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5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50화(50/343)
50.
“형님! 죽을 것 같습니다!”
류이든이 기획팀 호출로 잠시 자리를 비운 작업실, 석준이 소리쳤다.
흠, 이걸로 정확히 열네 번째인가.
“…쉿, 작업해야지.”
“지금 네 시간 동안 풀 집중 상태! 괴롭습니다! 스케줄 끝나면 바로 붙잡혀 와서! 요즘 밤에 폰도 못 보고 잔단 말입니다!”
…정확하게 의도한 대로군.
이게 다 내가 괴롭히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네 건강을 위한 거야, 준.
“그렇군.”
그래도 악몽을 꾸지 않으니 등가교환 아닐까. 악몽을 덜한 악몽으로 바꿨으니, 내 행위는 공리주의적으로 옳다. 피셔도 동의할걸.
“요즘은 형이랑 작업하는 꿈을 꿉니다!”
…저런. 뭐, 높은 확률로 괴롭힘당하는 꿈보다야 내게 시달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도 예전에 꾸던 그 꿈은 안 꾸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진정됐군. 우리 팀엔 공룡이랑 토끼가 미친 듯이 발진하는 경우가 있으니, 작업실에 마취총이라도 비치해 놔야겠다.
흠, 석준은 한 발로는 안 될 것 같으니 두 발 이상 장전되는 걸로.
석준은 말을 마치고 잠시 멍해지더니 입을 연다.
“형님― 형님은 똑똑하시―니 의견 좀 여쭙겠습니―다.”
“…뭐?”
“음― 사실―그, 서바이벌 때― 저랑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분이 계―셨습니다.”
…윤성호일까. 나는 윤성호와 마주칠 때 흠칫하던 석준을 생각했다.
얘가 미워할 만한 구석이 있나 모르겠군. …하기야 원래 미움엔 이유가 없는 법이긴 하지.
“그런―데 최근 그―분과―데뷔를 하―는 꿈을― 꾸곤 하는데, 음, 왜 그럴까―요.”
…내가 어떻게 알아. 꿈이 다른 가능성을 일시적으로 체험하는 거라는 사실도 안 지 얼마 안 됐는데.
띠링―!
[물론 당신은 40년 후에 그 사실을 독학으로 깨닫게 됩니다!]…아이돌이 됐는데도, 내가 공부를 멈추는 가능성은 없는 건가?
[당신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겁니다.]…그렇긴 해.
나는 석준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악몽은 일반적으로 불규칙한 수면, 잠들기 전의 음식 섭취, 트라우마의 자극, 과도한 불안이나 스트레스 같은 것들을 원인으로 해.”
그러니까 나도 모르니까 네가 이 안에서 맞혀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트라우―마, 인…….”
그렇게 중얼거리던 석준은 흠칫하더니 고개를 젓고는 한숨을 쉰다.
…흠, 목화랑 비슷한 나이 때라 그런지, 이젠 남이 아니라 그런지, 짜증 나게 걱정되는군.
트라우마는 원래 먼저 말하기 전엔 자극해선 안 되니 물어볼 수도 없고.
나는 석준의 어깨를 한번 두드리고 말했다.
“…뭐 해, 작업해야지.”
이게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야, 준.
* * *
“형―님… 여기 기타 사중주 부분 들어주십―시오.”
석준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래, 준아. 우리 동화는 언제쯤 오케이 사인을 보내줄까?”
기획팀과의 대화를 끝내고 돌아온 류이든도 중얼거렸다.
“…쉿, 리더.”
이번에 공연하기로 한 곡은 총 두 곡이다. 첫 번째는 ‘클라우디 블루’의 어쿠스틱 편곡 버전.
그리고 두 번째가 내 자작곡이다.
틈틈이 만들어둔 곡이 꽤 쌓여있으니 하나 정도 이번에 풀어서 작곡 이미지를 정착시키자는 기획팀의 조심스러운 제안을 수용했다.
그리고 내가 결정한 곡은, 류이든한테 선물로 주려고 만들어둔 ‘절벽과 소년’.
나는 어쿠스틱 편곡에 대한 피드백을 마친 류이든을 조용히 불러서 종이를 건넸다.
“이건 뭐야?”
“…가사 써.”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종이를 일단 받아 든 류이든이 내가 내미는 이어폰을 낀다.
“…오, 동화 형, 이거 곡, 좋다.”
…당연하지. 당신 옛날얘기 듣고 나서 만들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다듬은 거니까.
곡은, 한 아이가 절벽을 오르다가 떨어지고 다시 오르다가 떨어지고를 반복하듯 음계가 천천히 오르다가 훅 떨어지는 걸 반복한다. 그러면서도 어두운 분위기는 들지 않게, 약간의 좌절이 섞이더라도 희망적 분위기로 이어지게 작곡했다.
