.’
[따돌림이라 불릴 행위는 없었습니다.]입력 끝. 그나저나 이건 사적 대화로 취급이 안 되나 보군. 유용하게 써먹어야겠다.
나는 다시 장해진과 눈을 맞추며 말한다. 내가 글을 읽느라 걸린 약 4초간의 정적 때문인지 장해진은 약간 긴장한 표정이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약간 웃으며 말했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회사도 오신 김에 서바이벌에 참여하는 다른 분들이랑 인사라도 하시겠어요?”
하, 내 쓰레기 같은 사회성으로 새로운 인간 8명과 만나서 대화나 할 수 있으려나.
“좋죠!”
그래, 채하민, 너만 믿는다. 나는 채하민의 대답에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 * *
얘네들 눈빛이 대체 왜 이 모양 이 꼬라지인가. 장해진이 데려간 곳은 댄스 연습실로, 총 8명 중 2명이 있었다. 나머지 5명은 곧 온다나.
하여튼 얘네들 눈빛이 싸하다. 한 놈은 굳이 따지자면 낯선 대상에 대한 경계 같았지만, 다른 한 놈은… 다르다. 초면이니 경계심을 지니는 거야 그럴 수 있는데, 저건 경계심보다도… 적개심에 가까웠다.
소개에 따라 고개를 꾸벅이며 어색하게 인사하는 우리를 두고, 장해진이 다른 이들을 데려온다고 밖으로 나가자 싸늘한 침묵이 맴돌았다.
채하민이 우선 그 분위기를 깨려 시도했다.
“안녕하세요! 아까 들으셨지만 채하민이에요. 나이는 스무 살입니다. 옆에 있는 동화랑 친구예요!”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침묵. 뭔데, 대체. 그렇게 조용히 있자 적개심으로 가득 찼던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인사 안 하냐?”
아, 기선 제압 같은 거군. 이제 이해했다. 인간 사이의 관계는 처음에 형성된 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인간관계든, 상대방과 이해득실을 나눠야 하는 사이라면 처음에 기를 눌러놔야 이득을 취하기가 쉽다.
얘네는 새로 들어온 우리를 찍어 눌러두고 싶나 보다.
‘좀 더 우아한 방식으로 할 수도 있을 텐데.’
늘 토론에서 오가는 우아하지만 동시에 치밀한 기선 제압만 겪어봐서 그런지 너무 천박해 보였다.
고작 인사 순서를 문제 삼아서 초면에 반말로 시비 거는 거라니.
사실 평소였으면 그냥 무시하고 말 텐데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채하민을 보니 골때려서 안 되겠다.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일단 반말 들을 이유가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자.
“왜, 반말 듣기 꼽냐?”
“저보다 나이 많아 보이시는데 꼬울 건 또 뭐겠습니까.”
노안이라고 비꼰 건데 부디 알아주길.
“그냥 조금 궁금해서요. 연세가 어찌 되시나요?”
녀석은 기분이 더럽다는 티를 내며 나를 바라보다 툭 말했다.
“연습생 선배한테 말하는 꼬라지가 그게 뭐야.”
하, 애새끼였네. 이 타이밍에 저 핑계 대는 거 보면 잘 쳐줘 봐야 스물이다. 우리 나이 아니까 말하기 싫다 이거지.
그나저나 이렇게 골 빈 대화라니, 누구 말마따나 말이 통하지 않으니 말로는 이길 자신이 없다. 차라리 시원하게 욕이나 해주고 싶은데, 계속 얼굴 봐야 할 수도 있는 사이니까, 좀. 그래, 이게 좋겠다.
“선배, 저희가 좀 모자라서 말입니다. 배움을 좀 얻고자 하는데 혹시 가장 자신 있는 분야가 어디십니까?”
입 닥치고 실력으로 승부 보자는 뜻이다. 얘도 버젓이 뇌가 달려있는데 내 말의 의도를 모르진 않겠지.
여기서 빼면 그건 그것대로 좋다.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 한 발 뺐다는 은근한 패배감을 녀석은 맛봐야 할 테니.
“춤.”
오케이, 너로 정했다, 채하민.
“하민아, 춤 한번 선배께 보여줄 수 있겠어?”
여기서 빼면 너랑 친구 안 할 거다, 토끼 새끼.
다행히 채하민도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나를 보곤 아주 옅게 미소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한번 춤 보여드릴게요! 고칠 점 좀 알려주세요.”
이건 또 잘 맞춰주네, 눈치 없는 줄 알았는데.
하여튼 이제 됐다. 채하민이 실력으로 기선 제압은 알아서 해줄 테니, 나는 우아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 아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여기서 빠지면 또 귀찮게 굴지도 모르겠네.
“그럼 기왕 평가해 주시는 김에 제 곡도 좀 평가해 주십시오. 어제 한 곡 만들었습니다.”
바로 비너슈니첼을 먹은 기쁨을 표현한 곡이다.
오랜만에 먹은 비너슈니첼 때문에 과하게 열정이 불타올라서 거의 밤새워서 만든 짧은 곡이지만, 상당히 신나는 분위기의 펑키한 곡이 완성됐다. 듣기 좋아서 폰에 넣어오길 잘했다.
그제야 녀석들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 약간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하기야 나 같아도 이렇게 실력에 당당한 모양새면 조금 당황할 것 같긴 하다.
옆에서 갑자기 프리스타일로 춤을 추게 된 채하민도 당황한 표정이 되었지만, 쟤는 알아서 잘할 테니 신경 끄고.
‘다음부턴 우리 친구들, 꼭 기선 제압은 실력으로 하도록 하자.’
나는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원래 내세울 게 부족한 녀석들이 선배 같은 허무한 권위에 기대 타인의 복종을 요구하는 거다.
상황이 얼추 준비되고 곡을 틀 준비를 하는 나한테 채하민이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곡은 오늘 집에서 틀어뒀던 그 곡이야?”
“…응.”
채하민은 갑자기 새로운 노래에 맞춰 춤을 춰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한지 머릿속으로 바쁘게 그림을 그려보는 것 같다.
“…네 정도 실력이면 연습생 중에 너보다 잘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거니까, 마음 편하게 해.”
채하민이 감동받은 표정이 돼선 날 바라본다.
“…고마워.”
하여간 얘도 예상하기가 참 쉽다. 근데 생각해 보면 내 욕심으로 얘가 갑자기 즉흥으로 춤추는 건데, 고마울 이유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