원래는 서바이벌 탈락할 때 선물로 주고 가려 했다만, 여의치 않으니 이럴 때라도 써먹어야지.
그렇게 곡을 가만히 듣고 있던 류이든은 다 듣고 나자 갑자기 말없이 입만 움찔대기 시작한다.
…드디어 숙소 가고 싶어서 미친 건가?
“그, 음, 이거, 혹시 나 주려고 만든 거야?”
세상에나, 대단한걸. 개는 귀신을 보는 눈을 가진다는 헛소리가 있던데 그런 맥락인 건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와 마주한 기분에 나는 류이든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정해둔 제목은 ‘절벽과 소년’인데, 형 주려고 써둔 곡이니까 형 가사 쓰면서 바꿔도 상관없어.”
류이든은 나를 가만히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절벽과 소년?”
“…소년이 형이야.”
정확히는 어린 시절의 류이든이지만.
그래, 이 곡은 결국 류이든이 밟아온 삶에 보내는 내 찬사다.
그리고 어두운 동굴 속을 언젠가 탈출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만으로 돌부리에 걸려 휘청거리면서도 끝까지 걸어간 당신의 시간에 대한 내 적극적인 옹호다.
최종적으론, 그 결과 같이 데뷔한 당신에 대한 내 감사다.
“…형 음색은, 예상보다 거친 느낌이 나니까 거기 맞춰서 작곡했어. 나는 화음만 넣고 준은 여덟 마디 랩만 할 거니까, 가사 써서 노래 연습해.”
“…나, 이렇게 과분한 선물에 가사 붙였다가 망칠까 봐 겁나는데.”
나는 무심하게 말한다.
“…형한테 준 선물인데, 망치든 아껴 쓰든 형 결정이지.”
나는 품에서 공책을 하나 꺼내 류이든에게 넘겼다.
“…이건 내가 곡 쓸 때 생각해 둔 배경 이야기 써둔 거니까 읽고 참고하면 도움이 될 거야.”
사실 별것 아닌 단편소설이다. 이렇게 희망적인 이야기는 취향이 아니지만, 도와주는 데 이 정도는.
* * *
류이든은 숙소에 돌아와 독서 등을 켜두고 지동화가 준 소설을 읽으며, 약간 차올랐던 눈물을 억지로 참아냈다.
‘…아, 이거 어떻게 갚아야 하지.’
대체 이 고마운 동생 녀석한테, 자기보다 어른스러운 동생한테 뭘 해야 은혜를 갚을 수 있으려나.
이 곡을 들을 때, 그리고 지금 이 소설을 읽을 때, 이상하게 데뷔 오디션에서 두 번째로 떨어진 날 밤에 홀로 누워있던 침대가 떠올랐다. 아마 그때가 연습생 하면서 처음으로 운 날이었지. 마치 오르던 절벽에서 떨어진 아픔에 우는 아이처럼.
류이든은 그렇게 울고 나면, 늘 자신에게 할 수 있다고 되뇌었다. 불안함을 애써 무시하며, 이런 과정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은 우울함을 떨쳐내고, 그렇게 해맑은 자신이 되기를 다짐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늘 곪고 있었던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데뷔를 했음에도,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우울하게 머릿속 한편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지동화가 건넨 곡과 소설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이 과연 아프기만 했느냐고 스스로 묻게 했다.
마치 만약에 데뷔에 실패했더라도, 그 과정엔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알려주듯이.
류이든은 눈을 감고 지동화가 건넨 소설의 결말을 다시 곱씹는다.
온 힘을 다해 절벽을 향해 부딪히는 아이는, 무모하고 멍청하며 그러다가 최종적으론 절벽을 오르는 걸 관두지만, 노인이 되어서도 두 손에 남은 흉터를 자랑스레 여겼다. 자신은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은 모든 것을 바쳐본 사람이었다면서.
모든 기억은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인 걸까.
류이든은 과거 슬퍼하던 자신이 안쓰러우면서도,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자랑스러운 존재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만일 데뷔하지 못했더라도, 그리 부끄럽게 회상될 것 같진 않았다.
‘…그래, 약간이라도 갚을 방법은 좋은 가사밖에 없는 거네.’
류이든은 지동화에게서 건네받은 곡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손에 연필을 쥐었다.
* * *
라디오 출연까지 남은 날은 정확히 이틀. 석준은 최종 편곡본을 완성한 기쁨에…….
“드디어! 드디어! 해방입니다! 저 사악하고 잔인한 형님에게 붙잡힌 억압의 세월에서! 드디어!”
내 작업실을 공룡 우리로 만들 셈인지…….
“이제 드디어! 밀렸던 프루츠 월드를! 몰아서! 저는 잃어버린 밤을 되찾았습니다!”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마취총 구비가 시급하군.
“…그래도 일찍 자.”
나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현재 류이든은 가사의 마지막 한 줄을 두고 계속해서 고민을 하는 중이다.
…저런 건 그냥 아무렇게나 써버리고 나서 잊고 있다가 나중에 고치는 게 더 나을 텐데.
그나저나 왜 저렇게까지 독기로 가득 찬 걸까. 어차피 초본이니까 나중에 앨범 수록할 일이 있을 때 다시 고치면 될 텐데.
“…이든 형, 일단 대충 써.”
그러자 류이든이 못 들을 걸 들었다는 표정으로 경악하더니 말한다.
“아니, 동화 형! 이렇게 훌륭한 곡에 어떻게 가사를 대충 쓰냐!”
…그래,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뭐.
나는 수능을 보는 고3 학생처럼 집중하는 류이든과, 개미가 귀로 들어간 코끼리인 양 날뛰는 석준 사이에서 환멸을 느꼈다. 나까지 같이 달리다 보니 지치긴 하는군. 무대를 마치고 연습을 하고, 다시 작업실로 와서 작업이라니. 이 망할 아이돌 생활, 더럽게 바쁘군.
“…이제 다른 애들한테 들려주고 회사분들 컨펌만 받으면 되겠네.”
“그 전에! 반드시 이 마지막 가사를 내가 명문장으로 쓸게, 동화 형!”
…아니, 지금까지 쓴 가사도 충분히 괜찮다고, 멍청한 강아지야.
* * *
“…하, 긴장―됩니다.”
석준이 손을 쓰다듬으면서 말한다. BBS 라디오국으로 가는 길, 저녁의 리듬에 출연하러 가는 중이다.
하기야 자신이 주도한 작업물을 보이러 가는 거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제가, 견―훤 선배님의 오―랜 팬이―라.”
…그렇군.
반면 류이든은 눈을 감고 음악에 계속 집중하고 있다. 잘하려는 욕심이 지금까지도 쭉 이어지나 보다.
“…준, 그래서 요즘은 악몽 꿔?”
“네! 형님이 나와선 자꾸 저를 괴롭힙니다!”
…공리주의적으로 옳으니까 괜찮다.
* * *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유리 너머로 견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우리는 그 뒤의 작가와 PD에게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러자 넉살 좋은 PD님은 모두에게 손을 한 번씩 건네며 악수를 권한다.
“반가워요. 오늘 잘해봐요.”
우리는 작가님이 건네주는 차를 한 잔씩 받아 들고 옆의 의자에 앉아 대본을 훑어보기 시작한다.
‘…하, 그나저나 무슨 고민 상담이란 말인가.’
현재 주민등록상 스무 살밖에 안 되는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남의 인생에 조언을 해준다고.
실제 정신 연령으로 따져도 아직 스물아홉밖에 안 되는데 말이지.
…흠, 고민 보내주시는 분들도 그냥 별 기대가 없는 걸까.
“소문으로 들었는데, 고민 상담 반응이 좋으면 또 게스트로 불릴 확률이 높아진다더라.”
류이든이 다른 스태프분들께는 들리지 않게 조심스레 속삭인다.
“심지어 저 PD님이 성격도 좋으신데, 인맥도 좋으셔서 주변 분들이 게스트 데려올 때 추천도 잘해 주신대.”
그렇게 말하며 류이든이 나를 바라보고 힘내라는 제스처를 취해 보인다.
…하, 그래, 고민 상담을 받았으면 우선 해결책은 최선을 다해 제시해 드리긴 해야지.
그렇게 라디오 출연 20분 전, 우리가 온 지 20분쯤 지났을 때, 스튜디오의 문이 한번 열렸다.
‘하… 망할 놈의 머피의 법칙.’
‘인간’과 윤성호가 들어와 스태프분들께 인사하는 꼬락서니를 보며 나는 석준을 빠르게 곁눈질한다.
…흠, 괜찮은 건가?
윤성호는 우리를 보더니 다시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곤 손을 흔들어준다.
류이든이 웃는 표정으로 마주 손을 흔들어주며, 놀라운 복화술로 내게 말을 건넨다. 작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갓에이 리더분, 엊그제 동화, 네 말 듣고 알아보니까 소문이 좀 이상하긴 하더라.”
…어떻게 입술이 단 한 치도 안 움직이는?
저 ‘인간’ 소문 이상한 거야 예상했던 거니 됐고, 난 당신의 입술이 움직이지 않는 게 더 신비로운데.
나는 놀라운 복화술의 재능 따위는 없으니 조용히 류이든의 귀에 속삭였다.
“…친하다든지 라이벌 이미지라든지 최대한 다 잘라먹어서 앞으로 같이 언급 안 되게만 하면 돼.”
류이든이 내 말을 듣곤 여전히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역시 사회성에 능력치가 몰린 인간답군.